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두 작가 중 하나인 박상연 작가가 한 인터뷰에서 '선덕여왕'이 너무 기록된 역사를 무시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가능하면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더 많이 이야기하고, 더 많이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더군요.
솔직히 참 무책임한 얘기입니다. 사극도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자유로운 역사 해석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신라시대를 조명한 사실상 두번째 사극(그리고 첫번째는 많은 사람들이 아예 기억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삼국기'라는 사실을 생각하면)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역사의 '의미'에 충실한 드라마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요즘 춘추의 역할이 드라마의 활력소가 되고 있긴 합니다만, 이 드라마의 춘추 해석은 좀 무리한 구석이 많아 보입니다. 드라마 속의 춘추는 스스로 '왕이 되겠다'며 나서고 있지만 진평왕 치하의 춘추는 그렇게 마음 편한 상태였을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조 후기의 세손 이산과 비슷한 처지였다고 보는게 좋을 듯 합니다.
태종무열왕 김춘추에 대한 '삼국사기' 기록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太宗武烈王立. 諱春秋, 眞智王子伊龍春之子也.母, 天明夫人, 眞平王女
태종무열왕이 즉위했다. 이름은 춘추. 진지왕의 아들인 용춘의 아들이다. 어머니 천명부인은 진평왕의 딸이다. (드라마만 보시던 분은 용춘은 숙부인데 무슨소린가 하시겠지만 '삼국사기'는 용수와 용춘을 동일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신라 26대 왕인 진평왕이 아들이 없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이로써 남자 성골이 사라졌고, 역사상 최초의 여왕이 등장합니다. 여왕 등극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을 정도로 여자가 왕이 되는 것은 누구에게도 쉽게 환영받지는 못하는 사건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만약 이때 27대 왕인 덕만공주=선덕여왕이 왕위에 오르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왕이 됐어야 했을까요. 남자 중에서 왕위에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은 누가 뭐래도 춘추입니다. 폐위당한 진지왕의 손자이며, 어머니 또한 진평왕의 딸이므로 사실상 성골입니다.
그렇다면 왜 춘추가 있는데도 덕만공주가 왕위에 올랐을까요?
진흥왕(24대왕) - 동륜태자 - 진평왕(26대왕) - 덕만(27대왕)
진지왕(25대왕) - 용수(용춘) - 춘추(29대왕)
드라마 '선덕여왕'에서는 모계에만 주목했기 때문에 덕만공주가 춘추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저 따뜻하기만 합니다. '비명에 간 언니 천명공주의 아들'이라는 시선만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계에 따라 보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들은 6촌 남매의 같은 항렬인 왕위 경쟁자입니다. 덕만공주 대신 춘추가 왕위에 올라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럼 왜 춘추는 바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을까요.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진평왕과 당시의 지배 세력들이 춘추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그 정도로 - 여자를 왕위에 올려 놓을 정도로 - 꺼렸기 때문이라는 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춘추와 춘추의 아버지 용수(혹은 용춘)는 진지왕이 폐위당하지 않았다면 적통으로 왕위에 올랐을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 용수의 장인인 진평왕은 진지왕과 그 후손들인 용수(용춘)의 왕 자리를 빼앗은 인물인 것이죠. 아울러 진평왕을 왕으로 만든 사람들은 모두 용수-춘추 부자의 적들인 셈입니다.
진평왕은 숙부인 진지왕을 내쫓은 대신 그 아들이며 자신의 사촌인 용수를 사위로 삼아 포용하는 정책을 택했습니다. 하지만 왕위를 물려 줄 정도로 믿지는 않았습니다. 설사 진평왕이 믿었다 해도 진지왕을 내쫓고 진평왕을 옹립한 세력들은 용수를 왕위에 올려놓는 것은 자신들의 목을 용수의 정치적 보복 앞에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래서 춘추는 감히 덕만의 경쟁자가 될 수 없었던 겁니다.
이 대목에서 용수-춘추는 한 다리 건너 조선시대 정조의 위치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왕위에 올랐으나 이내 빼앗긴 아버지의 정치적 유산을 갖고 있는 신세였기 때문입니다.
비록 진평왕이 용수를 사위로 삼으며 감싸긴 했지만, 폐위된 왕의 자손이라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언제 죽음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존재들입니다. 또 진평왕을 왕위에 올려놓은 사람들은 춘추가 왕위에 오르면 정치 보복이 시작될 것을 걱정하는 사람들이라는 면에서, 영조때의 노론 벽파와 다를 게 없습니다.
결국 용수, 용춘, 춘추가 살아남는 길은 '왕위에는 아무런 욕심이 없음을 강조'하는 길 뿐입니다. 다른 마음이 없음을 증명하고 진평왕-선덕여왕에게 적극 협조하는 길 뿐이죠. 이 대목에서 '나도 왕위계승권이 있다'고 설치는 길은 '나를 죽여주세요'하는 거나 마찬가지일겁니다. 똑똑하기로 유명했던 춘추가 안 그래도 주목을 받는 처지에서 이런 자살행위를 할리는 없겠죠.
오히려 춘추는 대외적으로 신라의 위치를 높이는 외교 활동으로 큰 공을 세우고, 안으로는 자신의 안전을 보장받기 위해 신라 무장 세력의 핵심인 유신과 연합합니다. 이 연합은 자신이 유신의 여동생과 결혼하고 거기서 태어난 조카를 다시 유신에게 시집보내는 겹사둔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런 연합은 선덕여왕 사망 직전에 발발한 비담-염종의 난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대체 선덕여왕의 치세에 반대한 세력이라면 왜 여왕이 죽기 직전에 난을 일으켰을까요. 이것은 난의 상대가 여왕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줄 뿐입니다.
다시 말하면, 비담-염종은 이미 신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춘추-유신의 세력에 대항해 난을 일으킨 것입니다. 즉 비담과 염종의 난은 춘추의 등극을 원하지 않고 있던, 진지왕 폐위 세력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던 것이죠.
비담과 염종의 난을 진압하기에 앞서 춘추-유신은 진덕여왕을 옹립, 자신들이 '왕위에 사심이 없음'을 천명하고 반대세력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나머지 7년 동안 이 겹사둔 콤비는 신라 안팎을 다져 춘추의 등극을 위한 준비를 마칩니다. 결국 이런 오랜 준비의 결과로 춘추, 즉 태종무열왕 이후 약 100년간 이 가문에 도전할 사람은 없어지고 맙니다. 
그니깐 이런 식의 희화화도 좋고, 촌장의 목을 한방에 날리는 결단력있는 여왕 덕만의 모습도 좋습니다. 다 좋지만, 역사가 가야 할 방향을 너무 엉뚱하게 돌려 놓는 시도는 좀 곤란하다고 하겠습니다.
물론 '천추태후'와 비교하면 양반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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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김춘추를 보면서 강호동을 떠올리다
Tracked from 빛무리의 유리벽 열기2009/10/13 08:02선덕여왕 41회의 주인공은 명실상부하게 어린 김춘추(유승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그 아이는 종횡무진 대단한 활약을 했습니다. 천하의 미실(고현정)에게 보기좋게 한 방을 먹였고, 모든 사람들의 허를 찌르며 간담을 서늘하게 했습니다. 놀라운 지략과 대담한 배포는 그야말로 범상치 않은 기운을 타고난 인물임을 증명하고 있더군요. 어차피 하늘의 뜻이 미실을 떠나 덕만과 춘추에게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41회에서..
본색을 드러낸 김춘추, 선덕여왕에 재미를 더하다
Tracked from 친절한곰탱이2009/10/13 12:08이쪽 저쪽에 떡밥을 던지고 다니던 춘추가 드디어 본색을 드러냈습니다. 그야말로 내재되어 있던 다크포스가 아낌없이 분출됐던 에피소드라, 전반적인 활약은 춘추가 다 하고 돌아다니고 있어요. 덕만네는 춘추의 속을 알 수 없어 이리저리 추측만 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춘추의 떡밥에 휩쓸려 본의아니게 데미지를 받고 있습니다. 분명 이야기만 봤을 때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였어요. 저번 주에 춘추는 황실사람들과 조정중신들 뿐만 아니라, 미실까지도 충격을 받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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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 일등.(첨해봅니다;)
저도 선덕여왕 보면서 역사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이산의 이병훈 감독님도 선덕여왕의 역사해석에 대한 우려를 보여주는 인터뷰를 하신 것 같던데...
다들 하는 얘기지만 재밌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모든 수용자들이 기록된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여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것을 감안하는 일이 점점 더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심지어 해외에서 한국어 가르치는 강사들이 '저건 그냥 드라마야. 실제 역사랑은 달라'라고 설명을 해주고 있다는데.
음. 갑자기 개콘의 한국어공부방이 생각나네요.
"이건 달라! 사실과! 뭥미,이건! 뭥미,이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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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렇게 읽고 보니 당연한 이치인데 그 동안은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군요! 너무 재미있게 읽고 트랙백 걸고 갑니다..^^
ㄴ. 감사합니다.^
^^*
순위권..
안그래도 이번주 보면서 좀 찝찝해 하고 있었습니다..
겹사둔.. 겹사돈이 바른 표현인듯.. 한데요..
사둔...이 어느새 쓸수 없는 말이 됐군요. 예전엔 사둔은 우리말, 사돈은 한자말로 둘 다 쓰는 말이었는데.
견마(x) 경마(o)인 나라에서 또 반대 경우도 있고, 참 힘듭니다.
일제때 순한글을 한자화시켜 말살시키는 정책을 섰습니다. 그래서 지금 마을이름같은것이 순한글이라해도 한자화된 곳이 많습니다.
아래 사둔과 사돈에 대한 한말글연구회 회장의 기사가 참고가 될 듯합니다.
‘사둔’이란 말은 사라져 가고, ‘사돈’이란 말이 퍼져 가고 있다.
많은 사전이 ‘사돈’이 옳고 ‘사둔’은 잘못이라고 하고 있는데, 오직 〈우리말 큰사전〉(1992)에만 제대로 ‘사둔’이 옳고 ‘사돈’은 잘못이라 했고, 〈표준국어대사전〉(1999)에는 ‘사돈’에다가 ‘사둔’의 뜻까지 보탰다.
이러한 혼란은 한자말이 아닌 것을 그대로 쓰지 않고, 못된 버릇으로 한자로 취음(소리가 같은 한자로 적는 일)하여 ‘査頓’이라고 적은 것을, 그만 한자말로 잘못 여기게 된 때문이다.
그 ‘頓’자의 음과 뜻은 “[돈]: 조아림. [돌]: 사람이름. [둔]: 둔함.” 들이다. 취음할 때에 그 중에서 “[둔]: 둔함”을 취하여 ‘査頓[사둔]’으로 옳게 했다.
그런데 훗날 사람들이 문제였다. 지금 사람들처럼 [둔]은 모르고 [돈]만 아는 것이다. 그래서 ‘사둔’이 ‘사돈’으로 둔갑해 버렸다.
지금도 한자에 물들지 않은 나이 많은 분들은 흔히 ‘사둔’이라고 한다.
사실은 ‘사돈’과 ‘사둔’은 옳고 그른 관계가 아니라 다른 말이다.
“사돈을 하려면 그 근본을 알아라”라는 속담이 있다. ‘사돈한다’는 것은 혼인한다는 말이다. 〈훈몽자회〉(1527)에도
“婚: 사돈 혼. 姻: 사돈 인.”
이라고 했다.
‘사둔’은 ‘사돈한 관계’다. 만주말 사전에
“SADUN: 남편의 처가. 아내의 시가.”
라는 말이 있다.
만주는 옛날 우리 땅이었으니까 우리와 같은 말과 풍속이 있다.
허깨비 ‘査頓’은 아무것도 아니니까 버리고, ‘사돈’과 ‘사둔’을 구별해 쓰자.
정재도/한말글연구회 회장
저도 사돈과 사둔 둘 다 쓰기는 하는데..
그렇게 차이가 있는 지 몰랐어요..
그냥 사돈이 표준어고..
사둔이 사투리인줄 알았지요.. ㅎㅎ
한말글연구회 회장의 기사를 두번이나 정독하고 대충 의미를 파악했네요..
그럼 사돈은 혼인이라는 의미고, 사둔은 사돈한 관계라는 거지요??
우리말 정말 어렵군요..
정말 그렇군요. 덕만과 춘추는 이모와 조카 사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은 육촌남매간이라니 그런 정황을 따져보면 김춘추는 역적의 후손인 셈인데 님말 듣고보니 드라마가 좀 이상하긴 이상하네요
뭐 그럴 수 없는건 아니죠. 다만 좀..
오랜만에 순위권입니다.^^
이렇게 상상력이 많이 가미된 드라마를 보면 어릴 때 아빠와 함께 조선왕조 실록을 옆에 펴놓고 봤던 '조선왕조 오백년'시리즈가 생각나요. 이 정도까지 실록을 따르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실제 인물을 너무 바꾸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z
어제는 진짜 무슨 김춘추가 카이저 소제도 아니고 말입니다.
으하하 덕만이 차 마시다가 막 잔 떨어뜨리고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감사 합니다.늘 좋은일만 있으시길 기원 합니다.
무슨 일이 도움이 되셨는지... ?
정말 조금 역사도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아마도 용춘공을 왕으로 해주려다 딸이 총명한 것을 보고 마음이 바뀐 것이 아닐지요.
트백백 걸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사촌이 딸을 해칠까봐 불안했을 수도...^
말이 안되는 말씀이네요. 김춘추가 왕이 된다고 덕만을 해칠수있었으면 진평왕이 김춘추를 먼저 해쳤겠죠?^^
좋은 글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라도 배워야죠.
드라마는 재미로만 요즘 보고있거든요.
그 태두리 내에서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가느냐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ㅎㅎ
방송이라서 어쩔 수 없는 한계인 듯도 하고요.
역사는 많은 분들의 글을 보고 배우려고 합니다.
네. 실제론 어땠나 생각해보시는 분들이 많아지는 건 분명히 좋은 일인듯 합니다.
댓글남겨요
송기자님의 다양한 분야의 관심과 해박한 지식을 늘 흥미
롭게 보고 있는데, 특히 선덕여왕에 관해선 단연 전문 기
자 같습니다.
사실 언제 읽었나 기억도 안나는 신라 시대 얘긴데 드라마
도 흥미롭지만 기자님 덕택에 새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생
겨납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상 허구의 비교평
가를 부탁드립니다.
좋은 정보 얻고 갑니다.
어제는 너무 피곤해서 선덕을 넘겼는데...
조선시대와 신라시대는 전혀 달랐던것 같아요.
조선시대 유교 사상에 입각해서 보면
님처럼 그런 생각이 들지만
신라시대는 불교 사상에 좀 개방적인 사회에..
골품제라는 특수한 상황에 있었기에
여왕이 나올수 있지 않을까요
제발 글좀 읽고 댓글좀 달아라
제가 추천 버튼을 누르니 단숨에 24에서 96으로 바뀌는군요. 이게 제 힘입니다. ㅋㅋㅋ (실은 너무 늦은 추천 사죄드리려고요. 오전에 회의가 있어서 페이지 열어놓고 이제야 추천 버튼 눌렀다는. ㅎㅎㅎ ^^;;;;;)
좀 많이 심합니다.
아니 너무 많이 심합니다.
드라마 만드는 사람들.
이런 것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니,
나라를 아무렇게 만들어가도 별로 나쁠 것 없다고 생각하게 되지요.
김춘추는 유신의 뒤에서 애기처럼 겁만은 병신이었음
일본가서 백제좀치게 도와주면 쌀도주고 엄청잘해주겟다고하다가 칼맞아 뒤질뻔했으니 간신같은 아부로 겨우살아서돌아온다음
떼놈을 그러니까 김춘추의 조상이지 동족이 짱께니까
창아가서 고구려 땅을 다줄테니 백제좀 주세여
해서 한반도 를 피바다로 만들어 한민족을 몰쌀한 개쓰레기
글쎄...지역감정의 일환으로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나당연합까지 비난하는 부류가 있긴 한데...
사실 백제 개로왕은 북위에 요청해서 고구려를 쳐달라고한 사실이 있고, 고구려 역시 동위에 요청해서 백제를 쳐달라고 요청한 사실이 있지.
백제나 고구려가 민족주의에 입각해서 외세를 안 끌어들인게 아니라구.
신라의 삼국통일과 천년의 역사는 우연히 이뤄진게 아냐.
백제같은 내분과 배신의 역사에선 불가능한 것이었지.
개로왕을 죽인 고구려 장수가 백제 장수 출신이고,
백제 부흥운동을 탄압한 당나라 장수가 백제 장수 흑치상지였다는 것이 시사하는 바가 크지.
백제는 내부적인 결속조차 안되는 나라였어.
백제에 통일의 역량이 없었다는 것은 둘째치고, 간신히 통일했어도 순식간에 분열했을 것이다.
물론 고구려, 신라에도 반란은 있었지만 적국에 붙은 경우는 드물지. (혹시 몰라서 드물다고 했지만 내 기억엔 없다.)
훗날 후백제 역시 견훤의 아버지가 견훤을 배신하고, 견훤도 아들 신검을 배신해서 적국에 붙었지.
후백제의 자멸도 적국에 붙을 지언정 내부 결속은 불가능했다는걸 말해줘.
백제의 내부 역량이 통일은 커녕 유지도 불가능했다면
외적 역량은 어땠을까?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광개토대왕비에 백제를 일컬어 백잔(백제 찌꺼기)라고 적고있어. 잔재, 잔반...할때 그 잔(殘)이야.
또 가야는 왜 백제를 버리고 신라를 선택했을까?
결국 가야 왕족들이 신라 귀족이 되어 백제를 멸망시킨 주도 세력이 됐는데 왜 그랬을까?
백제는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안 되는 나라였을 뿐이야.
참고로 왜구들을 한반도에 끌어들인 것도 백제지.
혈통적으로도 가장 가깝다고 봐.
ETLLL은 김춘추가 왜구를 끌어들이려고 했다는데,
사실 왜구를 끌어들인건 백제거든...
당시 신라입장에서 고구려는 신라의 실지(잃어버린 땅)이 아니었기 때문에 고구려를 떼주고 백제 땅을 뺏았다는 것은 얼마나 멍청한 생각인지 알 수 있지.
신라는 그냥 현실에서 최선을 다한거고, 성공한거야.
신라+당 VS 고구려+백제+돌궐+왜구...의 전쟁에서
백제가 쪼다였기 때문에 신라+당이 이긴거고,
다시 고구려를 멸망시킨 당 VS 신라의 싸움에서 신라가 한반도를 지켜낸거라구...
고구려, 백제 유민이 신라에 귀순한 것 역시 신라의 역량이 고구려, 백제를 받아들일만 했기 때문이지.
하양까망님
일부는 맞기는 하지만...
백제가 대륙백제와 내륙백제로 나뉘었던 시기로
흑치상지는 대륙백제의 인물...
같은 백제였지만.. 결국 종말에 가서는 다른이치의 백제라는걸 왜 몰라??
백제가 결국 쪼다였기에 멸망했따구?
한반도를 지켜낸게 신라라구?
깊지도 못한 상식으로 지껄이지 말라구
수많은 사학자들이 지금도 그러지
통일은 신라가 아닌 백제가 이뤄냈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한반도가 아닌 만주벌판을 넘어 몽골까지의 땅이었을거라구.
신라의 가장 큰 단점은
나당연합이었다는 것이지.
신라가 그렇게 죽자살자 싸워 영토를 넓히려는 목적이 무엇인가?
그것은 농토가 없었기 때문이야.
산으로 둘러쌓은 척박한 신라땅은 농토 한결 한결이 그만큼 생명으로 이어지고... 그래서 결국 그 농토를 위해 죽자사자 일어났기에 전쟁에서도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원인이야...
물론 나당연합이 큰 힘이 되었지만...(짱꼴라의 힘은 무서운게야)
어줍잖은 지식으로 잘난척 하지 마쇼
대륙백제 내륙백제 운운하는걸 보니 환빤가?ㅋㅋ
수많은 사학자들이 그런말 한적도 없지만
백제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수도가 함락당할 위기에 쳐했는데도
귀족들은 몸사릴 정도로 왕권이 불안했던 백제가?
뭔가 단단히 착각하고 있는데 삼국시대가
왕이 명령 내리면 전 국가가 동원되어 총력전을
펼친 정도로 왕권이 강한 시기였니 언제부터?ㅋㅋ
광개토대왕이 삼국통일을 못한게 둘 다 한민족이니
어여삐 여긴거라고 할 놈이네 ㅋㅋㅋㅋㅋㅋ
신라만 죽자살자 영토를 높이려고 한게 아니라
힘의 균형이 신라쪽으로 기운거겠지
이건 뭐 하나부터 열까지 캐뻘소리에
무식이 통통 튀기는 헛소리의 나열이군하 ㅋㅋ
신라가 통일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농토를 늘리려고
죽자사자 싸웠기 때문이다?
그럼 고구려, 백제는 슬~슬~ 싸웠단 말인가? ^^
백제가 통일했으면 중원을 먹었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에 불과한 추측보다는 단군이 10년만 더 살았으면 전세계를 정복했겠다는 추측이 더 맞겠는데 그래.
전술했지만, 백제는 안되는 나라였다니까.
대륙백제와 내륙백제가 달랐다는 주장은...
참 할 말이 없게 만드네...
마치 신라 구 김씨와, 신 김씨 세력은 서로 달랐다,
그래서 다른 나라다...라는 주장과 마찬가지지.
다시 말하지만, 나당 연합을 성공시킨건 신라의 역량이
우수했기 때문이지 고구려, 백제가 민족주의 차원에서
외세를 안 끌어들였기 때문이 아니라니까.
고구려, 백제도 외세를 이용하려고 노력했다고.
특히 백제는 왜구를 한반도에 끌어들이려고 무진장 노력했다구.
왜구들이 한반도 약탈에 재미붙인 계기란 말이지.
나중엔 약탈로 만족못하고 아예 병탄하려들게된 계기지.
원교근공은 외교의 기초 중에 기초라구.
고구려, 백제, 돌궐, 왜구 연합이 신라를 다구리하는
동안 당나라는 내부 사정으로 출병을 못하고 있었는데
넷이서 신라 하나를 공략 못한게 패인이었단 말이야.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래서 백제가 쪼다여서 졌다는 말이 나오는거라구.
왜구들의 도움까지 받았으면서.
반대로 신라의 김유신이 그만큼 뛰어났던거지.
신라가 삼국통일을 한게 단순히 당나라의 도움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데...
그럼 백제는 고구려의 도움을 받았는데 왜 통일 못했나?
신라의 승리는 당의 지원 때문이 아냐.
신라 입장에서 당은 결국 돌궐과 고구려 견제의 역할이었을 뿐이지.
백제 공략전에서 당군은 수시로 수세에 몰려서
김유신이 이리저리 구해주러 다녀야했다구.
신라의 역량은 노블리스오블리제와 포용력에 있었던거다.
왕족들이 어릴 때부터 화랑으로 전쟁의 선봉에 섰고, 화랑출신이 아니면 출세를 못하는 분위기였다구.
신라가 가야를 포용했고, 후에 고구려, 백제 유민을 포용할 수 있었던 역량이 있었기에 통일이 가능했다구.
춘추와 이산, 멋진 비교입니다. 생각할수록 비슷한 상황 속에서 왕위에 올라 성군이 된 사람들이군요.
차라리 이산 느낌의 춘추 이야기를 드라마로 했으면 더 재미있는 드라마가 나오지 않았을까요?
참 2차원적 발상입니다. 김춘추를 이산과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한것은 이 블로그 주인장님의 개인적 의견에 불과하지 학계에서 전혀 그렇게 보지 않는답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정조와, 태종무열왕은 비교가 안된다고 봅니다. 태종무열왕은,, 중국의 힘을 빌려서 통일하려고 하다가 중국에 한반도 땅을 다 먹혀버릴뻔하고 신라도 망할뻔했는데 백제-고구려 유민과 연합해서 몰아냈죠. 고구려에서 탈출한 일화도 그냥 얍삽하게만 보입니다요
몇년전부터 사극이란 장르는 단지 한국계집을 위한 왜곡 판타지 소설로 변했잖아??
이제와서 이래봐야 뭐;;
어떤 픽션을 보던지 당연히 가상임을 전제하에 보아주여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사실을 되짚어보는 이런 글 또한 필요하구요.
만약 제한된 사실안에서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과연 지금 처럼의 관심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좀 넓은 의미로 문학의 범주에 드라마를 넣고 보면
<적어도 시나리오는 문학의 범주이니,,,,,,,>
시대를 담아야 하는 드라마가 당시 시대를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아무래도 매력이 없지요.
차라리 역사 프로그램을 보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작품으로서 이해하고 지금 현재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욕구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선덕여왕"은
충분히 가치 있다고 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이런 사실을 바로 인지하는 글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올바른 역사를 알 필요는 있는 것 이니까요. ^^
그래도 역사적 현실성을 무시해선 안됩니다.
비교하면 선덕여왕이 "내가 부군이 되겠다"고 외친건 충격적이긴 하나 당시 사람들의 의식과 상황을 미루어볼때
나올수도 있는 말로 이부분은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인다 할수 있겠으나
지금 춘추의 "진골은 천한제도"라고 외친건 중세 유럽시대에 "기독교는 천한 종교다"라고 외친것과 같은것으로 아무리 왕족이라하나 당장 찢어죽여도 할말없는 말도안되는 설정이고
더군다나 어린 춘추가 권력의 야심을 드러네는 것도 나를 제발 죽여주세요 하는 짓이라
황당무계하여 공감이 안됩니다.
드라마는 허구로 상상력을 얼마든지 발휘할수있으나 그 상상력은 어디까지나 현실성(리얼리티)을 바탕에 두어야 합니다.
선덕여왕 이점이 쬐금 아쉬워요. 그냥 판타지라고 보면 쉽지만...
'기록에 입각한 역사'와 '역사에 기반한 상상력'이란 0이냐 100이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 두가지가 어느 선에서 적절하게 조화되느냐의 문제죠. 그리고 현재 위치에서 볼때 '선덕여왕'은 지나치게 그 균형이 무너져 있습니다.
자꾸 '역사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라는 식의 엉뚱한 주장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용춘과 용수를 삼국사기에서
동일인물로 보고 있다는건 어떤 근거가 있는건가요?
삼국사기 태종무열왕편에 용춘(용수)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어주셨어요.
지금도 선덕여왕 무척 재밌지만
그냥 역사에 나와있는데로 드라마를 만들어도 재밌었겠다 싶어요.
맞아요 비담이 난을 일으킨건 춘추-유신을 견제하기 위함이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춘추-유신측은 여왕을 죽이려했다는 식으로 몰아서 쓴거고
선덕여왕이 죽고 허수아비 여왕을 세운것도 그렇고
춘추-유신은 서두르지 않고 차츰차츰 그러나 완전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이
참 무섭다는 생각 마저 들정도에요
헌데 생각 해보면 조선시대에 들어서
역사가 상당히 왜곡 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유교사상이 강한 조선시대에서
여자가 왕이였다는걸 상당히 불편했을것이고
천추태후도 역사에 기록된것과는 사실이
아닐수도 있다는 주장도 나오기도 하지요
물론 선덕여왕도 역사에 기록된 사실과
상당히 틀릴수도 있지요.
그시대에 무슨일이 있엇는지는 기록으로만
알뿐 진정 알수있는건 몰르지요...
김춘추가 그렇게 대가리가 좋아서.... 중국에가서 넙죽 업드리고.... 중국의 개가 되고... 중국의 앞잡이가 됬냐?
김춘추 이 쉽세가 왕만 안됬어도.... 벌써 삼국통일되고.
지금중국땅이 한국땅이 되었을것이다.
죽일쉐키.... 아 저 또라이 같은 쉽세가 어찌 왕이 되가지고
여기도 실명제를 하든지 해야 되겠군요.
아니면 나쁜건 나쁜데로 받아들이고 계시나?
뭥미 ?
역사에서는 그저 교훈만 얻으면 될 뿐.
천 년 넘게 흘렀으니 현대인 중에 누구 김춘추 피 한 방울이라도 이어받지 않은 사람이 있을는지?
그때 김춘추가 없었으면 고구려 위주의 통일이 되었을지도 알 수 없을 뿐더러 그렇게 되었다고 해도,
현재의 국민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사람들이 그 나라를 잘 지켰을지도 전혀 알 수 없겠죠.
하하하.
신라는 조상의 나라가 아니고, 고구려나 백제만이 당신 조상의 나라라고 생각한다면 윗글을 이해할 수도 있을까...
백제를 구하기 위해 십만 대군을 보냈다가 나당연합군에 몰살 당한 왜/일본을 칭송하는 글도 하나 써주세요.
중국 땅이 한국 땅이 되었을 것이다...
만약에 우리 민족이 과거 중원을 정복해서 소수의 인원으로 수백년동안 중국 영토를 모두 지배했다면
청나라 만주족처럼 한국이란 나라도 이미 사라졌겠지요.
김춘추는 풍전등화의 조국을 구하기 위해
plus
자신의 딸과 사위(아마 손자/손녀까지)를 죽인 원수를 갚기 위해
인접한 적국을 먼 나라의 힘을 빌려 정벌했을 뿐입니다.
결국 죽기 가문의 원수 두목(자신의 딸 가족을 죽이도록 명령한)인 의자왕을 무릎 꿇리고 그 앞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복수에 성공할 수 있었고.
김춘추의 아들 문무왕 법민이 온갖 지략과 내부 단결로 당의 수십만 대군과 맞서 10 여년의 혈투 끝에 겨우 지켜낸 (비록 미완일 지라도) 통일이었는데,
그렇게 허망하게 내분으로 무너진 고구려와 백제가 신라의 참전이 없었다고
전성기 당나라의 침략으로부터 살아 남을 수있었을까?
하물며 그런 국력으로 어떻게 중국 땅을 다 정복하고.
역사나 사회현상을 아주 간단하게 보시는 분이시군요.
그런데 그렇게 사회나 역사를 보는건 아주 멍청한 사람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김춘추가 아니더라도 신라가 통일을 했거나, 백제가 신라와 마찬가지로 반쪽짜리 통일을 했을겁니다.
하지만 그당시 역량으로 볼때 가장 가능성이 높은건 신라였죠.
고구려가 거대한 제국을 세우기는 했지만 그건 김춘추의 시대로부터 200년도 전인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시대때 이야기입니다. 그 이후로 축소와 몰락을 거듭해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명제를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연개소문의 철권정치로 잠시 힘을 차리는듯 했지만 이후가 없이 흐지부지 망해버린걸 보더라도 고구려는 이미 망해가고 있었던 나라였습니다.
백제는 성왕과 위덕왕의 죽음으로 내분에 휩싸였고, 무왕 시기에 다시 나라의 기강을 세우지만 이미 한반도의 많은 부분을 잃고 자체적으로 한반도를 통일한 여력이 없었던 나라였습니다.
신라 역시 한강유역을 차지하고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지만 백제와 고구려를 동시에 상대할수는 없는 상태였죠.
그당시 어떤 세력이라도 한반도를 통일하기 위해서는 균형을 깨야만 했고, 결국 신라가 당나라를 끌어들여 균형을 깬것 뿐입니다.
신라가 하지 않았으면 백제가 했겠죠.
고구려는 통일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않고 지키기만 했으니까요.
왜 우리나라가 한반도에 갇혀있게 되었냐고 찌질거릴거면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에게 찌질거리는게 최우선이 아닐까요?
당시 신라를 섬멸할 힘이 있으면서도 안한게 바로 그사람들이니까요.
고구려가 신라를 멸망시키려 한적이 있었죠.
그 강대한 고구려가 약소국인 신라를 왜 멸망을 못 시켰을까요?
우리의 역사에서는 백제가 도와줬다고 하나
사실상 왜구와의 결합이 있었죠
무엇보다 백제의 수많은 침범이 강력했던 원인도 있었지만..
백제가 그때부터 대륙백제는 점차 점차 세력이 소멸이되고
결국 내륙백제만이 존재하게 되는거구요...
쭈구리~님.
역사왜곡 하지 말고...
신라가 왜구와 동맹맺은 일은 없다.
백제가 왜구를 수시로 끌어들이고, 왜구를 사주해서
신라 해안에서 노략질한 역사가 있을 뿐.
백제와 왜구는 아주 밀접한 관계였고, 백제가 망하니까
왜구가 대대적으로 출병해서 백제를 도와주려고 했지.
그래봤자, 한미연합군이 배트남을 구해주지 못했듯이,
찌질한 백제는 망할 수 밖에 없었던거지.
단지 가야가 신라와의 합병 이전에 중립자유무역을 했기
때문에 왜구들이 김해평야의 쌀사러 들어오곤 했었지.
백제가 뒤통수치고 임나를 점령해버려서 가야가 신라에
붙은 계기가 된 거고.
왜구들은 가야가 아예 신라 연맹에 들어가버릴까봐,
백제의 임나 지역 점령에 극구 반대했지만 백제는
뒤통수를 쳐버린거지.
신라와 왜구의 결합은 무슨...
백제와 왜구의 합체라면 모를까....ㅋㅋ
참.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원조한 것은 백제에서 왜구를
사주해서 신라에 침략했기때문에 신라땅에서 왜구를 몰
아내고, 한반도에 왜구가 발붙이지 못하게 하기 위한건데,
고구려가 신라를 공략못한 이유가 왜구가 신라를 도왔기
때문이라니 무슨 터무니없는....ㅋㅋㅋ
뭐 역사에 충실하게 만들다가 일부 상상력을 발휘하면 진짜 다들 그것도 사실로 믿게 되겠죠.
그러니 처음부터 사실과 다른 거 많이 박아야 허구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사실 천명을 덕만의 쌍둥이 언니로 설정해야 할 큰 이유가 뭐 있나요?
(서동요를 봤으면 덕만이 언니로 나왔다는 걸 기억할 수도 있고, 단순한 거니까 이게 사실과 다르다는 얘기 정도는 나돌 수 있으니까)
그런 것부터 사실과 다르게 박고, 다른 것도 뭐 믿거나 말거나 하라는 거고...
그냥 믿을 생각 없는 사람은 뭐 모르면 소설을 쓸 수도 있을 것이고,
생각 있으면 좀 알아보고 비교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죠.
사실 뭐 역사 자체도 왜곡된 것이 꽤 있으니...
드라마는 드라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확하게 역사적 사실만을 다룬 역사드라마(그런게 있던가요?)라면 역사적인 사실에 치중해서 만들겠지만...역사드라마라해도 대부분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하여 작가의 상상력이 더해지는게 기본일겁니다. 물론 기본적으로 역사의 큰 줄거리는 건들지 않고 주변을 다듬는 정도겠죠. 하지만 상상력이란것은 때론 큰 줄거리도 건들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조선말 쇄국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일본이 조선을 침략해 식민정책을 펴지 않았다면? 하는 식으로 비틀어 드라마를 만들어도 재미있겠지요. 뭐 선덕여왕이 그런 식으로 만든다..라고 하는게 아니니 역사의 큰줄거리를 벗어났다 안벗어났다...이런 논의를 할만하다 생각합니다만, 그래도 드라마는 드라마입니다. 드라마를 보고 우리 역사가 그랬구나...하는 식으로 생각을 한다면 창피한 일이죠. 아무리 역사드라마라해도 그것으로 역사공부하는 식의 오류를 범해서는 안될것입니다. 드라마라는것이 배울부분도 있지만 분명 작가의 상상력과 감독, 배우들의 생각들이 들어가 있는 것이기에 그것을 보는 사람들이 적절히 걸러주는 능력을 가져야 하는게 아닐까요?
작가의 말대로 선덕여왕을 통해 그나마 그당시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고 드라마가 역사와 어떤부분이 다른가...하는것도 비교해보는 재미를 누리는게 더 즐겁지 않을까요? ^^
(지금 이 view의 내용처럼 말입니다. ^^)
가끔 생각해봅니다. 만일 치욕스러운 한일합방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하고요. 아마 분단의 비극도 없었을테고 일본보다 훨씬 강대한 경제대국이 되었을수도 있고 반대로 역경없이 대충대충 살아오다가 그저그런 나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르고...(뭐 제 생각에 역경없이 지내진 않았으리라 생각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드라마를 실제 역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것 같은게.... 아쉬울 따름이네요...
'대체역사소설'이라든가 '가상역사소설'이라든가 하는 작품들은 이미 한 장르를 이루고 있죠. '비명을 찾아서'같은 작품들 말입니다.
김유신의 여동생은 춘추의 첫째 부인이 아닙니다. 물론 여동생이 무열왕비가 되긴합니다. 몇번째부인인지는 잘 모르겠는데 앞쪽부인의 딸과 김유신이 혼인합니다. 김유신이 환갑정도에 김춘추의 딸과 혼인한 것으로 압니다. 그 전에 천관과 사이에 자녀가 몇명 있습니다. 그들 중 딸을 백제에 미인계로 이용하였다고 들었습니다. 김유신은 정치적 야망을 위해 딸까지도 첩보원으로 이용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물론 가야인을 이용하였다고 평가받습니다.
유신의 여동생 문희가 춘추와 처음 혼인한 여자는 아니지만
첫째/정실 부인은 맞습니다. 즉, 역사에서 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낳은
아들과 딸만을 적통으로 기록하고 다른 자식들은 서자/서녀로 기록하고 있읍니다.
근친혼 금지, 동성동본 금지와 같은 유교적 혼례 관습은
고려말 이후에 정착된 것입니다. 즉, 유신의 처음 혼인은 아니지만,
첫째/정실 부인은 춘추와 문희 사이에서 낳은 지소부인입니다.
오직 지소부인이 낳은 원술랑 등만이 적자이고 마찬가지로
유신의 다른 부인/첩이 낳은 자식은 서자로 기록하고 있읍니다.
이것은 당시로서 매우 특이한데, 고구려와 백제와 달리
신라에서는 정실 부인을 한 명만 인정하는 전통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즉, 신라에는 항상 왕후가 한 명밖에 없었지만,
고구려와 백제에는 동시에 여러 명의 왕후가 존재했읍니다.
저는 김유신이 여동생이 춘추의 첫 부인이라고 주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김유신이 나중에 결혼한 부인은 여동생 문희가 태종무열왕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맞습니다. 자기 조카와 결혼한 거죠.
드라마라 시청률만 고려한다 할지라도! 심하네! 신라혈통을 강아지들 혈통으로 만들어 놓다니?
성골이 소진된 후, 춘추와 유신의 연합에도 불구하고 자연스럽게
진골들의 왕권다툼을 향한 혈투가 시작되었다고 보아야겠지요.
알천이 사양하지 않았다면 짧게라도 (진지왕 처럼)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춘추에게는 성골 비슷한 권위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즉, 춘추나 그를 이어 철혈 통치를 한 문무왕, 신문왕도 자신의 혈통을
新성골로 만드는데는 실패한 것이 분명합니다. 즉, 춘추 때나 문무왕, 신문왕,
그리고 계속되는 100년 동안의 무열왕계 통치 기간내내 진골들의
왕위 도전을 받게 되니까요.
"결국 이런 오랜 준비의 결과로 춘추, 즉 태종무열왕 이후 약 100년간 이 가문에 도전할 사람은 없어지고 맙니다."
라기 보다는
성골이 사라진 이후 진골로서 왕위를 계승한 춘추, 즉 태종무열왕과 그 후손은
이후 약 100년간 많은 진골들의 도전을 계속 받아야만 했는데,
이제는 소수의 성골이 아닌 수많은 진골이 모두다 왕위에 한 번씩은
흑심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맞는 말씀입니다. 다만 저는 그렇게 왕위 경쟁자가 많아진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적통 왕계를 이끌어 가며 통일신라의 융성기를 이끌 수 있었던 힘을 높이 평가하고 싶습니다.
드라마 이니까 허구로 만들어도 할 말 없다..
이런 식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역사 해석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해석상의 차이로 볼 수 없죠
천명공주가 죽고 유신이 비재를 치르고 지금까지 전개되어 온 내용들이 완벽한 허구로 이루어져 있는데,
춘추의 언행이 나름의 역사적 해석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건 도저히 이해 안되네요
그냥 시청률 재고를 위한 나름대로의 허구일 뿐이지 않나요?
뭐 어떤 관점에서 역사 해석이라고 봐줄수가 있나요
잘 읽었으며 좋은 의견 감사히 보았습니다. 예전에는 역사드라마가 지식의 전달 차원에 일부의 극적 요소를 가미했다면 최근에는 아예 역사의 틀을 벗어나는 정도가 심한 듯합니다. 조금 극적인 요소가 강했던 드라마도 비주류(?) 역사학자들의 문제제기나 가능성을 바탕에 두고 전개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최근에는 너무 극적인 부분을 강조하고 매력있는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얽히고 설키게 하는 게 왠지 억지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극적 요소에 대해서는 굉장히 흥미롭고 재미있게 보곤 하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저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집중력을 분산시키곤 합니다. 우리 드라마가 해외에도 방영되고 많은 청소년들이 시청하는 상황에서 최소한 안내글 "이 내용은 역사를 근거하여 인물의 이름을 사용했지만, 허구입니다" 정도는 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글에 오류가 있네요. 처음에는 여왕 등극에 반대하는 반란이 일어났다고 하다가 다음에는 난의 상대가 여왕이 아니라 춘추-유신이었다고 하고있으시네요..
그리고,,반대로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글대로 하면 김춘추가 왕위계승권에 제일 근접한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선덕여왕이 첫번째 여왕 등극을 한것은 선덕여왕이 왕이 되고자 하는 의지가 그만큼 높았음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요? 역사상으론, 선덕여왕이 성골이어서 왕이 됐다고 하는데, 그것도 신라의 기록이 아닌 고려시대의 기록이죠. 그리고 지금도 성골과 진골의 차이에 대해서 누가 명확히 말하지 못합니다. 성골과 진골에 대해서는 뭐 정확한 정보가 없고 그냥 성골여자라서 왕이 되었다 이런 기록밖엔 없는겁니다. 그만큼 신빙성이 떨어지고 후세에 유교적 관념을 지닌 사관이 왜곡해서 쓸 가능성도 있는 겁니다.
그리고 글에서 줄곧 정조와 비교하면서 진지왕-진평왕, 진지왕 후손과 진평왕 후손과의 권력다툼이 있었던 것으로 가정하고,,있으신데,, 그 추론이 틀렸을 수도 있겠죠. 너무 확신에 차서 말하시니; 신라 역사는, 너무나 사료가 적어서 이렇게 확신할수있을만한 무슨 자료가 없죠. 드라마가 역사 왜곡한다고 하는데 왜 이 블로그 글을 그대로 믿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으실까요.
난의 상대가 춘추-유신이라는 건 여왕 죽을때쯤 일어난 것이라니 여왕등극에 반대해 일어난 반란하고 다른건데 잘못 읽으셨네요 어짜피 이글은 보지도 않겠지만
대체 뭐가 오류라는 말씀인지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sks20jun 님의 댓글을 보고 깜짝 놀라 검색해봤습니다.
적어도 두산백과사전( http://100.naver.com/100.nhn?docid=31751 ) 에서는 용수는 김용수의 별칭으로 동일인으로 말하고 있네요. 곳곳에서 sks20jun님의 말씀처럼 용수와 용춘은 다른 인물이며 용수 사후 용춘이 춘추를 양자로 들였다는 글들이 눈에 띄기는 합니다만 '유명한데 모르시나요?'라고 하실 정도는 아닌것 같습니다.
혹 참고가 될 만한, 권위있는 글이나 자료를 열람해 볼만한 방법이 있으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의 글, 즉 용수와 용춘을 동일인물로 보는 것은
정사인 삼국사기에 근거한 것입니다. 정사인 삼국사기는
당시 실존하던 국내외 문헌에 바탕하여 쓴 기록이므로
학자들이 더 신뢰하지요.
용수와 용춘을 다른 인물로 보는 견해는 삼국사기보다 훨씬 후대에
전승 설화를 많이 포용하여 기록한 야사인
삼국유사에 근거한 것이고요.
7대 실록이 거란의 침략으로 소실되었지만,
그 직후 기록을 복구했고 특히 천추태후는
거란 침략 이후에도 살아있었으니
그에 대한 기록을 못 믿을 이유가 없지요.
신라계 운운하는데 신라계의 대표자인 김부식은
삼국사기의 각 본기에서 공정하게 고구려사는 고구려 중심으로
백제사는 백제 중심으로, 신라사는 신라 중심으로 썼읍니다.
태후가 말타고 전장을 지휘하며 누볐다는 것이나
덕만 공주가 떠돌이에 낭도 출신이었다는 것이나
막상막하 난형난제...
그러나 정사 삼국사기의 경우 미실을 비롯한 화랑세기에 나온 기록의 일부가 없습니다. 또한 호우명토기와 광개토대왕비의 발견이 없었더라면 고구려의 신라원정은 드라나지 않았을 겁니다.
결국 진실은 박창화의 화랑세기 필사본이 진본으로 판면되거나 아니면 제대로된 화랑세기의 원본에 필적할만한 서적이 나와야 할듯
sks20jun/ 용수와 용춘을 다른 사람으로 본 건 드라마 '선덕여왕'의 원전인 '화랑세기' 뿐입니다.
지나가다 들렀는데 천추태후가 역사적고증에 충실했다라... 역사커뮤니티카페(부흥)에 가서 한번 그얘기 해보시죠? 십중팔구 비웃음당합니다. 죄송하지만 고려왕조실록은 조선조세종때 아주 꼼꼼하게 재편찬한 겁니다.ㅡㅡ; 그걸보고 신라계가 쎴다느니(그때는 신라망한지 500년도 넘었음) 왜곡되었다고 찌질대는걸 보니 한심하군요ㅋㅋ 죄송하지만 역사가 승자의 것이라는건 기록된역사를 무조건 믿지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쪽 작가님은 무조껀 근거도없이 왜곡만시키더군요ㅋㅋ아주 자기 뇌내망상속에있는 역사+환빠적세계관이 바로 드라마 천추태후되시겠습니다.
아니 드라만 보면서 다 각색이라 생각하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도 있나요? 난 그게 더 이상한데... 초딩, 중딩도 아니고 당연히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보는거 아닌가요? 나는 저거 사실 아닌거 아는데 니들은 모를까 두렵다 ...이런 사고방식이 오히려 두렵습니다. 차라리 드라마의 재미를 위해 역사적으로 아니지만 이런 방향을 어떨까 이런 방식은 어떨까요, 시청자을 너무 덜떨어지게 안봤음 좋겠네요, 대중을 바라보는 소위 식자들의 약점이지만...
그래도 역사상 실존 인물을 다룬다면
최소한의 사실은 존중해야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실화에 바탕을 둔
허구라는 자막을 매번 올려주던지요.
다른 드라마 프로그램(재연 드라마 같은 데)에서는
그런 자막도 깔고 실명 아닌 가명을 잘 써주면서
왜 여기서도 그렇게 해버리면 누가 시비를 걸겠읍니까.
멀고 먼 옛날 한국의 어떤 왕국에서는 진득 공주가 살았는데...
초딩 중딩은 드라마를 그대로 받아드리는 경우가 많죠...
올바른 역사관을 적립해야할 나이에 드라마보며 그걸 곧이 곧대로 믿으니...그게 우려되는 점이죠...
그리고 우리나라 국민들의 역사지식이 그리 깊다고도 생각되지 않는데...
욕먹을 말이지만 확실히 우리나라 국민들 역사수준 낮음...
신윤복이 여자라고 알고 있는 초딩들도 있더라구요..
또 침대는 가구가 아니고 과학입니다. 라는 카피때문에 침대를 가구가 아니라고 하는 초딩들이 있었죠..
신윤복이 남성이며 김홍도와의 관계는 공식적으로 확인 된 바가 없다
는 사실을 알고 있던 성인인 저도
드라마가 1/2 이상 넘어가는 시점에 다다라서는
'얼레, 정말 신윤복이 여자였나' 싶기도 하고
'음. 김홍도와 신윤복이 참으로 가까운 사이였지'라는 착각을 하게 되더군요.
사극이라는 드라마가 이야기의 바탕을 역사에 두는 것은
결국 이야기의 리얼리티를 일정수준 확보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드라마 상에서는 리얼리티와 픽션의 경계를 구분하지 않으니
드라마에 몰입한 시청자 입장에서는
드라마와 현실과의 경계를 구분하기 쉽지 않죠.
사람들이 드라마의 지나친 역사왜곡을 문제삼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죠.
식자들만의 약점이 아니라 엄연한 사실임.
용수와 용춘이 동일인물이라구요?
그냥 그럴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아니라
기정사실로 적고 있고
그걸 근거로 글이 전개가 되는군요.
이 부분에 대해 적은 다른 블로거 글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dreamlive.tistory.com/248?srchid=BR1http%3A%2F%2Fdreamlive.tistory.com%2F248
제대로 읽어보시면 단정하고 있지도 않을 뿐더러, 동일인물인지 아닌지는 윗글이 말하는 주제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걸 아실 수 있습니다.
안녕하세요.오랫만에 들어와서 궁금한게 있어 여쭙니다.저도 선덕여왕을 가끔 보면서 드라마지만 왜곡이 너부 심하다 생각했는데..의문사항은 화랑세기에 천명이 용춘과 용수형제와 같이 잠자리를 했으며,형인 용춘과 결혼을 하고,후에 용춘이 죽을때 동생인 용수에게 부인 전명과 아들인 춘주를 보살펴 달라고 했으며,천명은 마음속으로 동생 용수를 더 마음속에 두고 있었기에 이를 받았들였으며,춘주 또한 동생인 용수의 자식인지도...춘주또한 백부인 용수를 친부와 같이 잘따랐다.라고 알고 있는데,사실이 어떤지요?그것때문에 화랑세기를 다시 공부 해 볼려고 하고 있습니다만..본문에 있는 내용에 대하여는 전적으로 동의 하고요,다른 칼럼를 포함하여,많이 배우고 있습니다.감사합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화랑세기의 기록입니다. 문제는 현재 존재하는 이 책의 필사본이 진짜 사서인지 아닌지를 딱 잘라 말할 수 없다는 데 있는 것이죠.
그 화랑세기에는 용수와 용춘이 천명뿐만 아니라 덕만과도 관계를 맺는 것으로 되어 있죠.
꽤나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네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국수주의를 밑에 깔고 보니 이런 논란이 나오는 거겠죠?
선덕여왕이나 무열왕이 당나라 여왕이었다면 즉 신라가 중국의 나라 이름이었다면 이런 식은 아닐 것입니다.
저는 습관적이게도 다른 면을 보고 싶습니다.
신라의 통일은 잘 한 일일까요?
고구려 땅 대부분을 당나라에 빼앗긴 걸 보상할 만큼?
저는 그게 아니라도 반드시 옳은 일이 아니라는 입장입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
만약의 일이겠지만
우리나라가 중국과 친해져서 중국과 우리가 손을 잡고
북한과 통일을 하고 대략 대동강 위쪽을 떼어 주는 것이
분단상태보다 나을까요?
땅을 떼어주는 것이 없다면 나을까요?
위에서 다른 분도 말씀하셨듯이
신라 입장에서는 땅을 넓힐 필요만큼이나 병합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백제 땅에 비해 척박했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그 자체가 왜곡인가 봅니다.
이미 반공이데올로기 세뇌의 과정으로 통일은 우리의 소원이 되어 있으니 통일신라는 롤모델로서 완벽해야겠지요.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당시 삼국이나 지금의 남북이나
통일 이외의 대안이 필요합니다.
저도 도덕이나 국민윤리 시간에
감히 우리 정부의 통일 계획을 비판하지 못하는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만
다시 한번 생각들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때 잃어버린 요동땅도 아깝지만
그 때 잃어버린 백제 문화도 아깝지 않습니까?
전쟁으로 죽은 사람들이야 말할 것도 없겠지요.
저는 이 드라마 삼한일통이 명제가 되는 순간부터 김이 빠지더군요.
엄마몰래보세요///////////////////////석품 랑이 칠숙을 죽이고 덕만을 죽이고 달아났대요... 보종 랑은 세종을 죽이고 월야를 죽이고 달아났대요... 설원 공은 미실을 죽이고 하종을 죽이고 달아났대요... 미생 공은 알천과 유신을 죽이고 달아났대요... 비담과 춘추가 복수를 하러 가네요... 그런데 둘 다 정신이 나가서 보이는 사람 다 죽인대요... 근데 여자아이(13살 이하)는 안 죽인대요... 조심하십시오... 이 글을 봤다면요...
지금 우리의 북한과의 관계는 그당시 신라의 고구려 백제와의 관계와는 다릅니다.
신라 입장에서 고구려, 백제를 지금 관점에서 보면 중국, 일본인 셈이죠.
신라의 통일이 잘못됐다는 생각은 매우 어불성설입니다.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글 잘봤어요^^;; 그래도 천추태후 재조명한답시고 있지도 않은 어거지에 고증따위는 개무시하는 척추태후보다는 이런게 훨 났죠 ㅡㅡ(전 요즘사극들을 동인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대사도아니고 고려,조선시대조차 고증개판인 것 보다는야)
근데 아무나 글을 써도돼서 그런가 왠 찌질이들이... 대륙백제 운운하고 요동땅 운운하는거보면 환빠들로 추정되네요... 미안하지만 고구려가 그때 망한이유는 연개소문의 개삽질의 장렬한결과와 연남생, 연정토의 화려한 경력때문이고, 백제는 의자왕을 포함한 지도층내부의 개삽질과 서로 융합하지 못한점 덕분이다..ㅡㅡ; 이런애들은 역사는 승자꺼 운운하면서 기존사료 뒤엎고 자기 뇌내망상속의 역사로 새로쓰려고 덤비더라(특히 척추태후의 작가)
선덕여왕도 고증따위는 개무시인것 같지만...화랑세기를 따른다고했는데 안봐서 모르겠...(요즘 사극들은 죄다 ㅡㅜ) 게다가 요즘 너무 늘려서 내용이 산으로 가는느낌...(여왕되고 끝나려나 ㅡㅡ;;)
솔직히 드라마라도 역사는 제대로 해석해야죠. 어린애들은 사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저기요... 그쪽이 뭔 상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