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6년 2월 12일. 북한의 피겨스케이팅 페어 쇼트프로그램은 이렇게 시작했습니다.



순위나 성적보다 나름 독특한 스타일의 빙상연기를 펼치는 그들이 궁금해 프리스케이팅 경기에 많은 취재진이 모였는데 경기가 열리는 15일, 정작 그들의 모습은 볼 수 없었습니다.


2004년 트리글라브컵 국제피겨대회 여자개인 우승자인 김영숙은 10일 후 그 장소에서 여자 피겨 쇼트프로그램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쳤습니다.
(사진은 훈련 때 모습입니다. 한국 쇼트트랙 취재로 정작 경기는 보지 못했습니다)


3개월 후 열리는 2010 캐나다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전국대학축구선수권 대회가 올해로 막을 내리고 내년부터는 U-리그 왕중왕 전으로 바뀌기 때문에 어제 열린 64회가 마지막 대회 결승이었습니다.

첫 골을 터뜨린 고려대 서영덕이 동국대 변영민(오른쪽)과 치열하게 공을 다투고 있습니다.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고려대와 동국대가 피할 수 없는 한판 대결을 벌였죠.



고려대 유니폼을 입고 뛰는 마지막 경기에서 졸업반 이재민은 결승전에서만 2골 1도움을 기록하고 대회 득점왕에도 올랐죠.




골프나 테니스에서 4대 메이저대회를 모두 석권했을 때를 일컫는 말입니다.
야구에서는 만루 홈런을 뜻하죠.
카드 브리지게임에서 13장을 모두 따는 ‘압승’을 뜻하는 용어이며 2차 세계대전 때 영국 공군이 폭격기 아브로 랭카스터에 탑재해 위력을 발휘한 10톤짜리 폭탄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습니다.
아무튼 스포츠에서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때 붙이는 용어입니다.
아시안게임, 월드컵, 하계올림픽, 동계올림픽 4개 대회를 EP(사진기자) 카드를 소지한 채 취재했을 때 붙입니다. 물론 아시아 국가에 한해서겠죠.

실력에 비해 지독히 운이 좋은 둔필승총이 한국 신문사에선 유일하게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사진기자입니다. (이것도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실입니다)
상대적으로 카드 배정을 더 받는 통신사에도 딱 한 명이 있더군요. 그만큼 종합대회에서 공식적인 취재활동을 할 수 있는 ID카드를 얻는 게 아직은 힘든 일이기도 합니다.

뭐 시작부터 자랑질이라 좀 낯 뜨겁지만
내친김에 진군하겠습니다.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동계올림픽에 특파된 한국사진기자는 단 4명이었습니다.
그랜드슬램 세 번째 관문인 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둔필승총은 당시 사진기자들의 맏형으로서 숫자가 한정된 개, 폐막식과 피겨결승 등의 취재석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며 바쁘게 뛰어다녔습니다.
거기에 임무가 하나 더 있었죠. 바로 애니콜리포터 사진팀장이었습니다.
총 10명으로 구성된 대학생리포터들의 사진 취재활동 관리 감독 및 데스크 역할을 겸해야 했습니다.
무시무시한 경쟁력을 뚫고 선발된 인재들이라 유창한 영어에 이탈리아어, 불어, 독일어 등을 구사하며 토리노 곳곳을 누볐죠.
학업에 뜻을 두고 있는 일부를 제외하곤 대부분 버젓한 직장에 취직해 열심히 활동 중입니다.
새내기 시절도 넘겼겠군요. 제자나 다름없는 녀석들 중에는 이름만 살짝 대도 다 아는 파워블로거도 있습니다. 좀 덜렁거리는 면이 있어 올림픽 기간 혼도 좀 내고 한 녀석인데 블로그 시작한 후 우연히 알게 됐죠.
아무튼 20여일 같이 구르며 올림픽이 끝자락을 보이고 있을 때 리포터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본부숙소로 낭보가 날아들었습니다.

가뜩이나 지쳐있던 녀석들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난리법석을 피웠습니다.
라며 다그쳤지만 저 역시 살짝 기대되는 건 사실이었죠.

성균관대 입학을 앞둔 예비대학생 문근영은 선배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첫 방문지인 토리노 영화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2001년 몰레 안토넬리아나에 세워진 영화박물관은 토리노에서 가장 높고 아름다운 건물로 꼽히는 관광명소였죠.





거참, 제 친동생도 아닌데 동생처럼 느껴지며 대견스러웠죠.
괜히 ‘국민여동생’이 아니었습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지 안내를 맡은 담당자가 시내 영화관에서는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 등이 상영되고 있고 반응도 좋다는 말을 전합니다. 문근영 얼굴에 뿌듯해하는 미소가 나비처럼 날아오릅니다.

바쁜 일정 때문에 시내 전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 고요한 토리노 시내를 잠시 감상한 후 시내 워킹투어를 시작했죠.
가는 곳마다 보여준 당찬 행동과 야무진 질문에 선배 리포터들도 긴장을 합니다.

전 취재일정 때문에 쇼트트랙 경기장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며 헤어졌는데 시내 곳곳을 누비며

결국 여자 계주 3000m 결승에서 태극낭자들은 라이벌 중국을 보기 좋게 누르고 94년 릴리함메르 올림픽부터 이어진 계주 3000m 4연패 위업을 달성했습니다.



지난 9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한국프로야구 최초인 10번째 우승을 지지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마련된 V-10 축하행사가 뜨거운 열기 속에 펼쳐졌죠.












이대진은 후배 투수들을 병풍으로 세우고 G드래곤의 '핫브레이커'를 열창했는데 듣고 있던 둔필승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아니, 이 친구 왜 아직까지 야구하고 있어’

20년 기자생활로 대충 감 잡았을 때 이정도 실력이면 음반을 내고도 남는 실력이었습니다.
게다가 무대매너마저 돋보였습니다.


장기자랑이 끝난 후 마이크를 넘겨받은 사회자는 KIA 엔터테이너들에 찬사를 보내더니 느닷없이 조범현 감독을 호출합니다.
화들짝 놀라 멈칫거리는 걸 보면 확실히 ‘설정’은 아니었습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은

구장을 가득 메운 광주 팬들을 바라보며 "그대를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을 열창하는 조 감독을 보니 노래를 미리 준비한 것 같더군요. 성원을 보내준 팬들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는 걸 누구나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요.



‘다시 보는 베이징 2008’ 열세 번째 이야기는 작년 여름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수십억에 달하는 세계최고의 몸값의 선수들로 진용을 갖춘 호시노 일본대표팀 감독은 ‘오직 금메달’을 외치며 북경에 입성한 후 그 유명한 ‘호시노 망언’을 퍼부으며 한국대표팀의 기를 죽입니다.

당시 그 발언에 많은 이들이 열 받았는데 이제 곰곰이 생각해보니 태극전사들의 기세에 눌린 호시노 감독이 언론플레이를 통해 심리전이라도 펼쳐볼 요량이었던 것 같습니다.
말이 라는 게 언론을 통해 구르다보면 커지는 효과도 있지만 핫이슈로 떠오르면 뒤집기 힘들어집니다.
“이승엽이 누구냐?”는 발언이었죠. 출전팀 모두가 일본 요미우리 4번 타자이며 한국대표팀에서도 4번 자리에 꿰차고 있는 이승엽에 대해 세밀한 분석을 한 후 ‘이승엽 주의보’를 띄우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발언이었죠.

말로 화근을 일으킨 호 감독은 결국 노메달의 굴욕을 겪고 옷을 벗은 후 한국의 금메달을 바라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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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은 숙명의 라이벌답게 준결승전에서 다시 맞붙었습니다.
당시 둔필승총이 취재하는 왼편 뒤쪽에서 한국방송팀이 중계를 하고 있었는데 해설자는 다름 아닌 야신 김성근 감독이었습니다.

풀리그에서 붙은 일본전에서 5와 3분의 1이닝동안 3안타 1실점으로 킬러 역할을 해낸 김광현은 준결승에서 다시 맞붙은 일본의 강타선을 8이닝 5안타 2실점(1자책)으로 완벽하게 틀어막았습니다.

김광현의 역투 사진을 송고하다 보니 김광현의 모자 안쪽에

7회말 2사 1,2루에서 2루주자 정근우가 이진영의 적시타 때 홈까지 뛰어 동점득점에 성공한 후 환호하고 있습니다.
7회말 정근우가 빠른 발로 동점을 이루면서 분위기는 한국 쪽으로 넘어왔죠.



망연자실한 일본 선수들의 이어지는 실수에 강민호도 1타점 적시타를 날리며 점수 차를 벌립니다.

일본 중견수 사토가 강민호의 공을 잡았다 놓칩니다.
우커송구장은 환호의 물결로 들썩였죠.

기자실에서 마감을 하며 양 감독의 인터뷰 장면을 지켜보는데 호시노 감독이 한참 뜸을 들이더니 입을 열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