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환이 다롄 스더에 입단했습니다.

그가, 결국 중국리그까지 가는구나.
안정환의 중국리그에 대한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물론 중국으로 간다고 해서 그의 축구 인생이 끝난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큽니다.

우리들의 판타지 스타는 왜 좀 더 잘 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외모와 재능을 더불어 지닌 그는 왜 차범근, 박지성같은 스타가 되지 못한 것일까요.
그의 축구 인생은 어디서부터 빗나갔던 것일까요.

우선 그의 축구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8년 K-리그에 입단  첫 해 안정환은 이동국, 고종수와 더불어 K-리그의 새로운 중흥기를 이끄는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동국과 고종수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할 정도로 이미 검증된 스타였지만, 안정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동국은 포항과 연계가 돼있는 축구 명문 포철공고 출신이고 고종수는 금호고를 졸업한 후 수원 삼성에 곧바로 입단했죠. 그에 비해 안정환은 서울기계공고를 졸업해 아주대를 졸업할 때도 그저 그런 무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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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K-리그에 혜성같이 등장한 안정환.

안정환의 시즌 첫 해 성적은 33경기 출장 13골 4도움이었습니다.
1998년 최우수 선수는 고종수, 신인상은 이동국이 차지했습니다. 고종수는 20경기 출전, 3골 4도움으로 기록은 떨어지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동국은 11골 2도움을 올렸습니다.

1999년은 안정환은 K-리그에서 말 그대로 눈부신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툭툭 옆으로 치고 들어가다가 슈팅을 쏘면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는 알면서도 골을 허용하곤 했죠. 한 수 위의 플레이. 그 해 안정환은 부산 대우를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끌었습니다. 샤샤의 핸들링골로 우승은 수원의 차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 해 최우수 선수상은 21골 7도움을 올린 안정환에게 돌아갔습니다. 샤샤가 23골 4골을 올렸지만, 핸들링골이 최우수선수상 수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습니다. 또 안정환 역시 최우수 선수상을 타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그 즈음 IMF 위기가 닥쳤죠. 안정환이 뛰던 대우가 망하고 대우는 현대가 인수해 부산 아이파크로 재창단합니다.

부산의 단장이고, 현재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사장을 맡고 안종복씨는 당시 안정환의 후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축구 선수 출신이지만, 정치력이나 조직 장악력이 보통이 넘는 분입니다. 하지만 구단이 바뀌며 이 분과의 관계에도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사생활까지 꼼꼼하게 챙겼지만, 이런 것이 안정환에게는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일 대우가 망하지 않았다면, 안종복 현 인천 사장이 계속 안정환을 관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은 부질없는 가정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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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2007년 실렸던 기사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안종복 전 대우 단장입니다.



2000년 안정환의 마음은 이미 유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K-리그에서는 이룰만큼 이뤘고, 새로운 팀에 예전처럼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죠.
안정환은 마침내 2000년 7월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아 A 페루자에 입단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선수 생활은 어이없이 끝나버립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 16강에서 안정환은 헤딩으로 결승골을 터트렸습니다.
이튿날 페루자의 구단주 루시아노 가우치가 "이탈리아 축구를 망친 녀석과는 계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월드컵 4강은 박지성과 이영표에게 유럽으로 가는 도약대가 됐는데 왜 안정환에게는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이었을까요.

당시 기사입니다.

이탈리아 축구클럽 페루자의 푸치아노 가우치 회장은 “페루자에서 뛰고 있는 안정환과의 계약을 연장치 않겠다”고 밝혀 안정환을 사실상 팀에서 방출했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19일 보도했다.

가우치 회장은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하면서 “안정환이 이탈리아에 왔을 때 그는 샌드위치 하나 살 돈이 없는 길 잃은 염소와같았지만 결국 특별히 아무 일도 안하고 부자가 됐다”고 그에 대해 혹평했다. 그는 이어 “그러고 나서 월드컵에 가서는 이탈리아의 축구를 모욕했다”며 “그는 그의 능력을 우리팀에 있을 때 보여줬어야 했다”고 비난했가우치 회장은 특히 “그와의 계약을 연장하려면 153만달러(약 19억원)를 지불해야 겠지만 영원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고 “그는 오직 한국으로 돌아가 월 48달러(약 6만원)나 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환과는 이달 30일로 계약이 종료된다.<2002년 6월 20일 동아일모>

뭔가 단단히 꼬인 구석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페루자에는 안정환의 우군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페루자에서 안정환의 기록은 30경기 출전 5골입니다. 뭐 골 수로만 본다면, 지금 박주영의 활약과 비슷할 것 같네요. 출전 기회는 지금의 안정환이 훨씬 적었습니다.

그 후 안정환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이력을 살펴보시죠.

2002년 중반~2003 J리그 시미즈 S펄스 38경기 14골.
2004~2005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 34경기 16골
2005.6~2006.2 프랑스 FC 메츠  16경기 2골
2006.2~2006년 8월 독일 뒤스부르크 12경기 2골
2007년 수원 삼성 15경기 0골(정규리그)
2008년 부산 아이파크 19경기 4골
그리고 올해
2009년 3월 중국 다롄 스더

페루자에서 쫓겨난 후 일본에서 돌아와 어느 정도 재기한 안정환은 다시 유럽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팀에 머무는 시간이 더 짧아집니다.

프랑스 메츠에서는 반 시즌을 보냈습니다.
2006년 초 안정환은 블랙번 로버스로부터 테스트 초청을 받았습니다. 안정환은 테스트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정환은 독일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로 이적합니다. 뒤스부르크에서 머문 시간도 반시즌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안정환은 뒤스부르크에서 방출됐습니다. 그러고보니 안정환에게는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시련이 닥치네요.

<tip>
안정환의 월드컵 성적.
2002년 미국전 동점골, 이탈리아전 결승골. 7경기 출전 2골.(전경기 출전)
2006년 토고전 후반 교체 투입. 결승골 작렬. 프랑스, 스위스전도 후반 교체 투입. 3경기 1골.

2006년 월드컵 이후 무적신세가 된 안정환은 소속팀 없이 6개월동안 시쳇말로 놀았습니다. 이 때 안정환의 나이는 서른살입니다. 선수가 되기는 쉬워도 망가지기는 쉽습니다. 경기를 안뛰면, 게다가 30대라면, 자기관리를 하고 기량을 유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죠.

이 시기가 안정환의 기량이 한 풀 꺾이는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안정환은 결국 2007년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차 감독이 기대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안정환은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교체 명단에는 포함됐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컵대회에서는 골을 넣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지난해 1월 중반, 부산 아이파크는 안정환을 영입했습니다. '왕의 귀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팬들의 기대가 컸죠. 황선홍 감독이 있는 팀이기에 더 기대가 컸습니다.

실제 안정환은 시즌 초반 열심히 뛰었습니다. 5월에는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요르단, 북한을 상대로 한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도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에서도 화려한 재기의 꽃을 피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팀을 떠납니다.

부산을 떠나게 된 것은 연봉 문제가 결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안정환은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진출에 의욕을 보였습니다. 그것이 여의치않자 제주 유나이티드와도 협상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처음 부산을 떠날 때는 K-리그 다른 팀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행보였죠.

미국, 일본, 호주 등 여러 리그를 알아봤지만, 결국 안정환은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행보입니다. 얼핏 보아도 전혀 캐리어 관리가 안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정환을 맡으며 느낀 점은 너무 자주 에이전트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을 꾸준하게 믿지 못하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위임장을 남발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현재 안정환의 일을 봐주고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한 선수가 한 팀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는 이 팀 저 팀으로 옮겨다니는 게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적료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환이라는 재능이 너무 함부로 다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제대로 된 에이전트에게 자신을 맡기지 못한 안정환의 책임도 있겠죠.

지난해 안정환이 부산에 입단했을 때, 전 기대했습니다.
황선홍 감독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뛸 때 34살이었습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안정환의 나이가 34살입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데뷔한 황감독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의 쓰라린 좌절을 맛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회 직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채 팀의 패배를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으로 한을 풀었죠.

안정환도 황감독 아래에서 화려하게 재기해 2010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한국의 영웅이 되주길 기대했습니다.

안정환이 해낼 수 있을까요.

20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한 안정환은 "운동할 시간이 많지 않다. 운이 좋은 것 같다. 나이도 있고 오래 쉬는 것 보다는 다른 리그에 도전 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계획에 선택했다"며 "미국행은 여의치 않았다. 호주도 8월에 리그가 시작한다.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운동할 수 있는 기간이 많지 않은 가운데 또 다른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리그에 대한 관심은 없다. 하지만 다롄 스더는 알고 있다"며 올 시즌 부산에서 이적한
전우근을 통해 다롄 스더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환경과 팀 분위기는 좋다고 들었다. 새로운 경험 할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으로 떠나는 안정환의 인터뷰 입니다.

안정환은 이번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또 다시 중국이 아닌 또 다른 해외리그 진출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중국을 떠날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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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반지 키스를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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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금숙 2009/03/23 16:56

    안딨다~~~~~~~~~~~~~~!

  2. ㅋㅋㅋ 2009/03/24 01:50

    첫 번째 사진 레간자가 가려서 '간지'로 나왔네요. 마침 사진도 간지. ㅋㅋㅋㅋ

  3. 간지현 2010/01/23 10:12

    참내...
    안정환과 안종복의 사이를 몰라서 이런글 올린거에요?
    진짜 안정환팬으로써 이글 삭제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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