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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11/19JBC - X파일무릎꿇은 정운찬 총리를 위한 변명(3)
  3. 2009/11/13JBC - X파일여대생 사냥과 루저 사냥
  4. 2009/11/09JBC - X파일안익태 친일파면, 애국가는 친일파 곡인가(4)
  5. 2009/10/29JBC - X파일안익태가 친일파면 애국가는---?(9)
  6. 2009/09/23JBC - X파일어, 하토야마 부부 명함도 4차원이네(1)
  7. 2009/09/20JBC - X파일하토야마 우애론의 정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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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09/07/26JBC - X파일해운대 영화가 픽션이라고요? 천만에(2)
  10. 2009/07/25JBC - X파일"동생이 북한에 납치됐어요"

성남의 스텔스 전투기

에프터스토리 2009/11/21 13:00JBC - X파일

지난주 성남에 갔다왔습니다. 을지대학(구 서울보건대학) 부근에 사는 지인을 만나기 위해서 입니다.
 그 부근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승용차는 공영주차장에 주차하고 오라.”
 처음 가는 곳이라 네비케이션에 의존했고, 공영주차장은 찾지 못했습니다. 가다 보니, 그 지인 집 근처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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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남신청사 입구/연합뉴스


 헌데 웬걸요. 좁은 골목에 차들이 얼마나 많은지. 지인이 달려 나왔습니다. 그는 오는 차들을 막고, 그의 신호에 따라 승용차를 뒤로 빼고, 앞으로 가고 겨우 그 길을 빠져 나왔습니다.
  그리곤 그의 집과 300미터 정도 떨어진 공영주차장에 주차했습니다. 주차난은 성남 뿐만 아니라 서울 등 대도시도 똑같습니다.
 허나 그날 성남 주택가의 주차난을 경험한 후 성남에 갈 때는 대중 교통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또 지난 겨울 성남에 갔었습니다. 정말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살았습니다. 성남의 한 변두리에 사는 그들은 고층 아파트와 현대화에 소외되어 하루 하루 끼니도 걱정할 판이었습니다.   한 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고, 겨울에는 난방도 엄두 못냈습니다.
 성남의 어두운 면만 부각시킨 것 같아 성남 시민들에겐 죄송합니다. 그렇게 사는 사람이 성남시에만 있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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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남에 뜬 스텔스 전투기 청사/연합뉴스


그런데 왜 성남의 예를 들었을까요, 성남시가 건립한 신청사 때문입니다. 워낙 언론이 호화 청사라 해서 이제 성남 신청사는 유명관광지가 됐더군요.
  3200억원을 들여 호화 청사를 짓고, 3억원을 들여 유명 연예인을 불러 모아 개청식을 했고, 신청사 시장실이 지나치게 넓다는 등 비난 여론이 쏟아졌습니다.
  스텔스 전투기 모양을 닮은 신청사 맨 꼭대기인 9층 왼쪽 날개 부분에 위치한 시장 집무실(부속실 포함)의 면적은 282㎡로 밝혀졌습니다. 
 경기도지사실보다 48㎡ 넓고, 교실(68㎡) 4개를 합친 것보다 넓습니다. 행정안전부가 정한 자치단체장 집무실 기준 면적(165.3㎡)을 훨씬 초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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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
 

시장실은 사무실 92㎡, 침대 등을 갖춘 내실 16㎡, 화장실 22㎡로 시장 개인을 위한 면적이 130㎡ 입니다. 여기에 비서실 81㎡, 접견실 48㎡, 탕비실 13㎡, 준비실 10㎡ 등 부속시설이 152㎡ 입니다. 5층에서 9층 시장실로 향하는 시장 전용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습니다.
 
지난 10일부터 성남시 인터넷 홈페이지에는 성남시를 비난하는 시민의 글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혈세를 더 가치 있는데 써주세요.” “정말 세금 내기 싫습니다.” “호화로운 청사 안에서만 업무가 잘됩니까?” “부끄럽습니다.” 
 솔직히 그렇게 비난한 들 뭐합니까. 시민, 네티즌들이 비난했다고 지었던 신청사가 허물어 집니까. 사실 성남 신청사가 초호화란 얘기는 오래전부터 지적됐는데 정부 행정기관과 성남 시민들이 왜 가만히 있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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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엽 시장도 그렇습니다. 솔직히 그가 성남 발전을 위해 얼마나 열과 성을 다했는지 모르지만 이 건 분명 아닙니다. 부끄럽지 않습니까.
 신청사 건립은 그렇다 칩시다. 비난 여론이 들끓는데도 불구하고 3억원 들여 개청식을 했습니다. 도대체 시장 뿐만 아니라 시에 종사하는 공무원들의 의식 수준이 그것 밖에 안됩니까. 한마디로 어이없습니다.
 
2년 전입니다. 일본 마이니치 방송인 출신 히라마쓰 구니오 오사카 시장을 만났습니다. 그를 만난 곳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집무실이었습니다. 33㎡(10평)정도였습니다. 여비서도 없었습니다.
 한 원로 신사가 커피를 내놓았습니다. 이대엽씨와 히라마쓰 오사카 시장을 비교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검소함만은 비교 대상이 됩니다.
 이 시장의 집무실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차라리 집무실을 지역 청소년의 체력 증진을 위해 농구장으로 탈바꿈 시키는 것입니다.
 요즘 개콘에서 유행하는 개그. 다들 시장 집무실 한켠에 농구장 하나 쯤 만들수 있지 않습니까. 농구장 없는 게 시장실입니까. 그건 창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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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면 노숙자 쉼터도 괜찮겠네요. 수십명의 노숙자가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도록 개방하면 좋겠네요. 시장쯤 되면 수백명 주무실 노숙자 쉼터 만들어주잖아요. 그거 못하면 시장입니까.
 대통령이죠. 개그에 빗대어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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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노컷뉴스

 밑에 사진이 진짜 스텔스 전투기 입니다.  시장님 스텔스기  타시고 실컷 비행하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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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하는  스텔스 전투기   


 

2009/11/21 13:00 2009/11/21 13:00

1. 무릎꿇은 일본인 아내

 5년 전 입니다. 일본 아오모리 하치노헤시에 있는 한 일본인 지인 집을 방문했습니다.
 현관문이 열리자 그의 아내가 달려 나왔습니다. 그는 현관 앞에서 무릎을 꿇고 “우리 집 방문을 환영한다”며 반겼습니다.
 그의 아내가 무릎을 꿇고 인사하자 순간 무척 당황했습니다. 저는 그냥 서서 목례로 인사 했을 뿐입니다.
 왜 저렇게 무릎꿇고 인사할까 궁금했습니다. 한 지인은 “일본인들이라고 다 무릎 꿇고 인사하지는 않지만 대개 그렇게 한다”고 얘기하더군요.
 
실제로 일본인들은 무릎 꿇고 인사하고, 또 앉을 수 없는 상태에선 90도로 머리 숙여 인사를 하더군요. 이제는 그렇게 인사 하지 않는 일본인이 더 이상하게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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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총리가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시면 유족도 무릎꿇고 있습니다.
사진 출처=뉴시스

2. 무릎꿇은 국회의원

2년 전이었습니다. 일본의 한 식당에서 국회의원을 소개 받았습니다. 그는 명함을 갖고 제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곤 제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 국회의원은 무릎을 꿇고 정중히 명함을 건넸습니다.  그 국회의원은 저에게만 무릎 꿇은 게 아니었습니다. 다른 일본인과 인사를 나눌때도 무릎을 꿇었습니다.
 한국 국회의원들이 명함 줄 때 무릎을 꿇습니까?  짧게나마 국회 출입 경험이 있는 저는 본 적 없습니다. 만약 한국의 국회의원이 무릎꿇고 명함 주는 장면을 목격했다면 제 눈을 의심했겠죠. 허나 일본에선 국회의원 뿐만 아니라 기업 총수도 무릎을 꿇어 인사하는 경우가 많아 그리 놀랐거나, 더이상 신기하지도 않습니다.

3. 무릎꿇은 일본 기업 회장

올 3월이었습니다. 일본의 한 기업 회장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 회장과 동행한 일행들과 서울 강남구 논현동 한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평소 가까웠던 그 회장에게 한국의 지인도 소개시켜 줬습니다. 제 지인을 소개시키자 그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곁으로 갔습니다. 저는 그 회장이 악수하기 제 지인 곁으로 가는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곁에 가더니 무릎을 꿇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누구 누구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그의 머리는 방바닥에 닿을 뻔 했습니다.
  제 지인은 무척 당황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하더군요. 명색이 수조원 매출을 올리는 기업 총수인데요.  저 역시 깜짝 놀랐습니다.
  한국 측 시각에서 보면 인사의 오버, 친절함의 오버, 지나친 배려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죠. 그러나 일본측 입장에서 보면,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게 일본이니까요.
 지난주 일본 천황을 방문한 오바마 대통령의 90도 인사도 화제였습니다. 미국 언론과 네티즌들은 오바마 대통령을 향해 ‘저자세’ 인사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듯, 오바마는 일본에서 일본식 인사를 했을 뿐입니다. 오바마는 상대 문화와 전통을 배려할 줄 아는 대통령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4. 무릎꿇은 정운찬 총리

지난주 부산 일본인 화재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지난 15일 양산 부산대병원 장례식장에서 희생자 유가족을 만나 무릎을 꿇고 사과의 말을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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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당시의 상황을 반추해보면 정 총리가 현장을 찾아 무릎꿇고 정중한 사과를 했다는 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습니다. 워낙 희생자가 많았으니 외교적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일본인 유가족 앞에서 총리가 어정쩡한 모습으로 조의를 표하는 것 자체가 무례일 수 있었습니다. 
 이러자 논란이 확산됐습니다. 일부 네티즌들은 정 총리가 추석 직전 용산참사 유가족들과 만난 사진을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총리가 무릎 꿇고 일본인 유족들에게 사과한 것에 대해 일부 언론과 네티즌까지 가세 비난 했습니다.
 야당도 공격했습니다. 이강래 민주당 원내총무는 "왜 용산참사 유족에는 하지 않았느냐" 따졌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정총리가 질타 받을 행위를 한 것인가. 당시 상황은 이랬습니다. 정총리가 유족들에게 다가가자 유족들은 무릎을 꿇고 정 총리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머리를 숙인 채 슬픔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유족들이 무릎꿇고 총리를 맞이하는 상황에서 좋습니다. 일국의 재상을 떠나, 그렇다면 당신은 어떤 자세를 취했을까요. 양반 자세로 앉을까요? 서 있을까요?
 더욱이 정 총리는 일본인 유족들에게 사과하러 간 것입니다. 유족들에게 사과하러 간 총리가 양반자세로 앉아서 사과 했다면, 사과의 진정성에 의심 했을 것입니다.
 
반문하고 싶습니다. 정 총리가 그렇게 잘못했습니까.

2009/11/19 19:38 2009/11/19 19:38
 최진실· 가수 유니·탤런트 장자연···. 자살한 연예인들입니다. 이들이 자살한 이유는 말 못할 개인 사정이 있었겠지만 네티즌들의 마녀사냥도 한 원인으로 분석됩니다.
 ‘한국인 비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2PM ‘재범 사태’를 기억하시죠. 네티즌들은 그가 내뱉은 앞뒤 정황의 발언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무조건 마녀사냥을 했습니다. 결국 그는 마녀사냥의 희생양이 되어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그게 불과 2개월 전 입니다.
 그런데 지금 인터넷 공간이 또다시 ‘마녀사냥터’로 변했습니다. 지난 9일 KBS 2TV ‘미녀들의 수다(미수다)’에서 여대생 이모씨가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패배자)”라고 표현한 데서 비롯된 ‘루저녀 논란’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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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다의 한 장면

 그 발언 때문에 그녀는 네티즌들 마녀사냥 표적이 되고 있습니다.  학교 게시판에 장학금을 신청한 글, 졸업사진과 성형의혹설 등 사소한 행적부터 친구, 교수,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 대한 정보도 속속 인터넷에 올라왔습니다.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는 이씨의 퇴학 청원 서명이 진행 중입니다. 한 남성은 KBS를 상대로 100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습니다.
 이씨는 12일 학교 홈페이지에 “인터넷에 떠도는 많은 사적인 정보와 루머, 악성댓글로 저는 물론이고 죄 없는 가족과 친구들까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고통을 호소하는 사과문을 올렸습니다. 그런데도 네티즌들은 더욱 그녀에 대한 공격적 마녀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개인의 사사로운 발언은 진실과 사실여부를 떠나 인터넷을 타는 순간 ‘믿고 싶은 진실’로 둔갑해 버립니다. 그 진실은 집단 지성을 마비시킨 채 ‘사실’로 공인됩니다.
 수백, 수천개의 댓글이 달린 후 “그게 아니야”라고 외쳐도 이미 때는 늦었습다. 사를 공으로 만드는 것은 오로지 그저 비방을 즐기는 정체불명의 집단적 숫자일 뿐입니다. 
그녀는 대본에 써있는 대로 말했다는 해명은 먹히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그녀는 지금 '마녀사냥'의 두려움에 떨고 있을 것입니다.
 2007년 6월입니다. SBS TV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 출연했던 여고생 이모(16)양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충격을 줬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양은 3개월만에 몸무게를 87㎏에서 47㎏으로 40kg이나 줄였다는 사연으로 '스타킹'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자살했습니다. 경찰은 그녀가 자살한 원인은 인터넷 악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파악했습니다.
 무한대에 가까웠던 인터넷 댓글의 자유는 ‘불순한’ 인신공격성의 거센 반격을 받고 있습니다. 스스로 생마저 마감해야 했던 유명 연예인들은 희생양이 돼 그 방종에 대한 경고를 보냈습니다.  
  그녀를 옹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녀가 대본대로 발언 했다고 하지만 사실 그 여대생은 애초부터 남성에 대한 삐뚤어진 인식을 갖고 있었지 않았을까요.  그녀가 얼마나 예쁜지 모르겠지만, 그 여대생도 자신의 외모에 취해 있지 않았을까요.
 나아가  ‘여대생 특집’을 통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긴 제작진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요.  이것은 시청률을 의식한 방송사의 뻔뻔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게 아닙니까.
 제작진은 이번 사태에 대해 발뺌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다가 뒤늦게 사과했습니다. 비겁한 사과입니다. 그래서 성난 루저들을 잠새울 수 있을까요.
 저도 루저에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4cm 모자랍니다.  
 암튼 세상은 골 때립니다. 만사형통 하십시요.

2009/11/13 10:43 2009/11/13 10:43
9일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위원회가 친일인명사전을 공개하자 한 지인이 이렇게 말하더군요.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나라 만세~~~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
 이 애국가 1절을 앞으론 '일본사람 일본으로 길이 보존하세~'로 가사를 바꾸어야겠네 하더군요.
 그는 이어 우스갯 소리로 '남산 위에 저 소나무~' 가사는 '후지산 위 저 사쿠라~'가 되어야 하지 않느냐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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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국가 작곡가 안희태 선생이 친일 명단에 포함된 것에 대해 자조섞인 말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습니다.
  민족문제연구소와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는 서울 효창공원 백범 묘소 앞에서 ‘친일인명사전’ 발간 국민보고대회를 열고 총 3권, 3000페이지에 달하는 친일인명사전을 공개했습니다.
  이 명단에는 안희태 이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장면 전 총리, 작곡가 홍난파, 민족춤 예술인 최승희, 민족언론인 장지연, 소설가 김동인 등 사회 지도층과 유력인사가 상당수 포함됐습니다.
 이미 지난해 4월 사전 수록 대상자 명단을 공개하면서 이들을 포함시켜 뜨거운 감자가 됐었던 인물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둘째치고 이 명단에 수록된 안익태와 애국가에 한해서만 따져봅시다. 우리나라의 국가, 애국가는 20세기 초엽 민간에 퍼져 있던 가사에 1936년에 안익태가 곡을 붙였으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더불어 국가로 결정되었습니다.
 애국가는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일깨워 주기 위한 노래이며, 국가적 차원의 공식적인 노래입니다.
 코흘리개서부터 애국가를 부르고 , 듣고,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선수들은 가슴 뭉클해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며 듣던 노래입니다.
 민족문제연구소 주장대로 친일파 안익태가 애국가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애국가는 친일파가 만든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배워왔고, 나라의 노래 국가로 알고 있는 애국가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친일파가 만든 애국가 계속 부를 건가요? 아니면 애국가를 다시 만들어야 하는지요. 안익태가 그 노래를 작곡했다면 우리가 불러야 되는지 말아야 하는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한 인사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손기정 선생이 일본 대표로 뛴 것과 다른 것이 뭐 있느냐. 그런데 한분은 영웅으로 추켜세우고 또 다른 분은 친일로 매도하는 것은 억울하다. 일본이 안익태 선생의 뛰어난 재능을 이용한 것뿐”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안익태 선생이 3.1 운동으로 학교에서 제적당했고, '한국환상곡' 연주 때 조국이 어서 독립하는 게 소원이라고 밝혔습니다.
  안익태 선생의 친일은 친일대로 별개의 문제고, 그것을 작곡한 사람과 애국가 교체와는 별개의 문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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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명단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포함되자 항의하는 시민 단체/ 연합뉴스


  또 다른 사람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친북 좌파 명단도 공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친북 좌파세력을 가려내지 않으면 대한민국 정통성이 늘 부정당하게 된다"더군요.
 그러나 친일과 친북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한 사회 연구가는 "일본과 친하게 지내고, 북한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라"이라고 말했습니다. 일본, 북한과 친한게 지냈다고 해서 친일, 친북 소리 듣는다면 백번이고 더 듣겠다고 했습니다.
여전히 편가르는 사회 참으로 머리 아픈 세상입니다. 만사형통 한 주 되십시요.
2009/11/09 08:01 2009/11/09 08:01

안익태. 한국의 작곡가·지휘자. 1936년에 <애국가>를 작곡했습니다. 안익태는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평양 숭실중학교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이에 가담, 퇴학당한 뒤 일본에 건너갔습니다. 마요르카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를 지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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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하는 안익태 연합뉴스 

홍난파. 우리나라 근대 음악의 선구자입니다. 서양 음악을 보급하였습니다. 작품으로 〈봉선화〉, 〈성불사의 밤〉, 〈봄처녀〉, 〈낮에 나온 반달〉이 있습니다. 
 북한의 무용가 최승희. 이시이 바쿠의 무용단에서 활동한 후 최승희 무용연구소를 세우고 한국의 고전무용을 현대화하였습니다. 구미 각국의 순회공연을 통해 '동양의 무희'로 불리며 세계의 찬사를 받았습다. 월북 후 평양에서 조선춤의 체계화와 무용극 창작에 힘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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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추는 최승희      연합뉴스
 

 다음달 8일 식민지 시절 일제에 협력한 인사들의 행적을 담은 '친일인명사전'에 이들을 포함,  4370여명의 명단이 공개됩니다.
 수록된 인물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장면 전 부통령,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우리나라 근대 음악의 선구자 홍난파, 월북 민족 무용가 최승희 등 정치, 언론, 문학, 음악, 무용 등 사회 각 분야 지도층 주요 인사들이 대거 포함됐습니다.
  명단에 포함된 친일파인사들은 ‘을사늑약 전후부터 1945년 8월 15일 해방에 이르기까지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ㆍ식민통치ㆍ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해 우리 민족 또는 타 민족에게 신체적 물리적 정신적으로 피해를 끼친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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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저=박정희 인터넷 기념관
 
 한 학자는  "박정희, 김성수, 안익태, 홍난파 등 우리 민족을 이끌고 우리의 정서를 채워준 선각자 지도자 창작가들이 친일파라니 기준이 뭔지 궁금하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또  “사전편찬 작업은 지난 60년을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로 규정한 정권이 주도했고 그런 색깔의 사람들이 친일 명단을 추려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역도산도 친일파(?)
 이 경우와는 다르지만 역도산 예를 들겠습니다. 친일 명단에 역도산이 포함돼 있진 않지만 조선인 출신 일본의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역도산은 지금도 친일파로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함경남도 출생인 역도산은 14세 때 전국씨름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그런 역도산이 1939년 일본에 건너가 모모타[百田]로 개명하고, 1940년부터 역도산이라는 별명으로 스모를 시작했습니다. 일각에선 역도산이 조선어(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았고, 스모를 했고, 개명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파로 규정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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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도산

 그러나  "역도산이 친일파"다 "아니다"란 논의 자체가  거북스럽습니다.  역도산에 대해 광범위하게 취재를 하고, 증언을 들었던 결과 역도산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좀 무리한 해석이란 견해입니다. 그런 말을 하는 분 중 역도산에 대해 깊이 있는 조사를 한 적 있습니까.  
 역도산이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과 관련, 역도산이 건너간 곳은 일본입니다. 일본에서 일본어를 사용했다는 이유가 친일파일까요.
 만약 지금 일본으로 출장을 갔거나, 여행을 간 사람들이라면 일본어를 모르는 것이 얼마나 답답한지 아십니까.
 당시 역도산은 15세 때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지금 15세는 중학교 2학년생입니다. 그 어린 소년 역도산이 일본으로 건너가 어떤 삶을 살았는가 한번쯤 내 동생 형, 자식이다 생각하고 떠올려 보십시요.
 그 어린나이에 역도산이 조선어를 사용해야 합니까. 스모 선수로 변신한 역도산이 조선인 이름 '김신락'이어야  했나요.
 중요한 건, 역도산은 조선의 정신을 잃지 않고 온갖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 내고 일본 최고의 영웅이 됐지 않습니까.   역도산은 58년 동경아시안게임은 물론이고, 한국 복싱 사상 첫 세계채핌언 김기수씨 후원과 일본 재일 한국인 야구 영웅 장훈까지 후원했습니다.
 그런 역도산을 친일파로 불러야 하나요.
 물론 이번에 발표되는 친일 행적자들은 역도산 경우와는 다를 것입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때 매국 행위에 가담하거나 독립운동을 직접 탄압한 자, 식민통치기구의 일원으로 식민 지배의 하수인 노릇을 했거나, 침략전쟁을 미화·선전한 자들 입니다.
 이들은 철저히 가려내 공개해야 합니다.
 그러나 "친일이다", "아니다" . 삶을 무우 자르듯 양분화 시킬 수 있겠습니까. 삶은 실타래처럼 복잡합니다.
 저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안익태가 친일파였다면, 그렇다면  <애국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이제껏 친일파 안익태가 작곡한 애국가를 학교와 공공장소에서 따라 불렀단 말입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생각입니까. 친일파가 작곡한 애국가라면 그 애국가가 일본 애국가 <기미가요> 후속곡입니까.  참으로 웃기고 헷갈립니다.  만사형통 하십시요.

 

2009/10/29 11:12 2009/10/29 11:12


 4차원 하토야마 부부 명함
 아내는 우주 형상화, 남편은 캐리커츠



최근 일본 총리로 취임한 하토야마 유키오에 대해 국내외적으로 관심이 높습니다. 언론도 하토야마에 대한 글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아무리  일본이 54년만에 정권 교체를 이뤘다 해도 국내에서 일본 총리에 대한 관심이 그렇게 높을 줄 예상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은 예전 같지 않지만 아직까지 한국인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피해 의식속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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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뉴욕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후 비행기 트랩에서 내려오는 하토야마 부부=연합뉴스


 요즘 저도 하토야마 총리에 대해 이런 저런 많은 이야기를 듣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헌데, 어제(22일)하토야마 총리와 친분 있는 한 인사를 만났습니다. 그 인사는 저에게 "하토야마 부부 명함을 본 적 있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없다"고 하자, 그는 명함집에서 하토야마 부부 명함을 끄낸 후 보여줬습니다. 그 인사가 명함을 보여 주기 전만 해도 일본 총리 부부의 명함이니, 그 명함에서 근엄함이 물씬 풍기지 않을까 예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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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유키 여사 명함 앞면
 

헌데 웬걸, 일본의 퍼스트 레이디 미유키 여사의 명함은 파란색 바탕에 달나라인지, 금성인지 모를 원을 그린 후 원 안에 파랑색 별모양을 새겨져 있었습니다.
 미유키 여사는 지난해 펴낸 저서 ‘내게 일어난 매우 이상한 일들’에서 “자고 있는데 내 영혼이 세모꼴 미확인비행물체(UFO)를 타고 금성으로 향했다”며 “금성은 매우 아름다운 곳으로 진한 초록색이었다”고 했습니다. 누가 봐도 우주 세계를 형상화 한 듯한 명함으로 짐작됐습니다.  '4차원 퍼스트 레이디'란 말이 그냥 나온 별칭이 아닌 듯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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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유키 여사 명함 뒷면
 
 
또 명함 이름 밑에는 영문으로 'Life composer'(인생설계자)를 새겨 넣었습니다. 미유키 여사는 스스로를 인생설계자로 칭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독특했고, 눈길이 가는 명함이었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 일본 총리의 명함도 독특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가 일본 중의원 시절 갖고 다녔던 명함은 노랑색 바탕에 3개나 되는 자신의 캐리커츠를 그려넣었습니다. 그 가운데는 동심원으로 퍼져 나가는 듯한 형상이 있었습니다.
'인간으로부터 우주에 이르는 길은 동심원을 통해서 이끌린다'는 이른바 '동심원론'은 하토야마 정치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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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토야마 총리 명함

  그래도 총리 부부 명함인데, 그 명함에도 위신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러나 애교가 묻어 나는 명함을 대중에게 건네고, 그 명함을 받아들인 대중은 어떨까요.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 가는 그 숨은 뜻이 하토야마 부부의 명함이었습니다.
 한국 정치인들의 명함은 어떨까요. 대한민국 국회의원 '홍길동'식입니다. 이 명함이 나쁘다고 말하진 않겠습니다만, 권위적 냄새가 팍팍 나는 명함인 것만은 사실입니다.
 여러분들의 명함은 어떻습니까.  

2009/09/23 11:21 2009/09/23 11:21


   하토야마 우애론 '칼레르기' 책속에 있다

 

최근 언론에서 하토야마 일본 총리의‘우애 정신'에 대해 많은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하토야마 정치철학의 핵심은 ‘우애’입니다. 형제애나 우정 등 인간적 감성을 말하는 컨셉트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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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텐호프 칼레르기

 우애는 18세기 프랑스 공화정 혁명 당시 상공업 브루조아들이 기치로 내걸었던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 중 ‘박애’를 말합니다. 하토야마 가문이 이것을‘우애’로 재해석했습니다.  서양에 ‘박애정신’이라는 컨셉이 있다면 동양에는 ‘우애’라는 개념이 있는 셈이죠.
‘박애주의’는 1930년 대 유럽이 나치 파시즘과 쇼비니즘(‘자유’이념의 극단적 형태), 공산주의(‘평등’이념의 극단적 형태) 등으로 양극단으로 갈라져 혼란스러울 당시 오스트리아의 정치인 쿠덴호페 칼레르기가 처음 제창했습니다.
오늘날 유럽통합의 밑거름이 되었던 칼레르기의 ‘박애주의 사상’을 하토야마의 할아버지이자 1955년 자민당 정권의 초대 수상인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52,53,54대 총리대신)가 일본어로 번역, 전파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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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용차에 내린 후 걸어나오는 하토야마 


정치인 아버지 밑에서 2세 정치인으로 정치를 시작했던 하토야마 이치로는 2차 대전 후 맥아더의 미군정(GHQ) 시절 장장 5년간에 걸쳐 정치적 낭인으로 정계에서 추방됐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하토야마 이치로가 탐독한 책이 바로 칼레르기의 ‘Totalitarian State Against Man’(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1935년)입니다.
 이 책을 읽고 감동을 받은 하토야마 이치로는 이 책을 일본어로 번역하기에 이르고, 패전 후 미국식 자유방임적 자본주의 세력과 이에 극단적으로 맞서는 무정부, 사회주의 세력에 맞설 제3의 정치철학으로 ‘우애사상’을 내세우게 됩니다.  하토야마 이치로는 이 책에서 “우애가 없는 자유는 무정부 상태의 혼란을 부르고 (우애가 없는) 평등은 폭정을 부른다. 자유와 평등은 인간에게 중요한 가치이지만 원리주의에 빠지면 참화로 이어진다. (자유와 평등 사이에서)균형을 도모하는 이념이 바로 우애다”라며 ‘우애 정신’을 주창합니다.
 그런 점에서 하토야마는 쿠덴호프 칼레르기를 정치 사상 철학의 모토로 삼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칼레르기의 사상과 철학를 알면 하토야마 총리의 정치 철학과 그 지향점을 읽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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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와 각료들


 하토야마 총리는 우애 정치를 펼칠 것입니다. 그는 "한일간의 영토문제 등은 한일 양국간의 교섭을 통해서도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다"고 밝혔습니다. 그의 주장을 확대 해석하면, " '우애 혁명'의 전개를 통해 한일간의 영토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우애가 이끄는 또 하나의 국가 목표는 '동아시아 공동체'의 창조일 것이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일제강점기 피해의식에 젖어 있는 우리들은 일본의 우애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겠죠.
 하토야마의 우애론은 대동아공영권을 주창했던 군국주의 일제 모습이 되살아 나는 것이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하토야마가 우애론을 어떻게 실천하는가 예의주시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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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교체를 이룬 하토야마가 생각에 잠겨 있다
 
 하토야마의 우애론, 그 우애론의 정체가 일본의 정치적 이중성으로 드러날지, 진정한 인간애로 드러날 것인지---?
 우린 하토야마의 정치적 행동 반경에서 그걸 파악하고 지켜봐야 합니다.   
 
 

2009/09/20 19:30 2009/09/20 19:30

하토야마 일본 총리의 한국 사랑
 
16일 일본의 총리에 취임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총리 가문은 일본의 케네디가 입니다. 증조부는 중의원, 조부는 총리, 부친은 외상을 지내는 등 4대째 정치를 업으로 이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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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5일 청와대 방문한 하토야마 총리


그는 일본의 정치인 중 대표적인  친한파 중 한명입니다. 저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는 어떤 계기로 인해 친한파가 됐을까요. 그 이유가 궁금해서 하토야마 총리 동북아 고문인 한 지인에게 물었습니다.
 "하토야마가 무슨 특별한 계기로 친한파 정치인이 됐나요"
  그도 그 이유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그는 저의 질문을 받고 일본의 하토야마 측근국회의원에게 물었습니다. 그 측근 역시 "어떤 계기가 있어 하토야마가 한국을 좋아하는지 거기까진 파악이 안됐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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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한국식당을 찾은 하토야마


 그리곤 "이것은 하토야마에게 물어봐야 한다. 지금은 하토야마 대표가 총리 취임전 이라 무척 바쁘니, 조만간 그 이유를 파악해 보겠다"고 답했습니다.
 하루 뒤 답변이 왔습니다. 다음은 하토야마 밝힌 이유라 합니다.  
 '하토야마는 20여년 전 혼자서 대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한국의 한 이산가족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이산가족의 가슴 아픈 현실을 눈으로 보면서 남북한이 갈라진 것에 대한 일본의 책임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 때부터 한국에 대해 더 애정을 갖고 일본서 한국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했답니다. 이어
한국은 가장 일본과 비슷한 나라라 했습니다. 일본과 형태와 발전도가 비슷합니다. 하토야마 대표는 한국을 진정으로 공유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 한 것으로 봅니다'
 2005년 이후 하토야마 총리는
공식, 비공식을 합쳐 다섯차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그의 방문은 화려하지도 않고, 늘 조용했습니다. 그의 방문이 가장 가까운 것은 지난 6월5일 이었습니다. 그는 이날 오전 한국에 왔다가 오후에 일본으로 돌아갔습니다. 당시 그는 민주당 대표 자격으로 한국에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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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날 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형오 국회의장을 만났습니다. 그가 한국에 도착 한 후 탔던 승용차가 뭘까요. 도요타, 혼다, 벤츠, 아우디, 에쿠스---?
 아닙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인 9인승 승합차 카니발을 이용했습니다. 그게 3개월 전의 이야기 입니다. 하토야마 총리는 그만큼 검손하고, 남에 대한 배려, 그리고
틀에 박힌 의전과 격식을 선호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하토야마만 그런 게 아니었습니다. 지난 6월4일 하토야마 대표 방한 하루 전 일본의 민주당 의원 10여명이 먼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저는 그날 저녁 중구 을지로 3가에서 10여명의 민주당 의원과 함께 저녁을 했습니다. 소주도 마셨습니다. 거기에 왜 참석했냐고요. 그날 민주당 측의 초청을 받았습니다. 그날 방한했던 민주당 의원들 중에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날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5개의 사인공이죠. SK 김광현 사인볼이었습니다. 지난 베이징 올림픽에서 김광현이 일본의 야구 자존심을 꺽어서 그런지 김광현은 일본서 인기가 높습니다.
 그 사인볼을 일본 국회의원들에게 선물했습니다. 그들은 그 사인볼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그 사인볼이 한국간의 우호협력 교류의 한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습니다. 뒤늦게나마 그 사인볼을 건네 준 SK 관계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잘 알지만 또 한편으론 너무 모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가능한 일본의 이야기를 많이 들려 드릴께요.
2009/09/17 16:55 2009/09/17 16:55

 영화 해운대의 진짜 해운대 이야기
 해운대 슈퍼 태풍 상륙하면 쓰나미급 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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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해운대의 한 장면


25일 영화 '해운대'를 봤습니다. 저에게 해운대는 특별한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고향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을 소재로 한 영화가 쓰나미 재앙이라니--- 찜찜도 하고, 궁금도 해서 아이들과 함께 봤습니다.
 그 영화를 본 아이들은 "아빠, 진짜 쓰나미가 오면 어떻해, 이번 피서 해운대로 가지 않으면 안돼"라고 물었습니다.
 해운대는 매년 여름철 필수 피서 코스 입니다. 그런데 "해운대 가지 않으면 안돼" 라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그 영화가 최소한 쓰나미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준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그 영화를 보니, 해운대 미포선착장과 그 주변 방파제가 나오더군요. 그곳에는 저의 추억이 구석 구석 묻어 있습니다. 친구들과 소줏잔을 기울였던 곳 중 하나 입니다. 그곳이 영화 촬영 명소 중 하나로 또 한번 부각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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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해운대 한 장면
 

 소설같은 얘기 일 수 있고, 진짜 있을 수 있는 영화 해운대. 만약 영화장면 처럼 해운대에 쓰나미가 온다면 해운대가 진짜 어떻게 될까요. 초고층 아파트와 호텔 빌딩이 무너지고, 해운대가 쑥대밭이 됐을 겁니다.  
 그러나 해양과 지질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운대에 쓰마니가 올 확률은 '0'라 합니다.
 만약 해운대에 쓰나미가 올 확률이 0.1%라도 있었다면 해운대에 그 화려한 고층 빌딩과 고급 아파트가 들어섰겠습니까. 해운대는 하루가 다르게 빌딩숲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해운대의 도시화는 역으로 말하면 '해운대 파괴'가 아닐까요. 자연을 파괴한 세계 곳곳의 현장에서 보듯 자연을 파괴한 인간은 그 대가를 치르게 됩니다. 해운대라고 예외일 수 없습니다. 그 넓은 해운대 백사장은 갈수록 좁아지고, 바다수온은 올라가고---해운대는 더이상 과거의 해운대가 아닙니다. 지금의 해운대는 파괴된 해운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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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오기 전 해운대


 여러분들은 태풍의 눈 한 가운데에 있었던 바다를 본 적 있나요. 태풍이 상륙할 때마다 그런 장면을 목격했고, 두려움에 떨었던 사람으로서, 바다 한 가운데 태풍의 눈은 '악마의 눈' 입니다.
 
  혹시 사라호 태풍 들어본 적 있나요. 50년 전 발생했죠. 1959년 9월에 상륙한 이 태풍은 해운대를 삼켰습니다. 이 태풍으로 사망과 실종이 849명이었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어른들로 부터 사하라 태풍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라호 태풍이 왔을 때 해운대는 물바다였습니다. 지금 부산 최고의 쇼핑가로 변한 해운대 벡스코와 센텀시티까지 물바다 였습니다. 가히, 그 태풍의 위력을 짐작하시겠죠. 바다물 범람으로 사람들이 둥둥 떠내려가고,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는 게 당시를 목격한 분들의 전언입니다.  당시 해운대 바닷가로부터 3킬로 떨어진 저의 집도 이 태풍이 삼켰다고 합니다.
 
지난 2003년 태풍 매미가 상륙했을 때도 해운대는 거대한 공포지였습니다. 당시 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해상호텔이 전복되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태풍해일이 좁은 지역에 집중되면서 파도가 해상호텔을 수m 이상 들어 올리는 바람에 전복됐다는 설명입니다. 해운대 한국콘도와 한화콘도 건물안까지 파도가 덮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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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파도


 50년전 발생했던 사라호 태풍이 한번도를 한번 더 상륙한다면 해운대는 어떻게 될까요. 3년전 오재호 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연구팀이 한반도에 슈퍼 태풍이 강타했을때의 시물레이션을 발표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속 30m인 보통 태풍의 위력은 히로시마 원폭의 약 1만 배. 초속 30m로 부는 강풍 앞에서는 건장한 청년도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 그렇다면 풍속이 초속 65m가 넘는 슈퍼 태풍의 힘은 어느 정도일까. 오 교수팀이 컴퓨터로 예측한 위력은 대규모 해일을 일으키고 지름이 1m가 넘는 나무도 뿌리째 뽑을 수 있을 만한 수준. 지나가는 자동차도 뒤집을 수도 있다. 땅 위에 있는 웬만한 구조물 역시 슈퍼 태풍을 견디기 힘들다. 폭우를 동반할 경우 그 위력은 훨씬 강해진다.' 실제로 시뮬레이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연구팀이 영국 기상청에 분석을 의뢰한 결과 24년년쯤 뒤 슈퍼 태풍이 한반도를 강타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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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의 눈


이호진 한국해양대 교수는 "부산은 '쓰나미' 안전지대가 결코 아니다"고 경고했습니다. 수심이 깊은 동해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동해안과 부산에 지진해일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지난 1983년 일본 아키다에서 지진이 발생한지 1시간30분 후 강원도 삼척 임원항에 '쓰나미'가 덮쳐 대형 선박을 육지 위로 들어 올릴 정도로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이 교수는 "만약 독도 남동쪽 부근 수심 1천 m의 깊은 바다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부산에 '쓰나미'가 몰려올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영화 해운대는 미래의 논픽션 인 것만은 틀림없습니다. 한가지 부탁하고 싶은 건, 자연, 특히 바다를 믿지 마세요. 일기예보는 더더욱 믿지 마시고, 참고만 하세요.
 아이들과 함께 바다로 피서 떠나는 분들은 명심해야 합니다. 순간적인 돌풍이 사람을 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바다에서 감시의 눈을 떼지 마세요.
  즐거운 피서 되십시요.  


2009/07/26 18:09 2009/07/26 18:09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70대 일본인의 애끊는 호소, 35년 전 납북된 동생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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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오후 종로 한 음식점을 갔습니다. 한 70대 노구가 북한으로 납치된 동생을 찾고 싶어 한국을 방문했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노구는 35년 동안 동생을 찾기 위해 뛰어 다녔다고 합니다. 그 음식점에는 그 노구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2층으로 올라갔습니다. 25명의 사람들이 빼곡히 앉아 있었습니다.

 북한 문제에 관심 있는 한국 분도 참석했습니다. 80년대 한국 지하 학생운동의 대명사였던 김영환씨도 있었습니다. 김씨는  ‘강철서신’으로 알려진 문건과 서적을 통해 주체사상과 민족해방(NL) 노선을 학생운동의 주류로 성장시켰던 인물입니다. 김씨는 1991년 5월 잠수정을 타고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난 이후 북한 민주화운동가로 전향했습니다. 열린북한방송 하태경 대표와 최성용 납북자 가족 협의회 이사장도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반가운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일본 민주당 카자마 나오키 의원이었습니다. 구면 입니다. 지난 6월 일본 민주당 하토야마 대표 등 민주당 의원 일행과 함께 한국에 왔을 때 만났던 분입니다.
  그와 악수를 건넨 후 자리에 앉았습니다. 헌데, 옆자리에 앉은 일본측 인사들이 명함을 주더군요. 일본 니가타시 의회 의원과 시 공무원, 그리고 니가타 참의원 보좌진, 납치된 동생을 찾기 위해 자비를 턴 일본 납치자 시민 단체 임원 등이었습니다. 순식간에 10여장의 명함이 테이블에 쌓였습니다.
 
  일본 니가타 아사히 방송 기자도 명함을 줬습니다. 사실 저는 그 자리에 취재할 목적으로 간 것이 아닙니다. 일본 지인과 카자마 의원이 한국을 방문했다고 해서, 인사차 들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 아사히 방송 카메라맨이 제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더군요. 졸지에 인터뷰 당했습니다. 대북과 납치자 문제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후 동생을 찾겠다는 그 진지한 분위기에 빨려들었습니다.
 
  참, 묘한 혼란 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동생이 북한으로 납치 된지 35년. 이제 그 사건이 잊혀질 만한 것 아닙니까. 그런데 니가타시 납북자 문제 담당 실장과 시의회 의원, 심지어 국회의원까지 나서 그 동생을 찾고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북한에 납치된 오오사와를 우리나라로 되찾아오게 하기 위해 활동한다"고 했습니다.

 카자마 의원은 "납치된 국민을 어떻게든 되돌아오게 하는 게 국가의 공복인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다. 그래서 이들과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고 합니다. 일본 문제에 관심 있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일본은 국회가 해산됐고, 8월말 총선거를 실시합니다.
 선거 운동에 동참 하기도 시간이 부족하고 벅찹니다. 그런데 한국까지 와서 35년 전 납북된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앉아 있는 카자마 의원을 보니, 일본의 힘이 느껴졌습니다.

 한국의 국회의원들, 입만 열면 국민을 속이고, 싸움질이나 하는 인간들입니다. 그런 인간들과 비교하는 게 창피합니다. 

  그 묘한 열정적인 분위기에 젖어들면서 취재하기로 맘 먹었습니다. 그들로부터 자료를 받았습니다. 한국어 자료였습니다. 질문도 던졌습니다.
 
 35년전 납치된 생사도 모르는 한 사람을 찾기 위한 열정과 끈기에 놀랐습니다. 그들의 열정에 저도 무엇이든 도움을 주고 싶었습니다.

 흔히 한국에선 일본이 납치문제에 너무 집착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종로식당에서 본 그들의 집착은 집착이 아니었습니다. 정치적인 그런 복잡한 계산에서 나온 게 아니라, 정말 찾고 싶다는 인간의 순수한 그 열정의 집착이었습니다.
 그들은 북한에 납치된 오오사와를 되찾겠다는, 되찾아 주겠다는 기본적인 인간의 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아시다시피, 미국은 한국전쟁에서 사망한 미국 병사들의 유해 찾기에 온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죽은 자의 유해를 찾기 위해서 미국 정부가 발벗고 나섭니다.
 
 한국은 어떻습니까? 그들 중 한명은 저에게 "한국에도 납치자가 많은 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다음은 24일 오후 작성했던 기사 입니다. 참고하세요.

 1974년 2월 24일 오후 6시30분, 일본 니가타(新潟)현 사도섬. 농업기술자로 사도섬에 파견 근무중이던 오오사와 타카시(당시 27세)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헤어진 후 흔적도 없이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족들은 타카시를 찾기 위해 해안가 주변을 다 뒤졌지만 그는 오간데 없었다. 가족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섬에서 사라진 타카시가 북한에 납치된 것으로 파악했다. 당시 그가 식당에서 나왔을 때 건장한 청년 두 세명이 뒤를 따라갔다는 목격자의 증언도 나왔다.

그로부터 35년이 흘렀지만 가족들은 타카시가 북한에서 죽었는지, 살았는지 조차 모른다. 일본 니가타에 살고 있는 타카시 형, 오오사와 쇼이치(73)가 동생의 행방을 수소문하고 찾기 위해 22일 한국을 찾았다.

백발이 성성한 타카시는 카자마 나오키 민주당 참의원과 니가타 시 간부 및 시의회 인사와 니가타 실종자문제조사회 회원 십여명과 함께 방한 했다. 그는 이틀 동안 통일부와 국내 납북자 단체 등을 찾아다니며 동생을 찾아달고 호소했다.

견디기 힘든 비극을 평생 안고 살아왔던 쇼이치는 일본인 납북자 문제에 대해 한국 정부가 도와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는 "동생은 북한에 납치된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일본 정부가 납치 문제에 대해 입을 닫고 있기 때문에 가족이 직접 찾아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동생은 북한에 확실히 생존해 있다"고 강조했다.


북한은 70년대초부터 일본인들을 납치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간첩을 일본인으로 위장시켜 한국에 침투시키던 북한은 공작원에게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교육하기 위해 일본인들을 납치했다. 일본에 침투한 북한 특수공작원들은 해변 등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일본인들을 유인한 뒤 선박에 태워 북한으로 끌고 갔다.

남한에 정착한 한 탈북자는 "1970년대 당시 납치사건이 빈번했던 것은 대남사업 종사자의 세대교체가 필요했기 때문으로 안다"고 말했다. 당시 납치자들의 최종 행적이 밝혀진 곳이 바닷가 근처라는 점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타카시는 섬에서 실종됐다. 당시 북한은 공작선을 주로 활용했다는 점에서 일본 사람을 납치하기가 용이한 섬을 주된 납치 지역으로 선택됐던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카자마 참의원은 "북한의 여러 문제 중 특히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김정일 체제를 붕괴시키는데 있어서도 지극히 중요하다"며 "8월말 일본 총선거 에서 민주당이 승리한 후 정권을 잡으면 대북 문제에 대한 기본 방침을 잡고 납북자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다"고 말했다.

아라키 가즈히로 일본 납북자 단체 대표는 "지난 2002년 김정일은 일본의 납치자 문제를 인정했다. 그런데 납치 증언 등 목격자 나오지 않아 한국에 도움을 청한다. 납치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 단체들이 손잡고 협력하는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성용 납북자 가족 협의회 이사장은 "북한은 인도적 차원에서 타카시 등 납치한 사람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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