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다. 음식점 간판에 유독 많이 쓰인 글자가 보였다. 광둥(廣東)과 쓰촨(四川).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두 지방의 특산음식점이 곳곳에 생긴 것이다. 베이징 특산음식인 카오야(오리구이) 전문점을 찾는 일보다 쉬웠다.
“현재 중국 외식업계를 이끄는 양대 산맥은 광둥요리와 쓰촨요리입니다. 광둥의 해선(海鮮)메뉴는 고위층의 접대용으로 인기고, 쓰촨의 매운 맛은 서민들의 대표적인 외식 메뉴로 자리를 잡고 있어요.” 지난에서 만난 중국음식 칼럼리스트 노태권씨의 설명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한달 앞서 한·중 식문화 포럼 취재차 지난시를 방문했을 때 중국 산둥성 정부측이 안내한 레스토랑도 한결같이 해산물전문 레스토랑이었다. 첫날 점심식사를 한 푸셍 레스토랑의 메인 요리는 통전복을 조린 것이었다. 다음날 지아조우 레스토랑의 만찬 자리에서도 새우·해삼·상어지느러미·숭어 등으로 요리한 음식들이 줄을 이었다. 두 곳 모두 산둥식이라곤 하지만 광둥스타일이 상당히 가미된 메뉴들이었다.
광둥식 해선요리는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 이후 가장 부상한 요리다. 중국인 손에 본격적으로 돈이 쥐어지기 시작한 1990년대부터 관심을 모아 이제는 고급 접대요리의 대명사로 자리를 잡았다. 몇 년 전만해도 광둥요리는 중국 본토보다 미국 등 외국에서 환영을 받았다. 이는 광둥지역이 일찍 서방에 개방된데다가 토마토·커리·우유 등 서구의 재료나 조리기법이 가미됐기 때문이다. 또 광둥요리가 근본적으로 해산물을 주재료로 한 건강음식이란 점이 서구인의 입맛을 끌어들였다는 분석도 있다. 그러니 권력과 부(富)를 축적한 중국인 역시 광둥의 해선요리를 우선적으로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광둥 사람들은 ‘시기에 맞지 않은 재료로 만든 것은 먹지 않으며, 신선한 원료로 만든 것이 아니면 먹지 않는다(不時不吃,不鮮不吃)’고 말합니다. 그만큼 신선한 맛을 따진다는 것이죠.” 광저우에 있는 딤섬전문점 저어청(粥城)의 관웨이창(關偉强) 총주방장의 말이다.
광둥요리의 두드러진 특징은 재료부터 시작된다. 우선 바다에서 나는 싱싱한 해산물이 많다. 특히 중국인들이 최고급으로 치는 해삼·전복은 물론, 상어지느러미, 바다제비집, 바다가재 등 고급 접대요리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들이 가득하다. 소스를 가급적 적게 사용해 재료의 본 맛을 내는 조리법도 고급의 이미지와 맞아 떨어진다. 높은 원재료비로 인해 음식 가격도 만만치 않다.
관웨이창은 “중국 사람들은 접대를 할 때 비싼 음식을 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다”며 “이를 음식값이 비싼 광둥요리와 접목해 중국 외식업계가 고급 접대음식으로 이끌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고위층에선 광둥식 해선요리를 먹고 있을 때 일반 서민들은 쓰촨요리의 매운 맛을 보며 삶의 활력을 찾아가고 있다. 쓰촨식 매운 요리의 확산은 덩샤오핑의 개혁 개방과 함께 한다.
선양시에서 교민들을 위한 잡지『4U』를 만들고 있는 이훈대표는 “돈을 찾아 베이징 등 대도시로 몰려든 시골출신 노동자들의 입맛을 잡는 데 쓰촨의 매운 맛이 딱 맞아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서민들이 자주 들르는 프랜차이즈 식당 중에도 매운 맛을 내세우는 곳이 많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쓰촨요리의 특징은 다른 지역의 애매모호한 맛과 달리 얼얼하고 매운 맛(麻辣)이 강하다. 고추·산초·후추 등으로 매운 맛을 내는데 포인트를 맞추다보니 조리법이나 맛내기도 간단하다. 주 재료로 쓰는 돼지고기나 닭고기, 채소 등의 원가가 낮아 음식값도 싸다. 거기에 매운 맛이 가지고 있는 중독성까지 더해진다. 이런 점들이 주머니가 가벼운 노동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것이다.
양주대학 외식관광학과 천중밍(陳忠明)교수는 “매운 맛이 술 다음으로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역할을 한다”며 “노동자들이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인해 느끼게 되는 소외감 등 심리적 불안감을 달래는데 쓰촨의 매운 맛이 많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쓰촨요리라고 해서 무조건 싸고 매운 것만은 아닙니다. 광둥요리에 못지않게 비싼 요리도 있으나 고급요리로 부상하지 못하는 이유는 역시 얼얼하고 매운 맛 때문이죠. 상대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라 쩔쩔 매거나 땀을 뻘뻘 흘릴 수 있으므로 접대를 하는 경우라면 피할 수밖에 없지요.”
중국요리 연구가인 천빙산(陳秉山)의 말이다.
베이징·광저우·선양=유지상 중앙일보 기자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