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시즌 3호골 동영상 입니다. 밑에는 관련 기사가 입니다.


박주영(24·모나코)이 북한과의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 골 폭죽을 터뜨렸다.

박주영은 22일(한국시간) 프랑스 낭시에서 열린 리그 29라운드 AS 낭시와의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뽑아내 팀의 1-0 승리를 이끌었다. 지난해 11월 3일 르아브르와의 리그 12라운드에서 시즌 2호골을 기록한 이후 139일만에 터트린 소중한 골이었다.

박주영은 단 한 번 찾아온 슈팅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이날 12경기 연속 선발출장한 박주영은 경기 초반 좀처럼 슈팅기회를 잡지 못했다.

강등권 언저리에 놓여 있는 낭시가 홈에서 필승의 의지로 나서면서 기세에 눌린 모나코는 전반 수 차례 위기를 모면하는데 급급했다. 후반 들면서 모나코는 전세의 균형을 찾기 시작했고, 박주영을 비롯한 모나코의 공격진의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박주영은 후반 26분 투톱 파트너 후안 파블로 피노가 왼쪽 측면에서 크로스를 올리자 골지역 정면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가 솟구쳐 올라 헤딩으로 결승골을 따냈다. 프랑스 진출 3호골이자 처음으로 맛본 헤딩골이었다. 이날 오른쪽 측면 미드필더 요한 몰로가 슈팅 5개, 피노가 2개를 날리는 사이 박주영은 1개에 불과할 정도로 공격에 대한 기여도가 낮았지만 결국 뛰어난 결정력으로 자신의 가치를 입증했다. /장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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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환이 다롄 스더에 입단했습니다.

그가, 결국 중국리그까지 가는구나.
안정환의 중국리그에 대한 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물론 중국으로 간다고 해서 그의 축구 인생이 끝난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이 큽니다.

우리들의 판타지 스타는 왜 좀 더 잘 될 수 없었던 것일까요.
외모와 재능을 더불어 지닌 그는 왜 차범근, 박지성같은 스타가 되지 못한 것일까요.
그의 축구 인생은 어디서부터 빗나갔던 것일까요.

우선 그의 축구 인생을 찬찬히 돌아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98년 K-리그에 입단  첫 해 안정환은 이동국, 고종수와 더불어 K-리그의 새로운 중흥기를 이끄는 스타로 발돋움했습니다. 이동국과 고종수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할 정도로 이미 검증된 스타였지만, 안정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이동국은 포항과 연계가 돼있는 축구 명문 포철공고 출신이고 고종수는 금호고를 졸업한 후 수원 삼성에 곧바로 입단했죠. 그에 비해 안정환은 서울기계공고를 졸업해 아주대를 졸업할 때도 그저 그런 무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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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K-리그에 혜성같이 등장한 안정환.

안정환의 시즌 첫 해 성적은 33경기 출장 13골 4도움이었습니다.
1998년 최우수 선수는 고종수, 신인상은 이동국이 차지했습니다. 고종수는 20경기 출전, 3골 4도움으로 기록은 떨어지지만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습니다. 이동국은 11골 2도움을 올렸습니다.

1999년은 안정환은 K-리그에서 말 그대로 눈부신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툭툭 옆으로 치고 들어가다가 슈팅을 쏘면 상대 수비수와 골키퍼는 알면서도 골을 허용하곤 했죠. 한 수 위의 플레이. 그 해 안정환은 부산 대우를 챔피언결정전까지 이끌었습니다. 샤샤의 핸들링골로 우승은 수원의 차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그 해 최우수 선수상은 21골 7도움을 올린 안정환에게 돌아갔습니다. 샤샤가 23골 4골을 올렸지만, 핸들링골이 최우수선수상 수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됐습니다. 또 안정환 역시 최우수 선수상을 타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그 즈음 IMF 위기가 닥쳤죠. 안정환이 뛰던 대우가 망하고 대우는 현대가 인수해 부산 아이파크로 재창단합니다.

부산의 단장이고, 현재는 인천 유나이티드의 사장을 맡고 안종복씨는 당시 안정환의 후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축구 선수 출신이지만, 정치력이나 조직 장악력이 보통이 넘는 분입니다. 하지만 구단이 바뀌며 이 분과의 관계에도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사생활까지 꼼꼼하게 챙겼지만, 이런 것이 안정환에게는 어쩌면 답답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만일 대우가 망하지 않았다면, 안종복 현 인천 사장이 계속 안정환을 관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지금은 부질없는 가정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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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에 2007년 실렸던 기사입니다. 이 사람이 바로 안종복 전 대우 단장입니다.



2000년 안정환의 마음은 이미 유럽을 향하고 있었습니다. K-리그에서는 이룰만큼 이뤘고, 새로운 팀에 예전처럼 애정을 느끼지 못하는 듯했죠.
안정환은 마침내 2000년 7월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아 A 페루자에 입단했습니다.

이탈리아에서의 선수 생활은 어이없이 끝나버립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이탈리아와 16강에서 안정환은 헤딩으로 결승골을 터트렸습니다.
이튿날 페루자의 구단주 루시아노 가우치가 "이탈리아 축구를 망친 녀석과는 계약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월드컵 4강은 박지성과 이영표에게 유럽으로 가는 도약대가 됐는데 왜 안정환에게는 이런 시련이 닥친 것이었을까요.

당시 기사입니다.

이탈리아 축구클럽 페루자의 푸치아노 가우치 회장은 “페루자에서 뛰고 있는 안정환과의 계약을 연장치 않겠다”고 밝혀 안정환을 사실상 팀에서 방출했다고 이탈리아 언론이 19일 보도했다.

가우치 회장은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표하면서 “안정환이 이탈리아에 왔을 때 그는 샌드위치 하나 살 돈이 없는 길 잃은 염소와같았지만 결국 특별히 아무 일도 안하고 부자가 됐다”고 그에 대해 혹평했다. 그는 이어 “그러고 나서 월드컵에 가서는 이탈리아의 축구를 모욕했다”며 “그는 그의 능력을 우리팀에 있을 때 보여줬어야 했다”고 비난했가우치 회장은 특히 “그와의 계약을 연장하려면 153만달러(약 19억원)를 지불해야 겠지만 영원히 그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박고 “그는 오직 한국으로 돌아가 월 48달러(약 6만원)나 벌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정환과는 이달 30일로 계약이 종료된다.<2002년 6월 20일 동아일모>

뭔가 단단히 꼬인 구석이 있어 보이지 않나요. 페루자에는 안정환의 우군이 없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페루자에서 안정환의 기록은 30경기 출전 5골입니다. 뭐 골 수로만 본다면, 지금 박주영의 활약과 비슷할 것 같네요. 출전 기회는 지금의 안정환이 훨씬 적었습니다.

그 후 안정환은 이곳 저곳을 떠돌아 다녔습니다. 이력을 살펴보시죠.

2002년 중반~2003 J리그 시미즈 S펄스 38경기 14골.
2004~2005 J리그 요코하마 마리노스 34경기 16골
2005.6~2006.2 프랑스 FC 메츠  16경기 2골
2006.2~2006년 8월 독일 뒤스부르크 12경기 2골
2007년 수원 삼성 15경기 0골(정규리그)
2008년 부산 아이파크 19경기 4골
그리고 올해
2009년 3월 중국 다롄 스더

페루자에서 쫓겨난 후 일본에서 돌아와 어느 정도 재기한 안정환은 다시 유럽에 진출했습니다. 하지만 이때부터는 팀에 머무는 시간이 더 짧아집니다.

프랑스 메츠에서는 반 시즌을 보냈습니다.
2006년 초 안정환은 블랙번 로버스로부터 테스트 초청을 받았습니다. 안정환은 테스트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안정환은 독일 분데스리가 뒤스부르크로 이적합니다. 뒤스부르크에서 머문 시간도 반시즌입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 안정환은 뒤스부르크에서 방출됐습니다. 그러고보니 안정환에게는 월드컵이 끝날 때마다 시련이 닥치네요.

<tip>
안정환의 월드컵 성적.
2002년 미국전 동점골, 이탈리아전 결승골. 7경기 출전 2골.(전경기 출전)
2006년 토고전 후반 교체 투입. 결승골 작렬. 프랑스, 스위스전도 후반 교체 투입. 3경기 1골.

2006년 월드컵 이후 무적신세가 된 안정환은 소속팀 없이 6개월동안 시쳇말로 놀았습니다. 이 때 안정환의 나이는 서른살입니다. 선수가 되기는 쉬워도 망가지기는 쉽습니다. 경기를 안뛰면, 게다가 30대라면, 자기관리를 하고 기량을 유지하는 게 결코 쉽지 않죠.

이 시기가 안정환의 기량이 한 풀 꺾이는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안정환은 결국 2007년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었지만, 차 감독이 기대한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안정환은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교체 명단에는 포함됐지만 출전 기회를 잡지는 못했습니다. 컵대회에서는 골을 넣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침묵을 지켰습니다.

지난해 1월 중반, 부산 아이파크는 안정환을 영입했습니다. '왕의 귀환'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습니다. 팬들의 기대가 컸죠. 황선홍 감독이 있는 팀이기에 더 기대가 컸습니다.

실제 안정환은 시즌 초반 열심히 뛰었습니다. 5월에는 국가대표팀에 발탁돼 요르단, 북한을 상대로 한 2010 남아공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에도 출전했습니다.

그러나 부산에서도 화려한 재기의 꽃을 피우지는 못했습니다.
그리고 또 다시 팀을 떠납니다.

부산을 떠나게 된 것은 연봉 문제가 결정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안정환은 미국 메이저리그 사커 진출에 의욕을 보였습니다. 그것이 여의치않자 제주 유나이티드와도 협상을 했지만 실패했습니다. 처음 부산을 떠날 때는 K-리그 다른 팀에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 행보였죠.

미국, 일본, 호주 등 여러 리그를 알아봤지만, 결국 안정환은 시즌 개막을 코앞에 두고 중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행보입니다. 얼핏 보아도 전혀 캐리어 관리가 안됐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안정환을 맡으며 느낀 점은 너무 자주 에이전트가 바뀐다는 점입니다. 한 사람을 꾸준하게 믿지 못하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위임장을 남발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현재 안정환의 일을 봐주고

에이전트 입장에서는 한 선수가 한 팀에 오래 머무는 것보다는 이 팀 저 팀으로 옮겨다니는 게 이득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적료가 발생하면, 그에 대한 수수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환이라는 재능이 너무 함부로 다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제대로 된 에이전트에게 자신을 맡기지 못한 안정환의 책임도 있겠죠.

지난해 안정환이 부산에 입단했을 때, 전 기대했습니다.
황선홍 감독이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뛸 때 34살이었습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안정환의 나이가 34살입니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에서 데뷔한 황감독은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의 쓰라린 좌절을 맛봅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회 직전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한채 팀의 패배를 지켜봤습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으로 한을 풀었죠.

안정환도 황감독 아래에서 화려하게 재기해 2010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한국의 영웅이 되주길 기대했습니다.

안정환이 해낼 수 있을까요.

20일 오전 인천공항을 통해 중국으로 출국한 안정환은 "운동할 시간이 많지 않다. 운이 좋은 것 같다. 나이도 있고 오래 쉬는 것 보다는 다른 리그에 도전 할 수 있는 길이 생긴다는 계획에 선택했다"며 "미국행은 여의치 않았다. 호주도 8월에 리그가 시작한다. 뜻대로 되지 않았지만 운동할 수 있는 기간이 많지 않은 가운데 또 다른 공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리그에 대한 관심은 없다. 하지만 다롄 스더는 알고 있다"며 올 시즌 부산에서 이적한
전우근을 통해 다롄 스더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고 전했다. 그는 "환경과 팀 분위기는 좋다고 들었다. 새로운 경험 할 수 있는 행운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중국으로 떠나는 안정환의 인터뷰 입니다.

안정환은 이번 여름 이적시장을 통해 또 다시 중국이 아닌 또 다른 해외리그 진출을 노리는 것 같습니다. 중국에 채 적응하기도 전에 중국을 떠날 생각을 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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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반지 키스를 할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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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금숙 2009/03/23 16:56

    안딨다~~~~~~~~~~~~~~!

  2. ㅋㅋㅋ 2009/03/24 01:50

    첫 번째 사진 레간자가 가려서 '간지'로 나왔네요. 마침 사진도 간지.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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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가 지은 <달리기를...>를 읽었다.
비만으로 매일 입으로만 운동하는 나는, 매일 운동을 하면서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질투하고 동시에 존경한다.

그래도 참고 끝까지 달리고 나면, 몸의 중심에서 모든 걸 깡그리 쥐어짜내 버린 것 같은, 어쩌면 모든 걸 다 털어내 버린 듯한 상쾌함이 거기에 우러난다.



중학교 시절, 방과 후 늘 해질녘까지 운동장에서 땀을 흘리곤 했다. 그리고 1년에 한 번씩은 체력장 때마다 억지로 장거리 달리기(그래봐야 1km지만)를 했다.

하루키는 억지로 달리는 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고 했지만, 그 시절 학교에서 운동하던 추억이 나에겐 무척 소중하게 남아있다.

지금도 때때로 운동을 하는 건, 그 때 느꼈던 기쁨과 뭔지 모를 희열을 다시 느끼기 위함이다.

나름 재밌게 읽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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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는 자신의 묘비명에 이렇게 쓰고 싶다고 책을 끝맺었다.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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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tnwls520 2009/04/01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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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청소년 대표팀 코치를 며칠 전 인터뷰했습니다. 아래는 중앙 선데이에 게재한 기사 입니다.


지도자로 성공하기 어렵다? 선수 때 경험 과신 안 해

청소년대표 감독 맡은 축구 아이콘 홍명보

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g.co.kr | 제104호 | 20090308 입력
홍명보(40·사진). 대한민국 축구팬이라면 그의 미소를 잊지 못할 것이다. 2002 한·일 월드컵 8강전에서 승부차기의 마지막 키커로 나선 홍명보가 스페인 골문을 흔든 뒤 동료들을 향해 달려갈 때 텔레비전 중계 화면을 가득 채우던 그의 미소. 당시 그는 대표팀의 주장이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뒤 홍명보는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의 감독이 되어 다시 뉴스의 중심에 섰다.

축구협회는 지난달 19일 홍명보에게 오는 9월 이집트에서 열리는 청소년월드컵에 출전할 팀의 사령탑을 맡겼다. 2012 런던올림픽까지 책임져야 하는 중책이다. 올림픽에서 성적이 좋다면 2014 브라질월드컵 지휘봉마저 거머쥘 것이다. 화려해 보이지만 벅찬 자리다. 홍명보는 그동안 줄곧 코치로 일해 왔을 뿐 감독으로서는 새내기다. 파주 트레이닝센터에서 홍명보를 만난 것은 대표팀 훈련 이틀째인 3일이었다.

2일 오후 파주트레이닝센터(NFC)에서 열린 U-20청소년축구대표팀 훈련에서 홍명보 감독이 선수와 훈련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마흔 살 넘어, 난 어리지 않아
홍명보 감독을 바라보는 축구계의 시선은 두 종류다. 첫째는 정몽준 명예회장과 조중연 회장으로 이어지는 인맥에 밀착해 빠르게 출셋길을 걸었다는 비아냥. 둘째는 실력과 인품, 대외적인 인지도 면에서 홍명보만큼 차세대 한국 축구를 대표할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렵다는 평가다. 사실 차범근 이후 한국 축구계에는 ‘인물’이 없다. 여기서 ‘인물’이란 국제대회에서 넣은 골수와는 다른, 어떤 존재감을 말한다.

홍 감독의 발탁은 이례적이었다. 감독 경험이 없다는 점도 그렇지만 지난해 아시아선수권 4강 진출로 본선 진출권을 따낸 조동현 전 감독의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상식과 관행에 비춰 볼 때 조 감독을 경질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축구협회는 홍 감독에게는 2012년 올림픽 감독 자리를 보장했다. 이는 파격적인 혜택으로서 홍명보가 특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에 족하다.

정치적 야망이 큰 정몽준 명예회장이 국민적인 축구 스타 홍명보 감독을 소중한 정치적 자산으로 생각하며 아낀다는 말도 나돈다. 사실 홍 감독은 협회의 배려(또는 신임) 덕에 줄곧 대표팀 코치를 맡아 왔고, 덕분에 경쟁 없이 대표팀 코치 경력을 쌓았다. 이 부담스러운 시각에 대해 질문을 받은 홍 감독은 특유의 ‘포커 페이스’로 차분히 자신의 입장을 설명했다.

경험 부족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한다”고 운을 떼었다. 그러나 홍 감독은 “선수 때 이미지가 워낙 강해 나를 어리게 생각하지만 벌써 마흔 살이 넘었다. 축구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나이다. 선수 시절엔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찰할 수 있었다. 또 코치 때 쌓았던 경험을 믿고 싶다”고 말했다.

난 정몽준과는 관계없는 사람
런던올림픽까지 약속된 것에 대해서는 “청소년대표팀 감독 제의만 왔다면 아예 팀을 맡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정면 돌파했다. 그는 “선수를 키워 가며 올림픽까지 책임진다는 비전이 있어서 시작한 일”이라며 “지난겨울 J-리그와 K-리그 몇몇 팀에서 감독 제의가 있었다. 갈 곳이 없어서 맡은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그는 “청소년월드컵에서의 성적도 중요하다. 하지만 2012년을 바라보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팀을 운영하겠다”고 못 박았다. 청소년월드컵 성적에는 연연하지 않겠으며, 더 급한 일은 지금 월드컵 팀의 대들보로 성장한 기성용·이청용처럼 재능이 풍부한 어린 선수를 발굴하고 키워 내는 일이라는 주장이다.

조동현 전 감독에 대해서는 미안한 감정이 없지 않았다. 홍 감독은 “결과적으로 모양새가 그렇게 돼 죄송한 마음이 있다. 기분이 안 좋을 수도 있는데 오늘 점심식사 시간에 조동현 감독이 직접 오셔서 선수들에게 열심히 하라고 당부해 주셨다. 나에게 선수들에 대한 정보도 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조동현 전 감독은 이날 방문에 대해 “애들을 생각해서라도 마무리는 잘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껄껄 웃었다.

정몽준 명예회장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그저 주위에서 하는 말이다. 그런 일에 신경 쓰기보다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홍 감독으로서는 최선의 대답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홍 감독이 쌓아 올리는 업적과 처신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문제다.

기성용·이청용 같은 선수 발굴할 터
홍명보 감독에게도 분명 닮고 싶은 누군가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 감독은 “롤 모델은 없다. 누구를 따라 하기보다 도전도 하고 실패도 하면서 스스로 시험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류가 되지 않겠다는 당찬 포부이기도 하지만 홍명보 감독 특유의 복잡한 화법이기도 하다. 그는 생각을 분명히 표현하는 편이지만 속마음을 쉽게 알기 어려운 면도 있다.

홍 감독은 2005년 9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대표팀을 맡을 때 코치로 발탁됐다. 2006 독일월드컵이 끝난 다음에는 핌 베어벡 감독과 박성화 감독을 보필했다. 홍 감독은 전임 감독에 대해 나름대로 평가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아침에 선수들 눈이 충혈된 것까지 신경 쓰는 세심한 면이 있었다. 베어벡 감독은 족집게 강사처럼 완벽한 훈련 프로그램을 짜는 능력이 탁월했다. 나는 계속 외국인 감독과 생활해 사고가 치우칠 수도 있었는데 박성화 감독을 모시면서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그는 “처음 코치를 맡았을 때 나는 선수들 맏형 노릇만 잘하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날 코칭스태프 회의 때 아드보카트 감독이 ‘왜 넌 말을 안 하느냐’고 질책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아드보카트 감독과 베어벡 코치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싸웠다. 그런 과정을 통해 전술과 전략을 만들어 나갔다. 나도 의견을 내 처음 반영됐을 때는 너무 기뻐 눈물이 날 뻔했다”는 기억을 더듬었다.

홍명보 사단에서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함께 뛴 김태영 코치가 수비 부문을, 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한 뒤 코치로 기용될 예정인 서정원 기술분석관이 공격 부문을 맡는다. 홍 감독은 “코치들에게 실수는 해도 상관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내가 실수하는 것을 그냥 넘어가지는 말라고 당부했다. 내가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는 코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그는 “난 J-리그와 미국 프로축구 등 해외 리그 경험이 10년이 넘는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자세가 돼 있다”고 다짐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도 보장받아
홍 감독이 자신의 업적과 능력에 대해 갖는 긍지는 대단하다. 그는 “스타가 지도자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속설이 있다. 선수 때 경험을 과신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난 선수들 앞에서 절대 시범을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홍명보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역효과를 우려해 선수들과 눈높이를 맞추겠다는 것이지만 여기에도 ‘내가 한 것과 같은 플레이를 아무나 할 수 없다’는 자부심은 깔려 있다.

홍 감독에게 선수 생활은 축구 인생의 1막이었다. 지도자 생활은 2막이다. 그렇다면 3막은? ‘독일 축구의 황제’ 베켄바워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베켄바워는 1974 서독월드컵에서 선수로, 1990 이탈리아 월드컵에서 감독으로 우승을 맛봤다. 2006 독일월드컵 때는 조직위원장을 맡아 대회를 잘 치렀다. 선수·지도자·행정가로 모두 성공한 것이다.

홍 감독이 베켄바워를 꿈꾸는 것과 실제로 그렇게 되는 것은 별개다.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쉽게 성공 가도를 달려왔지만 이제 진짜 승부가 기다리고 있다. 청소년 월드컵에서 실패할 경우 부담이 작지 않을 것이고, 내년에 시작되는 2012 런던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는 그야말로 피 말리는 경쟁을 해야 한다.

그는 “중2부터 고2 때까지 키가 작았고 이때가 선수로서 가장 힘들었다. 하지만 고3 때 키가 10㎝ 정도 자랐고, 키가 작을 때 익힌 기술이 몸에 배 큰 힘이 됐다”고 말했다. 시련이 그를 키웠다는 이야기다. 가슴 훈훈한 스토리지만 이 속엔 반전이 숨어 있다. 홍명보는 선수 시절과 달리 지도자로는 큰 시련을 겪지 않고 컸다.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감만은 대단하다.




기자가 본 홍명보 감독
홍명보 감독을 인터뷰하면서 줄곧 거스 히딩크 감독을 떠올렸다. 2001년이었다. 당시만 해도 졌다 하면 0-5라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면치 못했다. 히딩크는 월드컵 개막을 6개월 앞두고 “겨울에는 한국에서 할 일이 없다”며 유럽으로 휴가를 떠났다. 2002년 초 미국 골드컵 때는 애인을 숙소까지 동반해 협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때 히딩크 감독은 비상식적이고 뻔뻔한 사람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는 기대를 뛰어넘는 결과로 자신의 특별함을 증명했다.

홍 감독은 편치 않은 자리에 앉았다. 파격적인 감독 발탁, 쏟아지는 질시…. 그러나 홍 감독은 당당하다. 흔들림 없는 신념은 ‘독불장군’ 히딩크의 재판 같다. 축구계에는 이런 말이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누가 축구 감독이 되겠는가’. 맨유의 알렉스 퍼거슨, 인터 밀란의 무리뉴 등 세계적 명장들은 모두 상식과는 거리가 먼 괴팍한 신사들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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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중앙 선데이에 게재한 기사 입니다.
조금은 독불장군 처럼 보이는 홍명보. 그는 앞으로 어떤 성과를 거둘까요. 일단 현재 모습으로 보면 매우 믿음직스럽습니다. 일단 자신감이 넘치니까요. 리더의 중요한 덕목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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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작전>을 보고

즐거운 책읽기 | 2009/03/09 23:58 | hjlee72
며칠 전 영화를 보았습니다.



바로 이녀석. 작전입니다.

박용하의 연기도 기대 이상이었지만... 박희순(황종구역 조폭 독가스파 두목)과 김무열(증권사 차장)의 연기가 아주 매력적이었습니다.

다른 개미와 마찬가지로, 저 역시 주식 투자를 하면서 돈을 얼마간 까먹고 있습니다. 지금도 까먹고 있고요. 지금은 다 포기하고, 넣어둔 주식 찾을 생각도 안하고 묵히면서 주가 하락에 따라 착실히 까먹고 있죠.

하지만 한창 데이 트레이딩을 하던 때도 있었죠.

그 때 전 황당한 생각을 했습니다. '누군가가 내 주식 매매를 관찰하고 있다.'
내가 사면 그 때부터 떨어지고, 내가 팔면 그 때부터 오르는 일이 수도없이 반복됐기 때문이죠.

얼핏 짐작을 하고 있었지만, 이 영화를 보니, 나 같은 개미들이 어떻게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노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저는 생각합니다. 한게임 고스톱 보다는 주식 데이 트레이딩이 훨씬 더 재밌다고.(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안합니다.) 이런 자세로 주식을 하니 까먹는 게 당연한 일이죠. ㅋ.

일확천금의 꿈은 얼마나 달콤합니까. 게다가 주식이라는 공개적이고, 합법적인 창구에서. 판단력, 예지력, 분석력, 순발력 등 자신의 모든 능력을 모두 끌어모아 치르는 전투는 얼마나 매혹적입니까. (설령 패한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세월이 지나고, 차트를 볼 때면, 우린 또 얼마나 후회합니까. 내가 왜 그 때는 그것을 몰랐을까. 모든 여건과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그걸 몰랐다니 이런 바보~. ㅋㅋ.

***
인생은 되는 놈만 되고, 안되는 놈은 안된다. 극 중 황종구의 말입니다.
양아치가 뱉어내는 말에는 매력이 있습니다. 인생의 비의를 거침없이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때문이죠.

고등학고 때 물리인가 수학인가 하여간 어떤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한 줄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줄에 걸린 녀석들만 혼쭐이 났죠. 똑같이 숙제를 안해도 줄만 잘 서면 오케이였습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녀석들이 항의해도 소용없었습니다.
선생님은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거야, 라며 간단히 무찔러버렸습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그 줄에서나마 숙제 해온 놈은 안맞았으니 공평한 일 아닌가 싶네요.

***
김민정이라는 배우. 그 배우는 어디까지 커나갈 것인가. 뭔가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듯하지만, 이상하게 뭔가 부족해 보이는 그녀. 발음이 앙칼지고 똑부러지는 그녀. 얼마간 매력적인 얼굴.
***
김무열. 증권사 차장으로 나온 배우. 기대되네요.
  1. 1.  인류멸망보고서
    2009 | 한국 | 판타지
  2. 2.  작전 The Scam - 증권 브로커, 조민형 역
    2009 | 한국 | 범죄,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 | 119분
  3. 3.  일지매 - 은채의 오빠, 시완 역
    2008 | 한국 | 액션, 드라마
  4. 4.  별순검 조선과학수사대 별순검 - 오덕 역
    2007 | 한국

***
조폭 두목으로 나온 황종구. 대한민국영화상 남우조연상을 탔던 탄탄한 배우네요. 오케이 거기까지. 어디선가 많이 듣던 말을 얼마나 감칠맛나게 하던지.
***
이상 허접 좌충우돌 영화 관전평이었습니다.
***
상암 CGV에서 영화를 보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길. 내리막길에서 속도를 내다가 그만 자갈밭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자전거 위에 올라타 있을 때는 몰랐는데... 땅바닥에 몸이 닿는 순간 엄청난 속도감이 느껴지더군요. 아 이게 바로 크래쉬구나.
 
자전거뿐만 아니라, 인생도 균형을 달리며 달릴 때는 모르지만, 눈 깜빡하는 새 자칫 넘어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상상 이상으로 아찔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

작전을 보고 난 후, 자전거 사고가 준 교훈은.... 개그맨 박지선의 유행어 참~ 쉽죠의 패러디 버전입니다.

참~ 춥죠 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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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24·AS모나코)이 모처럼 침체의 늪에 벗어나 2도움을 올렸다.

박주영은 2일(한국시간) 프랑스 모나코 루이2세 경기장에서 열린 생테티엔과 2008~2009 프랑스 1부리그 26라운드 홈경기에 풀타임 출전하며 극적인 2-2 무승부를 이끌었다. 강등권에 놓인 생테티엔을 홈으로 불러들인 AS 모나코로서는 반드시 승리가 필요한 경기였다. 고메스 감독은 프레데릭 니마니와 세르지오 각페 등 공격수들을 대거 포진하며 공격적으로 나섰다.

선제골은 모나코가 떠트렸다. 전반 20분 박주영이 페널티지역 오른쪽으로 밀어준 공을 니마니가 달려들며 왼발 슈팅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지난해 11월 24일 르망전 이후 무려 3개월 만에 나온 도움이었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모나코는 전반 26분 디미트리 파예에게 동점골을 내주며 전반을 마쳤다. 후반 16분에는 일본 국가대표 마쓰이 다이스케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패배 위기까지 몰렸다.

경기가 거의 끝나가던 후반 46분 박주영의 패스가 또 한번 위력을 과시했다. 페널티지역 왼쪽으로 내준 공을 요한 몰로가 오른발 슈팅으로 동점골을 뽑아냈다. 당초 승리를 다짐했던 모나코는 승점 1점이라도 확보한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어야 했다.

박주영은 비록 골을 기록하지 못했지만 팀이 올린 2득점을 모두 어시스트하는 알토란같은 활약을 펼쳤다. 프랑스의 스포츠 전문지 레퀴프는 박주영에게 평점 5점으로 비교적 높은 점수를 주었다. 이날 경기의 평점 분포는 3점부터 6점까지였다. 최근 정규리그 4경기에서 잇달아 교체 당했던 박주영이 모처럼 풀타임 출전을 했다는 점도 의미가 있었다. 박주영은 올 시즌 프랑스 1부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2골·4도움을 기록중이다. AS 모나코는 7승8무11패로 20개팀 가운데 12위에 랭크됐다. 이해준 기자 hjlee7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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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dsdsd 2009/04/13 15:31

    안녕하세요 스포츠토토 카페회원님들과 함께 하고자 이렇게 글을 남기게 됬습니다.

    스포츠배팅사이트인데 아직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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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주로 가는곳인데요 사이트도 안정되고 믿고 배팅할수 있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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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 읽어보시고 시작하셔도 좋습니다.

    http://totosports.u.to/ <- 바로가기

    괜찮은 사이트 알고 계시면 같이 공유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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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24)이 선발로 나서 풀타임 출장하며 AS 모나코의 FA컵(쿠프 드 프랑스) 8강 진출을 도왔다.

AS 모나코는 5일 새벽(한국시간) 프랑스 프랑스와코티에서 AC 아작시오(2부리그)를 상대로 한 2008~2009 FA컵 16강 원정경기에서 2-0으로 승리했다. 전반 30분 니콜라 포크리바치가 선제골, 후반 27분 알렉산드레 리카타는 추가골을 터트렸다. 지난 2일 생테티엔과 정규리그에서 2도움을 올렸던 박주영은 몰로, 리카타와 함께 최전방 공격에 나섰지만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쌓는 데 실패했다. 정규리그에서 2무2패로 부진했던 AS 모나코는 이 날 승리로 분위기 반전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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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영이 뛰고 있는 AS 모나코가 영어 사이트를 오픈했습니다.
http://www.asm-fc.com/uk/default.aspx

여러 선수들이 영어 사이트 오픈에 대한 영어 코멘트를 한 것을 짜집기해서 만든 동영상입니다.

박주영의 영어 실력. 궁금하시죠.

원래 경상도 친구들이 영어 발음에 좀 약하죠.(대신 일본어 억양은 거의 일본 사람이죠) 대학 시절 진주 출신 친구 녀석이 어찌나 영어 강독 시간에 고민을 하던지.

주영이 영어 발음에도 살짝 '갱상도' 발음이 섞여 있는 듯. ^^

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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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1층에는 축구 전시실이 있습니다. 새 회장이 들어서는 때를 즈음해 1층 전시실도 새롭게 꾸몄더군요. 그 중에서 눈에 띈 것은 역대 축구 대표팀의 유니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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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도쿄 올림픽 때 유니폼입니다.
그 때도 한국은 붉은 유니폼이었습니다.

원로들의 증언에 따르면 1948년 런던 올림픽 때도 한국은 붉은 유니폼을 입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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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대표팀 유니폼입니다.
그 때 대표팀의 명칭은 화랑이었습니다.
왼쪽 가슴에는 대문짝만하게 태극기가 박혀 있습니다. 차범근 감독이 현역 시절 입었던 디자인이겠죠.

소매로 이어진 흰색 선과 흰색 목 깃이 굉장히 클래식한 느낌을 주네요.

여기서 잠깐. 한국은 왜 빨간 유니폼을 입었을까요.
여기엔 여러가지 설이 있습니다.
과거에 임금님이 입던 곤룡포의 색이 붉은 색이었다는 설.
열정적인 붉은 색이 자연스럽게 대표팀 상징색이 됐다는 설.
그러나 가장 근거 있어 보이는 설은 태극 기원설입니다.
태극 문양에서 위쪽에 있는 붉은 색이 낙점을 받았다는 것이죠. 당시 화랑에 이은 대표 2진격이었던 충무는 파란색 유니폼을 입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한국 상징색의 보조색이 흰색이지만 예전에는 파란 유니폼을 보조로 즐겨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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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 월드컵 때 유니폼입니다.
마침내, 대표팀 유니폼에 상표가 등장합니다.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스포츠 마케팅도 점점 자라난 것이죠. 그런데... 마음 한 편이 개운치 않은 건 왜일까요. 여러분은 어떠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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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유니폼입니다. 참패를 당했던 월드컵. 홍명보 코치가 대표팀의 새내기 수비수로 두각을 열린 대회죠.
당시 멤버는
이회택
코치 이차만, 이세연
GK코치
스태프
트레이너 허정무
선수단 GK
최인영, 김풍주, 정기동
필드플레이어 홍명보, 정용환, 구상범, 최강희, 박경훈, 윤덕여, 이흥실, 노수진, 이상윤, 김주성, 이영진, 정해원, 조민국, 정종수, 최순호, 황선홍, 변병주, 황보관, 이태호


입니다.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를 상대로 3연패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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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단일팀이 출전한 1991년 포르투갈 청소년대회 유니폼입니다.
라피도 상표가 작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남아있네요.
한반도기. 그 때만 해도 굉장한 사건이었죠. 그런데 한반도기에 독도는커녕 울릉도도 없네요.

요즘 한반도기는 어떤가요.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반도기에 독도 표시 문제가 논란이 됐습니다. 남북은 독도를 넣자고 합의했지만 대회 조직위의 무성의로 불발됐습니다.
아마도 국제 분쟁에 휘말리기 꺼린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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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미국 월드컵 유니폼입니다. 참으로 파격적인 디자인 혁명이었죠.
붉은 색에서 벗어나다니.

흰색을 입으면 더 커보이는 효과가 있다... 라는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이 옷을 입은 대표팀은 굉장한 선전을 펼쳤습니다.
스페인전에서는 0-2로 끌려가다가 후반 종료 5분을 남기고 홍명보와 서정원이 잇달아 골을 터뜨려 2-2로 비겼습니다. 정말 극적인 경기였죠.
볼리비아와는 0-0으로 비겨 두고 두고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독일과 마지막 경기에서도 한국은 전반 3골을 먹은 후 후반에 2골을 만회하며 끝까지 선전을 펼쳤습니다. 아직도 그 때 심장이 뛰던 느낌과 안타까움이 기억납니다.

잘 나온 사진으로 한 번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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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느낌의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유니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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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프랑스 월드컵 예선 때 유니폼입니다. 차범근 감독이 승승장구하던 때, 도쿄대첩에서 짜릿한 승리 때 입었던 유니폼입니다.
나이키로 스폰서도 바뀌었습니다. 이 때부터 쭉 나이키가 하고 있습니다.
청백적. 모두 태극기 색입니다. 부드러운 청백띠는 태극 문양을 연상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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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프랑스 월드컵 본선 때 유니폼입니다. 98 프랑스 월드컵은 서포터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첫번째 월드컵이기도 합니다. 유니폼 바뀔 때마다 서포터들은 고민에 빠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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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한일 월드컵 때 유니폼입니다.
전통적인 한국의 붉은 색보다 더 밝은 색입니다. 얼핏 보면 좀 이상해 보이는 색. 그런데 녹색 잔디 속에서 보면 꽤 그럴듯해 보인답니다.

왼쪽 가슴에 태극기도 사라졌습니다. 대신 축구협회 문장을 새겨 넣었습니다. 유럽식으로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태극기는 소매에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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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독일 월드컵의 유니폼입니다. 성적이 시원치 않았기 때문일까요.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네요. 아드보카트 감독도, 유니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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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입고 있는 유니폼입니다. 일명 쫄티 유니폼.
이탈리아 선수들이 쫄티 유니폼 입으면 시쳇말로 간지가 끝장이죠. 하기야 이탈리아 놈들은 뭘 입어도 멋있죠.
만일 배나온 제가 입는다면... 그것도 끝장입니다.

이 밖에도 축구협회 1층 전시실에는 다양한 물건들이 전시돼 있습니다. 각종 우승컵 등등.
그 중 일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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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월드컵 출전 선수 팜플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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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멕시코 월드컵 4강 증명서. 상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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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본선 진출 기념 패입니다. 기념패 말고 저 컵을 가져올 날을 생전에 볼 수 있을까요.
1986년부터 2006년까지 6개 대회의 것입니다. 스위스 월드컵 것은... 글쎄요. 그때 그런게 있었는지도 잘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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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진우 2009/01/30 14:44

    1964년은 도쿄 월드컵이 아니라...

    올림픽 입니다...

  2. 이준수 2009/03/29 19:26

    전 개인적으로 독일월드컵때입었던 유니폼이 가장 멋진것같네요. 재질이랑 옆에 호랑이줄무늬를 상징한다고 하는 파란색 빗살(?)과 유니폼 안쪽에 새겨진 필승까지 ... 근데 정작 이기진 못했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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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알 힐랄에서 뛰는 설기현(30)도 입단 후 두 경기 만에 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설기현은 24일(한국시간) 리야드 킹파드 스타디움에서 열린 알 나스르전에서 팀이 1-0으로 앞서던 후반 34분 감각적인 왼발 패스로 라도이의 쐐기골을 어시스트했다. 알 힐랄 팬들은 후반 38분 교체아웃되는 설기현을 향해 “코리아”를 연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2-0으로 승리한 알 힐랄은 14경기 무패행진(10승4무)과 함께 단독 선두로 뛰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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