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e스포츠팬들에게 즐거운 소식이 하나 늘었습니다. 25일 하이트 이명근 감독과 26일 삼성전자 김가을 감독이 프로리그 사상 두 번째와 세 번째로 100승 금자탑을 이뤘습니다.현장에 자주 나가지 못하는 처지에서 뉴스로만 들었지만, e스포츠 담당자로서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참 기뻤습니다. 넉넉한 이 감독과 수줍은 듯한 김 감독의 얼굴이 생각나서요.
▶이명근, 40대 투혼 두 번째 100승
이명근 감독은 프로게임단 감독 중 최고령인 40대 감독입니다. 지난 25일 이 감독은 KTF에 3대 2로 극적인 승리를 거뒀습니다. 8시즌 만에 한 팀에서 100승을 달성한 것이죠.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시즌 초반 조규남(CJ) 감독이 사상 첫 100승을 기록한 이후 무려 네 명이 두 번째 100승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인 가운데 가장 먼저 얻은 값진 승리였지요.
이명근 감독은 프로리그 원년인 2003년 첫 시즌인 KTF 에버컵 프로리그에 KOR을 이끌고 프로리그에 데뷔했습니다. 그는 2004년 스카이 2004 프로리그 3라운드에서 팀을 프로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종합성적 3위로 시즌을 마감, 팀을 중위권으로 성장시키는데 성공했지요. 이후 2006년 KOR은 온게임넷 스파키즈로 재창단했습니다. 그리고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에서는 광안리 결승전에 섰습니다. 삼성전자에게 아쉽게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지만 ‘미라클 스파키즈’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며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한 바 있는 명장입니다.
▶김가을, 여성 스타 출신 최단 기간 100승
그런가 하면 2003년 7월 전임 김선아 감독의 이어 삼성전자 두 번째 감독으로 취임한 김가을 감독은 178경기만에 100승을 달성하며 역대 최단기간 100승 달성을 기록했습니다.
김가을 감독은 26일 eSTRO를 3대 1로 꺾고 이명근 감독보다 하루 늦게 100승 달성에 성공했습니다. 99승에서 3연패에 부진에 빠지며 주춤한 것이 아쉬운 대목이지요. 이명근 감독은 97승으로 출발해 3연승을 기록하며 100승 고지는 먼저 점령했으니까요.
김가을 감독은 2005년부터 명감독의 대열에 입성합니다. 최강의 여성 프로게이머 출신인만큼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스카이 프로리그 2005에서 전기리그 7위에 이어 후기리그 준우승을 기록했고, 제1회 KeSPA컵에서 팀을 창단 후 첫 단체전 정상에 올려놓았습니다.
뛰어난 용병술을 자랑하는 김가을 감독의 엔트리는 팬들 사이에서 '신트리'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지난해를 비롯해 프로리그를 두 번이나 우승시킨 명감독입니다.
스타크래프트 개인리그인 MBC게임 스타크래프트리그(MSL) 역대 우승자 중 특히 많은 화제가 되었던, 3회 우승으로 금배지를 차지했던 선수들은 누가 있을까. 한국 e스포츠계의 살아있는 신화인 ‘금배지’ 주인공인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에 이은 네 번째 주자는 김택용이다.
▶마재윤 꺾고 e스포츠 역사상 최대 파란
김택용(20․프로토스․SK텔레콤)은 2007 곰TV MSL 시즌1과 곰TV MSL 시즌2, 그리고 2008 클럽데이 온라인 MSL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김택용은 자신의 첫 MSL이었던 곰TV MSL 시즌1의 4강전에서 자신의 우상이자 프로토스의 정신적 지주였던 강민(27․프로토스․KTF)을 3-0으로 물리치는 이변을 일으켰다. 결승전 상대는 당대 최대 포스로 ‘본좌’의 칭호를 넘보던 마재윤(22․저그․CJ)이었다.
당시 MBC게임은 김택용의 우승 확률을 2.69퍼센트로 계산했다. 팬들의 체감은 그보다도 낮았다. 김택용은 이런 예측을 보기 좋게 뒤집었다. 그는 자신의 첫 결승에서 역사상 최강의 저그 마재윤을 3-0으로 물리치는 ‘3.3혁명’을 완성했다. e스포츠 역사상 최대 이변이었다. 그는 곰TV MSL 시즌2 결승에서 자신의 최대 라이벌로 성장하는 송병구(21․프로토스․ 삼성전자)를 접전 끝에 3-2로 물리치며 프로토스 최초 2회 연속 우승에 성공했다.
MBC게임 시절 김택용의 모습
▶약소 종족? 프로토스의 전성시대 열어
김택용은 곰TV MSL 시즌3에서 프로토스 최초 3회 연속 결승 진출에 성공했다. 하지만 복병 박성균(18․테란․위메이드)에 1-3으로 패하며 3회 연속 우승에는 실패했다. 그 여파로 지난해 중반까지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살아나기 시작한 김택용은 클럽데이 온라인 MSL에서 우승에 성공, 프로토스 역사상 최초로 MSL 3회 우승을 차지, 금배지의 주인공이 되는데 성공했다. 동시에 프로토스 시대의 지배자로 우뚝 서게 된다.
약소 종족이란 평가를 오랫동안 받았던 프로토스로 다른 최정상급 선수의 커리어를 쌓게 된 김택용의 활약은 많은 프로토스 팬들을 열광하게 했다.
▶스타리그에서는 맥못추는 징크스
MSL에서는 3회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으나, 스타리그에서는 EVER 스타리그 2007과 박카스 스타리그 2008에서 4강에 올랐던 것이 최고 성적이다.
유독 스타리그 우승 타이틀과는 인연이 없었던 김택용은 지난 3월 20일 바투 스타리그에 4강에서 같은 팀의 정명훈에 패해 스타리그에서만 세 번째로 결승 진출이 좌절됐다. 김택용은 “그 동안 4강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기 때문에 이번 시즌도 4강이 고비일 것 같다”고 예고한 바 있었다. 스타리그 4강에서 세 번째 미끄러진 셈이다. 20090426
어젯밤에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을 보았습니다. 박찬수(KTF)가 로스트사가 MSL 결승전에서 허영무(삼성전자)를 3-1로 누르고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상금은 5000만원이고 트로피와 은배지가 주어집니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e스포츠 결승전에 갔을까요. 아마 20여번은 더 될 것 같습니다. 대회라면 개인리그인 MSL과 온게임넷 스타리그, 그리고 팀리그인 프로리그가 있습니다. 여기에 각종 이벤트 대회가 있고, e스타즈서울이나 WCG, ESWC, IEF 같은 국제대회도 있습니다.
내가 결승전에서 가장 많이 본 프로게이머는 아마도 김택용(SK텔레콤)이었을 겁니다. 2007년 당시 본좌급의 마재윤을 만 17살이라는 최연소 나이로 꺾으며 파란을 일으켰죠. 이후 MSL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실력을 뽐내며 MBC게임에서 이적한 후에도 최고 실력을 뽐내고 있습니다.
잘 생긴데다가 거만하지가 않아 제 실력을 발휘하면 임요환이나 이윤열급의 빅스타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하지만 이 친구도 마재윤을 꺾고 2연속 우승 후 세 번째 결승에서 무명의 박성균(위메이드)에게 뼈아픈 패배를 하게 되지요.
그리고 한 1년여 슬럼프를 겪었죠. 김택용이 박성균에게 졌던 바로 그 장소가 어젯밤 박찬수가 챔피언이 되었던 서울 능동의 어린이 대공원 돔 아트홀입니다.
물론 오영종(공군), 마재윤(CJ)이나 임요환(SK텔레콤), 이제동(화승), 이영호(KTF)의 경기도 기억납니다.
시간이 흐르면 기억들이 손바닥에서 흘러내리는 모래처럼 빠져나갈 터이지만 그래도 대형 신인이 등장하면 기자들도 흥분하게 됩니다. 저의 경우 이영호의 등장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이제동과의 경기에서 밀리지 않고 엎치락 뒤치락하던 순간들, 놀라운 컨트롤로 상대를 제압하던 모습 등이 그러합니다.
박찬수는 솔직히 이제동이나 이영호 레벨은 아니라는 것이 세간의 평이었습니다. 임요환 이윤열 최연성 마재윤이 본좌급이라면 차세대가 이제동과 이영호, 김택용으로 볼 수 있고, 그 아래에 송병구, 박성균, 박지수, 허영무, 박명수, 정명훈, 도재욱 등이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요즘은 10대의 기세가 워낙 대단해 이제동-이영호-김택용의 장기 집권도 쉽게 장담할 수 없습니다. 이윤열과 마재윤은 노쇠기미가 보이고 있구요.
하지만 지난해 9월 이적 이후 확실히 박찬수는 달라졌습니다. 쌍둥이인 이 친구는 과거 동생인 박명수보다 아래 레벨로 통했습니다. 그렇지만 온게임넷에서 KTF로 이적한 이후 그는 "지난해 이적 후 마음 가짐이나 연습에서 이전보다 독해진 것 같다"고 스스럼없이 말합니다.
매경기 '찬스박'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승리의 기회를 놓치지 않는 승부사의 기질을 돋보입니다. 박찬수의 승부사 기질은 짜릿한 역전승 등으로 나타나 팬들을 열광시킵니다. 마재윤 이제동 이후 그는 새 저그 계보를 잇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았습니다.
박찬수의 최근 경력은 화려합니다. 승자연전방식의 신한은행 프로리그 3R 위너스리그에서는 처음으로 올킬(상대팀을 혼자서 모두 이기는 것을 지칭함)에 성공했구요. 또한 준 PO에서 박찬수는 통신사 라이벌 SK텔레콤을 상대로 정명훈과 도재욱을 연달아 침몰시키며 '포스트 시즌에서 숙적 SK텔레콤에게 한번도 이긴 적이 없다'는 KTF의 징크스를 깨며 팀을 PO에 진출시켰지요.
최근 강남의 테헤란로에 있는 한국을 대표하는 투자사 미래에셋의 빌딩을 인수한 한 게임사 전 대표가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3일 부동산 투자자문사들에 따르면 허민 전 네오플 대표가 최근 강남 대치동의 미래에셋 타워의 A·B동 2개동을 885억원에 인수하기 위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죠.
-서울대 비운동권 출신 첫 총학생회장
올해 나이 서른 셋(76)인 허민 전 네오플 대표를 사석이 아닌 간담회나 발표회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습니다.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어느 정도 인연은 있다는 말이지요. 허 전대표를 생각하면 우선 ‘비운동권 출신 서울대 첫 총학생회장’이라는 것과 ‘야구광’이라는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지금이야 그런 구분마저 애매해졌지만 당시로서는 비운동권 출신 총학생회장이란 일종의 이단아였습니다. 민주 쟁취, 권위주의 정권 퇴진 등의 구호가 많았던 시절이죠.
그런데다가 그는 서울대 야구 동아리 출신으로 야구를 지독히 좋아해 직접 야구게임 ‘신야구’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서울대 응용화학과 95학번인 그는 대학 시절 야구부 동아리 열성 멤버로 평소 꿈이 “야구단 구단주”라고 밝히곤 했다는 게 제가 간접적인 경로를 통해 전해들은 단골 레퍼토리의 하나였습니다.
-네오플, 넥슨에 넘기며 1000억원대 성공신화
그렇다면 그가 부동산펀드나 법인이 아닌 개인 자격으로 강남 대형 빌딩을 매입한 지극히 이례적(?)인 행보를 보이는데 쓰인 자금은 어디서 났을까요. 업계에서는 그가 지난 2008년 네오플의 경영권을 넥슨에 넘기면서 받은 1000억원대의 자금 중 일부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던전앤파이터 이미지
허 전 대표는 캔디바·던전앤파이터 등 게임 개발에서 잇달아 성공하고, 지난해 7월 네오플을 넥슨에 팔아 1000억원 대 재산가로 올라서면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요.
그는 2001년 서울대 재학시절 친분을 맺은 친구 5명과 네오플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지요. 그해 ‘캔디바’라는 게임 웹사이트로 아바타 채팅과 아바타 게임이라는 신세대 취향의 소재로 오픈 10개월 만에 누적 회원수 200만명을 돌파했다. 월 매출도 10억원을 넘어서며 인기를 모았지요.
허 전 대표가 업계에 우뚝 선 것은 초대박 게임 던전앤파이터 때문입니다. 2005년 출시한 던전앤파이터는 누적회원수 1000만명, 최고 동시접속자수 17만명을 기록 중입니다.
매출액 기준 최대 게임업체인 NHN은 지난 2006년 5월 네오플의 지분 60%를 인수했지요. 인수 금액만 240억원이었습니다. 그런 허민 전 대표는 2007년 NHN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되찾아왔죠. NHN의 네오플 지분율을 40%로 떨어뜨린 것이죠.
지난해 7월엔 허 전대표는 온라인 게임업체 넥슨에 네오플을 매각합니다. 넥슨은 지난해 NHN이 보유하고 있는 지분을 제외한 네오플의 지분 59.15%를 인수하면서 1500억원 이상을 들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허 전 대표 입장에서는 거뜬히 1000억원 이상을 벌어들인 것이죠.
-현재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알려져
넥슨은 네오플을 인수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습니다. 현재 던전앤파이터는 중국에서 동시접속자수 120만 명을 돌파하며 중국 온라인게임 순위 1위에 올라 있습니다.
넥슨 게임포털은 네오위즈의 피망을 제치고 게임포털 순위 3위에 올랐습니다. 한 때 한게임은 넷마블에 1위를 내주기도 했지요. NHN에서 채널링하던 서비스를 넥슨 포털로 옮겨온 효과를 본 것이죠. 메이플스토리-카트라이더-마비노기 이후 카스온라인이나 엘소드 등을 제외하고 성공작이 없었던 넥슨으로서는 큰 돈을 썼지만 전혀 아깝지 않은 결과를 낳고 있는 셈입니다.
현재 허민 대표는 미국에 머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쨌든 그가 꿈꾸었던 “야구 구단의 구단주”는 과연 이루어질 수 있을까요. 그리고 과연 그는 언제쯤 결혼할 수 있을까요. 서울대 그것도 총학생회장 출신의 허 전대표가 생각보다 훨씬 부끄러움을 많이 타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재미있는 물타기 하나. 제가 허민 전 대표의 미래에셋 타워 매입 소식을 듣기 전 미래에셋이 600억여원을 들여 게임회사 예당온라인을 인수했다는 공시를 내보냈습니다. 어제는 미래에셋과 게임회사가 얽히고 설킨 그런 하루였습니다. 20090304
최근 e스포츠판에 홍진호-강민 등 '올드보이'들이 줄줄이 퇴장하면서 10년 역사의 e스포츠가 급격히 젊은층으로 기울고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벌써 30대 중반에 접어든 터줏대감 팬들마저 점차 떠나가고 있다는 소리도 높습니다.
그 와중에 소위 '본좌' 논쟁에 대한 관심도 시들고있습니다. 지난 4일 열렸던 경기에서 마재윤이도재욱에게 패하는 것을 보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본좌논쟁은 생각해보니 딱 마재윤의 전성기 시절까지 나왔더군요. 임요환의 공군 입대와 함께 개인에 집중되었던 관심이 팀 경기와 프로리그, 팀 랭킹으로 변화되는 시절을 겪으면서 드러난 현상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 e스포츠의 아이콘 임요환이 현역에 복귀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당찬 목소리로 “30대까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이 같은 그의 행보는 올드 팬들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30대가 넘는 올드팬들을 다시 경기장으로 돌아오게 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죠.
--임요환 "30대 프로게이머가 되겠다"에 엇갈린 시각
그렇다면 임요환의 복귀에 대한 e스포츠업계의 시각은 어떨까요.
임요환이 선수로 등장하기 전인 1999년 3월부터 해설을 했던 게임 해설 1호 엄재경 온게임넷 해설위원은 “그의 귀환에 올드팬의 반응이 뜨겁다. 그가 군에 있을 때 '요즘은 재미없어. 임요환이 있었을 때는 참 재밌었는데'라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며 “임요환의 경기 스타일이 한 경기 한 경기 테마를 달리 하는 전략형이어서 허무하게 무너질 때도 있지만, 매 경기 재미를 주고 변화무쌍해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 그런 의외성과 재미는 아무도 못 당한다. 요즘 같은 물량 공세와 자로 잰듯한 정확성만이 횡행할 때, 만약 전략형인 그가 개인리그 4강에 오른다면 다시 올드팬들이 경기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시했습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e스포츠계 한 인사는 “산업적으로 판단할 때 제 아무리 스타라도 물러갈 때는 물러가야 한다”며 “현재가 과거에 비해 팬들이 많이 떨어져나가거나 시청률이 떨어진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는 “임요환·홍진호 등에 집중되었던 관심이 이제는 리그 자체로 변화되어 팀 순위 등이 더욱 중요하게 되었다”며 “공군 같은 프로게임단은 없었다는 것을 전제로 하더라도 실제로 김동수 등 병역을 마치고 복귀한 선수들이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고, 과거처럼 낭만적인 시절의 프로의식이 아니라 철저히 직업의식과 준비를 통해 프로의식이 똘똘 뭉친 신세대에 의해 완전히 물갈이한 상황도 무시할 수 없다”고 그 이유를 들었죠.
e스포츠계의 또다른 관계자도 “옛날 팬들이 많이 떨어졌지만 새로운 층 또한 분명히 생겼다. 이 같이 새롭게 진입하는 층들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본좌' 논쟁이 왜 마재윤까지만 있었을까도 냉정히 살펴봐아 한다. 현재 아이콘이 있는 건 e스포츠밖에 없다. 지금은 야구에서도 선동렬이나 최동원이 나오기 쉽지 않다”며 “현재 시점에서 추억의 재생산도 좋지만 임요환이 없으면 e스포츠가 끝난다는 것도 억지고 위험한 논리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잘 하면 올드팬들 경기장에 돌아올 것"
이에 대해 당사자인 임요환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그는 “언젠가는 왕비호가 '누구~'하는 것처럼 팬들에게 잊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실제로 과거와는 느낌을 조금은 느낀다. 공군에서 경기할 때 보면 팬클럽 회원도 줄어든 거 같고 경기장에서 자주 보던 얼굴도 잘 안보인다. 하지만 내가 잘 하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고요.
아무튼 임요환이 SK텔레콤의 1월 로스트에 등록을 하고 7일 2시 용산 e스포츠 전용경기장에서 복귀식을 치릅니다. 당장 경기에 나서지 않더라도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의 복귀를 애타게 기다리던 팬들에게는 엄청난 선물이 아닐까 싶네요.
임요환의 복귀 논쟁 속에서 의외로 돋보이는 것은 임요환의 10대 팬들입니다. 임요환이 워낙 한국e스포츠의 상징적이고 역사적인 인물이다보니 그를 좋아하는 10대 층이 의외로 두텁다는 것이 자연스레 알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경기는 '레전드'(전설)에 속해 게임 방송에서 자주 방송되는 단골 메뉴인 점과 또한 그동안 알려졌던 그의 놀라운 경기에 대한 소문이 지속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겠죠.
임요환은 이미 알려진대로 “기를 쓰고 철저히 자기 관리하는 것과 승부에 관한 투지에 있어 역대 최고”라는 것이 공통된 평가입니다. 박세리를 보고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골프의 '세리키드'가 신지애라면, 임요환을 보고 선수가 되기로 결심했던 '요환키드'가 김택용-마재윤 등으로 화려했던 임요환의 명성에 대해 여전히 존경하는 전통이 존재합니다. 김택용은 한 인터뷰에서 "요환이 형 때문에 프로게이머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말할 정도니까요.
--임요환 키드들에게 모범 보여주는 게임 황제 역할 필요
임요환이 지난해 12월 21일 군 제대했을 때 저는 기자의 한 사람으로 계룡대의 공군본부 정문에 갔습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8시에 SK텔레콤 프런트와 기자들이 함께 갔었죠. 여전히 그는 당당했으며 슈퍼스타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의 부모와 팬들, 그리고 기자들이 어우러진 광경은 이 시대의 기념할 만한 현장이었습니다.
임요환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말투,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찡그리지 않는 매너 등이 더욱 돋보였습니다. 이런 모습은 그가 SK텔레콤 기자실에서 SK텔레콤 유니폼을 입고 했던 기자회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귄 여자 친구가 있다는 말, 30대 프로게이머가 되어서 서른 다섯까지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는 의지 등 말잘하고 잘 생긴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역시 황제가 돌아왔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임요환이 연말 강원도에서 지인들과의 휴가를 마치고 3일 소속팀으로 완전 복귀했습니다. 1월 로스트에 등장한 그는 7일에는 경기장에 나가 팬들을 직접 만날 것이라고 합니다. 팬들의 관심은 이제 게임 황제 임요환이 과연 어떤 모습을 보일까에 쏠려 있습니다.
게임 황제 임요환이 과거 명성에 걸맞게 10년 역사의 올드팬들인 아저씨들까지 경기장에 끌어 모을지 아니면 실력도 못내고 반짝하다 사그러질지 저도 개인적으로 관심이 많습니다. 그의 복귀에 대한 시각이 엇갈리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든 올드팬들의 관심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거란 점일 거 같습니다.
그가 복귀하면서 한국 e스포츠계가 다시 한 번 비약의 발전을 하는 그런 모습을 보고 싶네요. 이제 스타의 시대가 아니라고 하는 업계의 부정적인 시각을 묵사발 내는 임요환을 보고 싶습니다. 20090105
2006년 10월 9일 입대, 2008년 12월 21일 전역. 임요환의 공군 복무 시작과 끝 날짜입니다. 게임 오늘 그의 전역이 있는 계룡대에 다녀왔지만 담당기자로서 저는 임요환과 참 인연이 많습니다. 그가 80년이니까 거의 10수년 차이가 나지만 그래도 한 시대를 같이 보낸 인연을 만들었습니다.
2005년에 게임을 맡았지만 본격적인 첫번째 인연은 2006년 초로 거슬러 갑니다. 저는 온라인 세상 명품 브랜드인가 하는 연재물에 당당히 집어넣어 그를 인터뷰했습니다. 팬클럽-지금이야 카페 문화가 좀 시들하지만 다음의 많은 카페 중 그를 좋아하는 '임요환의 드랍십이다'(일명 요한동) 카페는 최고의 회원숫자와 열성팬으로 대단한 명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일개 프로게이머임에도 환상의 드랍십을 비롯한 수많은 명승부를 연출해 한국의 게임대회를 ''e스포츠'라는 당당한 스포츠로 승화시킨 선구자이자 지존의 카리스마로 '황제'의 칭호로 통했습니다. 지금처럼 직업적인 마인드가 강하지 않고, 약간의 낭만이 스며 있는 시절이라 이 프로정신으로 무장한 선수의 출현은 대번에 판도를 바꾸어놓았습니다.
21일 임요환의 전역을 축하하러 온 대전 팬들의 모습
마치 박세리를 보고 자란 후세가 신지애 같은 '박세리키드'라 골프계를 접수하듯이 수많은 '임요환키드'를 만든 것입니다. 다 아다시피 현재 한국에는 11개 기업프로게임단과 1개 군프로게임단(공군)이 있고, 23개 공인 종목에 450여명의 프로게이머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활성화된 종목이 바로 스타크래프트라는 게임이고, 무려 300여명의 프로게이머가 활약하며 e스포츠의 90% 정도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임요환은 바로 스타크래프트 선수단인 SK텔레콤 T1의 선수였다가, 공군 에이스팀의 선수로 입대했고, 또한 내일부터 다시 SK텔레콤 T1 선수로 현역에 복귀합니다.
2. 공군 에이스팀 창단 전후
그와의 다른 인연은 그의 나이 스물 여섯이 되어 군 입대 제한 연령이 다가왔을 때였습니다. 그때 저는 프로게이머를 위해, 커가는 한국 e스포츠를 위해 군 내에 상무팀을 만들라는 칼럼을 쓰기도 했습니다. 물론 "게임하는 게 국가에 어떤 도움을 주느냐"며 네티즌들에게 곤욕을 치르기는 했지만요.
그 이후 공군에 군 프로게임단인 에이스팀이 생겼고, 워게임을 연구하는 전산특기병이란 신분으로 임요환을 비롯한 8명이 팀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입대한 지 얼마되지 않을 무렵의 임요환
임요환이 진주의 공군교육훈련사령부에 훈련병으로 입대하고 나서 MSL 결승전이 그곳 연병장에서 치러졌습니다. 30여명의 기자들도 몰려가 언론의 주목도 많이 받았습니다. 수 많은 병사들 사이에 모습을 감춘 채 앉아 있는 그를 찍으려고 앞다투어 주위를 어슬렁거렸던 일도 기억납니다.
그의 모습을 찍지 못해 경향게임즈 김은진 기자에게 사진을 빌려 [사진제공=경향게임즈]라는 이름으로 신문에 싣고, 그의 모습 대신 아버지를 대신 취재했던 기억도 선합니다.
그가 계룡대의 공군 부대에 자대배치받고 그의 이름이 공군 홈페이지에 뜬날 홈페이지가 과부하로 다운 당했던 것도 기억납니다.
아무튼 슈퍼파이트라는 대회에 나와 홍진호와 임진록을 하며 눈물을 흘리던 모습, 수많은 팬들이 코엑스에서 훌쩍였던 모습은 장관이자 놀라움이었습니다.
3. 게임황제 성을 바꾸어버린 중국 출판사
그런가 하면 임요환에 관한 책이 중국에서 번역되었는데 임(林)씨인 성을 임(任)으로 바꾼 일도 있어 제가 단독 취재한 적도 있습니다.
아들 전역을 보러 계룡대에 온 부모님.
"황제모독"이라는 기사로 저희 신문 1면을 장식했고, 저는 그 기사로 이달의 기자상도 탔습니다. 임요환의 부친이신 임병태씨는 임씨의 서울 종친회장이라 "성을 바꾼 것에대한 분노"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측에 항의했지만 대답을 차일피일 미루고, 한국 출판사도 노력한다고 했지만 3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별 답을 못받았다고 하네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출판기자를 하게 되었는데 그 출판사 사람이 다시 저를 찾아온 겁니다. 그때는 성바꾼 것만으로 화제가 되고 제가 인용하고 했는데, 제가 출판을 담당하여 찾아왔는데 사실 그런 화제만으로도 출판사 이름을 널리 알리게 되었다며 아이러니라고 말해주더군요.
임요환에게 기념패를 전하는 '임요환의 드랍십이다' 회원들
4. 철저한 프로정신의 임요환
임요환이 공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그와의 만남은 인터뷰를 통해서, 그리고 삼성동의 연습실과 용산이나 코엑스의 경기장, 슈퍼파이트 등 여러 빅게임 대회에서 줄곧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57만명의 팬클럽을 가진 전국구 슈퍼스타이자 스타크래프트 게임은 몰라도 임요환은 안다는 그의 인기가 어디서 비롯되는지 제가 아는 임요환을 통해 설명할 차례입니다.
곰TV 스튜디오에서 경기후 내가 찍은 임요환의 모습.
그는 우선 잘 생겼습니다. 그리고 결코 얼굴을 찡그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런가 하면 누구나 인정하듯 어떤 상황에도 막힘없는 말재주를 가졌습니다. 기자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기사의 주제를 던져주는 타입이죠. 그리고 거기에 미소를 한 번 보태면 남자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진이라도 찍으려면 고개를 돌려 빙 둘러선 여러 방향의 사진 기자들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기자들 앞에서는 단 한번도 지루하다거나 힘들다는 모습이나 표정을 지어보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진짜 프로정신은 e스포츠의 흥행청부사답게 그의 철저한 자기관리에서 나옵니다. 그는 절제할 줄 압니다.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싸울 준비를 위해 새로운 전략을 만들고, 또 주변의 동료나 후배들과 대화합니다. 혼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끌어주고 배웁니다.
e스포츠를 위한 일이라면 자기가 아무리 피곤해도 먼 곳까지 달려가지만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는 지금 만으로는 28세, 우리나이로는 스물아홉입니다. 그랑 같이 공군에서 근무했던 나이 어린 고참들인 조형근과 강도경도 그의 열정과 승부욕은 세계 최고라고 감탄해 마지 않을 정도니까요.
그는 어쩌면 한국 e스포츠에서 프로정신을 최초로 실현한 선수일 것입니다. 숱한 개인리그에서의 우승과 소속팀이었던 SK텔레콤의 우승들을 이끌었던 파워, 연봉이 3억원을 넘나드는 최고 스타의 자리를 만든 것은 바로 그런 태도와 노력, 열정이었을 것입니다.
5. 30대 프로게이머 임요환
그가 오늘 공군에서 전역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기자로서 다시 아침 일찍 일어나 그의 전역을 보러 계룡대에 갔습니다. 그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자발적으로 올라온 팬들이 있었습니다.
전북 김제와 충북 청주, 대전과 서울 등지에서 아침 일찍 기차나 택시, 자가용을 타고 찾아왔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팬이었던 대학생도 있고, 초등학교때부터 팬이었다가 고등학생이 된 사람도 있고, 직장인도 있었습니다. 기자들도 20여명 SK텔레콤 프런트와 전세버스로 내려갔습니다. MBC게임, 곰TV 등 방송도 찾아왔습니다.
팬들로부터 꽃다발과 케이크를 받아들고 기뻐하는 임요환의 모습.
오랜만에 만난 임요환의 아버지 임병태(68)씨와 어머니 강태순(60)씨는 저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역시 아들을 생각하는 모정으로 보온병에 유자차를 끓여와 아들을 안아본 후 돌아서서 따뜻한 차를 손에 안겨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무 사고 없이 제대해서 기분이 좋다. 이제 내년에 서른 살이니 빨리 가정을 가졌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했습니다.
포인트는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임요환의 고집을 꺾진 못한 듯합니다. "아마 30대 프로게이머로서의 생활을 할 것 같다. 그래서 적어도 서른셋까지는 못말릴 거 같다. 33~35세에 결혼하지 않겠나"하고 말했습니다.
팬들과 함께 전역을 기뻐하는 임요환
임요환도 "30대 프로게이머로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이고 싶다"고 했습니다. SK텔레콤 T1과 남은 계약이 1년 6개월이니 계약이 끝날 때쯤엔 서른이 훌쩍 넘을 듯합니다. 이전에 20대 후반이면 고참이라던 프로야구도 '까치 김정수' 등이 테이프를 끊어 40대 선수까지 등장했습니다.
한국 e스포츠의 선구자이자 전설인 그가 프로게이머를 단지 젊은 날의 몇년 하는 단기간의 과정이 아니라 떳떳한 직장인으로서의 이정표를 세웠으면 좋겠습니다.
6. 스타크래프트2 변수와 올드보이의 실종
임요환이 복귀하는 e스포츠판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군에 다녀온 프로게이머가 현역에 복귀한 것은 극히 드문 일이기 때문입니다. 김동수 등 몇명이 있었지만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내년 안에 스타크래프트2가 나온다는 말이 있어 새로운 환경 변화에도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빌드와 전략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그가 손이 좀 굳어진 상황에서 그리고 급속한 세대교체로 인해 올드보이들이 줄줄이 은퇴하는 상황에서 복귀하는 것도 참 힘든 일입니다.
그와 같이 공군 생활을 했던 강도경과 조형근이 말한 것처럼 "세계 최고의 열정과 승부욕을 지닌" 그가 한국 게임계의 자부심으로, 황제의 귀환을 고대해온 팬들에게 영원한 황제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으면 기대해봅니다.
이 말은 물론 우승을 하면서 화려한 성적을 거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임요환스러운, 황제다운 팬들을 사로잡는 멋진 경기를 보여주라는 것이지요.
10년 동안 커온 e스포츠가 우승자와 상위권들이 너무 10대로 편향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습니다. 이윤열과 마재윤이 주춤하고 박정석과 오용종은 공군에 입대하는 등 실제로 올드보이들이 실종한 듯 보입니다.
임요환이 해줄 역할은 바로 올드팬들에게 그리고 올드보이 프로게이머가 실종된 현실을 딛고 새로운 전설을 만들어보라는 것이지요. 어떻게요? 그건 황제만이 알겠지요. 20081221
참고: 이 사진은 제가 직접 찍은 사진들입니다. 저작권 보호를 위해 함부로 퍼다가 자료로 쓰지 마세요.
살림살이가 하루가 다르게 힘들어지는 경제 빙하기가 도래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올 겨울은 물론 내년이 되면 더욱 혹한기에 돌입한다는 예고편이 줄줄이 매체의 주요뉴스로 다뤄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두터운 외투를 서너 벌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이죠. 이런 가운데 장기 불황의 전조를 게임인구 증가, 짧아지는 미니스커트, 립스틱과 등산용품 판매 증가, 길거리 자동차 증가 등으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모니터 안 게임 제국에서 스트레스를 푼다?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황에 대한 불안이 엄습하고 있는 가운데 불황을 읽어내는 징조나 지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합니다.
우선 불황이면 게임인구가 많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올해는 한국 최고 게임 개발사인 엔씨소프트의 다중접속온라인역할수행게임(MMORPG)인 ‘아이온’이 엔씨의 히트작인 ‘리니지’ ‘리니지2’에 이어 지난달 24일 유료화를 하고 나서도 동시접속자만 20만명을 기록하는 대박을 치고 있습니다. 아이온뿐이 아니라 블리자드의 ‘월드오브워크래프트’도 두 번째 확장팩이 나와 인기를 끌고 있고 CJ인터넷의 최초 자체 개발작인 ‘프리우스 온라인’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삼국무쌍온라인(CJ인터넷), 홀릭2(엠게임), 타르타로스온라인(위메이드) 등 신작들도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황이면 왜 게임에 더 열광할까요. 실업자가 많아지고 노는 인구가 늘어나서 PC방이 붐비는 걸까요. 물론 그런 요소가 주요 요인이겠지만 제가 보기에는 경제가 어려워지고 사는 일이 강퍅해지면 늘어나는게 한숨이요 스트레스입니다. 늘어나는 스트레스를 현실과는 다른 세계, 현실의 간섭이 없는 모니터안 게임 제국에서 해소하려는 사람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제 진단입니다. 게이머들은 모니터 안 제국에서 현실 세계보다 더 집중적으로 자기에 대한 신뢰를 찾고, 경쟁에서 승리하는 쾌감을 맛보죠.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유저를 제치고 왕이 되기도 하고 슈퍼엘리트로 등극하며 현실 속의 불안을 털어내는 것이죠.
--짧아진 미니스커트, 립스틱 등산복 판매 불티
불황의 전조로 드는 여러 가지 중에서 가장 재미 있는 것은 미니스커트가 짧아진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또다른 예는 등산용품과 립스틱이 불티난다는 것입니다. 등산용품이 잘팔리는 것은 비교적 설명이 쉽습니다. 갈 곳 없는 사람들이나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나온 사람들이 차비와 김밥만 싸들고 산을 찾아 가는 거죠. 비용이 적고 경제적이기 때문이죠. 립스틱이 잘 팔리는 이유는 여성들이 멋을 내야 하는데, 비싼 옷값 대신 립스틱 색깔을 바꿔 외양의 치장한다는 기분을 즐긴다는 설명이 가능합니다.
여기에서 재미있는 것은 자동차가 많아진다 것이 불황의 또다른 징후라는 것입니다. 왜 불황이 닥치면 길거리에 자동차가 늘어나는 것일까요. 기름값이 떨어져서일까요. 그것보다는 바로 면대면(FACE TO FACE) 접촉이 늘어나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 전에 전화나 메일로 부탁하던 것이, 이제는 직접 만나 팔아달라, 빌려달라, 써달라는 말을 하며 사정을 해야겨우 체면치레하고 그나마 성사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입니다.
--라디오 사연들도 팍팍한 사연 급증
제가 아는 방송사 사람 얘기에 따르면 요즘 라디오에 보내오는 편지 사연들은 IMF 못지 않은 팍팍함과 고단함이 배어 있다고 합니다.
중소기업 사장이 직원 월급 못주게 돼 자살한 이야기, 열흘에 한 번 일거리를 받아다가 집에서 일하는 주부가 이제 주 1회 아니 보름에 한 번 일을 하니 아이들 학원부터 끊게 되었다는 사연, 아이들을 보호소나 외가에 맡겨 고아 아닌 고아가 늘어나고, 난방비를 줄이기 위해 문풍지나 비닐 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야기, 택시로 한달에 40만원도 못벌어 집에서 쉬라는 아내의 이야기 등 밑바닥은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다는 것을 체감한다는 것이죠.
일 떨어지고 문 닫고 하는 현실이 한 나라의 중심축인 중산층의 붕괴 가능성으로도 이어집니다. 집 한 채를 사기 위해 평생을 바친 계층들까지 직격탄을 맞는 형국인 것이죠. 월급이라는 고정 수입으로 은행 빚을 내 집을 구입했는데, 이자는 높아지고 물가 올라가니 생활비 증가합니다. 그런데 막상 집을 팔려고 해도 집값은 떨어지고 집이 팔리지도 않는 가운데 생활비가 늘어나 파산 지경에 이르는 것이죠. 그러니 아이들을 더 낳는것은 언감생심이겠죠.
--기업들도 마케팅비 삭감 구조조정 몸풀기
제가 만나본 기업들 역시 사정이 안좋습니다. 기업들은 장기 불황에 대비, 일련의 프로그램을 마련한 듯합니다. 우선 영업을 위해 개인이나 부가 쓸 수 있는 법인카드 액수를 줄이고, 다음에는 광고비용을 줄입니다. 그리고 마케팅비 삭감하고 나서 계열사 차례 차례 정리합니다. 마지막에 남은 것이 구조조정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신문이나 TV의 광고들의 편수나 질도 점점 나빠지고 있습니다. 3대 공중파 방송사들이 올해 몇 백억대의 적자를 예상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요. 제가 아는 게임사의 홍보 담당자들의 퇴사도 줄을 잇고 있습니다. 광고 중 가장 늦게 줄인다는 온라인광고도 줄고 있는 양상입니다. 온라인 광고는 비용이 적게 들고 효과가 빠르며 데이터를 바로바로 받아보는 장점이 있어 제일 늦게 줄이는 부분입니다. 최근 네이버 3분기 매출이 준 것을 보면 경기 침체의 영향이 온라인광고까지 미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
그러나 가장 심각한 것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입니다. 만약 불황이 계속될 경우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위기는 예측이 불가능하다는 점이 될 것 같습니다. 누구나 입을 열면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이 제일 무섭다고”들 하기 때문이죠.
물론 현재의 불황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고 미국은 물론 중국 일본 등 전세계적인 경제 침체가 맞물려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 쉽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이죠. 경제 관리나 학자들의 전망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욱 힘들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그 중 특히 환율이 핵심 문제라는 말들도 많이 나옵니다. 9일 현재 달러가 1450원대, 일본 엔화가 1550원대, 중국 위안화가 190원대, 유로화가 1870원대입니다. 수출로 먹고 사는 나라가 원자재 수입에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야 하는 구조니 더 말해야 무엇하겠습니까. 지난번 e스포츠 행사로 중국 항저우에 갔을 때 대전에서 항저우에 진출한 한 중소기업체 사장은 “올 4월 140위안이었을 때 이미 손해를 보면서 물건을 생산하게 되었다. 걱정이다”고 말했습니다. 출판사를 하는 한 사장님은 일본에서 책을 들어와 한글판을 내는데 한국돈으로 계약을 해 가슴을 쓸어내렸다고 했습니다.
IMF 때는 적어도 금모으기 등 뭔가 대안이 나와 국민들의 마음을 묶었고, IT라는 경제의 돌파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예측할 수 없는 불안을 제거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게임 IT담당 기자로서 지금 상황에서 뭔가 돌파구를 마련한다면 게임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올해 게임 수출 액이 10억달러를 넘어선 것을 보면서 스친 생각입니다. 게임을 수출한 업체들은 환율 덕을 톡톡히 본 것도 아이러니이긴 하지만요. 200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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