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명칭은 싫어" 김정훈 감독, 2002아시안게임 때는 경기 취소될 뻔
Posted 2009/04/01 14:06, Filed under: 풋볼리언 랩소디"우리 국가의 정식 국가 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제대로 된 국가 명칭을 사용해주시라요."
남북대결을 하루 앞둔 3월 31일 오전 공식 기자회견에 나선 김정훈 북한대표팀 감독은 퉁명스레 답했다. 한국 기자들 중 한 명이 질문하면서 우리에게 익숙한 '북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김감독은 꾸중하듯 북한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한국 취재진들을 다그쳤다. 김감독이 국가 명칭을 두고 항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9월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남북대결 때도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
한 방송국의 신입 여기자는 나름 열심히 준비해온 질문을 당차게 던졌지만 '북한'이라는 용어 때문에 정작 질문에 대한 답변은 듣지도 못하고 김감독으로부터 호통을 듣고 얼굴이 벌개져야 했다.
통상 우리는 '남한' '북한'이라고 표현하지만 정작 이 표현은 남쪽 한국과 북쪽 한국이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의 약자인 한국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표현인 셈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북조선' '남조선'이라는 식으로 부르는데 남한 입장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다. 그럼에도 한국 사람들은 명칭을 두고 그다지 트집을 잡지 않는다. 만일 평양에 가서 북한 기자들이 허정무 감독에게 '남조선'이라는 표현을 썼다면 어땠을까. 허감독은 유연하게 받아넘겼을 것이다.
남·북한, 남·북조선이 모두 안된다면? 그래서 양쪽 모두 공감할 수 있는 표현이 '남측' '북측'이라는 단어다. 굳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용어를 쓸 수 없다면 '북측'이라는 표현을 쓰면 된다. 이 표현이라면 명칭에 까탈스러운 북한 사람들도 대강 넘어가준다. 하지만 북측이라는 용어 때문에 공식 축구경기가 취소될 뻔한 사건도 있었다.
북한의 미녀 응원단에 관심이 쏠렸던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때 일이다. 10월2일 부산 구덕운동장에서는 북한과 일본간의 여자축구 예선전이 예정돼있었다. 북·일전이 벌어진데다 북한 미녀응원단이 대거 찾다보니 한국 취재진들도 기자석을 가득 메웠다. 하지만 경기 전 경기본부석 쪽이 소란스러웠다. 북한 대표팀 관계자들이 대회조직위원들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항의를 퍼부었다.
경기장 입구에 붙어있던 아시안게임 공식 포스터에 북한 인공기가 빠진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잔뜩 뿔이 난 북한의 김명보 행정역원은 "남북통일축구대회였다면 북측과 남측으로 부를 수도 있지만 정식대회에서 북측으로 부르는 것은 한 국가를 무시하는 처사다"며 "우리가 무슨 유령단체냐"면서 흥분했다. 김대봉 육체훈련 감독 역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길다면 조선으로 줄여야지 북측이 뭐냐"고 반발했다.
이들은 "선수 교체 때 북측이라는 표현이 나온다면 경기를 포기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당시 구덕운동장 경기위원장은 "국가 연주와 시상식 때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고 부르되 선수교체와 골을 넣었을 때는 '북측'으로 하자는 공문을 받았다. 남자축구와 농구에서는 북측이라는 표현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면서 연신 식은 땀을 흘렸다.
전반이 끝난 뒤 로커룸을 빠져나온 북한 선수단은 선수 교체 명단이 적힌 쪽지를 내밀었다. 이날 북한 선수단과 동행한 국정원 직원들과 경기장 운영위원들은 비상이 걸렸다. 만일 '북측'이라는 장내 방송이 나가, 북한 선수단이 경기를 보이코트하게 된다면 큰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장내 아나운서는 대회 규정에 따라 '북측'이라고 방송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보이코트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다. 북한 선수단은 북측이라는 방송에도 별다른 항의없이 경기를 마감했다. 한 경기장 운영위원은 "북한 관계자들이 인공기가 빠진 공식 포스터를 보고 화가나서 시비를 건 것 뿐이다. 포스터가 북한 출전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설명해서 간신히 화를 풀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1970∼1980년대 남북대결 때는 TV 중계 캐스터가 '북괴'라는 표현을 썼던 엄혹한 시절은 아니지만 여전히 명칭 문제로 얼굴을 붉히는 현실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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