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과 실리’ 짝을 찾아 헤맨다
‘명장’과 ‘집결호’
‘하나의 중국’ 암시하는 강한 메시지 … 주인공 통해 중국인 습성 잘 묘사
영화로 본 중국 사회
▶‘집결호’ 자료 제공 : 성원아이컴
조금 과장하면 중국은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다. 그중 오늘의 중국과 가장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는 왕조는 무엇일까? 적잖은 사람이 시황제가 처음으로 천하를 통일해 세운 진 왕조를 떠올릴 것이다.
‘통일’과 ‘강력한 중앙집권’이라는 이념이 오늘의 중국과 매우 유사하다. 현대 중국이 추구하는 이상인 ‘하나의 중국’과도 일맥상통한다.
삼국지 첫 머리에 나오는 ‘천하의 대세는 나뉨이 오래되면 합해지고 합함이 오래되면 나뉜다’는 말을 역사가 증명해 준다고 믿는 게 중국이다. 여기에서 강조되는 건 물론 앞 구절이다. 오늘의 중국은 ‘나뉨이 오래 되면 합해진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최근의 티베트 사태에도 티베트를 포기하지 않는 중국 정부가 내세우는 베이징 올림픽 구호가 ‘하나 된 꿈, 하나 된 세계’로 정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 정부가 추구하는 바를 그대로 보여준 대목이다. 중국어에서 ‘하나’라는 뜻의 ‘퉁이(同一)’는 ‘통일’이라는 뜻의 ‘퉁이(統一)’와 발음이 같다.
왕조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최근 중국에서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대작 중국 영화에 스며들어 있는 현대 중국의 속내를 말하고 싶어서다.
1990년대 중반 ‘5세대’(1980년대 중반 중국 영화에 나타난 새로운 경향)가 빛을 잃어갈 무렵, 중국 영화는 대중적 흡인력을 갖춘 코미디나 블록버스터를 필요로 했다. 장이머우 감독이 이를 기회로 ‘영웅’ ‘연인’ ‘황후화’ 등을 잇따라 내놓았다.
5세대 감독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영화를 만드는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온갖 규제와 금지 조치를 겪었던 장이머우는 권력과 화해하기 시작한다. 그는 ‘하나의 중국’이란 염원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었다.
진시황의 천하통일을 그린 ‘영웅’은 힘없는 자들이 어떻게 권력 앞에 엎드려야 하는지 노골적으로 말했다. 이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자 장이머우는 ‘연인’을 통해 ‘세련되게’ 찬란했던 당 왕조에 저항한 쿠데타 세력을 응징한다.
하나의 중국에 대한 도전은 용인할 수 없다는 메시지다. 장이머우가 주도해 온 중국의 대작 영화들은 한결같이 정부의 요구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적 선택에 머무른다.
최근 중국에서 건너온 블록버스터 두 편이 눈길을 끌었다. 천커신의 ‘명장’과 펑샤오강의 ‘집결호’가 그것이다.
▶‘명장’ 자료 제공 : 롯데엔터테인먼트
이들 영화는 각각 청 왕조 말기 태평천국 운동과, 1945년 이후 국공내전 및 6·25 참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런 역사·전쟁 영화는 블록버스터가 갖춰야 할 이야기와 볼거리라는 두 가지 요소를 갖추고 있다.
집결호는 철저하게 대륙 내부의 문제에만 집중한다. 전쟁은 상대가 있는 행위다. 공산당은 국민당을 맞아 싸웠고, 한국군과 유엔군에 맞섰다.
국민당과 공산당 사이의 전쟁은 말 그대로 ‘내전’이었고 6·25는 ‘참전’이었다. 중국은 내전에서 거의 완벽한 승리를 거머쥐었고, 참전에서는 확실한 승리도 패배도 없이 휴전했다.
‘집결호’는 상대가 있는 전쟁이 얼마나 비극적인가를 설명하려는 일은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국민당과 유엔군은 여전히 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영화는 그동안 승리의 노래 일색이었던 전쟁 ‘이후’의 풍경 속에서도 소외됐던 마이너리티가 존재했다는 새로운 다양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포인트는 이것이다. 구지디 중대장 개인의 노력보다는 당과 국가 명의의 ‘공식 통지’ 전달 장면이 더 부각된다. 힘들었던 전투와 고난의 시간을 극복하고 잊혀졌던 특수부대의 존재, 전우들의 시신을 발굴하고 마침내 이들이 ‘열사’로 추대된다는 이야기가 더욱 중요하게 다뤄진다.
당과 국가가 내부 갈등을 해소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강조한다. 이로 인해 더 아름다운 세상이 찾아왔음을 역설한다. 그렇게 영화는 ‘하나의 중국’을 실현하기 위해 희생한 이들에 대해 정중한 예의를 갖춘다.
그런 까닭에 ‘집결호’는 주류 이데올로기를 오락적으로 포장한 ‘주선율’ 영화의 변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선율’ 영화란 현대 중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사회주의적 시각에서 다룬 일종의 ‘선전 영화’를 가리킨다. 주선율 영화는 지금도 중국 영화 제작 편수 중 3분의 2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천커신의 ‘명장’은 조금 미묘하다. 방청운(리롄제 분)과 조이호(류더화 분), 강오양(진청우 분)이 목숨을 담보로 서로에 대한 의리를 다짐하며 의형제를 맺을 때까지만 해도 이 영화는 대륙과 홍콩, 대만을 잇는 통일 중국의 상징을 설파하는 듯 보인다.
홍콩 다음 또 하나의 ‘슝디’는 어딜까
대륙이라는 시장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홍콩영화의 현실적 선택을 보여주는 듯했다. 천커신 역시 대륙의 엄격한 검열 제도에 맞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게 어려운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큰형 방청운의 욕심으로 파국이 시작되면서 사뭇 달라진다.
블록버스터 제작에 얼마나 썼나
400억 들여 450억 벌었다
중국 영화가 대형화하면서 제작비 또한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명장’은 400억원이 투입됐고, ‘집결호’는 중국과 한국의 자본 100억원 이상이 투입되었다고 알려진다. ‘명장’은 주인공 리롄제의 출연료로만 제작비의 3분의 1 정도를 썼고, ‘집결호’는 특수효과에 자금의 대부분을 사용했다고 한다.
‘명장’은 현재 아시아 전역을 통틀어 450억원 이상의 관객 수입을 올리고 있어 리롄제의 몸값은 물론 제작비까지도 충분히 뽑아낸 셈이다. ‘집결호’ 역시 중국에서만 300억원 넘는 수입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셋 사이에 전투와 사랑으로 인해 내분이 생겨나면서 영화는 ‘집결호’와 달리 하나의 목표 지점, 즉 ‘하나의 중국’으로 모아지지 못한다. 내분이 일어나자 막내 강오양은 의미심장한 대사를 반복한다. “큰형이 옳아요!”
하지만 빅 브러더가 옳았다는 그의 외침은 조이호가 죽임을 당하고 다시 자신이 결국 큰형과 맞서 목숨을 걸고 겨룰 때 공허한 울림이 되고 만다.
중국 영화를 심사·관리하는 당국인 국가광전총국은 아마 세 형제가 행복하게 살 수 있기를 더없이 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천커신은 태평천국이라는 쿠데타를 진압하고도 청 왕조로부터 버림받는 방청운을 통해 상징적 메시지를 던진다.
하나의 중국은 ‘베이징 정부’가 필요로 하는 목표일 뿐이다. 대만이나 티베트는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역사를 다룬 영화들은 오늘의 상황을 비유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때 흥미를 더하게 된다. 따라서 단일한 결말로 수렴되는 ‘집결호’보다는 다원적 사고를 불러일으키는 ‘명장’이 더 의미가 있다.
흥미롭게도 두 영화는 모두 ‘형제 맺기’ 장면을 보여준다. 명장에서 세 주인공이 형제를 맺는 장면은 삼국지의 도원결의를 떠올리게 한다. ‘집결호’에서는 지뢰를 밟은 중대장과 이를 구해준 구지디가 ‘형제’가 된다.
구지디에게는 함께 전투에 나섰다가 몰살당한 47명의 또 다른 ‘형제’도 있다. 이들 장면을 통해 중국인들의 오랜 습성을 찾아볼 수 있다.
흔히들 중국 사람은 의심이 많다고들 한다. 친구가 되기도 쉽지 않다. 친구란 뜻의 중국어인 ‘펑유(朋友)’는 우리보다 훨씬 자주 쓰이는 말이긴 하지만 우리의 ‘친구’라는 말만큼 농도가 짙진 않다. 앞에 ‘라오(老)’ 자를 붙이고 나야 더 격이 올라가는 ‘진짜 친구’ 정도의 의미가 된다.
농밀한 정도로는 슝디(兄弟·형제)가 최고다. ‘펑유’ ‘라오펑유’ ‘슝디’로 이어지는 중국의 인간관계는 명분과 의리가 밑바탕에 흐른다.
중국인은 오랜 시간을 두고 상대를 관찰하면서 그의 인간됨이 어떠한지, 말과 행동에 일관성이 있는지를 살핀다. 합격점을 얻고 나면 그제야 그 격에 맞는 친구나 형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겉으로 말하는 명분과 의리 이면에는 엄연한 실리가 존재함을 알게 된다.
상대가 나에게 무언가를 주었거나 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는 라오펑유가 되거나 슝디가 될 수 있다. 아무것도 줄 수 없다면, 그는 라오펑유도 슝디도 될 수 없다.
‘명장’의 방청운은 자신의 부상을 무릅쓰고 전투에서 곤경에 처한 조이호와 강오양의 목숨을 구한다. ‘집결호’의 구지디 역시 희생을 무릅쓰고 중대장의 목숨을 구한다. 목숨을 구해준 일은 무엇보다 앞선 실리라고 할 수 있다. 방청운은 이후 자신의 또 다른 실리를 위해 ‘슝디’의 명분을 버린다.
구지디는 끝까지 자신의 명분을 찾기 위해 탄광에 묻힌 47명의 ‘슝디’ 시체를 찾아 헤맨다. 중국인들 의식 속에서 명분·실리의 안과 밖은 그렇게 짝을 이룬다. 오늘날 대륙 중국은 홍콩이라는 한 ‘슝디’를 되찾아왔다. 그리고 다시 상봉해야 할 ‘슝디’ 하나를 더 남겨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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