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이맘때면 일본 프로야구 이승엽(33·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예상 성적을 질문받는다. 2007, 2008년 기자의 예측은 모두 빗나갔다. 지난 2년간 이승엽은 ‘왼손 엄지 부상’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단기전인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일본과의 준결승, 쿠바와의 결승에서 반짝 빛났을 뿐이다. 2009년, 이승엽은 정말 괜찮을까.

이승엽이 국내 훈련을 마치고 지난달 30일 일본으로 출국하기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담담했다.
일본 미야자키 캠프에 있는 이승엽은 지난주 타격 훈련에서 홈런 타구를 펑펑 쏘아 올렸다. 그러면서 그는 “전혀 아프지 않다”며 웃었다. 그러나 그의 말, 그의 웃음을 믿을 수는 없다.
이승엽은 지난해 2월 스프링캠프에서도 그랬다. 엄지 수술을 받은 뒤 4개월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보름간 팀 훈련을 치르고 올림픽 최종 예선전을 위해 한국 대표팀에 합류했다. 당시 그는 “이제 아프지 않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올림픽 예선전 7경기에서 타율 0.478, 2홈런, 12타점으로 폭발했다. 그의 부활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일본으로 넘어간 이승엽은 전혀 다른 선수였다. 시즌 개막 후 헛방망이만 휘두르더니 4월 14일 2군으로 떨어졌다. 1군 복귀까지 102일이 걸렸고, 그동안 이승엽은 부상 재발 의혹에 대해 “내 폼을 보라. 엄지 문제가 아니다. 야구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말하지 못할 것”이라고 항변했다.

결국 이승엽은 2008시즌을 타율 0.248, 8홈런으로 마쳤다. 그는 “야구 인생 최악의 한 해였다. 엄지 근력을 회복하는 게 급선무”라면서 “재활훈련을 선택하지 않고 수술을 받은 것을 후회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부진 원인이 부상이었음을 밝히는 한편 속내를 다 말할 수 없는 어려움도 함께 토로했다.
부상 이후 이승엽의 말은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부상 부위는) 괜찮다”→“(부진해도) 부상 때문은 아니다”→“(수술 부위가) 아직 완전치 않다”는 코멘트가 반복됐다. 냉정하게 말하면 부상을 빙자한 변명처럼 들릴 수도 있다. 아프지 않다는 말도, 올해 부활할 것이란 다짐도 그대로 믿기 어렵다. 이승엽도 괴로울 것이다. 그는 “부상도 실력이다. 올해 좋은 성적을 거둔 다음에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하겠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타율 0.323, 41홈런을 기록한 2006년과 비슷한 성적을 내야 진심을 말할 것이다. 그전까지 속마음을 털어놓기 어려우리라. 그는 주워 담기 어려울 정도로 일관되지 않은 말들을 해 왔다.
이승엽 ‘말의 함정’에 빠지다
지난해 2월 1일. 스프링캠프 첫날을 맞은 이승엽은 똑같은 질문을 열 번 이상 받았다.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캐치볼을 끝내자, 티배팅을 마치자 “엄지는 괜찮은가”라고 물었다. 하라 다쓰노리 감독이, 동료들이, 트레이너가, 한국과 일본 기자들이 돌아가며 똑같은 질문을 했다. 멀쩡한 손가락도 탈이 날 것 같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가, 요미우리 4번 타자가 엄지 인대 수술을 받았으니 여러 사람이 궁금해하는 건 당연했다. 이승엽은 애써 웃으며 “괜찮다”는 대답을 수없이 반복했다. 이 질문은 수술 후 15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승엽은 삼성 소속으로 뛰던 1999년 54홈런을 터뜨린 뒤 최고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여느 선수와 달리 말 한마디가 이슈다. 말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고, 생각을 바꾸기보다 말을 뒤집기가 어려운 입장이다. 10여 년간 수천 번의 인터뷰를 해 온 그는 나름의 전략과 원칙을 갖고 있다. 평소엔 부드럽지만 필요할 때는 단호하다 못해 독한 말도 할 줄 안다. 그런 이승엽도 엄지 부상 이후엔 ‘말의 함정’에 빠졌다.
이승엽은 아팠다. 아팠다는 말은 사실일 것이다. 고통이 계속된 시간은 2007년 개막 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다. 통증이 없던 기간은 수술 후 방망이를 들지 않았던 3개월뿐이었으리라. 그러나 이승엽은 아프다고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다른 이유를 댈 수도 없었을 것이고.
이승엽은 2007시즌이 끝난 뒤 수술을 했다. 구단 일각에서는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수술 없이 재활치료를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냈다. 그해 이승엽이 아픈 와중에도 30홈런을 쳐 냈기 때문에 수술은 모험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승엽은 “몇 년간 아파 왔다. 말끔하게 치료하고 싶다”며 수술을 고집했다.
칼을 댄 손에 새 근육이 붙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하다. 훈련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올림픽 예선전에서 투수가 던지는 강한 공을 치면서 통증이 재발했을 것이다. 자신이 원했던 수술이었고, 자신이 선택했던 대표팀 합류였기에 요미우리에 복귀한 뒤에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승엽은 2군에 떨어진 뒤에야 통증이 있다는 사실과 그 정도를 하라 다쓰노리 요미우리 감독에게 보고했다. 한 달간 쉰 뒤 5월부터 2군 경기에 나섰다. 물론 이때도 완전치 않았을 테지만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는 부상 재발을 밝히지 않았다. 이때도 이승엽은 타격을 마치면 통증 때문에 손이 떨려 장갑을 벗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승엽이 부상 사실을 털어놓지 못한 ‘표면적인’ 이유는 이렇다. “손이 아프다고 말했다면 상대 투수가 더욱 집요하게 몸쪽 승부를 했을 것”이라는 것이 이승엽의 생각이다. 일리는 있지만 일본 프로야구의 정보력은 이승엽이 말로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보다는 이승엽이 자신의 말에 발목을 잡혔다고 보는 편이 맞다.

이승엽이 지난해 요미우리 캠프에서 많은 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티배팅을 하고 있다.
서른셋에 `은퇴` 거론한 각오
이승엽은 다음 달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출전을 포기하고 요미우리 캠프에 참가하고 있다. 그러면서 “요미우리에서 은퇴한다는 각오로 뛰겠다. 내 포지션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각오를 다졌다. 언젠가 메이저리그에 진출하겠다는 꿈도, 선수 생활을 한국에서 마무리하겠다는 소망도 거뒀다.
이승엽은 2010년까지 요미우리와 계약됐고, 아직 은퇴를 걱정할 나이도 아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은퇴라는 말까지 꺼내며 지키고 싶은 건 마지막 자존심인 것 같다.
이승엽은 야구 인생의 기로에 서 있다. 그는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개막전 4번 타자였다. 한국인으로서 일본을 대표한다는 요미우리 4번 타자에 올랐다. 명예와 함께 일본 최고 연봉(4년 총액 30억 엔 추정)도 손에 넣었다. 그러나 부상과 부진, 그리고 이를 설명하는 과정에서 이승엽은 최고 타자다운 당당함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런 태도를 비판하는 야구팬도 많았다.
이승엽은 “올해는 내게 말을 거는 일본 기자가 별로 없다”며 씁쓸하게 웃었다. 잘나갈 때 귀찮을 만큼 이승엽을 쫓아다녔던 이들은 냉정하게 돌아섰다. 일본 언론은 ‘18세 신인 오타 다이시가 주전 3루수로 자리 잡으면 오가사와라 미치히로(36)가 3루에서 1루로 이동해 이승엽을 밀어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이승엽은 언제든 버림받을 수 있는 외국인 선수임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지난달 이승엽이 모델로 출연 중인 건강음료 광고 대행사로부터 그의 올해 성적을 예상해 달라는 질문을 받았다. 이승엽이 부활해 제품 매출도 오르길 바라는 눈치였다. 이승엽의 기량이 쇠퇴하지 않았다면 변수는 역시 엄지 부상의 회복 여부다. 지금은 괜찮다 해도 막상 시즌에 들어가면 지난해처럼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있다.
아니 어쩌면 엄지가 상징하는 이승엽의 마음속 상흔일지도 모른다. 이승엽이 부진할 때의 타격을 보면 일본 투수들과의 수 싸움에서 상대가 되지 않고, 선구안이 흐려져 아마추어만도 못한 스윙을 한다. 타격이 뜻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서둘러 원인을 찾게 되는데, 쉽게 찾아낼 수 있는 원인이 왼손 엄지 위에 있는 것이다.
기자는 올해도 희망적인 전망을 내놨다. “아프지 않다”는 이승엽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수술 뒤 1년이 지나야 통증이 사라진다고 하더라. 올해는 다를 것”이라는 말을 들으면, 아프더라도 어떻게든 살아날 방법을 찾아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10년 가까이 이승엽을 지켜보면서 그의 ‘반전 드라마’에 익숙해진 탓일 것이다. 극한 위기마다 거짓말처럼 터졌던 이승엽의 홈런을 너무도 많이 봐 왔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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