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kbak's Blog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

 체육기자로 만 20년 6개월을 보냈다. 2009년 들어서야 비로소 체육과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다. 게으르고 이런 저런 사정으로 오프라인외에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그 흔한 싸이질조차 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제는 뭔가 남겨야 할 것같다. 개인사(史)의 의미도 있지만 일간스포츠 체육의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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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 존슨이야, 존 벤슨이야" "아무렇게나 쓰세요"

 88서울올림픽하면 우선 떠 오른 것이 벤 존슨이다. 남자육상 100m 결승에서 9초79로 우승을 차지, 2위로 들어 온 칼 루이스(당시 9초92)는 물론이고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인물이다.  9초 80은 인간의 한계로 여겨졌는데 이를 깨뜨렸기에 충격은 어마어마했다.
 놀라운 일이 터지면 그 것을 주워 담아 알리고 분석하고 소개하는 쟁이(기자)는 피곤하게 된다. 나도 벤 존슨 형님의 파편을 고스란히 맞게 됐다.  
 88올림픽 당시 개만도 못한 신분(견습기자를 일컫는 말=입사 후 6개월은 선배들 밑에서 일을 배웠다. 어디서나, 아무나 불러도 가야했고 월급도 알바비 정도 받았다. 요즘은 없어졌지만 굳이 따지자면 정직원 인턴인 셈이다)이었던 나는 비인기 종목인 펜싱 경기장을 거점 삼아 각 종목 3진으로 오라면 가고, 업드리라면 5체투지를 하곤 했다.
 벤 존슨의 우승 뒤 외신기자회견장에 급히 가라는 연락을 받고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내달려 잠실종합운동장에 마련된 회견장에 갔다. 워낙 많은 기자들이 몰려 들어 맨 뒤에서 벤 존슨과 통역의 말을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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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쁘게 만들려고 하지말고 있는 그대로 보내"라는 선배의 지시에 따라 속기록을 팩스로 넘겼다. (그 땐 기사를 전화로 부르던 시절이었지만 사람 손이 부족하고 올림픽인 까닭에 팩스가 제법 많이 설치돼 보내는 이는 받는 이 모두 좀 수월해졌다. )
 몇 분 뒤 회사에서 호출이 왔다. "이 쉐이, 벤 존슨이야 존 벤슨이야."-다른 부서에서 올림픽 관계로 차출된 선배였다.
 "무슨 말쌈인지..." "기사에서 선수 이름이 왔다 갔다 하잖아."
 그랬다. 급하게 보낸 것이 벤 존슨, 존 벤슨하고 왔다 갔다했다. 기자회견 장을 떠나 펜싱장으로 돌아 오는 중이여서 이름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벤 존슨도 맞는 것 같고, 존 벤슨도 그럴듯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을 무렵, 선배가 소리쳤다. "이 XXX, 어쩌구 저쩌구."
 그럴 수록 머리속은 더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선배의 다그침이 이어지자 나도 화가 났다.  '아무렇게나 쓰세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확인하고 전화하겠다"라며 급한 불을 껐다.
 몇 분 뒤 '벤'이라는 사실을 확인해 알려줬다. 재미있는 일은 회사내에서도 '벤 존슨이냐 존 벤슨이냐'라는 질문을 한번에 처리한 이가 드물었다는 사실이다. 육상담당 기자가 아니면 특별히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도 있지만 벤 존슨 보다는 존 벤슨이 더 그럴듯하게 들렸기 때문이란다.
 
2009/04/22 16:11 2009/04/22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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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이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제목 보고 약물 양성반응과 금메달, 그리고 올림픽 이후의 벤 존슨의 근황 등을 말씀하시는 줄 알고 기대에 차 들어왔는데, 벤 존슨이냐 존 벤슨이냐...이건 뭥미...실망입니다...ㅋㅋ

    2009/04/2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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