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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신윤복의 실제 관계는 어떠했을까?

김홍도 그림 정보 | 2008/10/13 13:39 | , , , ,

조선시대 쌍벽을 이루는 풍속화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실제 삶은 어떠했을까? 사제지간이자 연인으로 그려지는 '바람의 화원'과 달리 실제 두 사람이 교류한 흔적은 역사적으로 찾아볼 수 없다. 모두 화원 가문 출신으로 천부적인 소질을 타고났음에도 불구하고, 김홍도는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반면 신윤복은 당대 실력을 인정받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이고, 역사적 기록도 찾아보기 힘들다.

단원 김홍도는 1745년 김해 김씨 김진창의 증손으로 양반가에서 태어났다. 외가가 대대로 화원을 배출한 미술가 집안이었기에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났고, 일곱살에 도화서 김응환의 제자가 됐다. 김응환은 당시 유명한 문인 화가인 강세황에게 김홍도를 소개했으며, 도화서에 정식으로 들어간 김홍도는 1771년 왕세손인 이산의 초상화를 그릴 만큼 화원으로 재능을 인정받았다.

1776년 영조에 이어 이산이 정조로 보위에 오르자, 김홍도는 규장각도를 바쳤고, 1781년 정조의 초상화를 그렸다. 정조는 "그림과 관계된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하게 하라"라고 할 정도로 김홍도를 총애했다. 김홍도는 성품 또한 '군선도'를 그린 것처럼 호방하고 신선과 같은 풍류를 즐기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조희룡이 쓴 '호산외사'에 따르면 김홍도는 말년 너무 가난해 조석으로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지만 시장에서 본 매화를 보고 사고 싶어 자기 그림을 3000냥에 팔아 2000냥으로 매화를 샀으며, 나머지 돈으로 지인을 초대해 술잔치를 벌였다.

김홍도는 김응환과 함께 1788년 금강산 산수화를, 1789년 일본 지도를 그려오라는 어명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1789년 김응환이 부산에서 병으로 죽자 홀로 대마도로 가서 일본의 지도를 모사해 돌아왔다. 1790년에는 사도세자를 위해 지은 사찰인 용주사 대웅전에 삼세여래후불탱화를 그렸으며 1795년 충청도 연풍에서 현감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김홍도는 소금 장수로 부를 축적한 거상 김현태에게 그림을 그려주는 대신 경제적 지원을 받아 활발히 그림 활동을 할 수 있었지만 말년에 생활이 어려웠다. 1805년 병으로 위독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정확한 사망 연도는 알려지지 않았다.

신윤복은 화원 가문인 신한평의 장남으로 1758년 태어났다. 도화서 화원으로 벼슬이 첨절제사에 이르렀으나 속화(俗畵)를 즐겨 그려 후에 쫓겨났다는 이야기만 전해질 뿐 개인적인 생애와 사망 시기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무하다. 다만 권력과 조정의 그늘에서 벗어나 살았으며, 유고 사회로부터도 소외당했다고 보는 학자들도 많다.

신윤복은 기생과 한량, 별감이나 포졸 등 하급 잡직 관료들의 모습을 그렸으며, 봉건 사회와의 갈등 속에서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고집했고 대부분의 작품에 짤막한 찬문(贊文)을 담아 감각적인 글솜씨도 발휘했다. '기방무사' '월하정인' '혜원전신도' 등이 대표작이며 그림 속에 자주 자신을 등장시켰다는 학설도 있다. 그림 인물 중, 주변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이가 바로 신윤복 자신이며, 이는 장난기 섞인 에로티시즘이자 세상을 관조하는 풍자적인 의미라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처네를 쓴 여인'이 1829년 그린 작품이라, 19세기 초까지 활동한 것으로 짐작된다.

이인경 기자 [best@joongang.co.kr]
2008/10/13 13:39 2008/10/13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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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태칠 2008/10/15 20:20 수정/삭제댓글쓰기

    신윤복 & 김홍도 = 0 0 0

일월산인 : 1회~2회 리뷰: 바람같은 시대의 바람같은 사랑

김홍도 그림 정보 | 2008/09/29 10:40 | , , , , ,

<프롤로그-기다림>




캐스팅 확정 기사부터 줄곧 기다려왔던 작품이다.그간 티비와 스크린을 오가며 여러 작품들을 통해 맛있는 연기가 무엇인지,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기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실력파 배우,박신양과 국민 여동생의 타이틀이 늘 아깝지 않았던 초롱하고 영리한 눈망울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의 문근영의 조합.게다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라니..둘의 로맨스라니...


뚜껑을 열어 보니,아니나 다를까,두 배우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다못해 아예 이 작품을 통해 기존의 이름값에 몇 갑절 더 그 가치를 얹으려는 것인지,참으로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조선 후기,한국의 문예 부흥 시대인 정조 시대에 화단의 쌍벽을 이루던 두 화가의 이야기.스승과 제자로 시작하여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남녀의 이야기.


<끝을 말해주는 시작>

극의 시작은 바람 소리가 스산하게 들리는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을 선비 하나가 휘적휘적 걸어 올라가는 장면이다.그리고 곧 그의 나레이션이 깔린다.


"이제 나는 한 사람에대해 말하려 한다.나는 지금 기쁘고도 고통스럽다.그를 떠올리니 기쁘고 그를 잃을 것이니 고통스럽다.그는 나의 제자였고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친구였고 그리고 나의 연인이었다."


결말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도입부다.그를 추억하니 기쁘고 그를 잃게되니 괴로운 한 남자.그 남자는 김홍도요,그 남자의 "그"는 신윤복.그들의 아름답고 서글픈 사랑의 기억 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1.그들의 이야기


도화서,라는 다소 생경한 공간을 배경으로 견습 화공들의 자잘한 에피소드와 그 속에서 인연의 실을 엮게 되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



<신윤복>
신윤복이 실은 여인이었고 출중한 재주 때문에 남장 여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기구한 삶과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한국 회화사의 한 획을 굵고 진하게 그었다는 설정과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김홍도가 그의 스승이자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는 그의 연인이었다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윤복은 우연히 외유사생을 나왔다가 어느 사가(私家)의 담장 너머로 당대의 호랑이와 같은 존재인 정순왕후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담장에 붙어서 그녀가 누군지 짐작하지도 못한 채,무언가를 한없이 기다리며 안타까워하는 듯한 그녀의 뒷태를 화첩에 담는다.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결국 자신을 점점 죄이는 고통스러운 족쇄가 될 것을 짐작도 못한 채...


잠시 문근영의 연기를 짚고 넘어 가자.그녀의 전작,사랑따윈 필요없어.의 실패로 그녀의 성인 연기자로서의 미래는 다소 불투명해 보였다.여전히 앳된 소녀 티를 벗지 못한 그녀의 외모 탓도 있겠지만 그녀에게 걸맞는 배역을 맡지 못해서였기도 하고,설익은 그녀의 연기가 스크린 여주인공을 소화하기에 다소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허나 바람의 화원,신윤복으로 거듭난 그녀는 미소년 윤복을 완벽하게 살려낸다.아직 변성기가 채 끝나지 않은 중성적인 목소리도 그렇고 대사 하나하나를 정확한 발음과 톤으로 처리한다.때론 능청스럽게,때론 한없이 여리게,열정적이면서도 아직은 풋풋한 견습 화공으로서의 신윤복을 완성시키고 있다.


박신양의 농익은 연기와 문근영의 파릇파릇한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극에대한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 올려주는 것 같다.


<김홍도>


박신양은 쩐의 전쟁에서 보여준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1회에서 얼굴과 온몸에 검댕칠을 하고 머리에 듬성듬성 풀줄기를 꽂아 위장을 한 채,호랑이를 사생하는 모습은 박신양이 아니면 감히 그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실감이 났다.호랑이같은 매서운 눈썰미를 지닌,당대 최고의 화가가 호랑이를 사생한다.


김홍도가 호랑이를 몰래 그리는 모습과 신윤복이 정순왕후를 몰래 그리는 모습은 닮았다.김홍도가 사생하던 호랑이는 김홍도의 목숨을 순간 위협하고 신윤복이 사생하던 정순왕후는 신윤복의 신변을 위협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

예정된 일인듯,정해진 운명인 듯,둘은 그렇게 만난다.그림 하나를 서로 보겠다고 티격태격하다 결국 그림을 찢어 버리고,윤복은 그대로 그려주겠다 호언장담하는데..


복의 손을 거침없이 잡아 붓을 쭉쭉 내리긋는 김홍도...윤복의 자신의 화법에 대한 얘기를 흐뭇하게 듣는 김홍도.박신양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그는 대사 하나를 해도 참으로 맛있게 뱉는다.

그린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김홍도의 질문에 다들 곤혹스러워하는 가운데,신윤복은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이 아니겠느냐는 답변을 한다.그린다는 것이 그리움이라...참으로 그럴듯한 답이 아닌가?윤복의 대답을 흥미롭게 듣는 김홍도.거꾸로 된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하며,아홉개의 점을 가지고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하며,그린다는 것의 정의를 말하는 것하며,김홍도는 점점 윤복의 천재성에 탄복하고 그가 범인인 것을 눈치채지만 그런 그의 재능이 너무 아까워 그를 구할 방도를 찾게 된다.

천재와 천재의 만남,그리고 남녀의 만남..


2회에서 주막에 마주 앉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대화를 잠시 보자.장자의 호접지몽에 등장하는 표현,물아의 경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둘은 신이 난다.물아의 경지를 체험한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그들의 대화도 역시 물아의 경지다.서로 통한다는 것.서로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람.'바로 그다!'


김홍도와 신윤복.그들은 참으로 많은 부분이 닮았다.그림에대한 남다른 열정이 그러하고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이 그러하고 하나에 집중하면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집중력이 좋다.그런 그들이기에 사랑에도,그렇지 않았을까?그들이 그려낼 광풍같은 사랑이,벌써부터 기다려지고 한편,두려워진다.


<극의 재미들>


1.신윤복의 라이벌?-장효원
2.도화서 화공들
도화서의 견습 화원들의 연기나 그들에 대한 묘사도 재미를 준다.생도 장인,장효원의 오만함과 현학적인 모습은 얄미울 정도며 가장 나이가 많은 견습생이 아내가 만들어준 먹거리를 받기 위해 담장 너머로 뻐꾹뻐꾹을 줄기차게 주고 받는 장면도 재미있었다.담장을 넘어 오겠다는 아내를 그는 왜 굳이 거절했을까?동료 견습생들에게 박색의 그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참,이 나이 많은 화공은 감초 배우,이문식을 떠올리게 한다.


3.시각적,청각적 즐거움들
드라마가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이다.신윤복이 어떤 것을 보고 붓을 들어 허공에 그 사물의 선을 따라 그릴 때,실제로 먹을 묻힌 붓이 선명하게 선을 따르는 방식이 참 기발하고 좋았다.의상이나 이런 저런 소품들,풍경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색채가 곱고 선이 곱다.

배경 음악 또한 아름답다.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듯한 선율이 그림같은 장면들과 어우러져 시각과 청각에 짙게 호소한다.장면 장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장면을 흐르는 음악이 두 귀를 쫑긋 서게 한다.눈과 귀가 호사를 누린다.


4.10년 전의 사건?그리고 정치적 암투?
장벽수와 김홍도의 팽팽한 대립.김홍도의 스승과 장벽수 사이에는 분명 무슨 일이 있었지 싶다.그 일로 인해 스승이 죽음에 이르렀고 그 사건 핵심에는 한 장의 그림이 관계되어 있는 것 같은데..정조가 김홍도의 스승인 김응환에게 일본의 지도를 그리게 했고 김응환이 병으로 죽자 김홍도에게 계속 일본의 지도를 그리게 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정조와 정순왕후의 정치적 대립 또한 극 전체의 기류를 형성하는 시대적 배경이 되기에 그 한 장의 그림은 숱한 이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실로 중요한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또한 거부 상인 김조년의 교활한 활약(?)도 기대된다.



5.정조와 정순왕후의 대립
후덕하고 기품있는 미모를 지닌,정순왕후는 외모와는 달리 매우 간악하고 욕심이 많은 인물이다.그런 그녀에게도 정인이 있나 본데,그녀의 애정 행각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고 결국 모든 갈등의 중심에는 그녀가 서 있으니 정조와 정순왕후의 대립이 김홍도와 신윤복의 삶에도 큰 바람을 불러 올 것이 분명하다.



6.신윤복의 형,영복
영복의 안타까운 사랑도 볼거리다.도화서 화공들 중 유일하게 윤복이 여인임을 아는 영복은 그녀를 지키는 임무를 잠시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그의 눈은 그녀를 쉼 없이 뒤쫒고 그녀의 주변을 늘 맴돈다.또 하나의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우리는 보아 넘겨야 할 듯 싶다.영복의 애처로운 시선을 따라 윤복을 바라봐야 할 듯 싶다.그의 종말이 어떨지 감히 상상을 해보며 일찌감치 손수건을 준비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말:


정치와 문화 모든 면에서 큰 바람이 일었던,정조 시대.시대의 바람은 개인들의 삶에도 불어오고,연약한 민초들은 그 바람에 흔들리고 꺾이기도 한다.천재 화가들이라고 예외였겠는가.시대의 바람이 관통한 자리에 그들의 발기발기 찢긴 삶이,사랑이,시간이..이젠 기억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몇 백년이 흐른 뒤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천재 화가,김홍도와 신윤복.

그들의 인생에 단 한 번 불어와 그들 삶 전체를 뒤흔들었던 바람.21세기의 우리는 티비 화면이라는 화폭 위에 18세기의 그들이 그려내는 아련한 사랑을 관조한다.바라볼 수는 있되,그 화폭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어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안타깝기만 하다.매회,팽팽한 긴장감과 아기자기한 재미들로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짧게만 느껴지게 하는 수작,바람의 화원.다음 주 3회가 벌써 기다려진다.

출처=다음 텔레비존
http://tvzonebbs.media.daum.net/griffin/do/talk/program/hwawon/read?bbsId=308_a&articleId=100&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2008/09/29 10:40 2008/09/2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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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 김홍도의 작품세계

김홍도 그림 정보 | 2008/09/20 15:13 | , ,
* 1745(영조 21)~? 조선 후기의 대표적 화가

산수·도석인물(道釋人物)·풍속·화조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뛰어난 재능을 발휘했으며, 그의 화풍은 조선 후기 화단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은 현재 200여 점 정도 알려져 있는데 화풍상의 변화는 50세를 중심으로 전후 2기로 크게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산수화의 경우에는 전기에는 원체화적(院體畵的) 경향을 띤 정형산수를 많이 그렸는데, 1778년 작인 〈서원아집도 西園雅集圖〉 6폭병풍과 선면화(扇面畵) 등에 잘 나타난다.

50세 이후의 후기에는 한국적 정서가 담긴 진경산수를 즐겨 그리면서 단원법(檀園法)이라 불리는 보다 개성이 강한 화풍을 이룩하였다.

그의 후기 산수화풍은 석법(石法)과 수파묘(水波描) 등에서 정선(鄭敾)·심사정(沈師正)·이인상(李麟祥)의 영향이 부분적으로 발견되지만 고도의 회화감각으로 처리된 탁월한 공간구성과 변형된 하엽준(荷葉), 수묵의 능숙한 처리, 강한 먹선의 강조와 맑고 투명한 담채의 효과 등을 통해 독창성을 발휘하였다.

또한 그는 만년에 이르러 명승의 실경에서 농촌이나 전원 등 생활주변의 풍경을 사생하는 데로 관심을 바꾸었으며 이러한 사경산수 속에 풍속과 인물, 영모화조 등을 그려넣어 한국적 서정과 정취가 물씬 풍기는 일상사의 점경으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산수뿐만 아니라 도석인물화에서도 자신만의 특이한 경지를 개척했다. 도석인물은 전기에는 주로 신선도를 많이 그렸는데, 굵고 힘차면서도 거친 느낌을 주는 옷주름과 바람에 나부끼는 옷자락 그리고 티없이 천진한 얼굴모습 등으로 특징지어지는 이 시기의 신선묘사법은 1776년에 그린 〈군선도병 群仙圖屛〉(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39호)에서 전형적으로 찾아볼 수 있다. 후기가 되면 화폭의 규모도 작아지고 소방하면서 농익은 필치로 바뀌게 된다.


김홍도의 회화사적 비중을 한결 높여주고 있는 분야는 풍속화이다. 조선 후기 서민들의 생활상과 생업의 광경을 간략하면서도 짜임새있는 구도 위에 풍부한 해학적 감정과 더불어 표현된 그의 풍속화들은 정선이 이룩했던 진경산수화의 전통과 나란히 조선 후기 화단의 새로운 경향을 가장 잘 대변해준다. 당시 속화체(俗畵體)로도 불렸던 그의 풍속화풍은 현실적인 소재를 소박한 생활정서와 풍류적 감성이 가미된 생동감 넘치는 기법으로 창출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된다.



<평가 및 영향>

홍백화(洪白華)의 글과 조희룡(趙熙龍)의 〈호산외기 壺山外記〉에 의하면, 김홍도는 외모가 수려하고 풍채가 좋았으며 또한 도량이 넓고 활달해서 마치 신선처럼 보였다고 한다. 스승인 강세황으로부터는 '근대명수'(近代名手) 또는 '우리나라 금세(今世)의 신필'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정조는 '회사(繪事)에 속하는 일이면 모두 홍도에게 주장하게 했다'고 할 만큼 그를 총애했다. 김홍도가 이룩했던 한국적 감각의 화풍과 경향들은 그의 아들인 김양기(金良驥)를 비롯하여 신윤복(申潤福)·김득신(金得臣)·김석신(金碩臣)·이명기(李命基)·이재관(李在寬)·이수민(李壽民)·유운홍(劉運弘)·엄치욱(嚴致郁)·이한철(李漢喆)·유숙(劉淑) 등 조선 후기와 말기의 여러 화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한국화 발전에 탁월한 발자취를 남겼다. 안견(安堅)·정선·장승업(張承業)과 함께 조선시대의 4대 화가로 손꼽힌다. 그의 영향을 받았거나 그의 화풍을 추종했던 화가들을 가리켜 김홍도파 또는 단원파(檀園波)라 하기도 한다.

앞서 언급한 작품들 외에 그의 대표작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의 〈단원풍속도첩〉(보물 제527호)과 개인소장의 〈단원도〉(1784년작)·〈금강사군첩〉·〈섭우도 涉牛圖〉·〈기로세련계도 耆老世聯圖〉(1804년작), 간송미술관 소장의 〈무이귀도도 武夷歸棹圖〉, 호암미술관 소장의 〈단원화첩〉(1796년작, 보물 제782호) 등이 있다.


  백묘화     단원도  단원풍속도첩



 단원풍속도첩 단원화첩 서직수초상



단원풍속도첩 모당평생도 고산구곡시화병


 군선도 군선도병 단원풍속도첩

신선취생도 부벽루연화도 서원아집도



 모당평생도 단원풍속도첩 단원풍속도첩



 무동


출처 : http://wizard2.sbs.co.kr/resource/template/contents/tpl_iframetype.jsp?vProgId=1000485&vVodId=V0000334298&vMenuId=1009383
2008/09/20 15:13 2008/09/2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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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Reno casinos. - 2008/12/09 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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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박신양, 당당한 김홍도로 변신

김홍도 그림 정보 | 2008/09/15 15:05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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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TV 새 수목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이은영 작가가 박신양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이은영 작가는 '바람의 화원'에서 천재 화가 김홍도를 맡은 박신양에 대해 "연기를 잘하는 배우 이상인 최고의 배우"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박신양의 첫 인상에 대해 "톱스타 박신양이 아니라 함께 예술을 고민하는 선배 같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베테랑 배우면서도 함께 깊이 고민하고, 열린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모습이 참 좋았다"고 덧붙였다.

박신양은 이번이 첫 사극 출연이다. 이때문에 그는 자청해 출연진을 이끌고 안동 하회마을로 양반 예절 교육을 받으러 다녀오기도 했다. 호랑이를 가까이서 그리는 신을 찍을 때에는 낭떠러지에 추락할 뻔 하기도 했지만 사극 도전에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특히 당시 찍은 사진은 '상거지 같다' '파격적이다' 등 네티즌들의 화제를 불러모았으나, 최근 도화서 화원으로 변신한 박신양의 스틸컷이 새롭게 공개되면서 "이제야 진짜 김홍도다운 포스가 느껴진다"는 반응이 오고 있다.

'바람의 화원'은 '워킹맘' 후속으로 9월 말 첫 방송된다.

이인경 기자 [best@joongang.co.kr]
2008/09/15 15:05 2008/09/15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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