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기춘 선수, 유도 남자 73kg급에서 귀중한 은메달을 땄었죠. 하지만 왕기춘 선수 표정은 밝지 못 했습니다. 결승전에서 너무 경황 없이 져버렸거든요. 아쉬움이 많았을 겁니다.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왕기춘 선수의 아버지 왕태연씨도 함께 울었습니다. 금메달 못 딴 것도 아쉬웠지만 아들이 어떻게 될까 하는 부모심정이었죠. 올림픽 하기 전에 왕기춘 선수 아버지를 뵌 적이 있습니다. 저희 동네인 월계동 근처 아파트 관리사무실에서 일하십니다.

  그 때 왕태연씨는 이런 말을 하셨어요. "우리 아들이 나를 한 번도 실망시킨 적이 없소. 금메달을 못 따더라도 언제나 최선을 다했고 판정이 어떻든 나는 우리 아들이 항상 이겼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오." 어느 아버지가 그렇지 않겠습니까.

<녹색 옷을 입은 분이 왕기춘 선수 아버님 왕태연씨 입니다. 다른 선수 경기도 놓치지 않고 상대의 전력을 분석하고 계십니다>

  왕기춘 선수는 승부욕이 강하기로 소문난 선숩니다. 고등학생 때는 자신이 만족하지 못 하는 경기를 하고 나서는 도복을 아예 찢어버렸답니다. 경기에 한 번 지고나면 며칠 동안 밥도 먹지 않고 씩씩거리는 선수라죠. 그 때 아버님은 "금메달 못 따도 좋으니 아들이 스스로를 더 잘 다스릴 줄 아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다"고 얘기하셨죠.


<왕기춘 선수가 출전하자 자리에 앉아서 보지를 못 하십니다. 벌떡 일어나신 아버지는 말도 못하고 애만 태우고 계십니다>

  이원희의 그늘이 짙었던 왕기춘에겐 금메달만이 모든 부담과 관심의 무게를 덜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였을 겁니다. 은메달도 대단한데, 은메달로 해소가 안 되는 부담감을 안고 싸운 왕기춘 선수에게 미안한 마음까지 듭니다.

  왕태연씨는 직장에서 가까운 태릉선수촌에 매일 저녁 찾아가 아들 얼굴을 봤습니다. 가족이라고 태릉선수촌을 막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문 앞에서 잠깐 얼굴을 볼 때마다 자기 아들이 맞나 할 정도로 낯빛이 안 좋았다고 해요. 부담감이 워낙 크다 보니 그걸 잊기 위해 더 훈련에 매달렸기 때문이죠.
 
  왕기춘 선수 하면 훈련벌레로 유명합니다. 서울체고 1학년 때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어느 비오는 여름날 밤 11시쯤 됐다고 합니다. 비가 하도 와서 교장선생님이 학교 시설물에 뭔 일이 없는지 돌아다니시는데 운동장 한 쪽에 마련된 멀리뛰기 비닐하우스 연습장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더랍니다.

  교장선생님이 가봤죠. 문을 빼꼼히 열어보니 까까머리 왕기춘이 10kg짜리 해머를 들고 모래바닥을 계속 내리치고 있었습니다. 업어치기 훈련이었죠. 남들 다 자는 밤에 훈련상대가 있을리 없었죠. 이 정도이니 올림픽을 앞두고 얼마나 훈련을 많이 했겠습니까. 시상식 때 보인 상실감, 이해하고도 남습니다.

 
<유도장 기자석에 있는 한 프랑스 기자가 보던 책입니다. 73kg급 예상에 왕기춘 선수가 주인공입니다. 이 예상대로 됐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한국유도를 살리고 죽이고 할 정도의 부담을 혼자 안고 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부모로서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가슴아팠다"는 왕태연씨는 언제 아들이 패배의 기억을 잊고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지 걱정입니다.

  아마 시간이 꽤 걸리겠죠. 늘 그랬답니다. 큰 경기에서 지고 나면 새롭게 준비를 하는데 한참이 걸렸다죠. 왕기춘 선수가 이번 올림픽을 좋은 경험으로 생각하길 바랍니다. 실력으로만 안 되는 것이 올림픽 금메달이니까요. 그래서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내린다나요?

  부상을 치료할 시간도 있으니 푹 쉬세요. 오랜만에 가족들과도 시간도 보내고... 부디 빨리 마음을 추스려 부모님이 걱정하지 않도록 하세요. 정말 수고 많았고, 잘 했습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도 취재를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왕기춘 선수 출전한다면 기를 쓰고 따라가서 금메달 기사 타전하고 싶네요.
2008/08/15 17:26 2008/08/1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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