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의 시가와 영화 ‘스모크’ 그리고 살롱문화

영국의 전 수상 처칠이 시가(Cigar)를 물고 있는 모습이 기억난다. 처칠은 시가를 문 채 그 유명한 손가락 V자를 세상에 전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하늘이 내린 골초’였다고 소문난 처칠을 다시 떠올린 건 며칠 전이다. 그의 손에서 떠날 날이 없었던 시가 이름이 로미오 이 줄리에타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지난주 초 미국 LA 샌터모니카 해안에 사는 인연이 있는 형님 한 분이 한국에 왔다.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코넬대를 나와 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일했었던 분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가게라며 정독도서관 옆 골목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모퉁이에는 커피 팩토리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는 야외 의자에 앉자마자 시가 한 대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는 요즘 들어 시가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스위스에서 주문한 쿠바산 시가 한 대를 주기도 했다. 그는 똑같은 쿠바산인데 미국에서 사는 가격이 훨씬 비싸다며 스위스에 주문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영화 ‘스모크’ 속에 나오는 사진첩과 시가
그는 시가에 불을 붙이더니 한 1분마다 한 번씩 빨면서 줄줄이 ‘시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영화 ‘스모크’에 나오는 담배 가게에 대해 썰(?)을 풀었던 거 같다.
스모크의 담배 가게 주인에겐 두 가지 기억할 만한 물건이 있다. 바로 카메라와 시가다.
주인공은 매일 아침 카메라를 들도 뉴욕의 한 담배 가게 앞의 모퉁이를 똑같은 각도에서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매일 인상해 앨범으로 만든다. 손님은 어느날 그 앨범을 우연히 접하고 넘겨보다가 그 안에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카메라는 젊은 시절 인구 조사원을 하던 주인공이 어느날 흑인 가정을 방문한 후에 생겼다. 인구 조사원을 돌아온 아들인 줄 알고 있는 맹인 어머니는 하염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는 아들인 척, 지금은 감옥에 가 있을지도 모르는 아들인 것처럼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고 대답한다.
그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한 구석에 쌓여진 훔친 물건으로 짐작되는 상자들 중 하나를 몰래 가지고 나온다. 그것이 바로 그 카메라다. 그는 그 카메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뜨나 같은 시각에 한 장소만을 찍었다. 그리고 노상에서 총에 맞아 죽은 손님의 아내도 담게 된 것이다. 그 우연의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이 담배가게 주인은 또 일확천금을 노릴 양으로 쿠바산 시가를 대량 밀수입해다 법의 수호자인 판사들한테 밀거래하려고 했다. 주고객이 판사들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거액을 투자했음에도 시가가 물에 젖어 큰 손해를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쉽게 그 담배 가게를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 ‘스모크’를 떠올리면 항상 담배가게와 카메라와 시가가 떠오른다.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폴 오스터가 단편으로 발표했다. 그는 다시 장편으로 썼다. 폴 오스터는 극본까지 맡아 홍콩계 미국 감독인 웨인 왕(Wayne Wang)이 연출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비 냄새나면 항상 시가를 피워 물고 싶다
“천민이 피우더라도 시가를 피우면 양반이 된다.” 그는 나의 폴 오스터 소설과 영화 이야기를 들은 후에 자신의 ‘시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시가는 기분이 나쁠 때 피울 수 없는 물건”이다. 그리고 “혼자서보다는 대화를 하면서 피워야 제맛”이다. 해서 “시가를 피우면 어떤 철학을 갖게 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해진다”는 것이 시가론의 요체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와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시가는 앉아서 피워야 한다. 발전된 사회는 바로 앉아서 대화하는 사회다.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기회, 아니 시간을 만드는 소통의 도구가 바로 시가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사실 세계적으로 시가만큼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 처칠의 시가가 그렇듯이 시가에는 여유가 배어 있다. 그리고 인텔리들이 쏟아내는 노련한 인생철학이 연기를 타고 흐른다. 다 이유가 있다. 보통 시가를 피우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물론 중간
로미오 이 줄리에타
에 꺼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1분에 한 번 정도 빨아주어야 한다.
형님은 “시가는 기분이 나쁠 때는 못 피운다. 좋은 시가는 비와 습기를 연상시킨다. 비가 오는 날 비 냄새가 날 때, 한국의 여름은 항상 시가 피우고 싶어진다”고 날씨 예찬론까지 곁들였다.
시가도 와인처럼 토양과 잎 딴 해를 중시한다
시가도 와인처럼 토양이나 잎을 딴 연도의 기후, 작업의 숙련도가 중요하다. 시가가 쿠바에서 성공한 이유는 습기 지역에서 잘 자라고, 돌아다니지 않고 습기가 내려앉을 때 피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시가 애호가들은 작황이 좋다는 해의 것들을 몇 박스씩 대량 구입한다. 맛있다고 소문난 해의 시가는 값이 두 배로 뛰고 품귀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돈 쓰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가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한때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들이 작업을 한 시가가 최상급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숙련도가 더 중요하다. 과정 과정 항상 손이 가야하기 때문이다.
시가는 잎을 따고 나서 3년이 되어야 시장에서 팔린다고 한다. 잎을 3년 있다가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이 많이 필요하다. 잎을 선택하고 자를 줄 알고 수 백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6개월을 저장한다. 시가는 3년마다 성격이 변해 3년, 6년, 10년 등 와인 숙성처럼 더 비싸진다. 신비한 것은 와인처럼 잘못다루면 맛이 죽는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존중의 정신이 시가에도 배어 있다. 와인과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가는 어디가나 갖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가를 좋아하면 한국인의 사회가 달라진다
정말 그렇다. ‘빨리빨리’만을 만능 맥가이버칼로 생각하는 한국인에겐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를 위해 시가를 사려해도 시가가 비싸서 살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이다. 실제로 20~30불(3만원)이면 1상자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싸지 않다.
형님은 “시가는 사치품이 아니다. 술을 줄일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성숙한 문화를 만드는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기다가 “몸에 독을 주지 않는다. 컴퓨터와 TV에 빠져 각자의 방에 서로 남인 것처럼 살아가는 가족들이 많다. 그래서 중년 여성에게 권할 만하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도 여유를 부리며 대화할 수 있는 매개로도 딱이다. 한국사람들이 시가를 피우기 시작하면 한국 사회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고 확언했다.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시가는 낯선 물건이다. 그림 속의 풍경 같은 그런 느낌만이 떠오른다. 많은 한국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일단 쉽게 볼 수 없고, 이질적이고, 서구적이다. 한국 사람에겐 앉아서 이야기는 것보다는 술잔을 기울이며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한 후 가슴으로 부딪치는 문화가 있다.

하지만 형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생각할 것이 있었다. 미국에는 ‘시가 투게더’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모여서 시가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말한다. 기분이 좋을 때 피우는 시가. 1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 대를 피울 수 있다면 그 동안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많은 얘기를 도란도란 할 수도 있겠다.
많이 피울 수도 없고 담배보다 니코틴도 적은 시가를 통해 한국에서도 살롱 문화를 꽃피우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형님은 “한국의 여름은 항상 시가가 피우고 싶은 계절”이라고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 있는 형님의 선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주위와도 더 많은 소통을 해야겠노라고 다짐하는 밤이다. 200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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