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고쿠(四國)지방의 에히메(愛媛)현 유케시마란 곳에 있는 한 신사에 신위가 모셔진 도쿄(道鏡)라는 고승이 바로 그 콘테스트에서 승리한 초대 챔피언인데, 그는 46대 천황 고켄(孝謙) 여제의 섹스 파트너로 더 명성이 높은 인물이다. 그 여성 천황과의 섹스에는 수많은 에피소드가 뒤따르고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설화가 맷돌이다.
이 둘은 성행위를 하면서도 결코 군신 간에 지켜야 할 룰은 엄격하게 준수했던 모양이다. 사회적 신분이 높은 여제를 상좌에 모신다는 의미에서 늘 여상남하의 포즈로만 성애를 즐겼다는 것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다.
일본의 역사를 기록한 『고지키(古事記)』에는 이들이 생존했던 8세기께 궁중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는데, 후세의 학자들은 이것이 일본 여성상위의 효시가 아니었나 추측한다.
문헌상에 나타난 여성상위에 관한 최고의 기록은 구석기시대의 솔트리아기(期) 의 것인데, 여자가 말을 타듯 쭈그리고 앉고 남자가 그 아래 누워 있는 기승위(騎乘位)의 성교 장면을 그린 그림으로 이것은 프랑스 도르트뉴 지방에서 발견됐다.
이런 포즈는 그 밖의 여러 나라에서 출토되었는데, 공통적으로 이런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여상남하는 고대 인류의 보편적인 체위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이런 유럽인들의 섹스 테크닉 향상 노력에 비하면 벽창호나 다름없는 매우 보수적인 동양문화권도 별로 다를 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평세월을 뜻하는 요순시대에는 여자가 위로 올라가는 체위가 사회적 신분에 따라 간혹 행해졌던 모양이다.
고대 중국에서는 순(舜) 임금이 자신보다 훨씬 신분이 고귀한 요(堯) 임금의 딸에게 장가를 든 후 오직 여상남하로만 부부관계를 맺은 것으로 돼 있다. 하도 황송해서 도저히 남자가 위로 올라가는 섹스를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유럽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 그리스에서는 플로라(flora) 축제 때 화류계 여자들이 비너스 여신에게 채찍이나 박차를 헌납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것은 여성이 남성을 지배하며 섹스를 영위했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즉 남자의 배 위에 올라탄 모습이 승마(乘馬) 자세와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의 완급 조절을 의미하는 채찍과 박차가 의식(儀式)에 이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대 인도에서는 ‘탄드라 요가’라고 해서 성애 동호인끼리 클럽 같은 형태의 모임이 있었는데 여성상위 체형은 여성의 동작을 용이하게 만들고 여성이 느끼는 성적 희열을 높여주는 체위로 무릇 성교의 성패가 여성의 오르가슴에 있는 만큼 여성이 감지하기 쉬운 포즈로 섹스를 하는 것이 곧 남성의 즐거움이라는 교리를 그들은 신봉했다.
이처럼 세계 각국에서는 여상남하의 섹스 체위가 일제히 행해지고 있던 것이 사실이나 사회적 혹은 심리적, 종교적인 편견으로 인해 섹스는 언제나 남자가 위쪽에서 행하는 포즈가 아니면 변태라는 인식이 뿌리 깊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섹스의 체위는 변화가 있어야 신선한 기쁨을 체험하게 되는 관계로 여러 가지 체위가 시도될 수 있다.
미국 킨제이 보고서에 의하면 남녀에게 가장 많이 보급돼 있는 체위는 여성이 위쪽에 자리 잡는 자세라고 한다. 즉 미국인 커플의 평균 45%, 젊은 부부의 경우에는 52%까지 여상남하의 체위를 택한다고 돼 있다. 그러니까 젊은 부부나 연인들 사이에서는 여상남하가 정상적 포즈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상남하의 체위는 이른바 남성들의 여성 지배라는 공격적 심리 때문에 양보를 얻어내기가 어렵다는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섹스가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절묘한 심리충족이라고 볼 때 남성이 상위에서 오르가슴으로 고통 받는 여자를 지속적으로 공격할 때 그 잔인성에서 성적 만족을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 쪽 또한 마조히즘을 채우려면 남자가 위쪽에서 고통의 순간 멈추지 않고 공략하도록 맡겨두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전율을 가져다준다고 생각한다.
곽대희비뇨기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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