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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보채가 중국 음식이라고?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20 14:42 |

Lo Mein Street, U.S.A.
미국 내 중국 음식점 4만 3천개… 뛰어난 적응력 발휘해 토착화


현재 미국에 있는 중국 음식점 수는 맥도널드와 버거킹, KFC를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다. 웬만한 사람치고 단골로 찾는 완탄(중국 만두) 전문점 한 곳쯤 없는 이가 없다. 부시 대통령 부자는 버지니아주 폴스 처치에 있는 ‘페킹 구어메이 인’의 단골손님이다. 그들의 지정좌석인 N17 테이블 앞에는 방탄 유리가 설치돼 있다.


또 이라크 주둔 미군들은 고향 생각이 날 때마다 바그다드 그린존 내에 있던 중국 음식점 두 곳을 찾곤 했다. 심지어 남극에 있는 미국 과학기지에서도 매주 월요일은 중국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한다.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 햄버거, 감자 튀김을 제외하고는 중국 음식만큼 미국적인 음식도 없을 듯하다. 존 윌크스 부스가 링컨 대통령 암살을 계획한 하숙집이 있던 자리에는 지금 워큰롤(Wok’n’ Roll)이라는 중국 음식점이 들어섰다.


하지만 제니퍼 에이트 리가 자신의 저서 ‘중국 음식 세계 모험담(The Fortune Cookie Chronicles: Adventures in the World of Chinese Food)’에서 말했듯 미국인들이 중국 음식으로 여기는 대부분이 역설적이게도 본래 중국 음식이 아니다. 찹 스이(팔보채)는 미국에서, 점괘 과자는 일본에서 개발됐다.


또 다른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최대의 중국 음식점 식자재 납품업체인 캐리-아웃에서는 간장을 만들 때 콩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이 콩이 안 들어간 간장을 듬뿍 찍어 먹는 음식의 정체는 대체 뭔가? 또 그 음식들이 진짜가 아니라면 왜 굳이 중국 음식점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먹을까? 뉴욕 타임스 기자인 리는 중국 음식의 매력은 그 이중성에 있다고 말한다.


중국 음식은 지역적이면서도 세계적이며, 낯설면서도 친숙하게 느껴진다. 이런 특성 덕분에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문화적 전통을 지키면서도 안전하게 중국 음식이 주는 이국적인 정서를 즐겨왔다.


화교 인구가 많은 한국과 페루, 인도, 일본, 멕시코, 자메이카 등지에도 중국 음식점이 많지만 미국을 따라올 만한 곳은 없다. 리에 따르면 미국에서 중국 음식점이 장사가 안 되는 날은 추수감사절뿐이다. 그래서 중국 음식점의 웨이터와 요리사들은 그날 결혼식을 많이 올린다.


미국인들이 중국에서 탄생하지 않은 중국의 ‘전통’ 음식에 푹 빠진 이유는 이해할 만하다. 중국의 민족성은 미국 이민의 물결 속에서 미국 문화와 충돌하며 섞여버렸다. 따라서 미국의 중국 음식 역사는 여러 면에서 미국의 역사라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의 미국 이민 물결은 1840년대와 50년대 골드 러시 이후 꾸준히 계속됐다. 1882년 중국인 배제법이 제정돼 잠시 주춤했던 적은 있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중국인 이민자들이 광산과 철도공사 현장에서 쫓겨났다. 하지만 리의 말대로 “요리와 세탁은 여성의 일이었기 때문에 백인 노동자들을 위협하지 않았다.” 1885년 뉴욕시에 6개밖에 없던 중국 음식점이 20년 뒤에는 100개 이상으로 늘어난 이유다.


리에 따르면 요즘 영어를 못하는 중국인 불법 이민자는 대부분 뉴욕 차이나타운으로 몰려든다. 그곳의 직업소개소는 미국 전역의 중국 음식점 일자리를 소개해준다. 리는 “영어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중국 음식점 근로자들에게 미국은 장거리 전화번호부나 마찬가지다.


지역번호마다 일할 사람을 찾는 중국 음식점이 수두룩하다.” 이들 불법 이민자 대다수는 밀입국 알선업자에게 많게는 7만 달러나 주고 미국에 들어온다.현재 미국에 거주하는 중국인 이민자 90%가 중국 음식 사업에 종사한다.


그들은 미국의 중국 음식점에서 내놓는 음식을 보고 놀랐을 게 뻔하다. 리의 책을 읽다 보면 미국의 중국 음식이 얼마나 미국인의 입맛에 맞게 변했는지 알게 된다. 맨해튼의 상하이식 중국 음식점에서 리는 통째로 나오는 전통 생선 요리를 주문했다. 하지만 생선 위에 이상하게 선명한 붉은 색 소스와 파인애플 덩어리들이 뒤덮여 나왔다.


하지만 진짜 중국 요리에는 뼈와 딱딱한 껍질, 생선 눈알 등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또 “채소가 더 많이 들어가고, 고기와 기름은 덜 들어간다”고 리는 말했다. 선명한 색깔의 소스도 분명 쓰지 않는다. 하지만 “ ‘진짜’라는 개념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달라진다”고 그녀는 말한다. “나는 전통 중국 음식을 좋아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는 않다. 중국에 다녀온 후 기호가 달라졌다.”


중국 현지 음식에는 파인애플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문제될 건 없다. 광둥·후난·쓰촨·베이징 등 어느 지방 음식이든 중국 음식은 현지 적응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유행에 민감한 미국 요식업계에서 중국 음식이 살아남은 비결이다.


리는 루이지애나주에서 쓰촨식 악어요리와 콩 식초 가재 요리를 먹어봤다. 로드 아일랜드주에서는 차우 메인 샌드위치(튀긴 국수를 넣은 샌드위치)도 먹어봤다. 요즘은 찹 스이 대신 브로콜리를 곁들인 쇠고기 요리와 조장군 치킨이 인기다.


중국에서는 장군식보다는 샌더스 대령(KFC의 창업주)식 치킨이 더 유명할 테지만 말이다. 앞으로도 미국의 중국 음식 시장은 더 성장할 듯하다. 리가 책을 쓰려고 조사 작업을 하는 3년 동안 미국의 중국 음식점 수는 4만 개에서 4만3000개로 늘었다.


앞으로 전통 중국 요리가 인기를 얻게 될지, 변형된 중국 요리가 계속 늘어날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중국 음식은 미국인들이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생각하게 만드는 음식의 위치를 지켜나갈 듯하다. 


JENNIE YABROFF 기자

2008/06/20 14:42 2008/06/2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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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소국진 2009/02/27 01: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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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타이’는 족보에도 못 껴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20 13:39 |

국가 공인 8大 명주
중국인 선호 1위는 ‘우량애’…52년 전국평주회의서 8대 명주 첫 선정
名酒 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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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술을 논하고 싶다면 먼저 술의 기원부터 알아봐야 한다. 중국인이 생각하는 술의 기원은 다양한데, 그 하나는 원숭이들이 웅덩이에 떨어진 과일이 발효된 것을 마시고 뛰노는 것을 본 나무꾼이 흉내 내어 담가 먹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예락(醴酪)이라는 글자에서 유추되듯 원시시대에 동물의 젖을 먹다가 남겨둔 게 자연발효해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구체적으로 발명자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한다.


그 첫째는 서한 때의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의적(儀狄)이란 여인이다. 의적이 술을 빚어 우왕(禹王)에게 올렸더니 우왕이 맛본 다음에 술을 끊고 ‘앞으로 반드시 술로서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으리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다음은 후한 때의 『설문해자(說文解字)』라는 책에 나오는 소강이다. ‘소강이 수수로 술을 처음 만들었는데 소강은 두강을 말한다’고 나와 있다. 뒷날 진나라 시인 도연명(陶淵明)도 “의적이 술을 만들었고 두강은 발전시켰다”고 했다. 지금도 허난성 루양(汝陽)에 가면 두강묘가 남아 있다. 중국 술은 만드는 방법에 따라 황주(黃酒), 백주(白酒) 등으로 분류한다.


황주는 양조주로 남부지방에서는 찹쌀, 북부지방에서는 차조를 주원료로 한다. 발효시 보리누룩을 써서 만들어 짙은 황색을 띤다. 알코올 도수가 비교적 낮으며 황주를 대표하는 술로는 소흥주(紹興酒)가 있다.


백주는 증류주로 소주(燒酒)라고도 하는데, 고량(高粱·수수)을 주원료로 하며 무색투명하며 알코올 도수는 대개 50%를 넘는다. 중국의 8대 명주를 알아보자. 중국에서 오랜 역사를 통해 변함없이 중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온 술은 저장 사오싱의 소흥주, 산시의 분주(汾酒), 산시의 서봉주(西鳳酒), 쓰촨의 노교주일 것이다.


저 유명한 마오타이주(茅台酒)가 빠져 있는 게 의아할 수도 있지만 마오타이는 개발된 역사가 길지 않아 오래된 명주에선 빠진다. 이는 근래에 인기가 높은 우량애(五糧液)나 주귀(酒鬼), 수정방(水井坊)도 마찬가지다. 우량애는 중국 해방 이후 개발되었고, 주귀와 수정방은 고가품 개발 전략으로 최근 만들어낸 것이다. 역사라고 할 것도 거의 없는 술이다.


중국의 국가 공인 명주는 전국평주회의(全國評酒會議)에서 결정한다. 1952년 첫 대회에서 정한 8대 명주로는 백주에 분주·서봉주·마오타이주· 노교주가 있고, 황주로는 소흥주, 과실주로는 홍포도주(紅葡萄酒), 그리고 기타주로 금장백란지(金奬白蘭地)와 미미사(味美思)가 있었다.


건국 초기 여덟 개에 불과했던 국가 공인 명주는 가장 최근인 89년 제5회 대회에서 무려 18개로 늘어났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오로지 백주만 선정되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국가 공인 명주냐 아니냐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실제 중국 어느 지방을 가도 지방 특산주가 많다. 이 지방주가 비록 조악한 병에, 포장은 보잘것없어도 제각기 나름의 향과 맛을 갖고 있는 점에 나는 매혹되었다.


국가 공인 명주의 권위에 최근 이변이 생겨나고 있다. 통계국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중국인이 선호하는 10대 백주에서 1위 자리는 우량애였고, 오랫동안 수위를 차지하던 마오타이가 2위로 밀려났는가 하면 싫어하는 순위에서는 첫째가 마오타이였다고 한다. 이러한 뜻밖의 결과에 통계국은 마오타이는 가짜가 너무 많은 탓이라고 분석했다.

2008/06/20 13:39 2008/06/20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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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맛집 스파이 잠입! - 짬뽕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21 |

장안 최고의 짬뽕집은 어디일까?

뜨끈한 짬뽕 국물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장안에 소문난 짬뽕의 명가는 지금 어떤 맛을 유지하고 있을까? 맛집 스파이가 철저하게 평가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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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뽕은 이름으로는 일본 요리이고, 중국인이 개발하고 중국 식당에서 파니 중국 요리이고, 한국 사람이 제일 좋아하니 한국 요리인 묘한 요리다. 짬뽕이라는 어원이 상징하듯, 참으로 그 역사까지 짬뽕인 희한한 요리다.


짬뽕은 사실 중국에 없는 요리다. 굳이 비슷한 것을 찾자면 해선탕면이나 초마면 정도일까. 그러나 빨간 국물의 매운 짬뽕과는 맛이 많이 다르다. 중국도 지역별로 해물을 넣은 면요리를 먹는데, 대체로 한 가지 아이템에 집중된다. 굴을 넣은 굴탕면, 꽃게탕면 따위처럼. 해물을 한국식으로 잡탕 배합한 경우는 드물다. 그렇다면 짬뽕 국물은 해물로 뽑은 것일까? 더러 조개로만 육수를 뽑기도 하지만, 일본에서 개발된 짬뽕의 원류는 닭이나 돼지 뼈 육수가 기본이다. 값싼 이들 재료로 구수한 국물을 뽑아냈던 것. 이런 스타일의 짬뽕이 시작된 것은 일본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다.


짬뽕의 이름은 일본식이다. 그러나 원형은 중국 요리에 있다. 일본에서 시작됐지만 엄연히 중국 요리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고 발달한 요리다. 1800년대 후반, 일본의 나가사키는 개항 도시였다. 이미 1571년에 개항하여 외국의 문물과 사람이 들끓었다. 중국 사람도 많이 살았는데, 짬뽕은 이곳에서 요리사로 일하던 중국 푸젠 성 출신 천핑(1873~1939년)이 처음 만든 요리라고 한다. 그는 가난한 중국인 유학생들을 배불리 먹게 해주려고 면과 국물을 넉넉히 잡고 값싼 채소와 해물을 볶아 넣어 제공한 것이다. 이런 내용은 나가사키의 짬뽕 역사박물관에 기록된 내용이므로 믿을 만하다.


당시의 짬뽕은 고춧가루를 넣지 않아 맑은 국물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일본의 짬뽕은 빨갛지 않다. 이는 원래 일본인이 매운맛을 즐기지 않는 것과도 상관이 있다. 맛을 내기 위해서 그들의 기본 양념인 간장을 조금 넣어 칼칼한 맛을 강조했다. 마치 국간장을 넣듯이 말이다.


짬뽕이 우리나라로 건너오면서 이 정체 모호한 국수는 그야말로 삼국의 정서를 담게 된다. 일본에 살던 중국인이 개발해 일본 이름으로 팔리던 국수가 일본의 침략을 받은 우리나라로 건너와서는 우리나라에 있는 중국인 요리사가 만들기 시작했다는 것이 정설. 일부 화교 요리사는 일본식과는 관련이 없고 중국식 해물면요리가 한국화한 것이라고 하는데, 현재의 우리나라 짬뽕은 중국식이라기보다 일본식에 더 가까우니 위의 이야기가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어쨌든 중국인의 처지에서 보면 서로 전혀 얼굴도 모르고 요리 교류도 없던 두 집단이 하나의 국수를 통해 만나게 되는 감동(?)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짬뽕의 개발자 천핑은 푸젠 성 출신이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중국인 요리사는 산둥 성 출신이니 말이다. 산둥 성 출신으로 청요릿집을 운영하던 중국인은 일본인을 위해 짬뽕을 만들었다. 물론 일본인이 좋아하는 나가사키식 짬뽕이었을 것이다. 그런 추측이 가능한 것은 우리나라 짬뽕과 일본 짬뽕이 아주 유사하기 때문이다.


광복 후, 청요릿집에 우리나라 사람이 드나들게 되면서 결국 짬뽕은 우리 요리로 남게 되었다. 고춧가루를 많이 쓰게 되면서 자연스레 짬뽕도 맵게 만들기 시작했을 것이다. 짬뽕의 맛은 해물이 아니라 육수에서 나온다. 집에서 아무리 해물을 많이 넣고 만들어도 제 맛이 나지 않는 까닭은 면의 질에도 이유가 있지만 육수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돼지 뼈나 닭 뼈, 기타 육수를 넣고 오랫동안 푹 삶아야 제 맛이 난다. 옛날처럼 소의 힘줄 등을 넣어 육수를 만들면 더 맛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팔리는 짬뽕은 한국식, 일본식, 중국식이 있다. 국물을 맵게 하면서 육수의 깊은 맛도 강조한 한국식은 동부이촌동의 ‘야래향’을 제일로 꼽는 사람이 많고, 국물이 맑고 맛이 섬세한 일본식은 명동의 ‘가쓰라’와 압구정동의 ‘목란’(한국식 짬뽕도 한다)을 쳐준다. 중국식은 명동의 ‘향미’가 맛있다. 어떤 식이든 우리 입맛을 고려한 것이니 나라별 차이는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영등포의 ‘송죽원’은 50년의 오랜 역사처럼 연륜이 묻어나는 집이다. 매체에도 여러 차례 소개됐다. 들어서면 훅 끼치는 옛날 중국집 냄새가 나이 든 사람들의 정서를 자극한다. 자장면 맛은 상당한 수준인데 짬뽕은 그 명성에 못 미친다. 애매한 시간대(오후 5시)에 방문했다는 게 문제일까? 면도 탄력이 적고 국물의 맛도 떨어진다. 전통 있는 집으로서 자존심이 요구된다. 친절한 서비스, 깨끗한 주방과 위생복을 제대로 갖춰 입은 요리사들이 활력 있다는 점이 위안이다.


압구정동의 ‘목란’은 3년 정도 짧은 역사를 가졌지만 대만대사관 주방장 출신의 힘이 느껴지는 집이다. 이미 강력한 소문을 탄 인기 업소다. 작은 식당이라 짬뽕 한 그릇도 주인이자 주방장이 직접 팬을 잡는다. 닭 뼈와 바지락으로 제대로 뽑은 육수 맛이 좋다. 그다지 맵지 않으며, 해물 종류도 다양하고 깊이가 있다. 미식가들이 장안의 베스트 업소 중의 하나로 꼽는 이유를 알 만하다.


명동의 ‘향미’는 원래 오향장육이나 산동소계, 만두 같은 산둥식 요리를 잘하기로 유명한데, 짬뽕도 한가락 한다. 맑은 국물이며, 굴짬뽕은 맵게 요리하기도 한다. 배추 냄새가 훅 올라오는 전통 짬뽕의 맛을 보여주며, 한국식과 중국식을 절충했다.


을지로의 ‘안동장’은 50여 년의 역사답게 안정된 음식을 하는 중식당이다. 이 지역에서는 터줏대감이고, 일부러 이 집 요리를 먹으러 먼 곳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자장면 맛은 괜찮은 편인데, 짬뽕은 의견이 다양하다. 배추 냄새가 올라오는 국물에 육수를 제대로 써서 맛이 좋다. 면도 탄력 있게 뽑는데 국물의 향이 전체적으로 인공적인 느낌이 강하다. 육수 자체가 훌륭한데 굳이 조미료를 많이 넣은 까닭을 잘 모르겠다. 지역의 중형 업소답게 서비스는 안정적이다.


동부이촌동에 있는 ‘야래향’은 대단한 화상(華商) 중국집으로 유명한 회현동 야래향의 후신. 자리를 옮긴 후 큰 소문은 나지 않았지만 여전히 품질 좋은 음식을 낸다. 짬뽕은 ‘매운 것과 하얀 것’으로 나뉘어 주문을 받는데, 하얀 것이 낫다. 그윽한 품위가 있는 국물이 매력적인 일본식 짬뽕이다.

2008/06/18 16:21 2008/06/18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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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데이> 맛집 스파이 삼선자장면 편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19 |

101년 국민 요리

101년의 역사, 하루 800만 그릇 판매. 자장면을 국민 요리라 부르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그렇다면 자장면의 진정한 강자는 어디일까? 삼선자장면으로 비교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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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면은 한국 퓨전 요리의 원조격이다. 중국에도 자장면이라는 이름의 요리가 있기는 하다. 그러나 만드는 법이 다르다. 면 위에 자글자글하게 볶은 갈색의 춘장을 조금 얹어 먹을 뿐이다.


한국 자장면처럼 검은색의 캐러멜 소스와 설탕을 넣어 달게 만들지 않는다. 또 반찬으로 단무지와 양파를 주지 않는다. 베이징의 한인 밀집 지역이나 유학생이 많은 동네에서는 한국식 자장면을 판다. 드디어 한국 자장면이 본토를 공략(?)했다고나 할까.


한국에서는 하루에 800만 그릇의 자장면이 팔린다고 한다. 엄청난 양이다. 자장면의 어원은 두 가지로 본다. ‘초(炒)장면’ 또는 ‘작(炸)장면’이라고 한다. 둘 다 볶는다는 뜻으로 후자가 맞는다. 베이징에 가면 작장면을 파는데, 이게 자장면의 원조인 셈이다.


‘작’은 ‘약한 불에 오래 볶는다’는 조리 용어다. 그래서 자장면은 ‘장을 볶아서 얹어 먹는 면’이란 말이다. 자장면은 1883년 인천 개항 후 산둥 출신 노동자들의 간이식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을 정설로 본다.


중국에서 한국, 다시 중국으로 간 춘장

춘장에 대해 조금 더 알아보자. 춘장은 메주콩과 밀가루를 섞어 발효시켜 만든다. 지금도 중국 산둥 지방에 가면 이런 장을 가정식에 많이 쓴다. 장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서도 거의 모든 요리에 쓰고 있으니 매우 대중화한 소스다. 된장과 크게 다를 게 없는데, 발효 시간이 대체로 짧다는 것이 특징이다(서너 달의 속성 발효도 한다).


이 춘장이 공장 생산된 것은 전후 영화장유라는 회사를 통해서였다. 그냥 ‘사자표 춘장’이라고 한다. 영등포에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본사만 있고 공장은 대부분 중국으로 옮겼다. 중국에서 건너와 한국식으로 개량된 춘장이 다시 중국 땅에서 생산되는 아이러니가 재미있다. 물론 이 춘장으로 만든 한국식 자장면이 중국 땅에서 팔리는 것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이 춘장에 캐러멜을 넣어 점도와 단맛을 높이면서 크게 히트하기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지금처럼 까맣게 요리하지는 않았다. 전통 춘장과 반씩 섞거나 전분을 많이 넣어 갈색을 띠었다. 바로 옛날자장이다. 그러다가 1970년대 들어 색깔이 진해지더니 1980년대에는 지금처럼 까만색의 춘장이 일반화되었다.


자장면 값은 자장면-간자장면-삼선자장면 순으로 높아진다. 옛날에 삼선자장면은 큰마음 먹고 시키는 ‘요리급’ 식사였다. 새우·해삼·오징어를 쓰는데, 삼선의 어원은 두 가지가 있다. ‘바다에 사는 삼선(三鮮, 세 가지 신선한 해산물)’이라는 뜻도 있고, ‘바다의 세 신선(三仙)’이라고 해석하는 이도 있다.


삼선자장면은 주문이 들어오면 재료마다 따로 볶아야 하기 때문에 공이 좀 든다. 더러 일반 자장면처럼 전분을 넣어 한소끔 끓여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스타일의 차이인데, 아무래도 간자장처럼 전분 없이 볶아 내오는 것이 진한 맛이 강해서 선호한다.


이번에는 돌아다니면서 가슴 아픈 일도 많았다. 동숭동의 유명한 삼선자장집은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구석으로 쫓겨났고, 단성사 앞의 또 한 곳의 유명 업소는 아예 자취를 감추었다. 당연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찾아갔다가 헛걸음을 하고 말았다.


이제 그럴듯한 중식당은 사라져 가고, 아예 고급 집을 표방하거나 뒷골목 배달 전문집으로나 명맥을 유지하는 게 당연시되고 있으니, 세월의 변화는 입맛까지 바꾸어놓고 있는 모양이다.


평범 또는 그 이하 신승관과 진보

피맛골에 있는 신승관(5,000원)은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화상(華商) 중식당이다. 만두류가 맛있고, 요리도 잘하는 집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삼선자장면은 기대에 못 미쳤다. 재료가 뜨겁고 기름진 맛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어떤 재료는 씹으니 속이 차갑다. 평범한 면에 평범한 맛이다. 다행히 물만두와 요리는 제 맛을 가지고 있다.


아쉬운 것은 빤히 보이는 주방 안에서 오갈 데 없는 직원인지 가족인지 제복도 입지 않고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자주 보인다는 것이다. 요즘처럼 깔끔한 분위기를 강조하는 시대에 이래서야 옛 추억을 되살려주는 것 말고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연남동과 연희동의 중식당은 한때 큰 인기를 끌고 성업했다. 요즘은 한풀 죽은 모습이다. 그래도 맛깔스러운 집들이 여전히 장사를 잘하고 있다. 진보는 이 지역에서 알아준다. 요리도 잘하고, 특히 면 요리가 다양하고 맛있다는 평이다. 실제 다른 집에서 잘 하지 않는 중국 전통의 우육탕면이나 팔진면 같은 생소한 면 요리가 훌륭하다.


그러나 삼선자장면은 그 격에 못 미쳤다. 가격은 아주 싸서 좋았다. 그 가격(4,000원)에  말린 해삼을 물에 불려 넣어 입맛을 돋웠다. 하지만 전분을 넣어 소스가 엉기는 맛이 최고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친절한 서비스와 깔끔한 홀은 인상적이다.


아낌없는 재료 사용, 오구반점과 송죽장

을지로3가의 오구반점(5,500원)은 이 일대에서 최고로 쳐주는 화상 중식당이다. 연탄 난로가 놓여 있는 낡은 홀 분위기가 입맛을 돋워준다. 삼선자장면은 정말 최고다. 뜨거운 기름에 갓 볶은 재료가 살아 있고, 탱탱한 오징어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간이 좀 세다고 느낄 만큼 진한 맛이다. 면도 아주 탄력이 있지만, 소다를 지나치게 넣어 질긴 것과는 다르다. 다만, 해삼 같은 비싼 재료를 너무 아낀 것 같다.


영등포 송죽장(5,500원)은 한번 언급한 집이다. 짬뽕을 취재했는데, 이보다 덜 유명한 삼선자장면이 낫다는 생각이다. 간도 딱 좋고, 해삼을 아낌없이 듬뿍 넣었다. 새우는 잘 볶아서 탱탱한 맛이 살아 있다. 양파와 오징어, 해삼이 어우러져 진한 맛을 낸다.


소스의 양도 면보다 더 많을 만큼 푸짐하다. 그러나 채소에서 나온 물이 지나치게 많아 흥건한 국물이 보이는 게 단점. 소스가 흥건하면 입 안에서 부드럽게 넘어가는 맛은 있지만, 빡빡하고 다부지게 씹히는 맛으로는 마이너스 요인이다.


대학로의 한 집에서 더 먹어봤지만, 빼기로 했다. 수준 차이가 심해서 비교하기 어려운 탓이다. 한때는 날리던 요릿집이었는데, 매출 부진으로 배달로 매출을 유지하고 있는 듯했다. 이래저래 가슴 아픈 취재였다.

2008/06/18 16:19 2008/06/1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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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회복을 위한 한방술 - 오가피주 만들기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14 |

웰빙으로 만나는 한잔 술로 건강에 취하다

동의보감에서도 ‘오가피주와 가루를 정기적으로 복용해… 근육과 뼈를 단단하게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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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용] 약 2만3900원 


[재료] 오가피 100g, 당귀 50g, 우슬 60g, 소주 1000ml 


[오가피주 만들기]
1 사용 약재를 깨끗이 씻어 말린 후 자른다.(썰은 약재 구매 가능)
2 약재를 술에 담근 후 햇볕이 안 드는 곳에서 15일간 보관한다.
3 4~5일에 한번씩 가볍게 흔들어 준다.
4 15일 후 찌꺼기를 걸러내어 음용한다. 


[주의사항 및 약재의 특징]
오갈피나무의 뿌리껍질인 오가피는 신장을 도와서 골격계를 튼튼하게 해주는 대표적 약재이다. 뼈 마디마디 관절 통증을 풀어주고 근육을 강화시키는 역할도 한다. 여름에는 잎이 달린 가지를 잘라서 깨끗이 씻어 그늘에 말린 것을 이용하고, 겨울에는 가지만 잘라서 생것을 그대로 쓴다.


우슬도 하체의 근육을 강화시키고 혈액순환을 개선하는 역할을 한다. 피를 생성시키는 당귀는 오가피와 우슬의 근골강화 역할을 지원하는 에너지원에 해당한다. 


[이런 이들이 한잔]
뼈나 근육이 약해지기 쉬운 중년 이후에 음용하면 좋다. 오래 먹으면 몸을 가볍게 하고 근골격계의 노화의 방지를 도와준다. 뇌의 피로를 풀어주고 눈과 귀를 밝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때문에 두뇌 할동을 활발하도록 해 기억력과 집중력도 높여준다.


체내 유해산소를 제거하며, 식욕을 증진시키고 방사능을 비롯한 각종 화학물질의 해독작용도 한다. 갑자기 심한 운동이나 육체적 노동을 했을 때 근육을 풀어주는 역할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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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용법]
하루에 2번씩 마신다. 한번 먹을 때 15~ 20ml를 음용하는 게 적당하다. 


[음식 궁합]
특별히 가려하는 음식은 없으며 대부분 음식이 무난하다. 덧붙이자면 오가피 중에는 가시오가피의 약효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노년의 경우 가시오가피로 술을 담궈 음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근육이나 뼈, 치아 등의 건강에 고루 영향을 미친다. 


[김상찬 교수의 이래서 좋다]
중국 송나라 때 전을은 ‘어린 아이가 3살이 되어도 걷지 못하면 오가피와 숙지황, 녹용을 배합한 약재를 쓰는 게 좋다.”고 말할 정도로 오가피는 근골 강화에 좋다.  동의보감에서도 ‘오가피주와 가루를 정기적으로 복용해 장수한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또한 허리와 척추의 토증에 약효가 뛰어나고 근육과 뼈를 단단하게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2008/06/18 16:14 2008/06/18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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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맛집] 명동 안에서 맛보는 ‘작은 중국’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13 |

북적대는 명동 도심. 오가는 사람들에 치여 숨조차 고르기 힘든 대로는 바쁜 현대인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하지만 고개를 조금 돌려보면 여유로운 옛 정경을 간직한 골목도 가득하다. 그중 명동 입구에서 첫 오른쪽 골목을 눈여겨보자.

이 골목은 어느 곳보다 낡고 허름하다. 대로의 현대식 고층 빌딩과 휘황찬란한 숍과는 달리 작은 근대식 건물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있다. 중국대사관 정문을 기준으로 양쪽 옆과 앞쪽의 T자형 길은 중국풍의 상점들과 음식점이 몰려 있는 ‘콴챈루’ 또는 ‘대사관 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이 낡고 초라한 간판들이 바로 이곳의 역사와 위치를 말해 준다. 유행 따위는 관심 없는 듯. 무심하게 변화 없이 자신의 중심을 지키고 있다.
 
대사관 쪽으로 걸음을 옮길수록 중국색은 짙어진다. 150m 정도에 이르는 이곳은 낮보다 해가 지면 불야성을 이룬다. 폭이 3~4m쯤 될까 한 골목에 낮에는 문을 닫아 놓거나 밥 등을 팔던 가게가 포차를 펼쳐 놓고 오가는 주당들을 끌어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I love NY. 명동 85번가. 홍성여행사 간판 아래 간판 없는 주점. 이 세 곳이 모여 하나의 ‘포차군’을 형성했다. 야채 곱창·오돌뼈 볶음·번데기 등 술안주에 좋은 메뉴들을 비슷하게 갖추고 있다. 퇴근 후 저렴한 가격과 부담 없는 맛으로 소주 한잔을 걸치려는 직장인들의 어깨와 주머니를 가볍게 한다.

지금은 중국대사관이 종로로 옮겨 가고 중앙우체국이 공사 중이라 거리가 더욱 고요해졌지만 음식을 찾는 미식가의 발길은 여전하다. 화교가 운영하는 진짜배기 중국 음식들의 중독을 끊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맛도 맛이지만 저렴한 가격도 무시 못할 매력이다. 이유는 저렴한 임대료 덕이다. 가게 부지는 중국령으로 중국인들에게 저렴한 가격으로 영구 임대하고 있다. 때문에 이변이 없는 이상 가게를 빼는 일은 드물다. ‘개화’ ‘일품향’ 등이 40년 이상 묵을 수 있던 것도 이 덕이다.

요리사는 대부분 산둥성 출신이라 면 요리뿐 아리라 육류·해산물 요리가 맛있고. 조미료를 듬뿍 넣어 맛이 강하다. 대부분의 메뉴판은 여느 중국집과 다를 바 없는 다양한 요리를 갖추고 있다. 물론 요리 연륜만큼 대부분의 음식점이 기본 이상의 수준이다. 하지만 요리 집마다 잘한다는 대표 메뉴가 있어 ‘땡기는’ 음식에 맞춰 음식점을 찾아 들어가면 된다.

우선 중국집의 대표 메뉴 자장면 맛의 진수를 느끼고 싶다면 개화를 찾아라. 이곳은 대사관 길에 즐비한 중국 음식점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중국집으로도 통한다. 3대에 걸쳐 한자리에서 중국 음식만을 만들어 왔다. 저렴한 가격의 푸진 밥 한 끼를 원한다면 향미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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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남동에서 이미 40년의 역사를 굳힌 향미. 할아버지 때부터 시작된 연남동 가게는 아버지가. 명동 가게는 아들이 주방을 운영한다. 청출어람이라 했던가. 3대째인 조수핑씨는 산둥 출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달리 대만 유학파 출신이다.
덕분에 산둥의 손맛에 대만의 입맛을 가미해 이색적 풍미의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다. 산동교자는 물만두와 오향장육이 맛있는 곳. 쫄깃쫄깃한 만두피에 중국 부추로 소를 채운 물만두가 일품이다. 마늘을 듬뿍 갈아 넣은 새콤달콤한 소스를 부어 먹는 오향장육은 독특한 맛을 자랑한다. 식사보다는 고량주 한잔을 하러 온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때문에 저녁시간이 붐빈다. 

두 손에 부모를 위한 간식거리를 들고 집으로 가보는 건 어떨까. 중국 전통 과자를 파는 도향촌은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특징이다. 출출할 때 영양 간식이나 선물용으로도 손색없다.

개화 02-776-0508 회빈장 02-776-7592 도향촌 02-776-5671 일품향 02-753-6928 산동교자 02-778-4150 향미 02-773-8835 딘타이펑 02-771-2778 꽁시면관 02-778-8863 취천루 02-776-9358

백혜선 프라이데이 기자 [100s@joins.com]
2008/06/18 16:13 2008/06/18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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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차이니스 퀴진을 말하다, SAM LEOUNG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12 |

우리는 레스토랑의 이름은 기억할지언정 이를 만든 셰프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외국은 다르다. 셰프는 하나의 브랜드다. 런던의 제이미 올리버가, 파리의 조엘 르부숑이 그렇듯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난 샘 렁은싱가포르로 많은 이들을 이끄는 고부가가치의 브랜드다. 그와의 한 시간 동안의 인터뷰 후, 나는 어느덧 싱가포르행 비행기티켓을 끊어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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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길을 따라 걷다

샘렁은 싱가포르 No.1의 영예를 가진 셰프다. 그는 현재 ‘마이 험블 하우스My humble housem’ ‘제이드Jade’ 등 20여 개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있는 싱가포르 최대 레스토랑 그룹인 퉁록 Tunglok의 총주방장을 역임하고 있다. 그가 셰프가 된 이유는사실 단순했다.

그가 유명한 셰프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아버지는 싱가포르에서 상어지느러미 요리의 대가로 불렸다. 그러나 처음부터 요리사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열네 살 때였나, 그는 경찰관을 꿈꿨다. 멋진 폼새로 범인을 소탕하는 경찰관의 제복이 아버지의 하얀 앞치마보다 좋았다. 그러나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DNA는 바뀌지 않았다. 결국 열일곱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요리를 배웠고 지금까지 28여 년 시간의 대부분을 주방에서 보냈다. 잘 선택했다 싶다. 중식당 도림의 오픈 키친 안을 휘저으며 분주하게 스텝들을 지휘하는 그의 모습에서 끊임없는 에너지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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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만의 독창성을 발휘하다


그러나 그가 선택된 자의 특권을 누렸더라면 지금과 같은 셰프가 되지는 못했을 거다. 30년 전, ‘르 코르동 블루’와 같은 전문적인 인스티튜트가 없었던 시절엔 레스토랑이 학교였다. 그는 두세 달에 한 군데씩 유명 레스토랑을 돌아가며 트레이닝을 받았다. 물론 설거지부터 시작하는 ‘밑바닥 인생’이었다. 그가 배운 것은 중국 전통 요리였지만 3시부터 시작되는 휴식 시간 동안 이탤리언 레스토랑, 프렌치 레스토랑 등의 부엌을 기웃거리며 다양한 조리법을 어깨너머로 익혔다.


이런 경험을 통해 그는 중식 메뉴에 웨스턴 레서피를 가미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다. 그 아이디어는 적중했고 그래서 그는 스물여덟이라는 어린 나이에 싱가포르 포시즌스 호텔 중식당 쟝난천Jian Nam Chun의 책임조리장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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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식탁은 시크하고 맛있고 즐겁다


인터뷰를 하는 중 그가 만든 요리가 테이블 위에 도착했다. 놀랐다. 작은 접시 위에 내어지는 피조물들은 과장된 장식 없이 세심한 손길만이 묻어났다. 음식의 풍미는 진하지만 담백하다. 분명 중국 음식을 주문했는데 프렌치 레스토랑에 온 듯한 기분이다.


이는 많은 이들이 그의 대표 레스토랑이자 최고 힙플레이스인 험블 하우스에 놀라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중국 음식 메뉴에서 푸아그라를 맛볼 수 있다는 것, 중식당에 빨간 벽과 회전 탁상이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정통 중식의 틀에서 벗어나 전 세계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활용한 독창적인 요리. 그래서 그는 싱가포르의 최고 셰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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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요리에 대한 신념은 간단 명료하다. 신선한 재료와 천연 재료를 사용할 것. 열정을 가지고 늘 새로운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익힐 것. 그래서 그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셰프 친구들을 만난다. ‘헬스 키친’이라는 케이블 TV 쇼로 잘 알려진 램지 고든, 세계의 셀레브러티들이 파리에 들르면 꼭 들른다는 알란 듀카스, 퓨전 요리의 대가로 불리는 울프강 퍽, 할리우드 스타가 사랑하는 일본 요리의 대가노부 마츠히사도 그의 친구다.


모두 세계적인 요리 행사에서 만나게 된 사이로 런던에 가면 램지를, 도쿄에 가면 노부를 만난다. 그러면 그들은 메뉴판에도 없는 자신의 최고의 요리를 서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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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부부가 살아가는 법


믿어지지 않겠지만, 그는 17세, 18세의 두 자녀를 두고 있는 결혼 22년차 가장이다. 그는 부인을 다름아닌 한 레스토랑의 키친에서 만났다. 즉, 그녀 또한 요리사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생기자 직장을 그만두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엄마의 손길이 필요치 않을 만큼 성장하자 다시 일을 시작했다. 바로 남편의 키친 안에서 말이다.


두 사람 모두 요리가 직업이니 집에서 어떤 음식을 먹을까 궁금할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요리를 안 한다’였다. 첫째 이유는 매일 더 이상 요리를 하기에 피곤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싱가포르에 맛봐야 할 음식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맞벌이 문화가 정착한 싱가포르에서는 외식 사업이 매우 발달해 있다. 단 문제는 그가 너무 유명해서 외식을 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싱가포르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다.


특히 레스토랑에 가면 ‘샘 렁이 왔다’며 극진한 대우를 쏟아낸다. 그래서 작은 맛집을 찾아다니곤 했는데, 그것도 그가 TV 요리 프로그램을 진행한 후부터 불가능해졌다. 그래서 여행을 할 때가 좋다. 마음 놓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셰프로,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에서 여유를 갖게 된 그는 이제 부부만의 시간을 즐겨볼 참이다. 그래서 그는 부인과 함께 운동을 하고 여행을하고 일까지 함께 한다. 둘이 함께 손발을 맞춰 차린 밥상은 그들의 모습을 닮아 더욱 풍성해질 것만 같다.

2008/06/18 16:12 2008/06/1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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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ㆍ중ㆍ일 Best 쉐프 21 ⑤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11 |

마츠히사 노부유키' 장조지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는 유명 셰프들이 있습니다. 프라이데이 콤마 편집부는 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파리' 런던' 뉴욕'도쿄 등 전 세계 7개 도시의 요리 명인들을 만나고 온 여행이 칼럼은 그 대단원의 서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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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복 셰프

목란
음식을 내놓은 지 10분이 지났는데도 튀김옷이 바삭바삭하다. 매콤한 고추와 아래에 깔린 양배추, 양파 그리고 혀끝을 장식하는 담백함. 어디에서도 맛본 적 없는 유린기였다. 항상 그랬다. 똑같은 메뉴인데도 그가 만드는 음식들은 항상 다르다. 의문의 눈빛을 보냈더니 “평범한 음식을 남들과 똑같이 만들면 정말 평범해질 수밖에 없지요”라고 한다.


어릴 때부터 그의 안식처는 언제나 주방이었다. 사보이 호텔에서 3년을 일하면서 중화요리의 붐을 일으킨 뒤, 5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주한 중국대사관의 주방장이 됐던 때가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되던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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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후 대만과 일본 등지를 여행하면서 여러 음식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와 목란을 열었다. 근 23년을 중화요리와 함께했지만 아직까지도 그는 음식의 간을 철저히 본다. 자신의 요리 앞에선 여전히 겸손한 모습이다. 이런 그에게 주제 넘는 질문을 또 했다.


“당신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세계 음식 기행을 하는 겁니다.” 그 모습은 마치 요리를 막 시작하던 열여덟 살의 순수한 청년 같았다.


[Profile]
1977년 사보이호텔을 거쳐 1980년 주한 중국대사관 조리장을 역임했다. 현재 광화문에 있는 중식 레스토랑 목란의 조리장으로 일하고 있다.
       



 


왕육성 셰프

코리아나호텔 ‘대상해’
70년대부터 대관원, 홍보석, 다리원 등 이름난 중식당을 거쳐온 그는 이후 십여 년 동안 사보이호텔, 서울플라자호텔의 조리장으로 몸담고 있었다. 현재 그가 있는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대상해’의 조리장이 된 지는 근 20년째. 조리장보다는 사장이라는 칭호가 더 어울릴 정도로 이제는 ‘대상해’의 경영까지 도맡아 하고 있는 중이다.


“요리 연구는 이제 젊은 제자들이 하게 놔두고, 대신 나는 그들이 제대로 설 수있는 곳을 만드는 데 힘쓸 예정입니다” 라고 말하는 그. 사람들에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맛을 전하기 위해서는 경영에도 소홀해선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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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그가 선보인 메뉴는 ‘송이와 소 안심볶음.’ 기름의 온도가 조금만 틀려도 고기의 부드러움은 물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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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니와 진정한 맛과 향을 낼 수 없다는 요리다.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음식이란 제대로된 음식이 아니지요”라며, 음식의 깊은 맛을 내기 위한 100%의 간도 모든 이에게 환영받을 수는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의 말 속엔 정확히 100%의 간을 맞출 수 있다는 자부심이 고스란히 녹아 있었다. 다시 먹고 싶은 음식, 자꾸만 손이 가는 음식을 만드는 노하우라는 건 바로 이런 것이리라.


Profile 2004 산둥성 세계요리대회 금메달 및 2006 세계 광주요리대회 슈퍼금메달 수상

2008/06/18 16:11 2008/06/18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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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ㆍ중ㆍ일 Best 쉐프 21 ④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10 |

마츠히사 노부유키' 장조지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는 유명 셰프들이 있습니다. 프라이데이 콤마 편집부는 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파리' 런던' 뉴욕'도쿄 등 전 세계 7개 도시의 요리 명인들을 만나고 온 여행이 칼럼은 그 대단원의 서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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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호 셰프

요리사 집안에서 태어난 박한호 셰프는 18년간 중식 요리사의 길만을 걸어온 외골수이다. “다른 길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12세부터 중식주방에서 아버지의 일을 도왔으니 햇수로 치면 중식주방에서만 25년, 제 인생의 2/3를 보낸 셈이죠.” 요리가 싫어 잠시 집을 뛰쳐나간 적도 있었다. 하지만 눈앞에 어른거리는 요리 때문에 다시 주방으로 돌아왔다.


새로운 형식의 중국 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중국과 일본, 홍콩 등을 여행하며 그 나라만의 중식을 맛보았다. 그 중 특이하게도 일본의 중식이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다른 나라의 음식에 일식 특유의 깔끔한 맛과 진한 소스를 접목한 일본의 중식은 박한호 조리장이 선호하는 중국 음식의 목표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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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를 위해 그가 선보인 요리는 사천배추볶음. 중국 사천요리의 한 종류로 조미료를 전혀 쓰지 않고 오직 소금과 사천고추로만 맛을 낸 중국식 김치볶음이다. 현란한 양념없이 식재 그대로의 맛을 살려내는 그의 요리관과 일맥상통 맞닿아 있다.


손님의 그날 컨디션에 따라 즉석에서 1:1 맨투맨식의 요리를 선보이고 싶다는 그는 오늘도 중국요리의 새로운 맛을 위해 노력한다.


[Profile]
한국 중식요리사의 모임 ‘FND' 회장을 맡고 있으며 CJ‘차이나 팩토리 R&D’의 150여 가지에 이르는 메뉴를 개발해 선보이고 있다.
       



 



전영승 셰프


아시아차우
화교 1세대, 중식 요리사인 아버지를 따라 요리사의 길로 접어든 전영승 조리장. 대만에서 요리 이론을 배운 그는 23세에 한국에 와 요리의 기술을 갈고 닦았다. 대만에서 배운 산둥요리와 사천요리, 20년간 하얏트 호텔에서 근무하며 익히게 된 광둥요리까지 폭넓은 중식에 대한 이해는 아시아 차우만의 독특한 요리를 개발할 수 있는 발판이 됐다.


그가 자신있게 내놓는 요리는 ‘상해 돼지 넓적다리 찜.’ 팔각, 화로, 계피 등 중국의 향신료를 넣고 3시간 정도 끓여 만든 요리는 사천고추가 들어가 느끼하지 않고 깔끔끔하다. 전통 중식뿐 아니라 중식과 양식의 재료를 적절히 활용해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내는 것은 전영승 조리장만의 노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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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음식을 한국에 들여와 우리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고 그보다 더 나은 음식을 만드는 예술가가 진정한 요리사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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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또 다른 묘미는 시각이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접시에 오르는 모든 재료는 맛있어야 한다고 생
각합니다. 시각적으로 느끼는 맛이 없더라도 영양과 실속 그리고 미각을 만족시키는 훌륭한 음식으로 손
님을 감동시키고 싶어요.” 그에게서 요리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진다.


[Profile]
2005 중국 세계음식박람회 개인 찬요리경연 금상 수상 및 2006 중국 광저우 세계요리 개인부문 금상, 한림대 전통조리학과 중식 강사를 역임했다.

2008/06/18 16:10 2008/06/18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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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한ㆍ중ㆍ일 Best 쉐프 21 ③ 만리장성도 식후경 | 2008/06/18 16:09 |

마츠히사 노부유키' 장조지처럼 그 이름만 들어도 고개가 숙여지는 유명 셰프들이 있습니다. 프라이데이 콤마 편집부는 그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파리' 런던' 뉴욕'도쿄 등 전 세계 7개 도시의 요리 명인들을 만나고 온 여행이 칼럼은 그 대단원의 서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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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춘화 셰프

남가스시
가난하던 어린 시절, 단순히 생계 유지를 위해 식당에서 일을 한 것이 그와 요리의 첫 만남이었다. 요리사에 대한 편견과 싸우며 맨바닥에서 요리사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워가던 중 호텔에 입사해 일본 연수의 기회를 잡으며 요리사에 대한 꿈은 확고해졌다. 당시 그의 나이 30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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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요리사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직업에 대한 당당함과 자부심이 온몸에서 느껴졌어요. 이런 모습에 반해 한평생을 초밥에 목숨을 걸고 승부수를 띄워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그때부터 약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해 이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었다.

그에게 있어 요리는 평생을 함께할 과업과 같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개발해내야 하며 계절, 세월이 변함
에 따라 요리도 함께 진화해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그는 끊임없이 공부한다. 가는 실파를 이용한 초밥인 ‘파스시’는 그가 개발한 것으로 남가스시에서만 맛볼 수 있는 메뉴이다. 이처럼 손님들에게 받은 모든 것들을 다른 곳에서는 먹어볼 수 없는 요리로 보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남춘화 셰프의 마음인 것이다.

[Profile]
국내 유수의 호텔을 거쳐 현재 초밥전문점 남가스시를 운영하고 있다. ‘일식문화 요리 개발 연구회’를 설립, 전국 중앙회장의 자리에 있다. 저서로는 <초밥-기술에서 예술까지> <일본요리-기술에서 예술까지> <초밥왕의 맛을 보여드려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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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효주 셰프

스시효
한때 권투선수로 활동했던 그는 선수의 꿈을 위해 서울로 상경, 우연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곳이 일식당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요리에 대한 호기심도 많고 음식의 간을 잘 보기로 유명했던 그는 식당에서 일하면서 요리사에 대한 꿈을 키워갔다. 지위가 높아져 허드렛일을 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도 후배들과 함께 요리하고 생활했기에 요리, 재료 손질, 청소등 요리사에게 주어지는 어떠한 일에서도 만능이다.

요리사라는 직업 자체가 한 번 손을 놓아버리면 감각을 잃게 되는 기능직이기도 하며 자신이 보여 주지 않으면 후배들에게도 인정받는 스승이 되기 힘들다는 것이 그만의 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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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식이라는 기본 틀 안에서 요리의 개발이 아닌 변화를 줘야 해요. 일식의 틀을 벗어나면 그것은 퓨전 음식이 되고 말죠. 문제는 남들과 어떻게 차별화를 두느냐, 즉 발상의 전환 차이입니다.” 때문에 그는 매일매일 새로운 메뉴를 선보여 손님들의 기대심리를 만족시킨다.

앞으로 그는 한 평생을 요리사로 살아온 한 사람으로서 무궁무진한 일본의 식자재를 이용해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은 그만의 작고도 큰 소망이 있다.

[Profile]
코도모 호텔, 일본 산코주식회사 조리사, 오사카 조리사 전문학교 졸업, 힐튼호텔 등에서 조리장으로 일했다. 저서로는 <정통일본요리> <정통초밥요리> <돈까스> <튀김요리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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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중 셰프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하코네’
부모님이 일식집을 운영하셨지만 그는 일식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런 그가 일식에 정식으로 손을 댄 건 군대 제대 후부터이고 63빌딩 오픈 초기, 일식 팀에 들어가서야 비로소 그는 일식이 자신의 길임을 깨닫는다. 일식의 아기자기한 음식들과 타고난 그의 손재주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


“좀 더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이 다 하는 요리를 그대로 따라 하는 건 모방이잖아요. 창의력을 발휘해 나만의 요리를 해보자 마음먹었죠.” 일식만을 고집하지 않기로 했다. 세계의 다양한 요리를 보고 그것을 응용하기 시작했다. 여느 일식 요리와 차별화된 그의 독창적인 요리는 이러한 자각에서 나온것이다.


그는 한번 만들었던 음식은 다시 내놓지 않는다. 같은 요리를 선보이는 것은 무성의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요리를 보고 후배들이 더 좋은 음식을 만드는 데 응용하도록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는 김기중 조리장. 후배들이 자신보다 더 뛰어난 요리사가 된다면 그만큼 뿌듯한 일도 없을 것 같다는 그다.

[Profile] 1975년 요리사의 길에 입문, 어느덧 요리 사생활 31년째다. 현재 일본요리 전문점 ‘아오야마’를 운영하고 있다.

2008/06/18 16:09 2008/06/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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