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uckbak's Blog
미처 다하지 못한 이야기

 지금까지 직접 혹은 중계화면 등을 통해 본 축구 경기가 1000게임 정도는 되는 듯하다.  가린샤의 환상적인 드리블, 홍명보가 국가대표로 발탁되는데 결정적인 노릇을 한 고려대 4학년 때의 프리킥 골 등 지워지지 않는 명장면도 꽤 된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준 경기를 꼽으라면 주저없이 90년 모스크바 스파르타크의 내한 경기를 들겠다.
 90이탈리아 월드컵에 나서는 한국대표팀 전력향상을 위해 스파링 파트너로 온 스파르타크는 한국축구사에 지울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쳤다. 두차례 평가전(동대문운동장, 안양)에서 한국대표팀이 2연패 당한 것은 당연한 결과(그 것도 관계자가 살살 다뤄달라, 한국축구 사기와 체면을 고려해 달라 부탁해서 0-1, 1-3패)였다. 결과보다 그 들이 더 진하게 남긴 인상은 선진축구 훈련.  


 **어떻게 저런 패스가 가능할까**
 90년 4월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난 깜짝 놀랐다. 스파르타크 선수들이 툭 툭 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한국 골문앞으로 볼을 보냈다. 90월드컵 한국대표선수들은 넋이 빠진 듯했다. 손, 발을 써볼 사이없이 골문앞까지 진출을 허용했다.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게임을 본 기억이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다.  

 그 때까지 축구 경기는 몇명을 벗겨내는(따돌리는 것을 말하는 축구계 전문용어?) 화려한 개인기, 100m를 11초대에 뛰는 빠른 발을 가진 날개의 질주, 이따금 나오는 한번에 찔러주는 긴 패스 등의 단어를 사용해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파르타크의 경기는 도대체 표현할 수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골키퍼와 일대일 상황을 만들었다'라고 하자니 '눈 깜짝할 사이'를 설명해야 하는데 어찌해야할 지 막막했다.
 눈 깜짝할 사이를 만든 것이 바로 '원 터치 패스'였다. 공을 잡으면 끌지 않고 즉시 다음 선수에게 넘겨주는 패스로 당시 스파르타크 선수들은 그야 말로 원터치(볼을 발에 대는 회수가 1번) 패스로 한국 수비진의 넋을 빼놓았다.
이들은 경기전 원터치 패스 훈련 위주로 몸을 풀었다. 동대문운동장에서 그 모습을 처음 봤을 때 무엇을 뜻하는지 조차 몰랐다. 용어?, 당연히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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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터치 패스 훈련의 도입**
 스파르타크 내한 경기 후 한국축구에 붐을 일으킨 훈련이 원터치 패스이다. 이전까지는 뛰고, 볼을 멀리차고, 일대일 혹은 팀을 이뤄 서로 볼을 뺏는 훈련 장면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지금은 원티치 패스 훈련 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1대3, 혹은 1대4, 2대4 등 편(숫자가 작은 편이 술래)을 이룬 뒤  자기에게 패스된 볼을 술래에게 차단 당하지 않고 한번에 다음 선수에게 넘기는 것이다. 술래에게 차단당했거나 단 한번에 볼을 넘기는데 실패한 선수는 술래가 된다.
 스파르타크는 이러한 훈련을 반복해서 한 결과 상대 수비를 피해 움직이면서 한번의 터치로 볼을 동료에게 패스했다.  평소 이러한 훈련을 하지 못한다면 원티치 패스는 물론이고  그 것을 막아내기도 어렵다.
 이전까지 한국축구는 패스를 빨리 한다고 해봐야 볼을 잡은 뒤 곧장 패스(투 터치)하는 정도였다. 잡고 넘기면 그만큼 시간 지체가 발생, 상대에게 차단당하거나 시간 및 공간적으로 유리한 상황을 만들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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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
 그런 한국이 2002월드컵에서 4강까지 올랐으니 발전속도가 놀라울 따름이다. 이는 끊임없는 노력과 축구와 궁합이 맞는 한국인 유전자 등의 이유와 함께  90년대들어 활발해진 해외축구 교류, 전지훈련의 덕이다.
 백마디 말보다는 한번 부딪쳐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그 영향이 엄청나다는 점을 알려준 것이 모스크바 스파르타크의 원터치 패스 훈련이다.

 

2009/04/22 17:18 2009/04/22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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