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 된 일본 불후의 명작 ‘겐지이야기’

혹시 겐지이야기를 아시는지요. 흔히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라고 하지요. 1008년 처음 간행되었으니 올해가 딱 천년이 되는 해네요.
겐지이야기는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궁녀가 쓴 54권으로 이루어진 장편소설입니다. 3대에 걸쳐 70년 동안에 전개되는 방대한 소설로 서정적인 문체, 인간의 내면과 사회에 숨어 있는 진실을 포착하는 비판 정신등으로 수많은 일본 고전 작품 중에서도 천년 동안을 사랑받고 읽혀왔습니다. 명실상부한 일본을 대표하는 고전의 최고봉이지요.
제가 아는 한 고전(古典)이란 ‘세월을 이겨내고 오랫동안 살아남은 작품’들이지요. 그리고 그 책을 통해 아직도 먹고 사는 사람이 많은 책이겠지요. 수많은 논문도 나오고 해설집도 나오고 심지어는 만화로까지 나오는 것들 말이지요.
제가 겐지이야기를 알게 된 것은, 아니 그 명성을 들은 지는 20여년 전 어렴풋이 나름 '문청'이라던 대학 시절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 번도 읽어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 우연한 기회에 만화로 된 겐지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궁녀가 쓴 54권짜리 장편소설
제가 읽은 만화는 ‘겐지이야기-아사키 유메미시’(극화 야마토 와키, 번역 이길진, AK커뮤니케이션즈) 1권이었습니다. 하지만 만화를 이야기하기 전에 소설 이야기를 하고 싶네요.
만화는 물론 1권이니까 천황의 아들로 태어나 신하계급으로 격하된 주인공 겐지의 그 일족의 사랑과 고뇌, 귀족사회의 암투와 갈등,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 등이 서서히 등장하는 스타트지요.
그렇다면 왜 이런 사랑이야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1000년 동안이나 파고들까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역시 꽃미남이 인기를 끄나 봅니다. 더욱이 천황의 아들이라는 특출한 출신 성분에 수려한 용모와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영웅적인 꽃미남이라면 어느 누가 내버려 둘까요. 그리고 그 자신이 사랑의 화신이라면요.
소설 속에는 겐지의 애정편력은 평생동안, 70년 넘게 이어진다고 합니다. 미녀, 추녀, 사랑스러운 여자, 영리한 여자, 악령이 되어 나타나는 원한의 여자, 노파 등 넓고 넓은 오지랖을 자랑합니다. 심지어 자기 의붓 어머니와도 정을 통해 아들을 낳습니다.
겐지이야기는 일본 문학의 기원으로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기념비적인 소설입니다. 우아하고 섬세한 일본 정서와 미의식이 함축되어 있어 노나 가부키등 전통 연극, 공예, 음악, 무대 예술, 만화 등 오늘날 일본 문화의 상징으로 숨쉬고 있다고 합니다.
난해한 문장으로 구성된 당시의 소설은 현대작가들이 알기 쉬운 문체로 재현해 많은 작품이 나와 있다네요.

--교토에만 10여차례 방문, 발로 그린 겐지이야기
일본에는 ‘겐지 이야기’를 만화한 작품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제가 번역본으로 읽은 강담사에서 나온 ‘겐지이야기-아사키 유메미시’가 유명하다고 하네요.
일본 중견 여류만화가인 야마토 와키가 극화를 했고, 아마도 여성 특유의 아름답고 섬세한 묘사와 철저한 고증을 통해 거의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헤이안 시대의 모습을 재현시켰기 때문인 것 같네요. 이 만화는 현재 1700만권이 팔렸다고 하네요.
야마토 와키가 원작이 있는 고전을 작화하는데 겪어야 했던 가장 큰 고민은 뭐였을까요. 아마도 살아본 적이 없는 시대의 공간 속으로 빠져들어가 완성해야 하는 그림의 세세한 부분이 아니었을까요. 최근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가 일본인들에 의해 주인공 뒤의 병풍이 근대의 것이라는 지적을 받는 수모(?)를 당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니 만화가는 1000년 전의 건물과 실내, 가구를 그리기 위해 실물이 없는 시대와 말을 걸고 또 걸었겠지요. 천년의 사랑이야기에 연애하듯 또한 만화로 사랑을 쏟아낸 것이지요.
만화가는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맨 먼저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림의 디테일이었습니다. 배경의 건물이나 실내, 가구 들이 현존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그 당시 여자의 옷소매가 얼마나 넓은지 알 수 없지 않겠어요? 문장에서도 방의 칸막이, 발 등으로만 서술되어 있는 것이 실제 모양을 조사하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중고교 필독도서로 읽히는 만화 ‘겐지이야기'
야마토 와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믿을만한 자료를 구하고 불분명한 것은 연구자의 자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헤이안 시대의 수도였던 교토에도 10여 번이니 찾아가 현지 취재를 했구요, 또 작품과 관련이 있는 신사는 모두 찾아보았고 박물관에도 가서 자료를 열람했다고 합니다.
이처럼 원고지 한 장 한 장 마다 철저한 고증정신이 깃들여 있는 셈이지요. 소설에서는 문장으로만 서술되어 있어 이해하기 어려운 당시의 시대상과 인물의 모습을 우리는 그림으로 통해 생생하게 더듬어주는 작가가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요.
이처럼 땀과 정성으로 태어난 작품이어서인지 이 겐지이야기-아사키유메미시는 특히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다고 합니다. 각 학교에서 교사들이 너도나도 필독도서로 추천하고 있어서이고 또 이 작품이 시험에도 자주 출제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내년 1월부터는 겐지이야기 탄생 1000년을 기념해 후지TV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다는 소식도 들리네요. 일본에서는 워낙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보니 내년 1월부터는 ‘겐지이야기-천년기’라는 이름으로 후지TV 노미타미나에서 TV 애니메이션으로 선보인다고 합니다.

--야마토 와키의 만화체의 매력은?
만화에도 소설의 문체처럼 만화체가 있는 것이라면 저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허영만체와 이현세체, 그리고 고행석체와 고우영체, 그리고 여성작가로서의 김혜린과 황미나체 등으로 나누고 싶습니다. 일본 만화가로는 ‘바벨2세’의 요코야마 미쯔데루나 ‘아톰’의 데츠카 오사무, ‘몬스터’ ‘20세기 소년’의 우라사와 나오키 정도에 익숙한 사람입니다. 물론 전문가가 아니라서 끝없이 분화되는 만화의 장르와 질감에 대해서 미숙한 잣대를 들이댈 따름입니다.
우선 이 만화는 여성적인 터치와 감성이 따스하게 묻어나는 전통적인 순정만화체를 닮았습니다. 거기다 스케일이 크고 역사에 대한 고증을 통한 문학적 해석력이 곁들여져 대서사시로 완성해냈다는 느낌입니다. 문학성과 극화성이 결합돼 기본적인 로맨스 만화의 한 정점을 이루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겐지가 자기 의붓 어머니와도 정을 통할 정도로 ‘여성에게서 어머니상을 찾는’ 마더콤플렉스를 지녔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한다는 해석을 통해 외롭지만 애교많은 꽃미남을 잘 표현하고 있는 듯합니다. 만화 속의 주인공과 인물들은 궁중 속의 무대 장치에 맞춰 화려환 의상과 표정, 행동양식을 보여줍니다. 
언젠가 일본의 고서점가에 가서 입이 딱 벌어지도록 놀란 적이 있습니다. 학습만화에서 과학, 괴기, 탐정, 역사, 그렇게 많은 장르의 만화가 나와있다는 것이 부럽고, 모든 예술은 역시 스토리텔링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영화와 애니메이션, 만화, 소설, 게임이 컨버전스하는 일본은 역시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인의 문화적 자질이 결코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게임과 IT를 담당하면서 관계자들에게 늘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콘텐트고 핵심은 스토리텔링이다. 그게 바로 문화산업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힘이다"라는 것입니다. 영국의 톨킨을 비롯한 환상문학이 반지의 제왕과 해리포터로 이어졌고, 일본의 섬문화가 2002년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으로 베를린 영화제 금곰상을 수상한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으로 이어졌듯이 한국에서도 이제 스토리텔링 산업을 키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적어도 몬스터나 20세기 소년 같은 좋은 만화를 보려면요.
아참, 출판사 측에 2권은 언제 나오는가 궁금해서 물어보니 매달 20일에 나온다고 하네요. 12월은 20일이 토요일이라 22일에 나온다구요. 전 10권을 다 읽게 되었을 때 1000년 전 일본의 궁중 로맨스에 대한 풍습과 이해에 한발짝이라도 도달할 수 있을 것 같네요. 2008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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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일본에 갔을 때 겐지모노가타리 만화를 읽으려고 한 권 샀었지요. 한국에도 나온지 몰랐네요. 나중에 한번 시도해 봐야 겠어요. 20세기 소년은 저도 소장했었지요. 우라사와 나오키는 저도 아주 좋아하는 작가라서요. 플루토도 대박인데.. 미국에선 볼 길이 없네요..=_=; 좋은 글 잘 보고 갑니다.
'만화로 재탄생한~' 제목은 오해의 소지가 있네요.
원작만화가 일본에서 나온지 얼마나 오래됐는대
이제 겨우 한국에서 번역출간되었다고 재탄생입니까?
한국에서 출간된이 정확한 표현일것 같은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