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우가 쏟아지던 날 담장에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하나, 그 귀추에 따라 병세가 달라질 수 있는 우울증 소녀를 위해 빗속에 젖은 담장에 나뭇잎을 그려 넣는 삼류 화가의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가슴 찡한 스토리로 남아 있다.
그는 왜 군인을 상대하는 보잘것없는 매춘부 엘리자베스 루제를 주인공으로 등장시킨 ‘기름진 여인’이란 창녀 예찬의 글을 세상에 남긴 것일까.
주부들이 아니더라도 매춘부에 대한 사회 인식은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다. 사회의 공적, 무서운 성병을 퍼뜨리는 매개체, 무위도식하는 게으름뱅이 등 그들을 형용하는 수식어는 무척이나 많고 또한 더러운 것뿐이다. 그런 사회악이 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가.
남편과 사별했거나 이혼 등의 이유로 독신녀가 된 여인 등 생활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자녀를 교육시키고 생활에 필요한 경비를 마련하자면 무엇인가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데, 그녀들이 팔 수 있는 물건이 한 가지도 없다면 결국 자신의 몸밖에는 내놓을 것이 없다.
국민소득이 높아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다는 선진국에 창녀촌이 방치되어 있는 것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알고 보면 창녀들과 동침한 후 성병을 옮는 일은 극히 드물다. 미리 위험성을 알고 대비하기 때문이다.
반면 주기적으로 창녀와 섹스를 할 경우 남편의 성적 충동이 왕성해 부부관계 빈도가 높다는 킨제이의 보고도 있다.
그런 특성 때문인지 위로는 장관으로부터 밑으로는 거리의 부랑아에 이르기까지, 신분의 귀천을 막론하고 창녀를 찾는 고객은 다양해 뉴욕 유엔본부 건물 근처에서 고급 창녀를 만나는 것이 별로 어렵지 않다. 독일이 자랑하는 함부르크 레퍼번 사창가에는 단돈 20마르크에 몸을 파는 싸구려 여성도 있다.
여자에게 붙임성이 좋은 남자는 창녀가 아니더라도 하룻밤 객고를 풀 수 있는 매력 있는 여자를 만나는 수가 간혹 생긴다.
대충 가격이 드러나 있는 창녀가 아닌 경우 그녀들은 하룻밤 수고비로 얼마나 지불하면 만족할까? 대체로 그 나라에서 고급 하이힐 한 켤레 값이면 적정 화대라고 하는 것이 플레이보이 세계의 시세다.
플레이보이들은 매춘에 앞서 여자들의 구둣가게를 먼저 기웃거려 주머니 사정을 진단해 본다고 한다.
그럼 이 직업은 얼마나 오래됐을까. 창녀란 직업의 역사를 알아보기로 한다. 15세기에 기술된 독일의 고문서를 보면, 당시 창녀생활의 실상을 짐작할 수 있다.
‘홍등가의 포주는 그 고용서약에 따라 다음과 같이 창녀들을 대우한다. 식사는 끼니 때마다 수프 한 접시와 약간의 육류 그리고 소금에 절인 채소를 제공하며, 고기가 싫은 사람은 정어리 한 마리로 메뉴를 바꿀 수 있다.
피임에 열중하되, 만약 임신했을 때에는 홍등가에서 추방된다. 누구나 창녀로 취업할 때 받아간 선수금을 변제하면 공창생활을 청산하고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있다.’
그럼 동양 문화권에서는 사정이 어떠한가. 왕서노(王書奴)가 쓴 『중국 창녀사』란 책을 보면, 중국에서 홍등가가 생긴 것은 기원전 685년 주(周)나라 장왕 19년의 일이라고 돼 있다. 그 이래로 춘추시대, 전국시대, 한(漢)나라 시대를 지나며 면면히 이어져 당(唐)대 말, 명(明)대 초에 그 번영이 극에 달했다.
명조(明朝) 때는 난징(南京)에 기생집이 있었는데, 판교(板橋)라고 불렀으며, 매우 영업이 번창했다. 쑤저우(蘇州)에서는 풍류를 살린 아름다운 유람선이 운하를 오가면서 신선놀음 같은 섹스를 고가에 제공했다.
창부들은 누구나 가무음곡의 달인이었으며, 단지 몸만 파는 요즘의 창녀하고는 그 품격이 달랐다. 세계를 여행해 보면 창녀가 없는 나라가 없는데, 가난한 사람이 항시 현금화할 수 있는 자원이 섹스뿐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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