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불붙었습니다.
물론 그 중심엔 대한민국 최초의 수영 금메달리스트 박태환이 있죠. 그리고 첫날 시원한 한판승 행진으로 통쾌한 첫번째 금메달을 선사한 유도의 최민호도 한몫 했습니다.
박태환과 최민호는 그야말로 국민적인 영웅이 됐죠. 대단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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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려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올림픽 영웅들이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될 우려가 엿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박태환의 금메달 낭보가 전해지자마자 연예계, 방송가, 광고계 등이 급박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박태환에게 줄을 대서 관심을 유발하거나 수익성을 높이자는 위험한 발상입니다.

박태환이 금메달을 따자마자, 몇몇 가수들은 박태환과 친분을 과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관성을 과장하면서 홍보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박태환과 친분 있는 연예인의 매니저들은 해당 연예인에게 "빨리 전화라도 한통 해라"라고 독촉하며, 통화 내용으로 홍보 활동을 하려고 한답니다.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 방송사 오락 프로그램과 토크쇼 프로그램은 벌써부터 박태환 잡기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답니다. 중국 현지에 파견된 인력을 동원해 섭외에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네요. 박태환의 숙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나오자마자 붙잡고 섭외전을 펼치고 있다네요.

최민호도 박태환과 비교해 정도는 조금 약하지만 뜨거운 섭외의 대상이 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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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스포츠 영웅인 박태환을 스포츠 외의 분야에서 상업적으로 활용하다가 자칫 재능을 묻히도록 하는 우를 범하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박태환은 이제 만18세에 불과해 앞으로 2차례의 올림픽에 더 참가할 수 있습니다. 이론상 3연패가 가능한거죠. 그런데 수영 이외의 분야에서 활용되면서 외도하다가 수영 실력 가다듬기를 소홀히 한다면 이번 올림픽 이상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박태환은 어리기 때문에 연예계, 방송가, 광고계의 화려한 유혹에 넘어갈 수도 있거든요. 물론 그렇지 않을거라 믿지만요. 그런데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고 유혹이 많아지다 보면 박태환이 허물어지지나 않을까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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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혜와 싱가포르 가수 윌리엄은 베이징올림픽 수영 종목 공식 테마곡을 불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계속 조용히 있다가 박태환이 금메달을 딴 다음에 공개한다고 하네요. 역시 박태환 활용 전법이 아닐까 싶어요. 한지혜가 그다지 박태환과 친분이 없었기에 눈쌀을 찌푸리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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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의 역영은 4년후 또 8년후에도 계속돼야 합니다. 박태환을 오락 프로그램에 마구잡이로 출연시켜 연예계 스타로 흔들어 대선 곤란합니다. 스포츠 영웅으로 떠 받들어야지 연예계 스타로 만들어선 절대 안됩니다.

예전에 쇼트트랙 스타 김동성은 연예계와 방송가의 지나친 관심 때문에 사라져갔습니다. 팬들은 그를 스포츠 스타로 기억하고 싶었지, 오락 프로그램에서 망가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진 않았습니다. 이종격투기 최홍만도 오락 프로그램을 기웃거리기 시작한 뒤 무너졌습니다. 한때 K-1의 차세대 최강자였던 최홍만은 이제 '흥행용 거인 카드'에 불과합니다.

2연패, 3연패하는 박태환을 보기 위해서라면, 박태환에 대한 관심은 스포츠 영웅에서 그쳐야 합니다. 부와 명예를 안겨준다는 감언이설로 박태환으로 하여금 연예계 스타의 백일몽을 꾸게 해선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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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판승의 달인' 최민호 선수는 '1자 세리머니'로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금 이 시점에 꼭 필요한 세리머니입니다.
과도한 관심은 지금 한번으로 족합니다. 이후엔 다시금 올림픽 영웅이 자신의 종목에 전념하도록 조용한 관심과 응원을 보내야 합니다.

올림픽 영웅들에게 어떻게든 줄을 대려는 여러분들 제발 자중해주세요.  

2008/08/12 09:00 2008/08/12 09:00

'리마의 미소'를 기억하시나요?
올림픽의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갑자기 '리마의 미소'가 떠올랐습니다.
리마가 누구냐구요? 지난 아테네올림픽에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줬던 주인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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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에서 1위로 역주하다가 35km 지점 쯤에서 갑자기 뛰어든 괴한에게 붙들려 넘어진 뒤, 3위로 밀려났던 비운의 스타인 반델레이 리마입니다. 기세 대로라면 1등이 거의 확실했는데, 달려든 괴한 때문에 밀려났기에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상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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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세번째로 스타디엄에 들어온 리마는 활짝 웃고 있었습니다. 행복한 미소를 가득 지은 채 나는 듯한 동작으로 트랙을 달린 뒤 결승선 안으로 들어왔죠. 그 미소가 얼마나 아름답든지... 전세계 모든 사람이 '리마의 미소'에 대해 '진정한 올림픽 정신'이라며 찬사를 보냈습니다. 아테네올림픽에서 한국이 금메달을 10개쯤 딴 거 같은데, 제 기억에 가장 생생하게 남은 건 '리마의 미소'였습니다.

왜 갑자기 리마의 미소냐구요?
이번 베이징올림픽에서 리마의 미소를 기억나게 하는 행복한 웃음을 다시 보았기 때문이죠. 올림픽 정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행복한 웃음이죠. 한국 선수들이 메달을 따는 현장에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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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남 파이셔를 기억하실 겁니다. 파이셔는 한판패로 최민호에게 금메달을 넘겨준 뒤, 최민호를 격려하고 축하하는 모습이 너무 따뜻해서 훈훈한 감동을 안져줬습니다. 올림픽 정신을 제대로 보여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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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결승전에서 최민호에게 한판으로 패한 네덜란드의 후케스도 행복한 웃음으로 감동을 전해줬습니다. 후케스는 3-4위전에서 승리한 뒤 매트를 펄쩍펄쩍 뛰어다녔고, 코치 품에 안겨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가 금메달이라고 착각할 정도였죠. 비록 동메달이지만 그는 올림픽이었기에 행복했던 겁니다.

한국 선수들이 금메달 또는 은메달을 딸 때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준 이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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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의 뒤를 이어 은메달을 차지한 장린의 표정은 내내 어두웠습니다. 시상식 후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내내 마지못해 찍는 듯하더군요. 은메달도 엄청난 의미가 있을텐데, 뭐가 그렇게 아쉬운지... 제법 잘생긴 미남임에도 웃음이 없으니 잘생긴 줄 모르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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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도의 노비카바도 올림픽 정신과 거리가 매우 멀었습니다. 그는 우리 윤진희 선수와 똑같은 무게를 들었지만, 체중이 200g 정도 무거워서 동메달에 그쳤습니다. 윤진희 선수에게 패하는 순간부터 눈물을 펑펑 흘리더니, 시상식 현장에서도 눈이 충혈돼 있더군요.
시상식 후 기념 촬영을 하는 동안에도 메달을 들어올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동메달이 부끄럽다는 듯 말이죠.
이에 반해 우리 윤진희 선수는 너무 행복한 모습을 보여 보기 좋았습니다.
태국 선수가 제법 무거운 무게에 도전해 성공이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었는데요. 실패하면 윤진희 선수가 금메달인 상황이었죠. 태국 선수가 성공해서 자신이 은메달에 그치는 게 확정된 순간, 윤진희 선수는 기쁜 미소를 지으며 양손으론 V자를 그렸습니다.
응원하던 저로서는 금메달을 못따 아쉬웠지만, 은메달을 기뻐하는 모습에서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었습니다.

올림픽엔 올림픽 정신이 있어 더욱 행복한 것 같습니다. 메달 색깔보다 최선을 다한 결과에 행복해 하는 모습 말이죠.   
2008/08/11 15:19 2008/08/11 15:19
 지난 번에 이어 다시 한번 80년대 팝스타를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왜 자꾸 80년대냐구요? 80년대 팝음악이 좋았나보죠. 계속 쓰다 보면 90년대까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2000년대 이후엔 팝음악을 거의 안들어서 잘몰라요.
 일단 1인자를 먼저 찾아야할텐데...
 듀엣 중에서 찾아보렵니다. 80년대 듀엣 중에 1인자로 꼽힐 만한 사람이라...
 80년대 초기엔 'Hall & Oats'라는 듀엣이 미국에서 큰 인기를 모았는데, 우리나라에선 그닥 알려지지 않았죠. 블루아이드소울(백인이 하는 흑인 음악이라는 의미라죠)을 대표하는 1인자로 손색이 없는 뮤지션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별로 인기가 없었으니 일단 논외로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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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양반들을 1인자로 꼽으면 그다지 이견이 없을 것 같네요. Wham입니다. 우리말로 쓰자면 왬인데 어감은 좋은데 써놓고 나면 좀 이상해요. 홤이라고 써야할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영어로 쓰죠. 얼굴 마담 앤드류 리즐리와 실력파 조지 마이클로 구성된 듀엣이라고 알려졌는데, 조지 마이클이 더 잘 생겼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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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도 잘나고 실력도 뛰어나니 조지 마이클 하나로 구성된 팀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이내 해체하더군요. 조지 마이클은 이후 솔로로 엄청 성공했죠.
 앤드류 리즐리는 이후 사라지다시피 했는데, 지난 해 개봉한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의 남자 주인공(휴 그랜트)의 모델이 앤드류 리즐리가 아닐까 생각되더군요. 행보가 너무 비슷해서...
 영국 출신의 Wham은 'Wake Me Up Before You Go Go'를 1위곡으로 만든 걸 시작으로 해서 1집 앨범에서 'Careless Whisper', 'Everything She Wants' 등을 연달아 1위곡으로 만들었고, 'Freedom'도 5위까지 올렸습니다. 엄청난 기세였죠. 'Careless Whisper'는 1984년이었던가요. 빌보드차트 싱글 부문 연말결산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이후에 발매된 싱글 'Last Christmas'는 국내에서는 크리스마스 때면 캐롤보다 더 자주 나오는 음악이죠. 암튼 그 무렵 타에 추종을 불허하는 인기를 누린 듀엣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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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마이클은 솔로로 전향한 이후 남성미를 많이 부각시키는 듯 했습니다. Wham 시절 보이토이 스타일의 용모를 벗어 던지고 수염도 기르고 머리도 짧게 자르고... 솔로 앨범 'Faith'에서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모두 담아내는 무시무시한 음악성을 과시한 끝에 그래미상을 휩쓸기까지 했습니다. 'Faith' 'Kissing a Fool' 'Father Figure' 'Monkey' 'I Want Your Sex' 'One More Try' 등이 모두 이 앨범에서 1위곡으로 남은 노래들이니 엄청난 인기였죠. 이후 발매된 앨범들에서도 발전해가는 음악성을 꾸준히 과시하며 1인자에 손색이 없는 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족을 좀 달자면, 조지 마이클은 남성미를 과시했지만 훗날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충격을 안겨주기도 했죠. 작년인가요 마약 소지죄로 체포되기도 해 팬들을 안타깝게 했습니다.

 1인자 이야기가 길었습니다. 그럼 Wham에 가린 2인자는 누구였을까요. 기왕이면 듀엣으로 꼽으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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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만 봐선 누군지 모르는 분들이 더 많을 겁니다. Tears For Fears입니다. 그래도 모르시겠다고요. 쩝... 그럴만도 한게 이들은 국내엔 1집 앨범인 'Songs from the Big Chair'로만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모르시겠다면 'Shout' 'Everybody Wants to Rule the World'라는 히트곡이 있다고 설명드리죠. 두 곡의 인기는 상당했거든요. Wham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도 했으니까요. 물론 한발짝이 모자라서 뒤쳐지곤 했습니다.
 Tears For Fears도 영국 출신 듀엣입니다. 외모가 철학적이죠. 음악도 상당히 철학적입니다. 가사는 물론이고 멜로디에서도 철학이 느껴지는 듀엣입니다. 몽환적인 느낌이 상당히 품위있게 들렸습니다. 롤랜드 오자벨과 커트 스미스로 구성됐는데 둘 중에 누군지는 기억이 안나는데 철학도였다는군요. Wham에 비해서 음악의 깊이는 월등했다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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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ears for Fears는 이후 음악적으로 더욱 깊어졌습니다. 원래 뉴웨이브 팝음악을 하던 듀엣이었는데 이후엔 프로그레시브록에 가까운 음악을 하는 듯 보였습니다. 1986년 발매된 'Seeds of Love'라는 앨범에 수록된 'Sewing the Seeds of Love'라는 곡은 훌륭한 프로그레시브록으로도 손색이 없었죠. 그렇게 Tears for Fears는 대중에게선 멀어지고 자신만의 음악 세계에 빠진 듯합니다. 90년대에 들어서는 이들의 소식을 별로 듣지 못했습니다. 아쉬울 노릇이죠.
 사실 저는 Wham보다 Tears for Fears를 더 좋아했거든요.


2008/08/07 15:05 2008/08/07 15:05

 지난 번에 이어 80년대 팝가수 중에 2인자를 찾아보겠습니다.

 우선 1인자를 먼저 이야기해야겠죠. 80년대를 장식한 진정한 1인자는 누구일까요? 쉬운 질문이에요. 어지간히 팝송에 관심이 있는 분이면 맞출 수 있습니다. 당시 팝계의 모든 기록을 다 갈아치웠고, 그가 세운 기록은 아직까지도 기네스북을 장식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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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습니다. 마이클 잭슨입니다. 1982년인가요? 마이클 잭슨이 발매한 앨범 'Thriller'는 전세계적으로 역대 가장 많이 팔린 음반이고요. 그래미시상식에서 무려 8개 부문상을 휩쓸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대중적인 가수가 까다롭게 음악성을 평가하는 그래미 위원회를 만족시킨 점이 놀랍습니다. 음악성과 대중성을 모두 확보한 셈이죠. 마이클 잭슨은 그렇게 80년대의 진정한 1인자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10년 정도는 1인자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켰습니다. 이후 어린이 관련 성추문에 휩싸이며 몰락의 길을 걷기까지였죠. 사실 얼마전부터 '마이클 잭슨이 과연 사람일까'하는 생각까지 들기도 합니다. 흑인이었지만 요즘은 거의 백인이나 다름없고, 얼굴도 고친 곳이 너무 많아 사이보그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그렇다면 마이클 잭슨에 가린 2인자는 누구일까요? 1인자는 찾기 쉬워도 2인자는 선뜻 떠올리기 쉽지 않죠. 그래도 충분히 1인자가 될만 했음에도 마이클 잭슨 때문에 2인자에 머문 비운의 스타는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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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린스입니다. 천재 가수로 불렸던 양반이죠. 흑인이지만 R&B나 소울, 힙합 등의 흑인 음악을 하기보다 록이나 테크노 음악을 주로 했죠. 다룰 줄 아는 악기만 십수개에 이를 정도고, 작사작곡한 노래만 수천곡에 달하는 천재입니다. 잘 생겼어요. 중성적이다 싶은 매력도 헤어나기 쉽지 않았죠. 오죽하면 마돈나가 "나는 프린스에 대면 별볼일 없다"고까지 했을까요.

 프린스의 앨범 중에 가장 유명한 건 역시 'Purple Rain'입니다. 타이틀곡을 비롯해 'When Doves Cry', 'Let's go Crazy' 등 앨범에 수록된 모든 곡이 다 좋았죠. 마이클 잭슨의 'Thriller'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앨범이었습니다. 동명 음악 영화의 OST이기도 한 이 앨범은 영화와 음악의 결합을 보여준 프린스의 일생일대의 역작입니다. 물론 이후에도 프린스가 발매한 앨범들은 모두 뛰어났습니다. 프린스가 무대에서 보여주는 퍼포먼스는 마이클 잭슨과는 또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춤 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엄청난 카리스마로 무대를 장악합니다.

  그래도 프린스에겐 '2인자'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녔죠. 마이클 잭슨은 넘기 힘든 벽이었습니다.

  프린스는 참 멋진 가수이기도 합니다. 평단과 영합을 거부했습니다. 언론 매체를 등지기까지 했죠. 언론이 싫다며 아예 활동을 접기까지 할 정도로 완강했습니다. 그 결과 실제 역량에 비해 저평가된 가수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칩거해 기인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 프린스가 얼마전에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재개했습니다. 몹시 반가웠죠. 음악 실력이야 말할 나위없이 훌륭했습니다.

2008/08/05 11:02 2008/08/05 11:02

이번엔 80년대 팝스타들 중에서 2인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제가 팝음악에 나름 식견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전문가라고 할 수준은 아니라서...

 일단 80년대 팝스타 중에 1인자로 꼽힐 사람은 누가 있을까요. 80년대 초반 팝계의 화두 중에서 하나가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 팝스타의 미국 침공)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듀란듀란을 첫손가락에 꼽는데 있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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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먼 르본을 필두로 로저 테일로, 앤디 테일러, 닉 로즈 등으로 구성된 꽃미남 그룹인 듀란듀란은 외모 뿐만 아니라 제법 괜찮은 음악성으로도 평가를 받았죠. 보이 그룹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이후에도 발전된 음악성을 보여주며 생존했습니다. 일부 멤버가 '아카디아'라는 그룹을 만들어 세포 분열을 하기도 했고, 한참 동안의 공백을 거쳐 선보인 'Ordinary World'라는 노래는 보이그룹의 훌륭한 성장을 보여줬습니다. 최근엔 국내 콘서트를 다녀가기도 했죠.

  그렇다면 이 시기 2인자는 누구였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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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습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이 잘 안될 정도의 출중한 미모를 지닌 보이 조지가 이끌었던 컬처클럽을 2인자로 꼽을만 할 겁니다. 'Do You Really Want to Hurt Me'라는 노래는 애절한 가사와 분위기로 남성팬(?)들의 가슴을 녹였고, 'Karma Cameleon'은 흥겨운 분위기로 남성팬들의 어깨를 들썩이게 했습니다. 장동건 이준기 등이 함께 한 광고 노래로도 유명했죠.

 컬처클럽은 듀란듀란이 이끌던 2세대 브리티시 인베이전에 동참해 영국 팝음악의 세계화에 함께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잘 나가던 시기엔 듀란듀란보다 인기가 더 높았다고도 볼 수 있었죠. 그러나 듀란듀란의 꾸준한 생명력에 1인자 자리를 차지할 순 없었습니다. 게다가 듀란듀란과 함께 쌍두마차를 형성하며 잘 나가던 와중에 왬(Wham)이 혜성 같이 등장해 1인자 자리를 차지하면서 밀려나야 했죠.

 컬처클럽은 짧지만 굵은 2인자 시대를 보냈지만, 보이 조지는 좀더 오랜 기간 명성을 떨쳤습니다. 영화 '크라잉 게임'의 주제가를 불러 인기를 모았고, 그 와중에 외모처럼 실제로도 동성애자임이 밝혀져 화제를 모았습니다.(밝혀진 건지 밝힌 건지는 확실하진 않네요)

 어찌보면 보이 조지는 세계 대중문화계의 너무 앞서간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미모는 물론이고 그윽한 음색도 너무 앞서간 느낌이었고요. 그럼에도 메인 스트림 팝계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건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들어도 컬처클럽의 노래들은 좋고요.

 듀란듀란도 그렇고, 컬처클럽도 그렇고 모두들 보고 싶은 뮤지션들이에요. 듀란듀란이 다녀간 건 그 시절 팝팬들에겐 행복한 경험이었죠.

 다음번에도 80년대 팝스타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2008/08/04 15:55 2008/08/04 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