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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영국, 체코, 독일의 "여성감독들"- 여성, 영화 그리고 인생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7: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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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여성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 -여성, 영화 그리고 인생

4월의 서울은 유난히 화창하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즐기러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이들이 내뿜는 열정 때문이다 축제의 현장에서 중국, 영국, 체코, 독일 여성감독들과 나눈 여성, 영화 그리고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Peng Xiaolian ●감독 특별전 펑 샤오리엔


FILMOGRAPHY


세 여자 이야기 1988 / 옛날옛적 상하이에서 1999 / 상하이 여인들 2002 / 상하이 이야기 2004 / 상하이 룸바 2006


상하이를 사랑하는 여자



올해 감독 특별전의 주인공은 중국 여성감독인 펑 샤오리엔이다. 장예모, 첸카이커 등과 함께 베이징영화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베이징’에 심취한 이들과 달리 ‘상하이’를 영화에 담으며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들은 돈이 있고, 나는 돈이 없어서 그랬다”라고 말을 시작한 그녀는 “사실 상하이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상하이만큼 내가 잘 알고, 잘 표현할 수 있는 것도 없더라. 그래서 상하이를 무대로 여러 편의 영화를 만들었다”며 ‘상하이 3부작’을 소개했다.

<상하이 여인들> <상하이 이야기> <상하이 룸바>에 이르는 ‘상하이 3부작’은 상하이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는 그녀의 대표작이다. 처음부터 3부작을 하려 했던 것은 아니고 <상하이 여인들>을 만들고 나서 많은 생각이 들어 이 작업을 이어갔다고 한다. 사실적인 묘사로 유명한 그녀의 영화 속 상하이의 모습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한다.

경제 분야에서는 개혁과 개방이 이루어졌지만 정치·사회적으로는 여전히 사회주의 이념이 팽배한 상하이의 혼란과 갈등은 심화된다. “상하이가 많이 변했다. 미국보다 더 물질적인 것 같다”는 <상하이 이야기> 속 시오메이의 대사는 혹시 그녀의 진심이 아닐까.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고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하는 건 아니다.

이렇게 발전한 지금의 상하이에도 그만의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른 곳을 무대로 영화를 할 계획은 없는 걸까? “차기작도 상하이 출신의 과학자 이야기지만 베이징을 무대로 한다. 약간의 변화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그전에 투자를 많이 받았으면 좋겠다.(웃음) 제작비 걱정 없이 마음껏 작업할 수 있기를 늘 바랄 뿐이다.”


Lisa Gornick ●<틱 톡 룰라바이> 리사 고닉


FILM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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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애인은 절대 영화처럼 키스 안 해 1999 / 종교를 창시하는 12단계 2000 / 그래픽 러브스토리 2002 / 너를 사랑해? 2002


다른 이와 같은 소망을 가진 여자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는 것에 있어서는 레즈비언이라고 해서 이성애자 여자들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뱃속에 아기를 품었다 출산하고, 기르고 싶은 욕망이 그들에게도 있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이런 것을 할 수 없어 슬픈 거다.”

<틱 톡 룰라바이>는 임신을 하기 위해 각자 섹스할 남자를 찾아 나선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다. 지난 7회 상영작인 <너를 사랑해?>에서 레즈비언 커플의 고민과 정체성의 혼란에 대해 포괄적으로 이야기했던 리사 고닉은 이 영화에서 ‘아이 갖기’라는 한 주제에 포커스를 맞췄다. “여자라면 누구나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기대 혹은 책임감을 갖고 살아간다. 레즈비언 역시 그렇다.

하지만 성 정체성과 모성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의 이런 애환을 표현하고 싶었기에 이 주제를 택했다.” 다소 무거운 주제와는 달리 <틱 톡 룰라바이>는 유머가 넘쳐나고 경쾌하다. 전작에 이어 이번에도 주연을 맡은 그녀는 영화 속 만화까지 직접 그려 넣는 놀라운 재능을 선보인다. “만화 파트는 중요한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나의 내면에 있는 생각과 고민들을 끄집어내서 그린 것이기에 만화의 내용이 곧 이 영화의 부제라고 생각한다.”

실제 레즈비언인 그녀는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를 만들고자 했다면 주인공 커플이 아이를 입양해 사랑을 듬뿍 주면서 키우는 것으로 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생모가 되지 못하는 레즈비언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런 고통과 애환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한다.


Helena Trestikova ●<마르첼라> 헬레나 트르제시티코바


FILM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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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터치 1981 / 리다 바로바의 달콤씁쓸한 기억 1997 / 세기의 전환에 서있는 여성 2001


26년간 슬픔을 좇은 여자


올해 상영된 다큐멘터리 중 최대 화제작인 <마르첼라>는 한 여성의 26년간 삶이 담긴 작품이다. 영화를 보면 마르첼라의 기구한 인생은 물론, 그토록 오랜 세월 그녀를 카메라에 담은 감독의 집념에 놀라게 된다. 헬레나 트르제시티코바는 1970년대부터 인생과 사회 문제를 다큐멘터리로 찍기 시작했다.

그녀가 마르첼라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 여섯 쌍의 젊은 부부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인데, 이들 중에 마르첼라 부부가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본래 6년간 촬영할 계획이었다. 1987년 이 TV 프로그램이 방영된 지 12년 후, 당시의 여섯 쌍 부부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진 헬레나는 이들을 다시 찾는다.

이때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고 있던 이가 바로 마르첼라였다. 그녀는 두 번의 이혼을 겪고 홀로 딸과 정신박약아 아들을 키우며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마르첼라>는 1980년대 제작한 TV 프로그램 중 그녀의 출연 부분과 12년 후 다시 찾아 2006년까지 촬영한 부분을 편집해 한 편으로 완성한 작품이다. “그녀의 삶을 많은 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물론 그녀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힘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당신이 나를 카메라로 찍고 나는 카메라 앞에서 이야기를 하면서 정신적으로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제작 환경이 발달된 체코에서는 남녀 감독 비율이 1대 1을 이룰 정도로 다큐멘터리 분야에서 여성감독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이들 사이에서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은 ‘타임랩스 촬영기법’(Timelapse Shooting)으로, 일정 기간 동안 인물 혹은 어떤 현상의 변화를 다큐멘터리로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이제 자신의 특징이 된 타임랩스 촬영기법을 여전히 고수하는 그녀는 앞으로도 마르첼라의 삶을 계속 카메라에 담을 예정이다.


Ulrike Ottinger ●<서울 여성 행복> 울리케 오팅거


FILMOGRA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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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X 1977 / 프릭올란도 1981 / 12개의 의자 2003 / 프라터 2007


한국의 색에 매료된 여자


올해로 10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욕심을 부렸다. <텐 텐>이라는 10주년 기념 작품을 제작해 개막작으로 선보인 것. 국내외 유명 여성감독 여섯 명이 참여해 ‘서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각자의 단편영화를 완성했다.

여섯 감독 중 한 명인 뉴 저먼 시네마의 대표적 여성감독 울리케 오팅거는 이혜경 집행위원장으로부터 이 프로젝트에 관한 이메일을 받고 ‘이거 재미있겠는데’ 싶었다고 한다. “‘서울과 여성’이라는 주제를 듣고 본격적인 구상을 위해 처음으로 서울을 찾았는데, 전통과 현대가 공존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잘 지어진 빌딩 사이로 보이는 전통 건물들이 참으로 멋졌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눈에 띈 것이 수많은 웨딩숍들이었다. 번화가에 쭉 들어선 웨딩숍들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결혼이 꽤 중요한 일 중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첫 인상을 바탕으로 그녀는 한국의 결혼 예식 절차에 대한 다큐멘터리 제작에 들어갔다.

한국의 전통 혼례를 따라 나선 그녀는 함을 싸고, 혼례 한복을 제작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한국의 미(美)에 매료됐다고 한다. “나의 영화에서 각 프레임은 곧 이미지다. 나는 시각적 이미지를 가장 중요시한다. 그래서 너무나 아름다운 색감의 천과 의상, 각종 소품들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어 좋았다.

또 촬영 기간 동안 예기치 않게 눈이 왔는데 하얀 눈과 빨간 천이 조화를 이룬 환상적인 비주얼을 만들 수 있어 행복했다.” 이번 작업이 기대 이상으로 만족스러웠다는 그녀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은 물론 일본,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제작할 것이라고 한다. <서울 여성 행복>은 ‘에피타이저’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그녀가 다음 작품에선 한국의 어떤 모습에 대해 이야기할지 기대된다.

무비위크=윤서현 기자

2008/06/18 17:01 2008/06/18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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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vs 이연걸- 포비든 킹덤을 보는 5개의 키워드(5편)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7:00 |

The Hidden Power of Two Dragons 성룡 vs 이연걸(5편)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를 보는 5개의 키워드


환상의 드림팀이 만든무술액션
할리우드가 동양으로 눈을 돌렸다. 롭 민코프 감독의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이하 <포비든 킹덤>)는 쿵푸를 좋아하는 평범한 미국 고등학생이 동양 전설 속 예언의 주인공이 되어 시간여행을 펼치는 어드벤처 액션영화다. 성룡과 이연걸은 그를 단련시키는 사부로 등장해 흥미진진한 친선 경기를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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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01 성룡 & 이연걸


<포비든 킹덤>은 성룡과 이연걸이 나란히 출연하게 된 첫 영화다. 이 세기적 만남은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제작자 케이시 실버는 <포비든 킹덤>의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성룡과 이연걸을 주연으로 캐스팅하고 싶어했다. 먼저 그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있는 이연걸에게 대본을 넘겼다. 마침 이연걸은 “지금까지 격렬한 영화를 많이 촬영했지만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터. 그는 “<포비든 킹덤>은 나의 두 딸을 위해 선택했다”고 출연 이유를 밝힌다. 제작자와의 미팅을 앞두고 있을 때 이연걸은  이미 <포비든 킹덤>의 출연 의지를 가진 상태였다.

다음 단계는 성룡을 캐스팅하는 것. 홍콩에 있던 성룡은 이연걸과 함께 출연한다는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은퇴하기 전 꼭 한 번 같이 연기하고 싶은 배우들이 있는데, 그 중 이연걸은 내가 10년이나 넘게 함께하기를 기다려온 배우”라며 성룡은 흔쾌히 출연 의사를 밝혔다. 이연걸 역시 “마침내 우리가 함께 일하게 됐다. <포비든 킹덤> 이전에도 우리는 이미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이 영화는 우리에게 정말 좋은 기회였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성룡과 언제든 함께 일할 것”이라며 두 무림 고수의 세기적 만남에 대해 호쾌하게 말했다.


KEYWORD 02 오리엔탈 액션 어드벤처


<포비든 킹덤>은 중국 소설과 신화에서 모티프를 얻은 할리우드영화다. 그 시작은 <스피릿>(02) <히달고>(04) 등의 시나리오 작가 존 푸스코가 열었다. 13세 때부터 한국 무술을 익혔고, 동양적인 것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푸스코는 자신의 어린 아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 언제나 중국 무술과 소설, 쿵푸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약 4년 전부터 자연스레 쿵푸를 좋아하는 미국 소년이 고대 중국 마을로 시간 여행을 떠나 전설의 임무를 맡게 되는 모험담을 떠올렸고, 그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시작했다.

한편 <라이온 킹>(94) <스튜어트 리틀>(99) 등을 연출한 롭 민코프 감독이 <포비든 킹덤>의 연출을 맡게 된 것은 어떤 예언과도 같았다. 베이징대학에 초청받아 애니메이션 영화제작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을 때 롭 민코프는 한 학생에게 우연히 “<서유기>를 영화화할 생각이 없느냐”는 뜬금없는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얼마 후 그 시나리오가 바로 자신의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롭 민코프는 제작진과 머리를 맞대고 동양인과 서양인이 모두 공감할 만한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고민했다.


KEYWORD 03 전설의 마스터


쿵푸를 좋아하는 평범한 17세 소년 제이슨. 아직 우리에게는 낯선 얼굴이지만 마이클 안가라노가 600대 1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포비든 킹덤>의 주인공 소년 제이슨을 연기하게 됐다. 영화는 제이슨이 차이나타운의 한 가게에서 황금색 봉을 발견하고 ‘포비든 킹덤’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무술의 절대 고수인 루얀(성룡)과 란(이연걸)을 만나게 되는 것. 제이슨이 악랄한 제이드 장군(예성)의 독재를 막고, 500년간 봉인된 마스터를 깨울 수 있는 예언의 주인공임을 한눈에 알아본 루얀과 란은 서로 제이슨의 사부를 자청하고 나선다. 그러나 가벼운 듯 허를 찌르는 취권의 달인 루얀과 정통 액션을 고수하는 란은 티격태격 사사건건 부딪치고, 우연히 파워풀한 여전사 골든 스패로우(유역비)를 만난 그들은 피도 눈물도 없는 백발마녀(이빙빙)의 위협 속에서 전설의 마스터를 깨우기 위한 험난한 여정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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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04 액션 안무가 원화평


성룡과 이연걸, 세계적인 두 액션 스타를 진두지휘할 만한 액션 감독을 찾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때 이연걸이 적극 추천한 사람은 바로 원화평. 원화평은 이연걸과 <황비홍 2>(92) <태극권>(93) <무인 곽원갑>(06) 등을 함께했을 뿐만 아니라, 할리우드에서 <매트릭스>(99) <와호장룡>(01) <킬 빌>(03) 등의 무술을 담당하기도 했다. 또한 성룡과는 어린 시절부터 같은 학교에서 무술을 배운 사이. 1978년에는 성룡이 주연한 <취권>을 원화평이 감독하기도 했다. 성룡이 즉흥적이고 흥겨운 방어적 액션을 취한다면, 이연걸은 공격적이고 파워풀한 액션을 구사한다. 원화평은 다양한 공간을 오가며 빠른 스피드로 상반된 두 배우의 액션 스타일을 강렬하게 살려냈다.


KEYWORD 05 우수한 한국의 CG 기술


<포비든 킹덤>은 영화 속 환상적인 배경을 연출하기 위해 1,000개에 가까운 시각효과를 사용해야 했다. 여기에는 <한반도> <중천> 등을 작업한 매크로그래프(Macrograph Inc)와 <왕의 남자> <세븐데이즈>의 CG를 담당한 DTI(Digital TetraInc), 그리고 <청연> <기담>의 시각효과를 맡은 푸테이지(Footage) 등 국내 업체가 메인으로 참여했다. 할리우드영화의 전편 CG/VFX 작업을 국내 업체가 담당한 것은 <포비든 킹덤>이 처음. 롭 민코프 감독은 “동양적인 영화이기에 아시아에서 CG 작업이 이뤄지길 바랐다. 많은 아시아 업체들이 참여했지만 그 중 한국의 기술력과 창의력이 가장 뛰어났기 때문에 한국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중국무술의 고수를 찾아라!


1980년대 홍콩영화는 중국 고유의 특성을 살리는 고전 무협물이 대세를 이뤘다. 그 시기를 넘어 현대물로 넘어와서도 쿵푸 액션은 그들의 특색을 살려주는 좋은 무기가 됐다. 당시 활동하던 성룡과 홍금보, 원표 등이 경극학원에서 수련을 통해 단련된 대표적인 액션 스타였다. 또한 그들을 발굴하고 활동의 폭을 마련해 준 사람이 바로 원화평이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스턴트와 아기자기한 액션은 정통 무술의 후계자 이연걸의 등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리고 현재 강한 중국 액션의 흐름은 견자단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정지원 기자


원화평 유명한 무술인이던 아버지의 지도로 어린 시절부터 경극과 쿵푸를 배웠다. 쇼브라더스의 쿵푸 배우 겸 스턴트맨으로 활동했다. 1960년대 <황비홍> 시리즈에 출연했고 1971년 무술감독으로 데뷔한다. <매트릭스> <와호장룡> 등의 무술감독으로 더 유명하다.


원 표 다섯 살 때부터 경극과 액션을 익혔다. 성룡, 홍금보 등과 함께 엑스트라부터 시작해 스타로 성장한 케이스다. <오복성>에선 무술지도까지 겸하며 금장상에서 베스트 액션지도상을 수상했다. 80년대 액션영화에서 360도 회전 발차기 등 놀라운 실력을 보여줬다.


조문탁 어릴 적부터 아버지와 스승 사이에서 무술을 수련했다. 세계무술대회 우승 경력을 가졌으며 이연걸과 맞대결을 펼칠 정도의 고수다.
<방세옥>으로 스크린에 데뷔했으며 <황비홍> 시리즈, <신의협려> 등으로 알려졌다. 발차기와 권법, 봉술 등에 능하며 와이어를 사용하지 않는 공중 곡예로 유명하다.


견자단 1982년 <인사이드 쿵푸>에 의해 ‘최고의 무술가’로 선정되며 이름을 알린 견자단은 지금 중국 내에서 최고의 무술감독 겸 배우로 활동 중이다. 빠른 스피드와 강한 타격이 인상적이다. <용호문> 등에서 무술감독과 주연을 겸했으며 최근작 <연의 황후>에도 출연했다.


홍굼보 열 살 때부터 경극과 무술을 배웠으며 아역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골든하베스트사에서 무술감독을 해오다 감독 데뷔의 기회를 얻었다. 무술팀 ‘홍가반’을 이끌며 수많은 무술감독을 키워냈다.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도 무술감독과 출연을 겸하며 여전히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다.


movieweek=안영윤 기자

2008/06/18 17:00 2008/06/18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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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vs 이연걸- 형님들을 따르다! 그들의 인맥 (4편)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59 |

The Hidden Power of Two Dragons 성룡 vs 이연걸(4편)


龍 & 杰 인라인


형님들을 따르라!
중화권 연예인들은 관계가 돈독하다. 아마도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주요 위치를 차지하며 왕성한 활동을 하는 형님들 덕분인 것 같다. 이 두 사람처럼. 여기 형님들의 관계를 정리했다. 물론 인맥의 50분의 1도 안 된다.


성룡 vs 이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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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걸

1985년에 만난 오랜 친구. 앞서 두 번이나 무산되고 세 번째인 <포비든 킹덤>으로 공연 성사. 조만간 또 다른 작품을 같이 할 예정. 스토리는 두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으며 플롯 구상 중.

원표 & 홍금보

골든 트리오 멤버. 지금도 함께 작품을 하는 등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있음.

정희이 & 유가령 & 장만옥 & 장쯔이

여러 여인들과도 소문이 난 바 있는 성룡.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좋은 친구들로 지내고 있는 언니들.

유덕화

<화소도>를 함께한 것이 1990년. 지금까지 우정 과시.

브렛 래트너 & 크리스 터커 &
김희선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는 그의 성격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친구들을 형성.

주성치 & 주윤발

‘2周 1成’이라 불리며 중국어권 배우 파워 3인에 꼽히는 그들. 서로의 영화에 카메오 출연도 해줄 만큼 절친.

방조명

배우이자 아들. 공식적인 자리에서 성룡은 종종 ‘방 선생’이라는 호칭 사용.



이연걸 vs 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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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1985년에 만난 오랜 친구. 앞서 두 번이나 무산되고 세 번째인 <포비든 킹덤>으로 공연 성사. 조만간 또 다른 작품을 같이 할 예정. 15년 전부터 얘기해 온 작품으로, 스토리는 두 사람이 아이디어를 냈으며 플롯 구상 중.

유덕화

유덕화의 콘서트에 이연걸의 딸이 댄서로 깜짝 출연했을 만큼, <명장> 이후 우정 급상승.

양자경

“이연걸은 친해지기 쉽지 않다. 여자 파트너와 가까워지는 걸 무서워 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이미 15년지기.

서극 & 원규 & 정소동

스타 메이커들. 무술인이던 이연걸을 영화배우로 세상에 알려놓은 감독들.

견자단 & 조문탁

무술인 배우로서 같이 작품을 하며 우정을 쌓은 배우들.

뤽 베송 & 안드레이 바르코비악

두 번 이상 함께 작업한 할리우드 필름메이커들.

주걸륜

중화권 인기 스타 투표에서 야오밍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그는 이연걸의 팬. <곽원갑> 주제가 작업을 계기로 서로 만났을 때 긴장해 말도 제대로 못했다는 후문.


무비위크=박은경 기자

2008/06/18 16:59 2008/06/18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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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vs 이연걸- 잘난 그들을 비교한다! (3편)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58 |

The Hidden Power of Two Dragons 성룡 vs 이연걸(3편)


키워드 흥미 비교


잘난 그들을 비교한다!
각자 다른 스타일로 중국 액션의 양대 산맥을 이룬 그들. 이제 아시아를 넘어 세계가 주목하는 스타가 된 너무나 잘난 그들을 대놓고 비교해 본다.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두 사람의 은밀한 매력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성룡 vs 이연걸


01 이미지


진지하면서도 밝고 경쾌하다. <용적심> <중안조> 등 몇 작품에서 웃음기 없는 연기를 보여준 것을 제외하면 항상 코미디와 액션을 조화롭게 구사하고 있다. 액션 영웅이지만 맞으면 아파하고 적을 두려워하는 인간적인 모습으로 친근감이 느껴진다. 영어권에선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코미디 배우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다.


02 무술


어린 시절부터 경극학원에서 몸을 단련했다. 이때 권법과 경극을 배우며 액션 배우의 조건을 갖췄다. 타고난 유연함과 재치, 프로 근성으로 자신만의 액션 스타일을 개척했다. 그가 이끄는 무술팀 성가반은 두 주먹과 발을 마주치고 상대를 가격하는 정통적 방식과 소품을 이용한 아크로바틱한 액션을 보여준다. 무술인이기보다 배우로서의 자신을 더 사랑한다.


03 탤런트


홍금보, 원표와 함께 골든 트리오를 형성하던 당시 성룡은 감독과 주연을 겸해 영화를 총괄하는 방식을 택한다. 1979년 <소권괴초>를 시작으로 <프로젝트 A>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등을 만들어오는 동안 성룡 영화의 스타일이 구축됐다. 또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여하기도 하며 영화적으로 두루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영화 주제가를 직접 부르는 등 가수로서의 재능도 보였다.


04 액션 스타일


슬랩스틱 또는 아크로바틱에 가까운 묘기 수준의 액션을 보여준다. 특히 소소한 장애물을 이용한 성룡만의 액션이 특유의 재미를 더해준다. 잦은 부상 속에서도 와이어 없이 위험천만한 스턴트를 직접 연기해 관객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준다. 할리우드 진출 후 와이어 사용횟수가 늘고 있지만 나이가 들어도 프로근성을 버리지 않는 그에게 누가 돌을 던지랴.


05 할리우드


1980년 <캐논볼>로 할리우드에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사실 단역 수준이었고 잠시나마 보여준 그의 코믹 연기가 큰 반응을 얻지도 못했다. 이후 <홍번
구>가 미국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고
<러시아워>가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할리우드에서도 공식적인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06 언어


어릴 때부터 무술만 익히느라 글을 배우지 못했다. 거기다 난독증까지 가지고 있었다. 그렇지만 한때 한국어를 웬만큼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렀으며 영어까지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물론 NG 신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발음과 표현에 있어 완벽하진 않지만, 그 정도면 대단한 거 아닌가.


07 사생활


결혼 소식이 잠시 알려진 후, 광팬들의 자살 소동 등이 이어졌고 이에 대한 부담으로 사실을 명확히 밝히지 못했던 일화가 있다. 80년대 초엔 한국에서 거주하기도 했고 한국인 여자친구를 사귄 적도 있다. 홍콩 연예계에선 주성치와 함께 대표적인 스캔들 황제로 꼽힐 만큼 여자 문제에 얽힌 일화가 많다.


08 영화 외 활동


사업가로서의 수완이 뛰어나다. 마닐라, 밴쿠버 등지에 커피숍 체인을 열었고 이미 의류와 피트니스 클럽, 레스토랑 등 다양하게 사업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서울 및 통영 명예시민으로 임명될 만큼 친한국적인 배우다. 서울 시내 보육시설, 통영시 소년소녀 가장을 위해 성금을 보내오기도 했다.


09 코멘트


스스로를 성룡 액션 키드라 칭하는 류승완 감독은 그를 두고 “하강하는 영웅”이라 했다. 눈물이 쏙 빠지도록 맞고 고생하다 결국은 이겨내는 서민적 영웅의 이미지란 말이다. 지난 1995년 <타임>지는 <취권 2>를 올해의 베스트 무비 중 한 편으로 선정했으며 ‘관객의 즐거움을 위해 죽음을 감수하는 고통의 다큐멘터리’라 평하기도 했다.


10 관객 평가


다소 코믹하면서 과장된 설정 때문에 유치하다는 이도 있지만 한길을 걸어온 그만의 액션 스타일을 두고 작가적 경지에 다다랐다고 평가하는 이도 있다. 수많은 마니아를 거느리고 있기도 하다.



이연걸 vs 성룡


01 이미지


그의 얼굴에서 장난기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맞고 쓰러지고 아파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리쎌웨폰 4>에서와 같은 냉정하고 차가운 모습도 가능할 정도. 동시에 선한 표정이 항상 공존하고 있어 양면의 다양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소화해 낼 수 있다. 정갈하고 곧은 이미지다.


02 무술


여덟 살 때부터 우슈를 배웠다. 각종 무술대회 우승 경력을 가지고 있으며 1974년엔 백악관에서 시범을 보이는 등 45개 국가에서 무술 시연을 하기도 했다. 영화 활동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중국 무술의 탁월함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할 정도로 배우 이전에 무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강조하고 있다.


03 탤런트


1988년 <중화영웅>을 통해 감독으로 데뷔했다. 하지만 흥행에서 고전한 후 다시 배우 활동에만 전념했다. 화려한 컴백의 발판을 마련해 준 <황비홍> 시리즈의 촬영 당시 출연료 지급 문제로 갈등을 빚었고 이후 자신의 영화사를 차려 <보디가드> <방세옥> 등의 제작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04 액션 스타일


정통 무술에 기반을 둔 액션을 펼친다. 자신만의 독특한 액션 스타일을 가졌다기보다 영화의 성격에 맞게 조율할 줄 안다. <무인 곽원갑> <태극권> 등에서 보여준 여러 초식들을 떠올리면 무술인으로서의 이연걸을 다시 돌아볼 수 있다. 성룡에 비해 와이어를 자주 사용한 편인데 출연작 자체가 과장된 액션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멋들어지고 우아한 동작이 빠른 스피드와 어우러져 마치 무용을 하는 듯하다.


05 할리우드


1998년 <리쎌웨폰 4>에 악역으로 출연해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살기가 느껴지는 눈빛과 위력적인 액션은 영화를 본 사람이면 누구나 입에 올렸을 정도다.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준 뒤, <로미오 머스트 다이> <키스 오브 드래곤> 등의 작품에 주연으로 출연해 할리우드에서 새로운 액션 스타 계보를 이어나갔다.


06 언어


처음 할리우드에 얼굴을 내밀었을 때 그의 영어 실력은 입에 올릴 만한 수준이 못 됐다. 그러다 주연급으로 부상한 후 차츰 실력이 늘더니 이젠 영어로 인터뷰를 진행할 만큼 일취월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스파르타식 무술 훈련을 받으며 성장한 만큼 끈기와 노력은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듯하다. 중국 본토 출신인 만큼 만다린어 연기에도 지장이 없다.


07 사생활


<소림사> 시리즈의 2, 3편에 함께 출연한 배우 황추연과 오랜 시간 동안 염문을 뿌리다 결혼했다. 1988년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으며 영화 제작에 손댔다가 실패한다. 훗날 성공적으로 할리우드에 안착한 후 스케줄 탓에 아내와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고 결국 이혼하게 됐다. 그 후 지난 1999년에 미스 아시아 출신의 이지와 재혼했다. 뒤늦게 언론에 이 사실을 공개해 주목받기도 했다.


08 영화 외 활동


불가에 전념하며 인품을 가다듬고 있다. 공식석상의 발언을 통해 “돈과 명예보다 더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란 말과 함께 인격수양의 중요성을 밝히기도 했다. 배우로서의 욕심을 뒤로 하고 자선사업을 하고 싶다는 말을 할 만큼 정신적으로 자아성취를 이뤄내려 한다. <소림사> 이후 무술영화가 쇠퇴일로를 걸을 때 중국 무술의 보급과 의료보건사업에 힘썼던 경력도 있다.


09 코멘트


최근 내한한 진가신 감독은 “<명장>의 ‘방청운’ 캐릭터는 이연걸을 만나서 완벽하게 태어났다. 양면적인 인성의 캐릭터를 나보다도 더 잘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분명 중국에서 자란 이연걸은 대만과 홍콩 등지에서 성장한 다른 배우들에게는 없는 특별한 면모가 있다고 한다. 이는 그만이 갖고 있는 내면의 깊이에서 오는 울림이기도 하다.


10 관객 평가


강인하고 무게감 있는 배우로 각인돼 있다. 할리우드에서의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꾸준히 인격수양에 매진하는 모습으로 인해 그의 성품을 논하는 관객이 늘고 있다. <리쎌웨폰 4> 촬영 당시 그의 액션이 너무 빨라 리처드 도너 감독이 조금만 느리게 해달라고 했다는 일화처럼 팬들은 그의 스피드를 이소룡과 비교하며 정통 무술의 달인으로 평가하고 있다.


무비위크=정지원 기자

2008/06/18 16:58 2008/06/18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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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vs 이연걸- 그들의 대표작 5 (2편)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57 |

성룡 이연걸의 대표작 5


이것이 내 영화의 정수
한 작품, 한 작품이 다 의미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특별히 그들의 모습이 빛났던 대표작을 소개한다. 아직까지도 성룡 이연걸 영화의 매력을 맛보지 못한 이들이라면, 이 영화만큼은 필수라는 사실을 꼭 유념하자.


성룡 vs 이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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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폴리스 스토리 1985


성룡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두말할 나위 없는 대표작. 캐릭터, 이야기, 코믹, 액션에 있어 성룡이 내세울 수 있는 요소는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들어 있다. 이전까지 홍금보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던 터라, 성룡 액션치고는 상당히 리얼하고 강렬한 색채를 띤다. 지금 봐도 20년 전 아날로그 액션영화가 이런 경지에 올랐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 그해 홍콩 금상장 작품상을 받기도 했다.




02 취권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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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성룡을 있게 한 작품. 원수를 갚는다는 설정은 단순하지만, 능글맞은 사부 소화자의 캐릭터와 함께 술을 마셔야만 제대로 싸운다는 설정이 재미있게 어우러져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1980년 초 서울에서 개봉했을 당시 약 89만 명이 보았는데, 이는 단 한 개 극장에서의 상영만을 집계한 기록이다. 오늘날에 비하면 액션영화라고 보긴 좀 민망한 게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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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용적심 1985


성룡이 ‘배우로서만’ 출연한 희소작 중 하나. 홍금보가 감독한 이 작품에서 성룡은 전혀 코미디를 하지 않으며, 액션도 후반에만 집중 배치되어 드라마에 보다 중점을 두고 있다. 정신 성장이 멈춘 형과 그를 돌보는 경찰 동생의 이야기로, 제법 눈물샘을 자극한다. 성룡 주연작 중에서 기존 이미지와 가장 다른 연기 때문에, 또 후반의 잔인한 액션 장면 때문에도 색다른 성룡 영화로 평가된다.




04 미라클 19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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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이 꿈꾸는 세계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는 작품. 우연히 보스 자리에 오른 주인공이 조직 간의 싸움을 멈추고 남을 돕는다는, 지극히 동화스러운 세상을 위해 무던히도 애쓴다. 성룡의 액션보다 이야기에 더 비중이 실린 것도 특색이다. 지금이야 당연한 일이지만, 당시 홍콩영화계에서는 없는 기자재를 사오고 일부러 세트를 지어 영상의 질을 높이려 애쓴 작품이다.





05 프로젝트 A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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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영화 중 ‘골든 트리오’ 시리즈를 빼놓을 수가 없는데, 그 중 이 작품만이 홍금보가 아닌 성룡이 감독을 맡아서 보다 그만의 색채가 강하다. 홍금보의 리얼한 싸움에 비해 소품을 이용하는 성룡의 재기발랄한 액션 설정이 눈에 띄며, 1915년 개화 초기의 시대 설정도 나름의 볼거리다. 할리우드 진출에 실패한 후 돌아와 처음으로 찍은 영화이며, 이후 속편뿐 아니라 드라마로도 제작됐다.







이연걸 vs 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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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황비홍 1991


미국에서의 공백기를 거친 후 홍콩으로 돌아와 찍은 첫 작품. 서극은 이연걸을 만남으로써 비로소 허구와 실제가 조화된 액션을 얻을 수가 있었다. 와이어 액션, 무대, 카메라 배치에 있어 이전의 무협영화와 확실한 구분이 되는 기념비적인 작품이며, 서양 열강에 대항하는 내용으로 우리나라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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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영웅 2002


컴퓨터 그래픽과 와이어를 십분 활용한 무협 액션이 특징이다. 특히 앞에서도 언급한 견자단과의 초반 결투 장면에서는 매우 인상적인 검과 창의 대결을 보여주는데, 다소 짧은 것이 흠이다. 컴퓨터 그래픽으로 창조해 낸 무협영화의 첫 단추를 꿴 작품이기도 하며, 내용적으로도 중국의 현재 상황을 반영한 듯 ‘천하’를 소재로 해, 다소 논란이 되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03 소림사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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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걸의 출세작이자, 와이어 액션이 가미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이연걸 무술을 볼 수 있는 작품. 영화에서 쓰이는 액션과는 다른, 무술대회 우승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각종 권법, 창술, 도술, 곤술을 총망라해서 보여준다.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이연걸의 풋풋한 모습도 지금으로선 신선하다. 이때의 인기를 토대로 <소림사 2> <남북소림> 등의 후속작이 제작되었으나 첫 작품의 완성도와는 비교할 바가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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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황비홍 2 1992


내용상 <황비홍>보다 나을 게 별로 없으나, 악역을 맡은 견자단과의 결투 장면은 무협 액션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홍콩 출신의 견자단은 어머니에게 영춘권을 배운 것으로 유명하며, 당시 촬영장에서도 이연걸과의 라이벌 의식이 대단했다고 전해진다. 이연걸이 촬영 도중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일부 대역을 썼다고 하나, 그런 기미를 찾기 어려울 만큼 대단한 박력을 보여준다.





05 무인 곽원갑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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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의 실존 무술인 곽원갑은 가문에서 전해져오던 미종권을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으로 유명하며, 이에 따라 이연걸도 실제 이 무술을 표현해 내기 위해 고심했다. 그러나 이 영화는 무술에 대한 깨달음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있어, 액션의 화려함은 다른 작품보다 오히려 떨어지는 면이 있다. 무술가로서의 이연걸이 말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가장 많이 함축된 영화로 볼 수 있다.







방대원(영화 칼럼니스트)

2008/06/18 16:57 2008/06/18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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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룡 vs 이연걸- 그들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1편)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56 |

성룡과 이연걸이 만났다. 중국 무술의 고수인 두 배우가 처음으로 나란히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에 출연한다. 만약 세계 액션영화사를 쓴다면 이소룡의 탄생 이후 가장 빛나는 역사적 순간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그야말로 흥분되는 대격돌이 아닐 수 없다. 무술 액션이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서로 다른 영화의 길을 걸어온 성룡과 이연걸. 이제 우리는 그들의 대결을 이야기하려 한다.


그들의 탄생부터 현재까지


최고의 사나이들

성룡과 이연걸. 중국영화계를 넘어 세계에 그 이름을 드높인 영웅들이다. 생김새와 체구, 성격과 스타일까지 닮은 데라곤 전혀 없는 양극의 인물들이지만 그들에게 ‘영웅’이란 명칭을 붙이는 데 누구도 이견이 없다는 데서 공통점을 가진다. 그렇다면 영웅은 어떻게 탄생됐을까.


성룡 vs 이연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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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를 알게 된 것은 1978년 오사원 감독이 찍은
<취권>을 통해서다. 17세가 되어 경극학원을 나온 후 7년 동안 성룡은 <소림목인방> <용권> <정권> <사학팔보> 등의 영화에서 무술 지도와 주연을 했지만, 그의 대운은 코미디와 만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찍은 89편의 액션영화에서 코미디가 가미되지 않은 작품은 <용적심>(1985) <화소도>(1991) <중안조>(1993) 정도로 극히 적다는 사실을 보면, 성룡의 밝고 유쾌한 성격과 코미디 장르가 썩 잘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취권> 이후 몇 편의 무협물을 거쳐 성룡은 경극학원에서 함께 고생한 선후배인 홍금보, 원표와 함께
<오복성>(1983)을 찍으며 소위 ‘골든 트리오’를 형성하게 된다. 골든 트리오는 이후 <프로젝트 A> (1984) <쾌찬차>(1985) <복성고조>(1986) <칠복성> (1987) <비룡맹장>(1987) 등의 작품에서 함께하며 흥행에서도 대성공을 거둔다.

그러나 이때가 성룡에게는 일종의 ‘결단의 시기’이기도 했다. 대개의 골든 트리오 영화를 감독한 홍금보는 경극학원 출신 중 가장 크게 성공한 형님이었고, 캐릭터는 코믹하되 이야기와 액션은 리얼함을 추구하는 방식을 점차 굳혀가고 있었다. 또 ‘홍가반’이란 스턴트 조직을 구성하면서, 예전 고생했던 동료들을 영화에 출연시켜 주는 의리도 보여주는 터였다.

그러나 이미 나름대로의 성공을 거두고 있던 성룡은 자신만의 영화 스타일이 있었으며, 자기를 따르는 동생들도 제법 많아진 터였다. 계속 큰형님의 그늘에서 있을 것인가, 아니면 오해를 무릅쓰고 독립할 것인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그는 독립을 택했고, 그 결과물은 성룡 최고의 명작이라고 볼 수 있는 <폴리스 스토리>(1985)였다.

그는 이 작품에서 자신의 처지를 반영한 듯 늘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죽도록 고생만 하는 캐릭터를 만들어냈으며, 이는 지금까지 성룡의 주연작에서 되풀이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룡의 이러한 영화 스타일 탐구는 그의 천진난만한 성격이 십분 반영된 동화인 <미라클>(1989)에서 정점을 찍는다.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는 이듬해 <용형호제 2>(1990)를 마지막으로 감독 겸업을 그만둔다. 1990년대 이후의 성룡 영화는, 스케일만 좀 더 커졌을 뿐 어떤 의미에서는 1980년대의 자기복제에 지나지 않았다.

성룡은 사실 <배틀 크리크>(1980) <캐논볼>(1980)로 진작에 세계 시장의 문을 두드렸지만, 결과는 신통치 못했다. 서양의 액션영화 스타일이 맞지 않는다고 느낀 그는 할리우드 진출에 미련을 두지 않았다. <홍번구>(1994)가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었으나 곧바로 미국에 가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결국 그의 의견이 어느 정도 관철된 <러시아워>(1999)와 <상하이 눈>(2000)에 이르러서 성룡은 할리우드행 비행기를 탔고, 이보란 듯 성공을 거두어 그의 몸값을 더욱 높여놓는 데 이른다.

그러나 미국에서의 성공은 성룡에게 행복한 일만은 아니다. 그가 열정을 쏟았던 젊은 시절에 비해, 1990년 이후 홍콩영화는 급격하게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제 중국 땅이 돼버린 홍콩에서의 작품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혹은 굳이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인지, 성룡은 스스로에게 묻고 있는 듯하다.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된 성룡이, 지금까지 손대지 않던 와이어의 힘을 빌려 <포비든 킹덤>을 찍은 것은 그러한 고민의 한 결론일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성룡의 작품 하나하나는 중국영화계 전체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존재가 되어 버렸다.


이연걸 vs 성룡


사용자 삽입 이미지
배우로서의 이연걸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무술가 이연걸을 알아야 한다. 1963년생인 그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무술을 배우기 시작했다. 타고난 무술의 신동이었던 그는 11세에 전국 무술대회의 소년부 우승을 시작으로, 12세에 아예 성인부 대회에 참가하여 우승했으며 17세가 될 때까지 한 차례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다. 도술과 권술의 5회 연속 우승은 지금까지도 이연걸만이 가진 기록이다. <소림사>(1982)로 알려지기 이전, 그는 이미 40여 나라를 다니며 무술을 홍보하던 엘리트였으며 촉망받는 인재였다.

그가 <소림사>의 속편 몇 개를 찍은 후, <황비홍> (1991)까지 오랜 공백이 있었던 것은 바로 무술가로서의 꿈 때문이었다. 어쩌면 1986년에 얻은 병으로 한 해를 허송세월했기 때문에, 아니면 그의 유일한 감독 작품인 <중화영웅>(1987)이 쫄딱 망해버렸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LA로 날아가 무도관을 차린 건 영화인보다는 무술가로서의 자신을 먼저 찾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후의 이연걸은 좋게 말하면 무도가답게, 다르게는 융통성 없이 사람들을 대하며 길흉을 반복한다. 그는 미국에서 골든하베스트 영화사와 친분을 맺었고, 또 이때 친해진 서극과 함께 <황비홍>(1991)을 찍어 그보다 더 화려할 수 없게 영화계에 복귀했다. 그러나 약속한 보수를 받지 못한 이연걸은 <황비홍 2>를 찍다 촬영장을 떠나버리는 강수를 두었으며, 독자적인 노선을 알아보던 중 매니저가 총격에 피살되는 일을 겪게 된다. 혼자 힘으로는 영화사의 압력에 대항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달은 이연걸은 <황비홍 3>를 끝으로 자신의 영화사를 차린다. <방세옥> <태극권> <이연걸의 보디가드> <이연걸의 영웅> 등, 3년 동안 10편의 영화를 찍어내며 영화사 운영에 악전고투를 거듭하던 시기가 바로 이때다.

그의 영화 인생은 1998년 <리쎌웨폰 4>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면서 다시 전환기를 맞는다. 이때의 유일무이한, 그러나 멜 깁슨을 사뿐하게 밟아버리는 악역 연기 덕택에, 이연걸은 아시아에서 몇 안 되는 주연 연기자로 인정받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후의 <로미오 머스트 다이>(2000)와 <키스 오브 드래곤>(2001)의 연이은 성공이 그를 돈방석에 앉게 했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여전히 이연걸은 영화인보다는 무술가의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다. <영웅>(2002)에서 그는 <황비홍> 시절과는 또 다른 경지의 무술 액션을 보여주었으며, 스스로도 “중국 무술의 위대함을 알리기 위해 영화를 찍는다”고 밝힌 바 있다. 2006년 <무인 곽원갑>을 찍은 후 실제 무술가를 재현하는 데 고심한 나머지 “다시는 무술영화를 찍지 않겠다”고 한 말은, 액션 배우가 아닌 한 명의 무술인으로서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것이었다. 실제 소림사에는 무술과 영화로 소림사를 알린 공로를 기려 그의 조각상을 세워놓았다고 한다. 물론 무술을 모르는 대다수의 관객은 그가 어떤 새로운 초식을 연구해 보여주었는지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연걸의 무술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이상, 우리는 그의 아름다운 액션을 꽤 오랫동안 볼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방대원(영화 칼럼니스트)

2008/06/18 16:56 2008/06/18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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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이안 감독-나는 매우 신사적인 사람이다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55 |

이안 감독이 한국을 방문한 것은 <와호장룡> 이후 7년 만이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내려온 그는 어느덧 일제 강점기의 중국으로 눈을 돌려 비극적 사랑의 욕망(色)과 신중한 경계(戒)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사이에는 조심스레 쉼표가 하나 자리한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안 감독은 꼭 그 자신이 만든 영화처럼 깊고 섬세하며, 신중하게 말을 고르고, 겸손하게 타인을 배려하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베스트셀러 작가 장아이링의 소설을 원작으로 <색, 계>를 만든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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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아이링의 소설을 영화화한다는 것은 사실 이전에는 감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워낙 그녀를 사랑하는 독자가 많고 나 또한 그녀의 팬이다. 그녀가 쓴 <레드로즈 화이트로즈> <해상화> 등은 이미 영화화된 바 있다. 하지만 장아이링이 말년에 쓴 이 소설은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였고, 단 28페이지라는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다. 4년 전쯤 이 소설을 읽었는데, 1973년 타이페이에서 학교를 다니던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시 첫 연극을 한 후 느낀 열정과 환희, 동지애 등이 떠올랐다. 그리고 과연 그녀의 책이 맞는지 여러 번 표지를 다시 들춰봐야 했을 정도로 충격받았다.

이 소설은 장아이링의 이전 소설과는 매우 달랐다. 그리고 그녀의 자전적 이야기였기에 더 매력적이었다. 실제로 장아이링은 왕정위 정권 하에서 일하던 한 정치가와 사랑에 빠졌고, 결혼했고, 실연의 아픔을 겪었다. 그녀가 왕 치아즈라는 캐릭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을 표현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이 소설은 매우 두려운 이야기다. 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애국심과 연결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일이다.

개인의 막연한 휴머니티가 애구심으로 이어지고 정치적 개념으로 확장되고 그것에 성이 이용된다는 것에 대해 나는 아직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현재 이 영화가 아시아 지역에서 개봉하며 좋은 반응을 얻고 있지만, 사실 나는 이 영화가 개봉할 때마다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 여전히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두려운 만큼 더 영화화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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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는 <와호장룡> 이후 중국 본토를 배경으로 삼은 당신의 두 번째 영화다. 중국에서 30분 정도 삭제 개봉했는데, 기분이 어떤가?

중국에서는 약 10분 정도 삭제 개봉한 것으로 안다. 하지만 이런 주제의 영화가 중국에서 개봉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럽다. 또한 <색, 계>가 더 많은 다양한 영화들이 중국에서 개봉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중국에서 이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던 매우 진보적인 일이다. 그들이 지금보다 더 진보적이 되기를 기다려 개봉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몇몇 중국인들은 <색, 계>의 무삭제 버전을 보기 위해 홍콩이나 대만행 비행기를 탄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탕웨이는 신인이지만 발군의 연기를 보여줬다. 어떻게 캐스팅한 것인가?

사실 이 영화를 지휘하는 인물이 여성이고, 소설 역시 여성의 시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여배우를 캐스팅할 때 굉장히 심혈을 기울였다. 나는 주인공이 소설처럼 젊은 여성이고, 강인한 여성이길 바랐다. 기존 여배우들을 여럿 만나고 만여 명 이상 오디션을 진행했지만 그 느낌을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탕웨이를 처음 보자마자 그녀가 소설 속 인물과 매우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탕웨이는 전통적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겉으로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내면을 지녔고, 내가 원한 신선함이 있었다. 그녀가 정말 기대 이상으로 연기해 줘서 매우 만족스럽다. 
 
양조위와는 첫 작업이었는데 어땠나?

오래 전부터 양조위와 작품을 해보고 싶었다. 1년 전쯤 그와 저녁 식사를 하며 캐스팅 제안을 했다. 양조위가 맡은 이 선생 캐릭터는 이전 양조위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그는 이제껏 단 한 번도 악역을 해보지 않았고, 중년의 남성 역할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영화 전체에서 중국 표준어 대사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그에게는 하나의 도전이었겠지만, 이보다 더 잘할 수 있는 배우가 없을 정도로 그는 최고의 연기를 했다. 그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내 꿈이 이뤄졌다. 양조위와 탕웨이와 함께하며 재밌던 것은 두 배우의 위치가 매우 극단적이라는 점이었다. 유명 배우인 양조위와 신인인 탕웨이는 매우 절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색, 계>라는 영화의 제목이 의미하는 것은?

색(色과)과 계(戒)는 불교적 철학과 깊은 연관이 있는 단어다. 색은 색정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중국한자로 색깔이라는 의미도 있다. 모든 사물에는 개인이 받아들이는 색깔이 있다. 애국심, 사랑, 집착, 욕망 등이 색이라면, 계는 눈에 보이는 그 색에 대해 신중하고 조심하고 경계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 두 가지는 분리돼 있지만 한마디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복합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장아이링은 소설에서 이 두 가지 마음상태를 매우 조화롭게 풀어나갔다. 만약 내가 젊었다면 이 의미를 결코 컨트롤할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흔 살이 넘고 중년이 되니 내 경험과 생각을 종합해 이야기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다.
당신의 영화 편수가 늘어나면서 섹스 신도 점점 강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이 든다.

연륜과도 관련이 있는 것인가?

(웃음) 그렇다고 생각한다. 중년의 위기에 봉착해서 그런가.(웃음) 나는 매우 평범하게 성장한 사람이다. 모범생이었고, 순종적이고 착한 아이였다. 반항한 적도 없고 성적으로 매우 보수적인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지금도 난 굉장히 점잖고 신사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다.(웃음) 글쎄, 뭐라 얘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 이제껏 표현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일종의 해방(liberation)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해방에는 항상 치러야 할 대가가 따른다. 억압에서 풀려나 행복하고 자유로운 반면 그에 대한 대가를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영화에 나 자신이 드러난다는 것은 참 무서운 일이다. 어떨 때는 영화를 그만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는 마치 새로운 봉투를 여는 기분으로, 다시 처녀가 된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곤 한다. 그리고 중년이 되면서 내가 살아온 과정과 작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최근 나는 영화에서 남성의 폭력과 여성의 성적 욕망을 많이 다뤘다. <와호장룡>에서의 성적 코드는 매우 억압적인 것이었고, <브로크백 마운틴>에서의 섹스 신은 잡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랑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때문에 어느 정도 제한을 두었다. <색, 계>는 ‘색’에서 출발하는 영화며, 그것이 중심이 되기 때문에 더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무비위크=안영윤 기자

2008/06/18 16:55 2008/06/18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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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할 수 없는 비밀> 주걸륜-욕심 많은 팔방미인 보여줄 건 아직 많아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54 |

만능 엔터테이너란 말은 바로 이럴 때 유효하다. 최고의 뮤지션에서 배우, 그리고 감독의 자리까지 차지한 이 남자, 중화권 최고 스타 주걸륜이 자신이 연출과 주연을 맡은 영화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홍보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첫 장편영화 연출인데 감회가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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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흥분된다. 특히 이번에 여러 친한 친구와 함께 작업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이미 뮤직비디오 연출 경험이 있었지만 영화는 처음이어서 힘든 부분도 많았다.

카메라워크나 숏 등 하나하나 섬세하게 신경을 쓴 표시가 난다. 콘티부터 촬영에 이르기까지 직접 관여를 한 건가? 그리고 스태프들과는 어떤 도움을 주고받았나?

콘티가 있었지만 그런 것에 익숙하지가 않다. 머릿속에 있는 장면을 대강의 그림으로 옮겨내긴 했다. 아무래도 이번이 첫 영화이기 때문에 스태프들을 믿고 그들에게 기대야 하는 부분이 많았다. 물론 이전에 뮤직비디오 작업을 해 왔기 때문에 기존 팀과 함께 작업을 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훌륭한 팀이고 호흡도 잘 맞는다. 하지만 이건 영화이기 때문에 좀 더 영화경험이 많은 사람들과 일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 작품의 스태프들을 각 분야의 이름난 실력자들, 또는 수상자들 중심으로 꾸렸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작품 속에서 특별히 원했던 영상 스타일이 있었나? 그리고 어떤 식으로 준비했나?

글쎄, 당연히 어떤 장면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대부분 사전에 구상하기보다는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만들어낸 경우가 많았다. 물론, 한 장면에 필요한 동선과 소품 등은 미리 준비를 해 둔다. 하지만 보통 현장에 가면 내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과는 잘 안 맞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때부터 그 상황에 맞는 장면을 하나하나 다시 준비해 나가는 거다. 그러니깐 미리 생각한 대로 촬영한 건 특수효과 부분 정도 말고 없었다. 아, 그리고 미술에 특히 많은 신경을 썼다.

이 작품이 어떤 느낌으로 관객에게 전달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음, 지금 현재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과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을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난 뒤에 과거의 어떤 것에 대해 그리움을 느껴도 내 영화 속에서처럼 돌아갈 수는 없는 거니깐.

감독을 하면서 주연을 맡았다. 이런 경우에 연출이나 연기, 둘 중 하나는 어느 정도 포기하고 들어갈 수밖에 없다. 당신의 경우는 어땠나?

막상 내 분량을 촬영할 때면 모니터를 볼 수 없으니 역할을 연기하다가도 스스로 마음에 안 들면 “컷!”을 불러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들 나를 믿고 있으니 당연히 연출에 더 중점을 둘 수밖에. 그래서 내 캐릭터는 편한 마음으로 연기하려 했다. 그 대신 주변인물에 더 많은 것을 부여했고 200퍼센트 이상의 것을 뽑아내려 했다.

가장 공들인 장면이 있다면?

공들인 장면? 너무 많다. 신경 안 쓴 부분이 없으니까. 그것보다도 지금 그 질문을 받고 돌이켜보니 편집할 때가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다. 당시 상하이에서 <슬램덩크>를 촬영하고 있었기 때문에 호텔로 편집 장비를 옮겨와 촬영이 없을 때 틈틈이 작업을 해야 했다.

시공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던 이유가 있나?

음,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음악과 사랑이었다. 음악의 속도에 따라 시간의 개념을 어떤 식으로 표현할까에 중점을 뒀다. 시공간 초월이란 설정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을 위해 사용된 도구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한국영화? 물론, 유사 소재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중에 <시월애>나 <동감>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피아노 연주 장면이 인상적인데 모두 직접 연주한 건가?

촬영할 땐 당연히 내가 직접 했다. 그리고 후반작업 때는 더 좋은 연주로 더빙한 부분도 있다. 영화음악 전반에 걸쳐 70~80퍼센트 정도는 참여한 것 같다.

음악으로 정상의 자리에 올랐고 이젠 연기에 이어 연출까지 성공적으로 해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 건가?

내 욕심만큼 모든 걸 다 잘해내고 싶다.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노력한 만큼의 성공을 이뤄내 나중엔 대중들의 눈에 예술가로 비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롤모델이 따로 있나?

모든 일에 있어 롤모델이 다르다. 음, 노래를 할 때는 장학우처럼 잘했으면 좋겠다. 또 쿵푸를 할 때는 이연걸의 몸놀림이 부럽다. 매니지먼트를 경영할 때는 유덕화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다. 사실 모든 상황에 따라 내가 꿈꾸는 롤모델은 매번 달라진다.

이 작품이 얼마나 많은 관객에게 어필할 것 같은가?

글쎄, 중화권 영화가 한국에서 얼마나 관객이 들어야 성공하는 건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 100만 정도면 너무 잘된 건가? 그럼… 우리 영화는 50만 정도?(웃음) 


무비위크=정지원 기자

2008/06/18 16:54 2008/06/18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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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장> 진가신 감독-현실과 영화 사이, 의기투‘합’의 순간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48 |

<아이니 아이워>(98) <첨밀밀>(96) <퍼햅스 러브>(05) 등 감성적 멜로영화로 관객의 마음을 적셨던 진가신 감독이 신작영화 <명장>으로 한국을 찾았다. 멜로영화의 귀재인 그가 이번에 연출한 <명장>은 의외로 스펙터클 전쟁 액션영화다. 400억 원의 제박비를 들인 이 영화는 전쟁의 잔혹함을 스펙터클한 화면속에 사실적으로 담아내며 벅찬 긴장감을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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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멜로영화를 연출하던 감독이 전쟁 액션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굉장히 오래 전부터 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남녀관계 이야기는 할 만큼 다 해서 더 이상 새롭게 나올 것이 없다. 꼭 이런 전쟁 액션 영화가 아니더라도 다른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었다. <명장>은 4년 전부터 생각한 프로젝트다. <퍼햅스 러브>를 연출하기 전부터 조금씩 작업하고 있었고, 최근 2년간 완전히 몰입해 완성했다.

꼭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어서 갑자기 내가 변하게 된 것은 아니다. 나는 <첨밀밀> 이후부터 변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러브레터>(99)를 촬영하고 아시아프로젝트인 <쓰리-고잉 홈>(02)을 연출한 것도 자연스러운 변화의 한 단계였다. <퍼햅스 러브>는 지금까지 내가 해 온 모든 멜로드라마의 집대성 같은 영화다. 그렇다고 모든 것이 완성된 단계는 아니다. 영화를 만드는 건 친구들과 커피숍에 앉아 수다를 떠는 것과 비슷해서 젊은 시절엔 연애 이야기가 주가 될 수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 이야기의 화두가 달라지게 마련이다. 지금 나의 관심사는 선과 악이 무엇이며 악인은 정말 악인인가에 관한 문제로 자연스레 옮겨졌다.

영화를 만드는 데 있어 최대의 적은 자신감이다. 어떤 부분에서 관객을 울리고 웃겨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어떤 장르의 영화라도 잘 만들 수 있다고 자신감이 생기는 순간, 영화 연출을 그만둬야 한다. 영화를 만들 때는 항상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걱정하고 끊임없이 생각하고 싶다.

청 말을 시대적 배경으로 택한 이유는?

이야기를 먼저 택했을 뿐 시대는 어느 때라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원래 만든 이야기를 굳이 시대 배경을 바꿔 고치고 싶지는 않았다. <명장>은 형제애에 관한 이야기이며, 그보다 배신에 관한 이야기다. 형제애를 강조하다 보면 배신은 당연히 함께 따라 나오는 이야기다.

대규모 전쟁 액션 신에 처음 도전한 소감은?

거의 매일이 죽음이었다. 영화의 흐름 순서대로 촬영을 해서 전쟁 장면을 가장 먼저 찍었다. 원래 이 신은 1주일간 촬영할 계획이었지만 예산도 초과했고 기간도 연장돼 거의 한 달간 매달려야 했다. 매일 신경쇠약 직전에서 겁에 질려 겨우 촬영을 마쳤다. 내가 전쟁 신을 촬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다음에는 드라마 신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웃음) 첫 전쟁 신을 끝내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드라마 부분을 찍으며 비로소 안정을 찾았다. 만약 또 전쟁 액션영화를 연출한다면 결코 전쟁 신을 먼저 촬영하지 않을 것이다. 먼저 드라마를 촬영해야 나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자신의 역할을 파악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뭘 할 것인지도 모른 채 그저 그 순간 두드려 패고 싸울 수밖에 없다.

촬영장 비하인드 컷을 좀 봤는데 전쟁 신에서도 배우들의 웃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그럼 그건 배우들의 노련함 때문인 건가?

아마 재밌는 딱 한 컷만 봤을 것이다. <명장>은 12월부터 3월까지 가장 추운 4개월간 베이징, 헝디엔 같은 대도시에서 좀 떨어진 5~6곳에서 촬영했다. 첫 촬영을 시작한 달에는 모든 재난이 진짜 한꺼번에 일어났다. 나도 배우도 모두 아파 병원에 가기도 했다. 로케이션 장소와 호텔 사이의 교통체증이 너무 심해서 6시간 이동하고 2시간 잔 후 4시간 촬영을 하기도 했다. 결국 촬영지 근처 마을로 숙소를 옮겼는데 호텔도 없어 민가를 빌려 잠을 청하거나 발전소 같은 곳에 마련된 게스트 하우스에서 자기도 했다. 촬영하며 시나리오를 계속 수정해서 캐릭터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 무술감독도 나도 무엇이 맞는 건지 헤매며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촬영 두 번째 달부터는 편안해졌다. 영화를 만들 때 함께 잘해보자는 의기투합이 생기면 아무리 힘들어도 필요한 무언가가 마치 계획한 것처럼 그때그때 제공되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게 된다. 어떻게 그런 신비로운 분위기가 형성되는 건지는 나도 정말 모르겠다. 아마 그런 의기투합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지 않았다면 이 영화는 제대로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가 함께 연기하는 것은 처음인데 이 화려한 캐스팅을 어떻게 한 건가?

스타들에게는 각기 다른 산업적 측면과 관객에게 미치는 각각의 영향력이 있다. 이 영화는 분명 빅스타가 끌고 가야 할 영화였다. A급 스타를 찾다 보니 아시아에서 6명 정도 꼽혔고, 나이에 맞는 이미지를 생각하다 보니 이연걸 유덕화 금성무가 어울렸다. 양조위 주윤발 성룡을 캐스팅할 수는 없는 캐릭터였다. 그들과 같은 특A급 스타를 세 명이나 한꺼번에 캐스팅한 것은 운이 좋아서였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실제로 유덕화가 이연걸보다 연상인데, 이연걸이 맏형을 맡고 유덕화가 둘째 형을 맡아 흥미로웠다. 두 사람의 역할 분배는 어떻게 한 건가?

생김새라면 이연걸이 유덕화보다 좀 더 나이 들어 보인다. 나이를 떠나 존재감 측면에서도 큰형 역에는 이연걸이 딱 어울린다. 유덕화는 둘째 형 역을 하는 것도 힘들어했다. 영화에서 큰형이나 리더 역을 맡았던 적도 별로 없었고, 영화가 모두 끝난 지금도 그는 자신이 금성무가 맡은 막내 역을 해도 됐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영화 속 세 남자 중 감독이 가장 공감한 캐릭터는 누구인가?

나는 당연히 이연걸 캐릭터다. 다른 두 캐릭터는 지금 시대에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우리가 책으로 읽어 알고 있는 의리와 도를 따르며 살던 사람들이 바로 유덕화 금성무 캐릭터다. 매우 비현실적이지만 옛날에는 이런 이들이 살았다고 사람들이 믿고 싶어하는 캐릭터. 막내 강오양은 광신도 같다. 만약 지금이라면 9·11 사태를 일으킨 알 카에다의 조직원이랄까.(웃음)

의형제를 맺은 맹세가 종교처럼 그를 지배하고 있고, 그는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를 따르는 데 온 신념을 다 바치는 캐릭터라 정말 비현실적이다. 이연걸은 온갖 비난을 감수하고 자신의 신념을 실행하고 책임지고자 하는 현대적인 캐릭터다. 지금이라면 기업의 CEO나 정치가랄까. 아마 감독도 그런 인물일 것이다. 어떤 리더라도 그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다면 무엇이 선이고 악인지 균형을 맞추기 위해 복합적인 고민을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렇다.

진가신이 만드는 영화의 제작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는 듯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대항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 것인가?

싸우고 대항할 문제가 아니다. 관객을 어떻게 끌어들이느냐 하는 생존의 문제다. 중국뿐 아니라 한국, 일본 등 지역 시장에서 만든 영화가 살아남기 힘든 시대다. 이건 사실 할리우드도 마찬가지다. 히트하는 영화는 고작 5~6편에 불과하고 나머지 영화들은 흥행에서 실패를 맛보는 게 현실이다. 생존을 모색하다 보니 거대한 규모의 영화가 많이 만들어지는 듯하다.

만약 내가 지금 <첨밀밀>을 당시의 규모와 마인드로 다시 만든다면 어떨까? 좋은 이야기, 좋은 캐릭터만으로 관객과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큰 오산이다. 나는 작년에 <마이클 클레이튼>을 매우 인상적으로 봤다. 고전적으로 좋은 드라마와 캐릭터가 있고, 상업적이면서도 메시지가 있는 영화다. 하지만 흥행에는 실패했다. 당시 관객은 <스파이더맨 3>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를 선택했다. 세계가 그렇게 변하고 있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스파이더맨>으로 가장한 <마이클 클레이튼> 같은 영화’를 만들어야 한다.(웃음)

그렇다면 당신은 ‘<스파이더맨>으로 가장한 <마이클 클레이튼> 같은 영화’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나?

(웃음) 구체적으로 정해진 건 아직 없다. 감독으로서는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한다. <퍼햅스 러브> <명장> 두 편을 연달아 촬영하며 4~5년이 훌쩍 지났으니까. 하지만 프로듀서로서의 일은 계속할 것이다. 작품을 고르는 데는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다운로드의 시대,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들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 아닌가. 컴퓨터의 작은 화면으로 봐도 괜찮은 영화는 승산이 없다. 다운로드로 봤어도 큰 스크린으로 다시 보고 싶은 영화, 이런 영화는 좋은 스토리만으로는 힘들다. 이런 문제의식이 앞으로의 내 행보에 많은 영향을 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번 영화의 대규모 전쟁 신은 극장으로 관객을 불러들이는 데 꽤나 성공적인 것 아닌가?

(웃음) 하지만 이런 영화는 두 번 다시 할 수 없을 것 같다. 못해서라기보다 이미 정열을 다 써버렸다. 2년의 시간과 정열을 다 바쳐 만든 <명장>과 같은 영화는 다시 만들지 못할 것 같다. 

무비위크=안영윤 기자

2008/06/18 16:48 2008/06/1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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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용의 부활> 유덕화 매기 큐 홍금보-We are Legend! 시네마 in 차이나 | 2008/06/18 16:47 |

유덕화는 겸손했고, 매기 큐는 강렬했으며, 홍금보는 유쾌했다. 그들이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 뭉쳤다. 유덕화는 백전불패의 명장 조자룡이 되었고, 매기 큐는 그의 팽팽한 적수 조영이 되었으며, 홍금보는 조자룡을 시기하는 나평안이 되어 장엄한 삼중주를 펼친다. 홍콩의 국민배우이자 연인이며 큰형님인 그들을 만났다. 

영화가 곧 삶인 열혈남아  유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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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덕화는 홍콩영화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성룡 이연걸 주윤발 등 홍콩영화의 화양연화를 이끌던 이들이 할리우드로 빠져 나간 후에도 유덕화만은 홍콩에 남아 영화를 만들었다. 청춘스타로서, 아시아를 풍미하는 사대천왕으로서 대중의 사랑을 듬뿍 받은 대스타지만 의외로 겸손하며 소탈한 매력을 갖춘 유덕화. 그는 불패의 영웅이지만 겸양지덕을 갖춘 <삼국지: 용의 부활>의 조자룡과 꼭 닮은 성품을 지닌 듯했다. 
 
<삼국지>는 중국인들에게 역사이자, 문학이며, 문화인 듯하다. 본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삼국지>는 사실 결과가 없는 역사이며 결과가 없는 어떤 시간의 흐름이다. ‘만남이 오래되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고, 헤어짐이 오래되면 반드시 만나게 된다(合久必分 分久必合)’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생도 좋은 일이 있으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좋지 않은 일이 계속되면 반드시 좋은 일이 생기게 마련이다. 삶의 균형과 평형, 하늘이 정한 이치를 보여주는 하나의 역사가 바로 <삼국지>가 아닐까 싶다. 또 이것은 세계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인 듯하다.

불패의 명장 조자룡은 충성심이 강한 영웅으로서 중국인들에게 특히 존경받는 인물이라던데, 조자룡을 연기하며 부담스러운 점은 없었나?

세 가지의 부담이 있었다. 조자룡을 보는 사람들의 생각은 세 가지로 나뉜다.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분석하는 시선이 있고, 충성심 강하고 후덕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이 있다. 그리고 게임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조자룡이 있다. 이 세 가지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누가 봐도 공감할 만한 조자룡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가장 어려웠던 것은 진나라의 진수가 쓴 역사서 <삼국지>와 나관중이 쓴 소설 <삼국지연의>에서의 조자룡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다.

가장 큰 차이는 <삼국지>에서는 관우, 장비, 마초, 황충만을 일컬어 사호장군(四虎將軍)이라 했지만 <삼국지연의>에는 조자룡이 추가돼 오호장군(五虎將軍)이 됐다는 것이다. 나관중은 왜 역사를 자신의 소설에서 변화시켰을까 연구해야 했고, 이를 모두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 때문에 사람들에게 조자룡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영화에 조자룡이 오호장군으로 임명되는 장면이 있는데, 역사에서는 인정받지 못했지만 열심히 산 조자룡에게 보상을 해주자는 의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삼국지>에는 수많은 영웅이 등장한다.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구인가?

사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조조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는 다른 영웅들처럼 신격화된 인물이 아니다. 전쟁에서 패하거나 실패하기도 하고 재물을 좋아하는 인간적인 면모도 보인다.

그렇다면 조조가 주인공이 아니어서 좀 아쉬웠겠다.

전혀 그렇지 않다. 조조가 주인공이 되려면 나와 똑같은 생각을 가진 감독을 만나야 했을 것이다. 물론 조조가 주인공이 되는 <삼국지> 영화를 상상해 보긴 했다. 아마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영화가 나왔을 것이다.

조자룡과 본인의 비슷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단 실제로 조자룡을 본 적이 없다.(웃음) 나와 비슷한 점이라면, 많은 이들이 조자룡에게 무엇 때문에 살아가느냐는 질문을 던진 것처럼, 내가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점일 것 같다. 워낙 연예계에서 오래 일해서 사람들이 내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한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누구를 위해 하는 건 아니다. 내가 기쁘고 만족스럽고, 게다가 별로 손해 볼 것이 없으니 계속하는 것이다.

그렇게 꾸준히 연기할 수 있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홍콩 연예계 환경이 나를 만들어준 것도 있지만 내게 이제 영화는 삶 자체다. 연기는 유일하게 내가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다. 나를 아는 많은 이들과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해주기도 한다.

100여 편이 넘는 영화에 출연했는데, 본인의 최고의 영화를 꼽는다면?

음… 개인적으로는 정수문과 출연한 멜로영화 <니딩 유>(00)를 꼽고 싶다. 그 작품을 통해 나는 새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다. 20년 가까이 건달, 영웅, 경찰 등을 주로 연기했는데 그건 만화나 책 속에나 나올 법한 캐릭터였다. <니딩 유>는 내가 진짜 사람처럼 보인 영화였다. 그 영화를 통해 사람들이 유덕화도 내 옆에 있는 그냥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다양한 캐릭터를 했는데 아직 못 해본 캐릭터가 있나?

카레이서를 꼭 해보고 싶다. <광영세월>이라는 제목으로 세 명의 카레이서 이야기를 준비 중이다. 카레이싱 장면이 멋진 영화를 만들고 싶다.

도전과 속도감을 즐기는 편인가?

그렇지는 않다. 나는 서예를 좋아한다. 장득천(張得天)이란 청대의 유명 서예가가 있는데 그분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도 해보고 싶다.

할리우드 진출 계획이나 한국영화 출연 계획은 없나?

영어를 못해서 못 가는 거다.(웃음) 음… 지금까지와는 좀 변형된 길을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그냥 외국영화가 아니라 정말 로컬영화, 예를 들어 한국이 제작하고 한국어로 말하면서 그 나라의 스타일과 제도에 맞춰서 일해보고 싶다. 물론 누군가 날 찾아줘야 할 수 있겠지만.(웃음)

개인적인 계획은 없나?

매우 중요한 계획이 하나 있다. 2008년 올림픽이 끝나면 2주간 장애인올림픽이 열린다. 그때 나의 팬들과 함께 관중석에서 응원을 하러 갈 것이다. 한국 팬들도 함께하면 좋을 것 같다.

“유덕화와는 전에도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을 통해 그를 다시 만나게 돼서 굉장히 기뻤다. 그는 무척 재능이 많고 연기에 있어서 대단히 열정적이다. 게다가 항상 겸손하고 상대방을 배려한다. 그를 보면 오랜 시간 연기하고 또 사랑받는 이유가 뭔지 알 수 있다. 그는 정말이지 뛰어난 배우다. 배우로서 늘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_ 매기 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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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정복한 여전사의 매혹 매기 큐

매기 큐는 존재만으로 주변의 감탄을 자아낸다. 매혹(魅惑)적으로 다가와 상대를 매료(魅了)하는 배우 매기 큐. 그녀는 <삼국지: 용의 부활>에서 그 누구도 배신할 수 없는 절대적인 무사로서의 카리스마를 뽐낸다. 배우로서의 역할과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그녀, 이 똑똑하고 열정적인 배우가 세계적인 여배우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미션 임파서블 3> <다이하드 4.0>에 이어 강인한 여전사의 역할이다.

말로 설명하긴 힘든데 나에게 있어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번 <삼국지: 용의 부활>에선 이 인물이 역사 속에서 자리가 있고 영화의 변화를 이끄는 역할이라 끌렸다. 어쨌든 나는 일반적으로 여자들이 잘 하지 않는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조영은 등장부터 시선을 사로잡는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강인함이 몸에 밴 느낌인데.

와, 난 전혀 몰랐다.(웃음)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캐릭터나 배우의 의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분명하다면 표현되는 모습이 강하게 보인다. 항상 캐릭터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연기에 신경 쓴다. 그걸 분명하게 이해하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짧은 시간에 비파 연주는 물론 무술, 중국어도 익혀야 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

영화를 찍으면서 이렇게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본 적이 없다. 주변에 의한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번 무술은 전에 했던 액션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고 뿐만 아니라 현악기를 다뤄본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남들이 평생에 할 걸 몰아서 해야 했기 때문에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애초에 이 영화에 얼마나 많은 책임감이 따르는지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이 노력하려고 애썼다.

이인항 감독과는 <맹룡>(05) 이후 두 번째 작업이다.

<맹룡>에선 비중이 적은 역할을 맡았었고, 그 영화는 감독님의 열정을 쏟아 부은 작품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삼국지: 용의 부활>은 다르다. 이 작품은 감독님 평생의 꿈이자 위대한 사랑이고 이유였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임했다. 이인항 감독님과는 특별한 유대감이 있다. 세트 건너에서 서로 말하지 않고 바라만 봐도 뭘 원하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감독님은 남들보다 더 멀리 보고 크게 보는 놀라운 재능을 가지고 있다. 배우로서 감독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다.

<삼국지: 용의 부활>를 선택한 이유는 뭔가? 어쩌면 지극히 남자들, 영웅들의 이야기다. 게다가 유일한 여자이고, 허구적인 인물인데.

역사상의 실제 인물은 조조의 사위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감독님이 처음에 이 작품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당신을 위해서 역사를 바꾸고 싶다”라고 하셨다. 관객들이 내가 사극에, 그것도 <삼국지: 용의 부활>에 출연한다고 했을 때 과연 매기 큐가 역사적 인물을 소화할 수 있을까 우려한 걸 안다. 어떻게 하면 역사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을지 고민했다. 관객들이 ‘믿을 수 없다’며 극장에 들어갔다가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믿기지 않는다’고 하는 반응을 얻어내고 싶었다.

조영은 위나라에게 있어선 영웅이지만 조자룡의 입장에서 봤을 땐 악역이다. 마치 당신이 연기했던 <다이하드 4.0>의 마이를 연상케 한다.

맞다. 조영은 마이와 같은 역할이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입장이 달라지는 캐릭터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조영을 선택했다. 마이는 한때 미국 정부에서 훈련받은 요원이었으나, 반대 입장에 서면서 테러리스트가 된다. 조영 또한 조조의 입장에서 봤을 때와 조자룡의 입장에서 봤을 때가 다르다. 흑백론이 아니기 때문에 흥미로웠고, 정당성이 있다고 봤다. 결국 전쟁이라는 것이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를 놓고 싸우지만 무의미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다른 여배우와는 다르게 ‘매기 큐’만의 길을 걷고 있단 느낌이다. 작품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이 있나?
소재와 주제에 내가 스스로 공감할 수 있는 지가 가장 중요하다. 당신이 <다이하드 4.0>과 <삼국지: 용의 부활>을 함께 지적한 점이 바로 내가 작품을 선택할 때 지향하는 점이다. 이유 없이 폭력적인 역할은 하지 않는다. 난 처음부터 영화에 대한 시스템을 알고 시작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건 내 마음이다. 마음에 끌리는 것이 중요하다.

모델에서 배우로, 홍콩에서 할리우드로 차근 차근 영역을 넓히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이번 프로젝트처럼 아시아영화들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기회에 함께 동참하고 싶다. 아시아에서 미국으로 가서 나를 키우고 다시 아시아로 돌아와서 홍보하는 과정은 원래보다 작품을 더 널리 알릴 수 있다. 아시아 감독과 배우들이 단순히 할리우드영화에 참여하는 게 아니라, 작품을 만들어서 크로스오버하는 게 좋다. <삼국지: 용의 부활>은 뉴욕의 트라이베카영화제에서 상영하게 되는데 “한국과 중국이 합작한 영화의 훌륭한 퀄리티를 한 번 봐라”라고 할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쁘다.

혹시 함께 작업하고 싶은 한국 감독이나 배우가 있나?

한국영화는 무척 훌륭하다. 예전에 일본, 홍콩이 그랬듯이. 아시아영화는 서로 경쟁하며 실력을 키우고 있다. 우영히 강제규 감독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 너무 놀라서 “와 맙소사! 난 당신의 열렬한 팬이다”라고 소리 질렀다.(웃음) 일을 하는 데 있어 나이와 국적은 상관없다. 좋은 기회가 있다면 어떤 영화든 참여하겠다.

“매기 큐와는 <마환주방>이란 영화에서 이미 함께한 적이 있지만 고전영화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사극 분장이 너무 잘 어울렸다. 특히 마지막, 조자룡과 싸우는 장면에서 그녀는 자신만의 매력과 카리스마를 십분 발휘한다. 나는 어떤 야심을 가지고 연기하지 않는 그녀의 연기 스타일을 정말 좋아한다.” _ 유덕화 

영원한 우리들의 큰형님 홍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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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삼국지: 용의 부활>의 나평안은 좀 아쉬운 캐릭터다. 고향 선배로서 조자룡을 돌보며 의리를 나누지만, 어느 순간 조자룡을 배신한다. 하지만 홍금보는 현실에서 이상과 괴리될 수밖에 없었던 나평안에게 인간적 매력을 느꼈다고 말한다. 자신은 이제 겨우 ‘스물여덟 살’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큰 웃음을 주시는 영원한 큰형님(大哥), 홍금보의 넉넉한 마음을 만나본다. 
 
한국과는 꽤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아는데, 한국을 다시 찾은 느낌은?

30년 전 한국에서 영화를 참 많이 촬영했다. 때문에 한국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2006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는데 굉장히 생소한 느낌이 들더라. 호텔도 많고 행사도 많고. 사실 2002년 월드컵 때도 제주도에 왔었다. 당시 중국과 브라질의 예선전이 있었는데, 브라질이 이겨서 돈만 마구 쓰고 화가 잔뜩 났었다.(웃음) 난 한국이 어떻게 변했을까 호기심이 참 많다. 예전엔 다방도 굉장히 많았는데 지금은 있는지 없는지, 그런 옛 추억을 느끼고 싶다.

홍콩영화의 큰형님 같은 존재인데, 그에 대한 부담은 없나?

사람들이 날 어떻게 부르는가에 대해 별로 개의치 않는다. 영화계뿐 아니라 내가 시장에 가서 채소를 하나 사더라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나를 큰형님이라고 부르더라. 그래서 내 이름을 큰형님으로 바꿔 볼까도 생각 중이다. 그렇게 날 부르는 게 굉장히 친밀하게 느껴지고 아주 좋다.

이 영화에서 무술감독을 맡으며 나평안 역까지 연기했다. 둘 중 어떤 제안을 먼저 받았나?

처음에는 무술감독 제의를 받았다. 그때도 시나리오에 나평안 역이 있었는데 다른 배우가 연기하기로 했다. 근데 감독이 수정한 두 번째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내가 하면 딱 좋겠다는 느낌이 확 들더라. 그래서 제안을 했다. “굉장히 유능한 배우가 나평안을 연기하면 아주 좋겠는데?” 감독이 누구냐고 묻기에 “음… 그는 아주 유명한 배우지. 바로 홍금보!”(웃음) 결국 감독이 고려해 줘서 나평안을 연기하게 됐다.

나평안은 나약한 사람이다. 성공에 대한 야망은 있지만 조자룡을 시기하는 인물인데, 왜 그 역에 매력을 느낀 것인가?

시나리오에서 나평안은 썩 괜찮은 인물이다. 하지만 편집이 되면서 좀 다른 인물로 그려졌다. 마지막에 나평안이 조자룡을 배신하지만 그가 원하는 결과는 영화의 결과와는 정말 달랐다. 알고 보면 그도 참 가여운 사람이다. 하고 싶은 일은 많지만 이루지 못하고, 성공하고 싶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그런 부분이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홍금보는 충분히 성공한 것 같은데?

근데 난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 몸집을 봐도 알겠지만 난 아주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웃음)

그렇다면 지금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음… 분명 이루지 못할 것 같은데? 한국 대통령이 되고 싶다! 하하하. 농담이고, 아주 성공적인 영화를 내가 직접 연출하고 싶다. 지금 구상 중인 영화가 하나 있긴 하다. 가제는 <장사 將士>로 붙였는데, 무협영화가 아니라 멜로영화다. 근데 또 베드 신은 없다. 하하.

나평안 부분이 많이 삭제돼서 아쉽지는 않았나?

좀 아쉬울 수도 있겠지만 영화의 제작 과정이 어떤지 잘 알고 있다. 내가 봐도 이 영화에서 편집할 수 있는 부분은 나평안 장면밖에 없더라. 우리는 늘 회의를 했다. 촬영하면서는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5시에 촬영장에 가고, 밤 10시 30분에 호텔에 돌아왔다. 씻고 밥 먹고, 또 감독과 회의하다 보면 어느새 새벽 2시더라. 하루 2시간 30분 정도 자면서도 감독과 수없이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는 감독이 하는 일을 묵묵히 지지해야 한다. 이 작업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내가 누릴 즐거움을 다 누렸다고 생각한다.

전쟁 신에 슬로 모션이 많던데, 무술감독으로서 이 영화의 액션 컨셉트는 어떻게 잡았나?

누구나 중요한 순간이 닥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조자룡 역시 그랬을 것 같다. 무조건 앞으로 나가야 하고 이겨야 하고 그래서 그 순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본능만 있었을 것이다. 액션의 중점을 조자룡에게 맞췄기 때문에 그가 처한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슬로 모션을 많이 사용했다. 물론 장면을 과장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한국어로) 아이구” 빠르게 말할 수도 있지만 “아~~~이구” 하는 것, “(한국어로) 재미있어” 하는 것과 “차~~~암 재미있어” 하는 것은 다르지 않나.(웃음)

<삼국지>의 수많은 인물 중 좋아하는 인물이 있나?

나평안! 아니, 그는 영화 속 인물이구나. (웃음)사실 난 <삼국지>를 읽어보지 못했다. 경극학교를 다니며 관우도 연기하고 조자룡 역도 맡아봤지만 그 부분만 알 뿐, <삼국지> 전체에 대한 이해가 깊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유비는 싫다. 가장 가식적인 인물이 유비인 것 같다.

100편도 넘는 수많은 영화에 출연했는데 베스트 영화를 꼽는다면?

<귀타귀>(90), <군룡희봉>(89), <동방독응>(87), <패가자>(82). 네 편을 꼽고 싶다. 성격이 다 다르고 애정을 많이 가지면서 한 작품이다.

차기작 계획은?

지금도 영화를 찍다가 잠시 멈추고 한국에 왔다. 이소룡의 사부와 관련된 영화를 촬영 중이다. 난 처음 영화를 시작할 때부터 영화가 너무 좋았는데, 요즘에는 그 열정이 더 강렬해지고 있는 듯하다. 현장에 있을 때는 집에서는 나오지 않는 활력이 나도 모르게 솟아난다. 한국과 합작영화도 찍고 싶은데 빨리 홍금보를 초청하라고 말 좀 전해줘라.(웃음)

“홍금보는 내 마음의 영원한 큰형님이다. 굉장히 오래 전부터 힘께 일했지만 액션영화에 있어서 그는 나의 은사님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는 조자룡이 따르고 숭배하는 큰형님 역을 연기했는데 현실과 너무 똑같아서 정말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다. 그는 맡은 역이나 출연 분량에 상관없이, 그 어떤 배우와 함께하더라도 언제나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힘이 있는 배우다.”_ 유덕화 

무비위크=안영윤·이유진 기자

2008/06/18 16:47 2008/06/18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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