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기다림>
캐스팅 확정 기사부터 줄곧 기다려왔던 작품이다.그간 티비와 스크린을 오가며 여러 작품들을 통해 맛있는 연기가 무엇인지,혼신의 힘을 다하는 연기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실력파 배우,박신양과 국민 여동생의 타이틀이 늘 아깝지 않았던 초롱하고 영리한 눈망울과 귀엽고 사랑스러운 외모의 문근영의 조합.게다가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라니..둘의 로맨스라니...
뚜껑을 열어 보니,아니나 다를까,두 배우는 이름값을 톡톡히 하다못해 아예 이 작품을 통해 기존의 이름값에 몇 갑절 더 그 가치를 얹으려는 것인지,참으로 맛깔나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조선 후기,한국의 문예 부흥 시대인 정조 시대에 화단의 쌍벽을 이루던 두 화가의 이야기.스승과 제자로 시작하여 결국 연인 사이로 발전하는 남녀의 이야기.
<끝을 말해주는 시작>
극의 시작은 바람 소리가 스산하게 들리는 가운데 멀리 보이는 산을 선비 하나가 휘적휘적 걸어 올라가는 장면이다.그리고 곧 그의 나레이션이 깔린다.
"이제 나는 한 사람에대해 말하려 한다.나는 지금 기쁘고도 고통스럽다.그를 떠올리니 기쁘고 그를 잃을 것이니 고통스럽다.그는 나의 제자였고 나의 스승이었고 나의 친구였고 그리고 나의 연인이었다."
결말을 미리 짐작할 수 있는 도입부다.그를 추억하니 기쁘고 그를 잃게되니 괴로운 한 남자.그 남자는 김홍도요,그 남자의 "그"는 신윤복.그들의 아름답고 서글픈 사랑의 기억 속으로 시간을 거슬러 가보자.
1.그들의 이야기
도화서,라는 다소 생경한 공간을 배경으로 견습 화공들의 자잘한 에피소드와 그 속에서 인연의 실을 엮게 되는 김홍도와 신윤복의 이야기.
<신윤복>
신윤복이 실은 여인이었고 출중한 재주 때문에 남장 여인으로 살아야 했던 그녀의 기구한 삶과 뛰어난 재능을 바탕으로 한국 회화사의 한 획을 굵고 진하게 그었다는 설정과 당대 최고의 화가였던 김홍도가 그의 스승이자 결국 그를 사랑하게 되는 그의 연인이었다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윤복은 우연히 외유사생을 나왔다가 어느 사가(私家)의 담장 너머로 당대의 호랑이와 같은 존재인 정순왕후의 모습을 그리게 된다.담장에 붙어서 그녀가 누군지 짐작하지도 못한 채,무언가를 한없이 기다리며 안타까워하는 듯한 그녀의 뒷태를 화첩에 담는다.자신이 그리고 있는 그림이 결국 자신을 점점 죄이는 고통스러운 족쇄가 될 것을 짐작도 못한 채...
잠시 문근영의 연기를 짚고 넘어 가자.그녀의 전작,사랑따윈 필요없어.의 실패로 그녀의 성인 연기자로서의 미래는 다소 불투명해 보였다.여전히 앳된 소녀 티를 벗지 못한 그녀의 외모 탓도 있겠지만 그녀에게 걸맞는 배역을 맡지 못해서였기도 하고,설익은 그녀의 연기가 스크린 여주인공을 소화하기에 다소 무리였을지도 모르겠다.허나 바람의 화원,신윤복으로 거듭난 그녀는 미소년 윤복을 완벽하게 살려낸다.아직 변성기가 채 끝나지 않은 중성적인 목소리도 그렇고 대사 하나하나를 정확한 발음과 톤으로 처리한다.때론 능청스럽게,때론 한없이 여리게,열정적이면서도 아직은 풋풋한 견습 화공으로서의 신윤복을 완성시키고 있다.
박신양의 농익은 연기와 문근영의 파릇파릇한 연기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극에대한 몰입도를 최대치로 끌어 올려주는 것 같다.
<김홍도>
박신양은 쩐의 전쟁에서 보여준 몸을 사리지 않는 연기를 다시 한 번 보여준다.1회에서 얼굴과 온몸에 검댕칠을 하고 머리에 듬성듬성 풀줄기를 꽂아 위장을 한 채,호랑이를 사생하는 모습은 박신양이 아니면 감히 그 누가 연기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실감이 났다.호랑이같은 매서운 눈썰미를 지닌,당대 최고의 화가가 호랑이를 사생한다.
김홍도가 호랑이를 몰래 그리는 모습과 신윤복이 정순왕후를 몰래 그리는 모습은 닮았다.김홍도가 사생하던 호랑이는 김홍도의 목숨을 순간 위협하고 신윤복이 사생하던 정순왕후는 신윤복의 신변을 위협하게 된다.
<두 사람의 만남>
예정된 일인듯,정해진 운명인 듯,둘은 그렇게 만난다.그림 하나를 서로 보겠다고 티격태격하다 결국 그림을 찢어 버리고,윤복은 그대로 그려주겠다 호언장담하는데..
복의 손을 거침없이 잡아 붓을 쭉쭉 내리긋는 김홍도...윤복의 자신의 화법에 대한 얘기를 흐뭇하게 듣는 김홍도.박신양의 연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그는 대사 하나를 해도 참으로 맛있게 뱉는다.
그린다는 것이 무엇이냐는 김홍도의 질문에 다들 곤혹스러워하는 가운데,신윤복은 그린다는 것은 그리움이 아니겠느냐는 답변을 한다.그린다는 것이 그리움이라...참으로 그럴듯한 답이 아닌가?윤복의 대답을 흥미롭게 듣는 김홍도.거꾸로 된 그림을 그대로 모사하는 것하며,아홉개의 점을 가지고 던진 질문에 답하는 것하며,그린다는 것의 정의를 말하는 것하며,김홍도는 점점 윤복의 천재성에 탄복하고 그가 범인인 것을 눈치채지만 그런 그의 재능이 너무 아까워 그를 구할 방도를 찾게 된다.
천재와 천재의 만남,그리고 남녀의 만남..
2회에서 주막에 마주 앉은 김홍도와 신윤복의 대화를 잠시 보자.장자의 호접지몽에 등장하는 표현,물아의 경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둘은 신이 난다.물아의 경지를 체험한 얘기를 나누는 두 사람.그들의 대화도 역시 물아의 경지다.서로 통한다는 것.서로 같은 생각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같은 방향을 바라보며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서로를 알아보는 두 사람.'바로 그다!'
김홍도와 신윤복.그들은 참으로 많은 부분이 닮았다.그림에대한 남다른 열정이 그러하고 타고난 천부적인 재능이 그러하고 하나에 집중하면 무아지경이 될 정도로 집중력이 좋다.그런 그들이기에 사랑에도,그렇지 않았을까?그들이 그려낼 광풍같은 사랑이,벌써부터 기다려지고 한편,두려워진다.
<극의 재미들>
1.신윤복의 라이벌?-장효원
2.도화서 화공들
도화서의 견습 화원들의 연기나 그들에 대한 묘사도 재미를 준다.생도 장인,장효원의 오만함과 현학적인 모습은 얄미울 정도며 가장 나이가 많은 견습생이 아내가 만들어준 먹거리를 받기 위해 담장 너머로 뻐꾹뻐꾹을 줄기차게 주고 받는 장면도 재미있었다.담장을 넘어 오겠다는 아내를 그는 왜 굳이 거절했을까?동료 견습생들에게 박색의 그녀를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을까?^^;참,이 나이 많은 화공은 감초 배우,이문식을 떠올리게 한다.
3.시각적,청각적 즐거움들
드라마가 한 폭의 움직이는 그림이다.신윤복이 어떤 것을 보고 붓을 들어 허공에 그 사물의 선을 따라 그릴 때,실제로 먹을 묻힌 붓이 선명하게 선을 따르는 방식이 참 기발하고 좋았다.의상이나 이런 저런 소품들,풍경들이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색채가 곱고 선이 곱다.
배경 음악 또한 아름답다.애절한 그리움을 담은 듯한 선율이 그림같은 장면들과 어우러져 시각과 청각에 짙게 호소한다.장면 장면에 눈을 떼지 못하고 장면을 흐르는 음악이 두 귀를 쫑긋 서게 한다.눈과 귀가 호사를 누린다.
4.10년 전의 사건?그리고 정치적 암투?
장벽수와 김홍도의 팽팽한 대립.김홍도의 스승과 장벽수 사이에는 분명 무슨 일이 있었지 싶다.그 일로 인해 스승이 죽음에 이르렀고 그 사건 핵심에는 한 장의 그림이 관계되어 있는 것 같은데..정조가 김홍도의 스승인 김응환에게 일본의 지도를 그리게 했고 김응환이 병으로 죽자 김홍도에게 계속 일본의 지도를 그리게 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는데,정조와 정순왕후의 정치적 대립 또한 극 전체의 기류를 형성하는 시대적 배경이 되기에 그 한 장의 그림은 숱한 이들의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실로 중요한 모티브가 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또한 거부 상인 김조년의 교활한 활약(?)도 기대된다.
5.정조와 정순왕후의 대립
후덕하고 기품있는 미모를 지닌,정순왕후는 외모와는 달리 매우 간악하고 욕심이 많은 인물이다.그런 그녀에게도 정인이 있나 본데,그녀의 애정 행각이 모든 사건의 발단이 되고 결국 모든 갈등의 중심에는 그녀가 서 있으니 정조와 정순왕후의 대립이 김홍도와 신윤복의 삶에도 큰 바람을 불러 올 것이 분명하다.
6.신윤복의 형,영복
영복의 안타까운 사랑도 볼거리다.도화서 화공들 중 유일하게 윤복이 여인임을 아는 영복은 그녀를 지키는 임무를 잠시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그의 눈은 그녀를 쉼 없이 뒤쫒고 그녀의 주변을 늘 맴돈다.또 하나의 지고지순한 짝사랑을 우리는 보아 넘겨야 할 듯 싶다.영복의 애처로운 시선을 따라 윤복을 바라봐야 할 듯 싶다.그의 종말이 어떨지 감히 상상을 해보며 일찌감치 손수건을 준비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말:
정치와 문화 모든 면에서 큰 바람이 일었던,정조 시대.시대의 바람은 개인들의 삶에도 불어오고,연약한 민초들은 그 바람에 흔들리고 꺾이기도 한다.천재 화가들이라고 예외였겠는가.시대의 바람이 관통한 자리에 그들의 발기발기 찢긴 삶이,사랑이,시간이..이젠 기억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남아 몇 백년이 흐른 뒤 우리의 가슴을 시리게 한다.
천재 화가,김홍도와 신윤복.
그들의 인생에 단 한 번 불어와 그들 삶 전체를 뒤흔들었던 바람.21세기의 우리는 티비 화면이라는 화폭 위에 18세기의 그들이 그려내는 아련한 사랑을 관조한다.바라볼 수는 있되,그 화폭에 점 하나도 찍을 수 없어 두 사람의 사랑은 더 안타깝기만 하다.매회,팽팽한 긴장감과 아기자기한 재미들로 1시간 남짓한 시간이 짧게만 느껴지게 하는 수작,바람의 화원.다음 주 3회가 벌써 기다려진다.
출처=다음 텔레비존
http://tvzonebbs.media.daum.net/griffin/do/talk/program/hwawon/read?bbsId=308_a&articleId=100&pageIndex=1&searchKey=&searchValue=
신윤복 & 김홍도 = 0 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