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하라(Inside Steve's Brain)


스티브 잡스를 생각할 때마다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거인, 당대 최고의 아이디어맨,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등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애플 PC와 아이팟은 바로 스티브 잡스 그 자체다. 좋든 나쁘든 대부분 사람들에게 스티브 잡스는 애플 컴퓨터의 심장이자 영혼이다.


린더 캐니가 쓴 ‘스티브 잡스처럼 성공하라(Inside Steve's Brain)’는 이 창의적인 괴짜이자 애플의 중력인 천재 잡스에 관한 이야기다. 그에 대해 요약한 네 개의 문장은 이렇다.

-PC업계에 대변혁을 일으켰다-1970년대 애플2(Apple2)와 1980년대 맥(Mac)을 통해서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만화영화 스튜디오를 설립했다-픽사(Pixar)

-2000년대 음반 업계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아이팟(iPod)과 아이튠(iTunes)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듯 보였던 회사를 포춘 500대 기업 반열에 올려놓았다-애플사


흔히 스티브 잡스는  '이해하기 어렵고 불가사의한' 인물로 알려져왔다. 하지만 ‘애플은 세계적인 산업디자인과 동의어가 되었다’라는 말을 만들어낸 것은 스티브 잡스의 천재적인 육감이다. 그는 “제품이 섹시하게 보이도록 하자”는 산업 디자인 아이디어를 강력히 주창했고, 섹시한 외관을 통해 자신과 애플의 꿈을 실현했다.

잡스의 인간적인 자질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디자인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딱딱하고 범접하기 어려운 PC를 가구처럼 생활 속의 친근한 대상으로 인식하게 만든 사람이 잡스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열정이 넘치는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굉장한 일을 하고' 싶어한다. 잡스가 하는 모든 일에는 항상 투철한 사명감이 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팀원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과 같은 열정을 심어줄 수 있는 역량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롤러코스터처럼 동일한 사람에 대한 평가가 몇 번이고 바뀌지만 격렬한 피드백을 즐기는 사람에게 롤러코스터의 묘미를 알게 해준다.

그의 창의성은 엄청나다. 그는 고객 경험을 중시하고 계획적인 주의를 기울인다. 바로 거기서 애플을 위한 끊임없는 영감의 원천과 신상품 아이디어가 나온다. 고객이 무엇을 좋아할 지에 대한 탁월한 직감의 소유자인 잡스는 애플을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이라는 명성을 만들어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세상을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아이팟이다. 그는 아이팟 제품 출시를 위해 스크롤 휠 같은 아이디어를 접목했고, 디자인에 신경을 썼다.

2001년 10월 23일 정식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인 아이팟은 2007년 4월까지 1억대 이상을 팔았다. 2007년 애플 수익의 절반 정도를 아이팟이 차지했다. 애플이 2009년 말까지 아이팟의 판매 목표를 3억대 이상으로 잡고 있다. 몇몇 애널리스트들은 5억대 정도 판매를 예상하고 있다.
 

공상가라는 별명이 붙은 잡스가 '우아한 단순함'이라고 맥을 묘사할 때 종종 썼던 표현처럼 스티브 잡스는 열정과 아이디어, 디자인에 대한 육감으로 지구촌 천재 자리의 다섯 손가락 안으로 들어왔다. 그래서일까, 주위에서 한국에서 출시될 아이폰을 말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2008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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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7 13:39 2008/08/27 13:39

출판계 거목의 타계와 출판기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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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개월간 출판과 문학 담당을 맡아봤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회사가 지면이 넘치는 종합일간지나 심층적인 취재가 가능한 전문 출판지가 아니어서 출판계에 그다지 큰 영향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 말석에서 보일락말락 눈치를 살피는 꼴이랄까.
그렇지만 소설가 박범신 이경자 김종광 등을 만나 회사 차원의 인터뷰를 할 기회를 얻기도 했다. 박범신씨는 개인적으로 고등학교 선배였다. 대학 졸업 후 잠깐 근무하던 한 출판사 복도에서 인사를 하고 난 후 학교의 송년회 등을 제외하곤 공적이든 사적이든 그때가 처음이었다. 참 수더분하고 인간적이었다. 그가 근무하는 명지대 교수실에는 수많은 후배 교수들 작가 문인들이 들락거렸다. 인터뷰 중에도 말이다.
그리고 이경자씨와는 같이 저녁을 먹고, 또 인터뷰 때는 신정아 사건으로 유명해진 성곡미술관 앞에서 커피를 마시며 성적인 여성의 이야기에 대한 소설 구상을 듣기도 했다.  
그런가하면 '고슴도치의 우아함'을 쓴 프랑스 작가 뮈리엘 바리베리의 방한 때 그에 대한 인터뷰를 쓰기도 했다. 그에 대한 인터뷰는 지면에 실리지는 못했지만 내 블로그에 올라있기도 하다. 그때 그로부터 사인을 받은 그의 책이 여전히 내 방에 있다.



실제로 나는 오래도록 문화부 기자 생활을 꿈꾸었다. 하지만 너무 짧았고 우리 신문에는 애초 문화란 스포츠와 연예로 대표되는 것이 일반화된지 오래였다. 왜? 돈이 안되니까.
나는 문인들과 미술인 그리고 만화가나 연극인들과 교류하고 싶었다. 그들이 시대와 세대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의 정신과 어떻게 교류하는가를 탐색해보고 싶었다. 한때 출판 전문 온라인 사이트에 40여편의 서평기사를 연재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해마다 될 수 있으면 1년에 책 100권을 독파하는 '100권클럽'에 가입하는 것을 연초 목표로 삼기도 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내 감수성과 습속이 변했다. 그리고 나의 기대와 바람과는 달리 내 꿈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게임과 IT쪽의 기사와 만남이란 술과 이벤트 그리고 끊임없는 신작과 대작주의 등로 이어진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출판과 문학 등 문화부 기자들이 부럽다.   

내가 출판 문학 담당으로서 느꼈던 희열 중의 하나는 책을 엄청 많이 받아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현실로 살아있는 숨결을 갖춘, 말로만 듣던 유명 예술인들을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 방에는 출판 문학 담당 시절 받아본 책들이 쌓여 있다. 읽지 않는 것들은 편집국 사람들에게 분양하고 내가 괜찮다 싶은 책들은 챙겨왔다. 그런데 그렇게 콜렉트한 책들마저 읽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대해 가끔씩 자괴감과 후안무치의 정을 불러일으킨다.
마누라는 조금씩 먼지로 변해 내 방의 공기 청정도를 낮춰가는 신문 스크랩들과 함께 책에 갇힌 내 방을 "먼지구덩이"라고 냉혹하게 비판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갖고 책장을 펴들지 못하는 내 심사도 울적하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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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유명짜한 당대의 예술인을 만나는 일의 그 비밀스런 설렘과 만나보니 그들도 역시 한 명의 인간이라는 되돌려 받은 듯한 느낌 등도 잊혀지지 않는다.

가령 객주의 작가 김주영씨는 내 친구의 아버지였고, 객주 문학기행 코스를 개발한 경상북도 청송의 취재 때문에 만난 적도 있다. 그는 아버지처럼 다정다감했고, 평범했다. 그렇지만 내 친구에 따르면 그는 골프를 아주 좋아한다는 것이다. 안어울릴 것 같은 그런 조합마저도 새롭고 달라보였다.
가끔 출판 담당자들의 재혼한 아내가 유명 소설가라든지, 네번이나 결혼한 작가가 아내의 사촌언니라든지 등의 이야기를 듣게될 때처럼 환상은 어느 대목에서든지 쉽게 무너지고 또 인상적으로 남을 수도 있다는 것은 인지상정일까. 유명소설가가 강원랜드 폐인이라는 말도 그랬다.



어쨌든 내가 만난 작가들과 출판담당자들 그리고 내가 가본 출판사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코딱지만한 지면에도 임원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민원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과 글쓰기 그리고 기획자들의 노력은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책 많이 읽는 사람과 저금 많이 하는 사람은 못당한다'는 말을 회상해본다. 나의 100권클럽은 언제 다시 목표 달성에 성공할지, 내가 출판하고 싶은 책은 언제쯤 나올지. 새삼 나의 게으름과 정신의 숙취를 질타한다. "당신의 게으름은 유죄". 아래는 을유문화사 정진숙 대표의 타계 소식을 보내온 출판협회의 보도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나를 아직도 출판 담당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이 고맙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그런 날이다.



한국출판계 거목 을유문화사 정진숙 대표 타계

한국출판의 선구자인 정진숙 을유문화사 대표가 지난 8월 22일 오후 3시 24분경 별세했다. 향년 97세.

고인은 1912년 출생하여 휘문고등학교 및 보성전문학교를 중퇴한 후 1945년 11월 서울에서 을유문화사를 창업했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63년간 현업에 종사하며 반세기가 넘는 오랜 기간 동안 출판 외길을 걸어오면서 우리나라 출판문화 창달과 출판산업 발전에 앞장섰다.

1962년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으로 취임했고 80년대에 접어들기까지 11차례의 중임을 했다. 그는 이때 출판회관 건립의 기초와 준공의 발판 마련 등 출협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다. 1969년에는 영세 출판사 및 양서 출판 지원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한국출판금고 설립의 산파역을 맡았다.  도서 판매 공간 확보와 정가 판매의 기틀 마련을 위해 중앙도서전시관 설립을 통해 건전한 출판물 거래 환경 조성 및 질서 확립에도 기여했다.   

고인은 1960년 서울시문화상, 1968년 대통령표창, 1970년 국민훈장 동백장, 1997년  간행물윤리상, 1997년 문화훈장 금관상, 2007년 제7회 유일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낙영(재미), 필영(을유문화사 이사), 무영(개인사업), 해영(개인사업), 지영(을유문화사 대표이사) 씨 등 4남 1녀가 있다. 발인은 26일 오전 8시 30분 서울대학교병원, 장지는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이다. (02)2072-2091

생전에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그가 출판계에 공헌한 많은 일들을 들은 바 있다. 삼가 그의 명복을 빈다. 2008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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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3 09:47 2008/08/23 09:47
 

처칠의 시가와 영화 ‘스모크’ 그리고 살롱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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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전 수상 처칠이 시가(Cigar)를 물고 있는 모습이 기억난다. 처칠은 시가를 문 채 그 유명한 손가락 V자를 세상에 전파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가 ‘하늘이 내린 골초’였다고 소문난 처칠을 다시 떠올린 건 며칠 전이다. 그의 손에서 떠날 날이 없었던 시가 이름이 로미오 이 줄리에타라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지난주 초 미국 LA 샌터모니카 해안에 사는 인연이 있는 형님 한 분이 한국에 왔다. 중국계 아버지와 한국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코넬대를 나와 NASA(미 항공우주국)에서 일했었던 분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가게라며 정독도서관 옆 골목으로 나를 이끌고 갔다. 삼청동으로 이어지는 길모퉁이에는 커피 팩토리라는 가게가 있었다. 그는 야외 의자에 앉자마자 시가 한 대를 꺼내 피워 물었다.

그는 요즘 들어 시가에 빠졌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스위스에서 주문한 쿠바산 시가 한 대를 주기도 했다. 그는 똑같은 쿠바산인데 미국에서 사는 가격이 훨씬 비싸다며 스위스에 주문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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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모크’ 속에 나오는 사진첩과 시가

그는 시가에 불을 붙이더니 한 1분마다 한 번씩 빨면서 줄줄이 ‘시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니 그 전에 내가 영화 ‘스모크’에 나오는 담배 가게에 대해 썰(?)을 풀었던 거 같다.

스모크의 담배 가게 주인에겐 두 가지 기억할 만한 물건이 있다. 바로 카메라와 시가다.

주인공은 매일 아침 카메라를 들도 뉴욕의 한 담배 가게 앞의 모퉁이를 똑같은 각도에서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매일 인상해 앨범으로 만든다. 손님은 어느날 그 앨범을 우연히 접하고 넘겨보다가 그 안에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한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그 카메라는 젊은 시절 인구 조사원을 하던 주인공이 어느날 흑인 가정을 방문한 후에 생겼다. 인구 조사원을 돌아온 아들인 줄 알고 있는 맹인 어머니는 하염없이 말을 걸어온다. 그는 아들인 척, 지금은 감옥에 가 있을지도 모르는 아들인 것처럼 어머니의 말을 들어주고 대답한다.

그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한 구석에 쌓여진 훔친 물건으로 짐작되는 상자들 중 하나를 몰래 가지고 나온다. 그것이 바로 그 카메라다. 그는 그 카메라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해가 뜨나 같은 시각에 한 장소만을 찍었다. 그리고 노상에서 총에 맞아 죽은 손님의 아내도 담게 된 것이다. 그 우연의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이 담배가게 주인은 또 일확천금을 노릴 양으로 쿠바산 시가를 대량 밀수입해다 법의 수호자인 판사들한테 밀거래하려고 했다. 주고객이 판사들이라는 것도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거액을 투자했음에도 시가가 물에 젖어 큰 손해를 본 사람이었다. 그래서 쉽게 그 담배 가게를 떠나지 못한다. 그래서 영화 ‘스모크’를 떠올리면 항상 담배가게와 카메라와 시가가 떠오른다.

이 소설은 내가 좋아하는 미국 작가 폴 오스터가 단편으로 발표했다. 그는 다시 장편으로 썼다. 폴 오스터는 극본까지 맡아 홍콩계 미국 감독인 웨인 왕(Wayne Wang)이 연출한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비 냄새나면 항상 시가를 피워 물고 싶다 

“천민이 피우더라도 시가를 피우면 양반이 된다.” 그는 나의 폴 오스터 소설과 영화 이야기를 들은 후에 자신의 ‘시가론’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에 따르면 “시가는 기분이 나쁠 때 피울 수 없는 물건”이다. 그리고 “혼자서보다는 대화를 하면서 피워야 제맛”이다. 해서 “시가를 피우면 어떤 철학을 갖게 되고,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해진다”는 것이 시가론의 요체였다.

아닌게 아니라 그와 앉아 이야기를 하면서 “시가는 앉아서 피워야 한다. 발전된 사회는 바로 앉아서 대화하는 사회다. 타인의 말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기회, 아니 시간을 만드는 소통의 도구가 바로 시가다”라는 말이 실감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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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세계적으로 시가만큼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물건은 그리 많지 않다. 처칠의 시가가 그렇듯이 시가에는 여유가 배어 있다. 그리고 인텔리들이 쏟아내는 노련한 인생철학이 연기를 타고 흐른다. 다 이유가 있다. 보통 시가를 피우는 시간은 1시간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물론 중간
                                                     로미오 이 줄리에타
에 꺼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니 1분에 한 번 정도 빨아주어야 한다.

형님은 “시가는 기분이 나쁠 때는 못 피운다. 좋은 시가는 비와 습기를 연상시킨다. 비가 오는 날 비 냄새가 날 때, 한국의 여름은 항상 시가 피우고 싶어진다”고 날씨 예찬론까지 곁들였다.


시가도 와인처럼 토양과 잎 딴 해를 중시한다

시가도 와인처럼 토양이나 잎을 딴 연도의 기후, 작업의 숙련도가 중요하다. 시가가 쿠바에서 성공한 이유는 습기 지역에서 잘 자라고, 돌아다니지 않고 습기가 내려앉을 때 피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말에 수긍이 간다.

시가 애호가들은 작황이 좋다는 해의 것들을 몇 박스씩 대량 구입한다. 맛있다고 소문난 해의 시가는 값이 두 배로 뛰고 품귀현상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돈 쓰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시가를 만드는 것은 사람의 일이다. 한때 시집을 가지 않은 처녀들이 작업을 한 시가가 최상급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지만 숙련도가 더 중요하다. 과정 과정 항상 손이 가야하기 때문이다.

시가는 잎을 따고 나서 3년이 되어야 시장에서 팔린다고 한다. 잎을 3년 있다가 말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술이 많이 필요하다. 잎을 선택하고 자를 줄 알고 수 백명의 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나서 6개월을 저장한다. 시가는 3년마다 성격이 변해 3년, 6년, 10년 등 와인 숙성처럼 더 비싸진다. 신비한 것은 와인처럼 잘못다루면 맛이 죽는다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연 존중의 정신이 시가에도 배어 있다. 와인과 가장 다른 점이 있다면 시가는 어디가나 갖고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시가를 좋아하면 한국인의 사회가 달라진다 

정말 그렇다. ‘빨리빨리’만을 만능 맥가이버칼로 생각하는 한국인에겐 더 많은 대화가 필요하다.

대화를 위해 시가를 사려해도 시가가 비싸서 살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것은 편견이다. 실제로 20~30불(3만원)이면 1상자를 살 수 있을 정도로 비싸지 않다.

형님은 “시가는 사치품이 아니다. 술을 줄일 수 있고, 대화를 나눌 수 있고, 성숙한 문화를 만드는데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거기다가 “몸에 독을 주지 않는다. 컴퓨터와 TV에 빠져 각자의 방에 서로 남인 것처럼 살아가는 가족들이 많다. 그래서 중년 여성에게 권할 만하다. 또한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도 여유를 부리며 대화할 수 있는 매개로도 딱이다. 한국사람들이 시가를 피우기 시작하면 한국 사회 자체가 달라질 것”이라고 확언했다.

형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여전히 나에게 시가는 낯선 물건이다. 그림 속의 풍경 같은 그런 느낌만이 떠오른다. 많은 한국 사람들도 그러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일단 쉽게 볼 수 없고, 이질적이고, 서구적이다. 한국 사람에겐 앉아서 이야기는 것보다는  술잔을 기울이며 몸과 마음을 무장해제한 후 가슴으로 부딪치는 문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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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형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뭔가 생각할 것이 있었다. 미국에는 ‘시가 투게더’라는 모임이 있다고 한다. 모여서 시가를 피우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들을 말한다. 기분이 좋을 때 피우는 시가. 1시간 이상을 투자해야 한 대를 피울 수 있다면 그 동안 마음의 여유를 갖고 많은 얘기를 도란도란 할 수도 있겠다.

많이 피울 수도 없고 담배보다 니코틴도 적은 시가를 통해 한국에서도 살롱 문화를 꽃피우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형님은 “한국의 여름은 항상 시가가 피우고 싶은 계절”이라고 말했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내 방에 있는 형님의 선물을 내려다보고 있다. 내 자신과의 대화가 필요하고 주위와도 더 많은 소통을 해야겠노라고 다짐하는 밤이다.  2008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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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5 12:52 2008/07/25 12:52
 

꽃받침대를 보다가 서태지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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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펼치지 않는 책은 꽃받침대가 되고 읽히지 않는 신문은 신문지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을 펼쳐 읽으며 이 한 줄의 문장에 시선이 멈췄다. 주철환 OBS 경인TV 사장의 인기 시리즈 글이었다.

이 글은 16년 동안 한결같은 신비감과 스타성을 유지하고 있는 위대한 가수이자 기획자인 서태지를 찬양한다. 그리고 그가 오는 7월 29일 신곡 4곡이 수록된 싱글로 컴백하는 것의 의미를 소개한다.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서태지의 신비감은 현역 시절 파격적인 춤과 새로운 감성 연출로 문화대통령이라는 별칭까지 낳게 했다. 그리고 1996년 1월 최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서태지와 아이들이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이후 미국 등 해외에 체류하며 숨바꼭질을 거듭하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놓치지 않게 하는 마법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얘기를 돌려보면 책을 떠올리다가 어떤 책은 꽃 받침대로 쓰인다는 것이 갖는 그 쓸쓸함으로 그 기사에 붙잡히고 말았다. 아니 책이 꽃받침대뿐만이 아니라 베개나 식탁 받침대로도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갖는 그 어마어마한 정신적 배반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때로 사람들은 자기가 갖고 있는 것 이상의 과대 망상에 시달린다. 나 또한 그랬다. 한때는 필생(筆生)의 업(業)을 타고 났다고 믿기도 했다. 다시 말하면 글을 쓰는 것이 평생의 내 일로 주어졌다는 그 도저한 망상.

솔직히 나는 ‘책 열심히 읽고 저금 많이 하는 사람은 못당한다’는 말을 신봉했다. 그리고 과신했다. 그 같은 카르마에 대한 믿음이 반토막 난 것은 어쩌면 대학시절 읽었던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 형제들’ 때문 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도저히 이런 글을 쓸 수 없으며 심오한 심리묘사와 인간군상에 대한 해부 능력은 타고난 사람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좌절모드를 받아들여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인 조세희 선생은 나와는 달리 ‘도스토예프스키가 나를 문학의 길로 인도했다’고 말했다는데 말이다.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대개 이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가령 나는 내 글에 대해 아무도 읽지 않은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않은 것이 되는 게 두렵다. 적어도 내 글을 읽는 사람이 나나 내 글에 질투를 느끼고 멍해지길 바란다. 또 글을 다 읽고 돌아서서도 긴 여운이 남아 나를 만나보고 싶어지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싶었다라는 표현을 굳이 쓰는 이유는 도스토예프스키에 절망했던 이후에 적어도 이 정도의 꿈이라도 갖고 싶다는 이유 때문이다. 

흔히 기자의 진실은 팩트에 있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거기에 있었다는 사실만 동일할 뿐 그것을 바라보는 것은 매체나 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지는 것을 매일매일 목격하는 게 세속세계다.

서태지는 29일 새 앨범을 발표한다. 그리고 오는 8월 15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ETPFEST 2008'무대를 통해 공식 컴백 무대를 갖는다고 한다. 게다가 9월 27일 서울 상암 월드컵 경기장에서 영국의 유명 클래식 작곡가 톨가 가쉬프와 협연하는 스케줄이 이어진다.

나는 그의 공연에 가지 않을 것이고 또한 녹화방송도 보지 않을 것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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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다. 그러나 대중예술의 달인이 보여주는 퍼포먼스의 가치, 꽃받침대가 아닌 정신으로 읽히는 그의 노래에 대해서는 언제든지 칭송하고 박수를 쳐줄 준비가 되어 있다.
가령 이런 것은 어떨까. 젊은시절 내가 까라마조프의 형제들을 읽을 때 느꼈던 절망은 나이가 먹은 뒤에 달라졌다. 나는 빨간 표지의 열린책들에서 재발간한 그 책을 읽으면서 문장의 독해와는 상관없이 얼마나 즐겁고 재미있게 술술 읽었는지 감히 자신하고 말할 수 있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고 나는 새삼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것과 세상을 이해하려는 안목이 조금 넓어졌구나 하는 생각에 스스로 흐뭇해 했다. 한편으로 내가 여전히 도스토예프스키를 놓지 않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돌이켜보건대 서태지에 대한 나의 믿음은 이렇다. 내가 꿈을 절대로 포기하지 않듯이 서태지도 지상의 노래로 천상의 전설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절대로 접지 않을 것이다. 이미 펼쳐진 책은 절대로 꽃받침대로 쓰이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20080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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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09:41 2008/07/10 09:41
한국인의 “빨리빨리”와 위키피디아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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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태니커 비웃는 웹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웹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요즘 디지털 세상의 새 아이콘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위키피디아는 한마디로 ‘개방적 백과사전’입니다. 우선 유저가 백과사전을 쓰고, 서로 검증을 하는 신개념 사전입니다. 영어로부터 시작해 이제 한나라만이 아닌 세계 200개 이상의 언어의 사람들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열린 백과사전이 되었습니다. 전체 사이트는 위키로 되어 있어서 누구든지 ‘편집’을 눌러서 내용을 고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입니다.

위키피디아에는 ‘브리태니커를 비웃는 세계 최대의 인터넷 백과사전’이라는 수식도 따라다닙니다. 한 연구소의 연구에 의하면 위키의 오류가 브리태니커보다 더 적게 나왔다고 할 정도니까요.

그러나 위키피디아의 가장 큰 특징은 누리꾼들이 직접 정보를 수정할 수 있어 정보의 업데이트가 무척 빠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위키의 어원은 '빠르다' 한국인 기질과 닮았네

한국인의 기질을 상징하는 말 중에 “빨리빨리”가 있습니다. 누구는 과거 한국의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도 말하고, 현재도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디지털시대 속도전의 우성인자 등으로 말해지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분식점 등 한국인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하는 외국인이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이 “빨리빨리”라고 할까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위키피디아의 위키(wiki)의 어원이 빨리빨리와 무관치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와이 원주민들이 쓰는 말 ‘위키 위키(wiki wiki)’에서 왔다고 합니다. 그 뜻은 바로 ‘빠르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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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한 개발자가 웹서버에 위키위키웹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또 위키는 ‘내가 알기로는 이렇다(What I Know Is)’의 해석을 갖기도 합니다.
참여와 협업으로 대표되는 위키에 관한 이야기는 ‘위키 매니지먼트’(김성희-김영한 지음, 국일미디어)에 나와 있습니다.

한국인은 언제 어디서나 “빨리빨리”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거나 듣고 있습니다. “빨리빨리”는 ‘재촉한다’는 기본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합니다. 더욱이 다른 동작을 요구하는 말이 따라붙게 되면 더욱더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이 같은 한국인의 DNA인자가 디지털 시대 속도전의 우성인자로 바꾸어져 부정적인 인식을 넘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변화에 얼마나 논리적이고 정교한 설명이 뒷받침되고 있는가이지요. 냄비처럼 끓다 마는 것을 이제는 버려야겠습니다.
촛불을 끌 수 있는 것은 장마나 공권력이 아니라 소통의 마음이라는 말처럼요.
20080705 박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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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6 12:31 2008/07/06 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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