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군무원 감독, 이강조 리더십의 기적

‘만년 꼴찌’ 광주 상무, K-리그 선두 질주

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g.co.kr | 제116호 | 20090530 입력
몇 년 전 이강조(55·사진) 광주 상무 감독을 만난 첫인상은 ‘공무원 같다’는 거였다. 공무원을 폄하하는 뜻이 아니다. 그만큼 틀이 꽉 잡혀 있는 실무자 같은 인상을 받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그 꽉 잡힌 틀 속에 구렁이가 아흔아홉 마리쯤 똬리를 틀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있었다.

실제로 그는 준공무원이다. 직책은 광주 상무 감독이지만 직급은 4급 군무원(軍務員)이다. 서른여섯, 그의 이마가 팽팽했던 1990년 6월 육군체육부대 상무의 축구 감독으로 부임한 지 어언 20년이 다 돼 간다. 언제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 승부사의 세계에서 그는 ‘철밥통’을 끼고 있다.

“계약? 그런 거 없어. 2012년이 정년이지. 허허. 앞으로 3년 남았어.”
느긋하고 여유만만한 이강조 감독이 2009 K-리그의 이슈 중심에 섰다. ‘만년 꼴찌 팀’ 광주 상무의 환골탈태와 함께. 광주 상무는 K-리그 초반 7승2무1패로 15개 팀 가운데 선두권을 질주하고 있다. 수원 삼성·포항 스틸러스·성남 일화 등 이른바 K-리그 빅클럽이 모두 광주의 발 아래 있다.

상무에는 외국인 선수가 없다. 복무 기간이 2년 남짓이라 1년에 무려 20여 명씩 제대하고, 그 정도의 신병이 입대한다. 2~3년간 장기 플랜을 세워 팀 빌딩을 하는 건 꿈도 꿀 수 없다. 해외 전지훈련은커녕 겨울이면 따로 전방 체험 등 군사 교육을 받기도 한다. ‘신병’은 5주간 여느 병사와 마찬가지로 사격도 하고 행군을 한 뒤 상무로 배치된다. 눈이라도 내리는 날엔 훈련보다 제설 작업이 먼저다. 프로리그에서 뛰고 있지만 월급은 일반 사병과 똑같다. 외적인 조건만 놓고 보면 사실 광주 상무가 K-리그에 출전한다는 것 자체가 코미디다.

프로에서 한계에 부딪친 선수들이 상무에 입대한 뒤 전환기를 맞곤 했다. 이동국도 상무에서 기량이 만개해 유럽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2003년 부산과의 K-리그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한 이동국(위)이 이강조 감독을 포옹하고 있다. 중앙포토
“도무지 창피해 살 수가 없다. 어떤 구단주가 상무에도 지는 팀을 용납하겠는가”
한웅수 FC 서울 단장의 푸념도 괜한 게 아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강원 FC 감독 낙마로 독기 품었나
지난해 강원 FC가 창단했다. 강릉상고 출신으로 강원도 축구의 대부 격인 이 감독은 유력한 초대 사령탑 후보로 거론됐다. 항간에는 이미 이 감독이 낙점을 받아 코칭 스태프 조각을 마쳤고 스카우트할 선수를 선별 중이라는 소문이 흘러 다녔다. 많은 축구인이 이 감독의 부임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창단 막바지 초대 사장으로 부임한 김원동 전 프로축구연맹 사무총장은 “백지 상태에서 모든 것을 재검토하겠다”고 선언했다. 때마침 내셔널리그에서 챔피언에 등극한 최순호 감독이 그 자리에 올랐다.

이 감독은 “그저 소문일 뿐”이라고 말을 아끼지만 유쾌할 리 없는 수순이었다. 김 초대 사장이 동향 선배 모시기를 꺼렸다는 등 갖가지 낙마 이유가 거론됐다. ‘아직 검증이 안 됐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20년 가까이 지휘봉을 잡은 그가 검증이 안 됐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광주 상무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4년 연속 K-리그에서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건 객관적이고도 결정적인 결격 사유가 아닐 수 없다.

그 때문인지 이 감독은 요즘 여기저기서 “독기를 품었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예전에는 선수들 지도를 코치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았지만 올해는 훈련장을 오가는 이 감독의 걸음이 빨라졌다.

정년이 3년 앞으로 다가왔다는 것도 이 감독의 마음을 바쁘게 하는 요소다. 몇 년 전 이 감독에게 ‘이젠 프로팀 감독을 하셔야죠’라고 운을 떼면 “상무보다 좋은 구단이 어딨어. 빅4(FC서울·수원 삼성·울산 현대·성남 일화) 아니면 갈 이유가 없지”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의 생각도 바뀌었다. 똑같은 덕담을 건네자 이 감독은 “허허, 어디 앞날을 알 수가 있나. 열심히 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기겠지”라고 말했다. 전관예우가 없는 축구계에서는 스스로 축구 지도자 인생 2막을 열어야 한다.

이을용·조재진·최성국 ‘스타 산실’
대한민국 남성이 모두 겪는 고민을 축구 선수도 한다. 병역 문제다. ‘거꾸로 매달아 놓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심정은 축구 선수도 예외가 아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 군 생활은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상무는 스타의 산실이다. 이 감독이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부분이다.

실업팀 한국철도에서 뛰다 1996년 입대한 이을용은 상무에서 뛰면서 K-리그 스카우트의 눈에 들어 부천 SK에 입단했다. 상무가 아니었다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주역은 무명의 실업 선수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2000년 수원 삼성에 입단해 2군을 오가던 조재진은 상무에서 만개해 2003년 올림픽 대표를 거쳐 2006년 독일 월드컵의 주역으로 성장했다. 김병지는 실업 축구도 아닌 직장인 축구팀에 있다가 상무에 와서 K-리그에 발탁된 케이스다. 이동국이 2002년 한·일 월드컵 엔트리에 제외된 후 방황하다 광주 상무에서 축구 인생을 새 출발한 건 너무도 유명한 일화다. 입대하기 전 K-리그에서 겨우 한 경기 뛰었던 조원희도 상무에서 주전으로 뛰면서 축구 인생이 술술 풀리기 시작했다. 조원희·이동국은 이강조 감독이 배출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다.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공통점은 “감독님이 너무 편하게 해 준다”는 거다. 이는 광주 상무라는 악조건에 이 감독이 적응한 결과로 보인다. 상무의 1년은 20여 명이 제대하고 입대하는 10월 말이 시작이자 끝이다. 신병 군사 교육을 받고 입대하면 12월 말~이듬해 1월 즈음 체력 훈련을 시작한다. 제대로 전술 훈련을 할 틈도 없이 금세 시즌 개막이 다가온다.

이른 시일 내에 팀 빌딩을 하려면 감독의 전술에 선수를 끼워 맞춰선 안 된다. 각자의 재능과 특성을 고려해 퍼즐 맞추듯 개성을 살릴 수밖에 없다. 또 특별 외박을 주는 것 말고는 별다른 성취 동기가 없으니 선수들을 신바람 나게 뛰게 만드는 것도 이 방법밖에 없다.

최성국이 좋은 사례다. 성남에서 주전 경쟁에 밀렸던 최성국은 올해 상무에 입대해 맘껏 활개치며 상무의 고공 비행을 이끌고 있다. “너는 개인기가 좋으니 어설픈 패스보다는 자신감을 갖고 돌파를 하라”는 게 이 감독의 주문이었다.

하지만 뭐든 선수 맘대로 하는 건 아니다. 최성국은 원래 윙포워드지만 성남에서는 원톱을 서고 있다. 반대로 팀에서는 원톱 요원인 김명중은 상무에서 측면을 누비고 있다. 최성국과 김명중이 자리를 바꾼 거다. 이 감독은 “대표팀에 간다면 성국이는 측면 요원이 맞다. 하지만 우리 팀에 꼭 맞는 포지션은 따로 있다. 연습경기를 하고 실전을 치러 나가며 최적의 조합을 찾는다”고 말했다.

일반적인 팀은 4~5년에 한 번 정도 리빌딩을 한다. 하지만 이 감독은 매년 새로운 팀을 만들어 냈다. 선수의 특징을 귀신같이 파악해 최적의 조합을 찾는 ‘달인’이 될 수밖에 없다.

선수에게 자신감을 심어 주고, 숨어 있는 재능을 일깨우고, 퍼즐 맞추듯 척척 팀을 만들어 내는 재능. 20년이라는 세월이 준 선물이다.

이제는 ‘철밥통’을 버려야 할 때
올해 광주 상무의 1차 목표는 6강 플레이오프 진출이다. 지난해 전역한 FC 서울 한태유는 “지난해엔 이길 것 같지가 않았는데 올해는 질 것 같지 않다”며 광주 상무의 변화를 놀라워했다. 하지만 그는 “여름이 지나면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군대 식사가 프로팀에 비하면 다소 부실한 편이므로 체력이 달릴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제대 날짜가 다가온다는 점이다. 떨어지는 낙엽도 피한다는 제대 말년,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들은 부상을 피하기 위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 이 감독이 “조금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향후 전망에 대해 조심스러워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또 다른 약점도 있다. 이 감독은 20년 가까운 지도자 경력을 가진 베테랑이지만 ‘철밥통 감독’은 ‘승자가 모든 것을 갖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와는 조금 동떨어져 있었다. 역경을 딛고 올 시즌 소기의 성과를 거둔다면 그의 말대로 지난해에 놓쳤던 “좋은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 이 감독이 프로 팀에 가도 잘할 수 있을까. 상무의 추락을 경고한 한태유는 낙관했다.

“당연하죠. 선수들이 그를 잘 따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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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FA A매치 휴식기를 앞두고 이강조 감독에 대해 중앙선데이에 게재한 기사입니다.

이강조 감독. 선수 시절에도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사람입니다. 프로축구 개막 원년에 감투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감투상은 1994년을 끝으로 없어졌습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황소같은 투지로 팀을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선수들에게 돌아갔던 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해 강원 감독에 오르지 못한 게... 잠자고 있던 이강조 감독의 투지를 깨운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후반기에도 광주의 돌풍이 계속될 수 있을까요. 기대됩니다.
그리고... 정말로 광주의 돌풍이 계속되면 어쩌나... 라는 걱정도 됩니다.

광주 선수들은 10월 말이면 절반 정도가 전역합니다. 팀 전력의 절반을 잃어버린 채 경기에 나서는 일이 생길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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