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받침대를 보다가 서태지를 생각하다 
‘펼치지 않는 책은 꽃받침대가 되고 읽히지 않는 신문은 신문지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쳐 읽으며 이 한 줄의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의 인기 시리즈 글이었다.
이 글은 16년 동안 한결같은 신비감과 스타성을 유지하고 있는 위대한 가수이자 기획자인 서태지를 찬양한다. 그리고 그가 오는 7월 29일 신곡 4곡이 수록된 싱글로 컴백하는 것의 의미를 소개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서태지의 신비감은 현역 시절 파격적인 춤과 새로운 감성 연출로 문화대통령이라는 별칭까지 낳게 했다. 그리고 1996년 1월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미국 등 해외에 체류하며 숨바꼭질을 거듭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게 하는 마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얘기를 돌려보면 책을 떠올리다가 어떤 책은 꽃 받침대로 쓰인다는 것이 갖는 그 쓸쓸함으로 그 기사에 붙잡히고 말았다. 아니 책이 꽃받침대뿐만이 아니라 베개나 식탁 받침대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그 어마어마한 정신적 배반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때로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이상의 과대 망상에 시달린다. 나 또한 그랬다. 한때는 필생(筆生)의 업(業)을 타고 났다고 믿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글을 쓰는 것이 평생의 내 일로 주어졌다는 그 도저한 망상.
솔직히 나는 ‘책 열심히 읽고 저금 많이 하는 사람은 못당한다’는 말을 신봉했다. 그리고 과신했다. 그 같은 카르마에 대한 믿음이 반토막 난 것은 어쩌면 대학시절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 때문 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도저히 이런 글을 쓸 수 없으며 심오한 심리묘사와 인간군상에 대한 해부 능력은 타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좌절모드를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조세희 선생은 나와는 달리 ‘도스토예프스키가 나를 문학의 길로 인도했다’고 말했다는데 말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대개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가령 나는 내 글에 대해 아무도 읽지 않은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게 두렵다. 적어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나나 내 글에 질투를 느끼고 멍해지길 바란다. 또 글을 다 읽고 돌아서서도 긴 여운이 남아 나를 만나보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싶었다라는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는 도스토예프스키에 절망했던 이후에 적어도 이 정도의 꿈이라도 갖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다.
흔히 기자의 진실은 팩트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만 동일할 뿐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매체나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을 매일매일 목격하는 게 세속세계다.
서태지는 29일 새 앨범을 발표한다. 그리고 오는 8월 15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ETPFEST 2008'무대를 통해 공식 컴백 무대를 갖는다고 한다. 게다가 9월 27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영국의 유명 클래식 작곡가 톨가 가쉬프와 협연하는 스케줄이 이어진다.
나는 그의 공연에 가지 않을 것이고 또한 녹화방송도 보지 않을 것이 분
가령 이런 것은 어떨까. 젊은시절 내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을 때 느꼈던 절망은 나이가 먹은 뒤에 달라졌다. 나는 빨간 표지의 열린책들에서 재발간한 그 책을 읽으면서 문장의 독해와는 상관없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게 술술 읽었는지 감히 자신하고 말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새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안목이 조금 넓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흐뭇해 했다. 한편으로 내가 여전히 도스토예프스키를 놓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서태지에 대한 나의 믿음은 이렇다. 내가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듯이 서태지도 지상의 노래로 천상의 전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절대로 접지 않을 것이다. 이미 펼쳐진 책은 절대로 꽃받침대로 쓰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200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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