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걸작 ‘그랜드캐년’이 파인더 안으로 들어왔다



미국의 서부는 그야말로 사막이다. 그 사막은 넓고도 황량하다. “황량한 사막은 있어도 황량한 인생은 없다”는 말에 위안을 받을 수도 있지만 하루 10시간 이상의 사막을 가로지르는 악명높은 패키지 투어버스의 사막랠리에 몸을 싣다보면 차창 밖의 풍경이 왠지 건조한 추상화의 점묘법 같은 느낌을 떨쳐버릴 수 없다.


인디언의 향내가 나는 시계


하지만 때론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를 물어본다. 프랑스의 작가 생텍쥐페리는 ‘어린왕자’에서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오아시스를 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 서부의 모하비 사막도 그런 이유로 황량함을 조금은 탕감받았다. 쓸모없는 땅에 숨어 있는 인간의 무모하리만치 담대한 욕망이 빚어낸 장소들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네바다주에 우뚝 선 욕망이 빚어낸 도시 라스베가스가 그렇고, 이라크전을 준비하던 미국 해병대들이 모인 모하비 사막의 해군 병참기지 또한 그런 곳일 게다. 하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게 하나 더 있다. 미국 서부투어(흔히 코치투어라고 한다)의 하이라이트로 통하는 그랜드 캐년이 바로 그것이다. 운전석에 쏟아지는 강렬한 태양광을 제압하기 위한 빵빵한 에어콘 냉기로 두꺼운 옷을 미처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나 감기에 걸리고 마는 순전히 살인적인 투어였지만 대자연 앞에 서면 아름다움에 중독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용서된다



신이 만들 최대의 걸작 그랜드캐년

흔히 생성된 지 2억년 되었다고 알려진 그랜드캐년은 위대하고 장엄하다. 불가사의하다. 흔히 늘 보아왔던 유명 사진가들의 모습대로 붉게 물든 띠들이 경이롭고 매혹적이다. ‘신이 만든 최대의 걸작’이라는 세간의 소문이 헛됨이 없다. 그러나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그랜드캐년은 고작 2%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니 헉. 

그랜드 캐년 에어투어

그랜드캐년을 가장 빠르고 단순하게 즐기는 것은 40분짜리 경비행기 투어다. 150달러의 옵션 상품인 경비행기 투어는 롤러코스터 타기와 비슷하다. 공중에 떠 있는 동안 귀는 먹먹하고 협곡에서 부는 바람으로 인해 기체는 덜덜거린다. 프로펠러의 회전이 빨라졌다가 느려지는 순간 멈추는 기체와 회전시의 몸이 기울어지면서 느끼는 중심 이동의 스릴은 실로 짜릿하다. 넓은 창을 통해 저 계곡 아래 구렁이처럼 몸을 비틀며 흘러가는 콜로라도 강을 가만히 내려보다 보면 손에 절로 땀이 솟고 정신이 아뜩하다.


그랜드캐년 주변의 숲

그랜드캐년의 스케일은 거대하다. 시루떡을 수백미터 쌓아올린 것 같은 다양한 돌솟음, 층층히 다른 모습을 보이는 지질의 모습을 보면 지상의 것으로 상상할 수 없는 그 어찌할 수 없는 아름다움의 포로가 되고 만다.

 경비행기가 방향을 바꿀 때마다, 태양의 위치가 어디인가에 따라 시시각각 색들이 변한다. 아마 각 계절에 따라서도 그 모습이 천변만화할 것이다. 산중턱에는 원시동물 화석이 남아 있다고 한다. 협곡을 뱀처럼 빠져나가는 콜로라도 강을 보며 시인 미당은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저승으로 가는 뱃길 같은 콜로라도 강가”라고.


경비행기 안에 한국에 방송 안내도 보인다.




다행히 경비행기에서는 대자연이 빚어낸 이 예술 작품을 다소나마 설명해준다. 헤드폰의 해설에는 한국말도 있다. (한국인들의 방문이 많긴 많은가보았다) 그 해설을 귓등으로 날리며 발 아래 펼쳐지는 대자연의 예술에 파인더를 들이댄다, 협곡을 뱀처럼 빠져나가는 콜로라도 강을 비롯한 속 깊은 속살과 봉우리들이 나의 캐논 카메라의 파인더 안으로 수없이 밀고 들어온다.
   

그랜드 캐년의 콜로라도강





“여행의 조건은 돈보다는 열정과 타이밍

직장생활을 하면서 40여개국을 여행한 한 직딩 여행가는 이렇게 말했다. “여행 가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열정과 타이밍이지, 돈과 휴가는 최우선이 아닙니다.”


내가 타고간 경비행기. 40분 도는데 150달러다.

나도 그이처럼 열정과 타이밍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하면서 그랜드캐년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여행은 편견과 아집 그리고 편협함에 치명적”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도 상기해보았다.




그러나 모든 상념에도 불구하고 길은 만남이고 이별이다. 이번 모하비 사막으로 훌쩍 떠난 여행의  만남과 이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누가 그랬던가. 여행은 터치다. 만지는 것이라고. 그 만짐이란 무엇을 말할까.
누군가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길고도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까지의 여행"이라고. 비록 라스베가스에서 그랜드캐년까지의 5시간 반의 패키지 투어 버스가 심신을 녹초로 만들고 말았지만 기어코 나는 대자연의 장관에 눈으로 가슴으로 터치할 수 있었다.


머릿속의 그랜드 캐년이 아니라 가슴으로 파고든 그 대자연의 위대함 속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그것이 비록 경비행기의 아찔한 운행이든 콜로라도 강의 그 깊고 깊은 침묵이든, 그랜드 캐년의 영겁을 뛰어넘는 매혹의 시간들이든 말이다.
 20080904 그랜드캐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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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2 12:37 2008/09/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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