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 여자 연기자들 중엔 인상적인 어머니 연기로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들이 계십니다. '전원일기'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 선생, '꽃보다 아름다워'의 고두심 선생, '굿바이 솔로'의 나문희 선생 등이 대표적인 어머니 연기자들입니다.(예로 든 대표작은 제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들입니다. 더 좋은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단순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머니를 연기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후배 연기자들에게도 다양한 방면에서 귀감이 되며 어머니 노릇을 합니다. 감동적인 연기로 시청자와 관객들에게도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남깁니다. 대중들은 이 분들에게 '국민 엄마'라는 칭호를 선사하며 존경을 표시합니다. 이 분들은 어느덧 할머니의 나이가 됐음에도 여전히 국민 어머니입니다.

이 분들의 뒤를 잇는 '국민 엄마'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어머니 연기를 하시는 연기자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이 분을 꼽는 데 있어서 누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을 겁니다. 바로 김해숙 선생입니다. 한류 스타의 어머니로도 잘 알려진 배우이기도 합니다.
김해숙 선생은 젊은 시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연기자는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로 안정감 있는 조연 역을 맡았습니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2000년대 초반부터 어머니 배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펼쳤습니다. 김혜자 선생, 고두심 선생, 나문희 선생 등이 할머니 나이에 접어들면서 시대는 새로운 어머니 배우를 필요로 했고 김해숙 선생이 적역이었습다.

김해숙 선생은 윤석호 PD의 4계절 시리즈에서 모두 어머니로 등장했습니다. '가을동화'에서 송혜교, '겨울연가'에서 최지우, '여름향기'에서 송승헌, '봄의 왈츠'에서 한효주의 어머니를 연기했습니다. 한류 최고 성공작인 '겨울연가' 덕분에 김해숙 선생은 '한류 스타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상당한 명성을 쌓은 중견 한류 배우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김해숙 선생의 '한류 스타의 어머니' 행보는 계속됐습니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김래원의 어머니(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 같은 분이죠)를 연기했고, 영화 '우리 형'에선 원빈의 어머니를 연기했습니다. '오필승 봉순영'에선 채림의 어머니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국민 엄마' 배우의 칭호는 자연스럽게 김해숙 선생의 차지가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김해숙 선생의 어머니 연기는 김혜자 선생처럼 친근하고 자상한 어머니의 느낌과 고두심 선생처럼 짙은 감동이 담긴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나문희 선생의 잔잔한 슬픔을 머금은 어머니의 모습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연기자 하면 김해숙 선생이 떠오르게 됐죠. 그러나 김해숙 선생의 연기 인생의 길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새로운 어머니상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김해숙의 도전은 2008년 영화 '무방비 도시'에서 소매치기 전과 17범 강만옥을 연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발소에서 대충 자른듯한 짧은 머리의 전설적인 소매치기로 변신한 김해숙은 이 작품을 통해 날카로운 눈빛 연기와 거친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아들 김명민의 출세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진한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영화 '경축! 우리 사랑'에서는 21세 연하의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50대 아줌마를 연기했습니다. 50대에 찾아온 사랑을 통해 엄마에서 여자로 변해가는 인물입니다. 설레임과 떨림을 완벽하게 표현한 수줍은 어머니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조금 다르긴 해도 착한 어머니였습니다.

그러나 '카인과 아벨'과 '하얀 거짓말' 그리고 영화 '박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카인과 아벨'에선 탐욕으로 가득찬 어머니고, '하얀 거짓말'에서는 지독한 모성애로 일그러진 어머니입니다. 급기야 '박쥐'에선 엽기적인 어머니가 됐더군요. 착한 어머니에서 벗어나 악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아들을 위한 모성애는 계속됩니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지독하고 기괴할 뿐이죠.

김해숙 선생이 보여준 다양한 어머니상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우선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어머니는 모두 착하고 존경스러운 어머니지만 김해숙 선생은 그렇지 않은 어머니도 있다는 점을 강렬하게 보여줬습니다. 어찌 보면 진정한 의미의 국민 어머니에 다가가고 있는 행보입니다.
또 한가지는 김해숙 선생이 표현하는 어머니들이 단순히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니라 스스로만의 강한 존재감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김해숙 선생은 어머니인 동시에 한 사람의 주체적인 여인으로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게 된 것입니다.

지금까지 좋은 어머니상으로 여겨졌던 것은 한없이 포용하는 보살피는 어머니의 포근한 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불과하죠. 현실 속의 어머니는 다릅니다. 김해숙 선생은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국민 어머니 배우의 길을 좇아가다가 현실 속의 어머니로 영역을 대폭 확장한 셈입니다.
김해숙 선생은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쥐'와 함께 프랑스 칸으로 날아갔습니다. 4계절 시리즈로 인연을 맺은 윤석호 PD의 부인인 한복 연구가 한혜수씨가 제작한 한복을 입고 레드 카펫과 공식 행사를 장식했습니다. 한국의 국민 어머니의 모습을 전세계에 자랑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박쥐' 속 김해숙 선생의 모습을 본 세계 영화팬들이 '한국 엄마들은 다 저렇게 엽기적이야?'라는 반응을 보일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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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 하나는 끝내 주시죠. 근데 나쁜 엄마가 더 잘어울리시는 것 같아요. 예전에 좋은 엄마 이미지가 기억나지 않아요.
정말 연기스펙트럼이 참 넓은것 같아요 드라마마다 다른보습을 보여주니 참 대단한 연기자 같습니다 오히려 어머니틀로
가둬두기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중년여자배우도 어머니말고 다른역할은 안될까요?
그래도 어머니는 어머니 아닐까요. 어머니이면서 자신만의 삶도 개척하는 그런 어머니. 요즘 김해숙 선생의 모습이면 가장 좋을 것 같은데요.
kstarsx님 저와 똑같은 생각을 하셨네요ㅔ ^^
저도 어머니말고 중년여자를 위한 다른 역할도 있었음 해요
아쉬운 부분이죠. 중년 여성 연기자가 맡을 수 있는 캐릭터가 너무 한정돼 있죠. 구조적인 문제인 것 같기도 합니다.
박쥐에서의 그 강렬한 눈빛연기..
아직도 뇌리속에서 지워지지 않네요.
말 한마디 하지 않아도,
표정으로만 하는 연기 최고였지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