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남자'가 새해 초반 안방극장의 다크호스로 떠오르며 인기몰이중입니다. '에덴의 동쪽'이 시청률 30%에 육박하는 인기를 누리는 시기에 방영을 시작했음에도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누리고 있습니다. 극도의 부진에 빠져있던 KBS 2TV 월화극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고 있어 방송사엔 효자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꽃보다 남자'의 선전이 반가운 이유는 남자 주인공인 구준표 역의 이민호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호응입니다. 올해 한국 나이로 23세인 이민호는 연기자 경력 3년에 불과하지만 수십년 활동한 연기자 못지 않은 시련을 짧은 시기에 겪은 경험이 있거든요. 데뷔 초기부터 이민호를 보며 기대주라고 생각했는데, 연이은 악재로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꽃보다 남자'를 통해 마침내 꽃을 활짝 피우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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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는 2006년 '비밀의 교정'이라는 청소년 드라마로 데뷔했습니다.
EBS에서 방송된 드라마이다 보니 생소한 드라마지만 이민호는 방송가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미소년 이미지에 선굵은 남성미도 언뜻 느껴지면서 대형 스타의 가능성을 엿보였거든요.
'비밀의 교정'에선 최근 '과속 스캔들'로 인기 급상승한 박보영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이민호와 박보영의 인연은 SBS TV '달려라 고등어', 영화 '울 학교 이티'로 이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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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는 '반올림'이라는 청소년 드라마의 공개 오디션에 참가했습니다.
시즌3으로 기억하는데, 단연 유력한 주인공 후보로 거의 확정되는 듯했지만 고배를 마셨습니다.
오디션에 참가하지 않은 신예 탤런트가 주인공으로 전격 발탁됐기 때문입니다.
당시 이민호는 마음 고생이 대단히 심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면 시련으로 꼽기도 어렵습니다.
이민호는 '거침없이 하이킥'의 오디션에도 참가해 이윤호 역의 유력한 후보로 꼽혔습니다.
이윤호는 정일우가 캐스팅돼 단숨에 최고의 신세대 스타로 부각되게 한 배역이었죠.
이민호는 정일우와 치열한 경합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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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작진이 고심하고 있을 때 의외의 사건으로 정일우로 최종 결정됐습니다.
이민호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 6개월 동안 병원 신세를 져야 했던 일이죠.
이민호는 일생일대의 기회를 놓친데다가 6개월 간 아무 것도 못하는 시련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이민호와 정일우는 둘도 없는 친구 사이입니다. 이민호는 정일우를 축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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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만 해도 충분히 시련을 겪은 듯한데, 계속해서 이민호를 찾아왔습니다.
이민호는 수백대 1의 오디션을 뚫고 SBS TV '달려라 고등어'의 주인공으로 발탁됐습니다.
제작비 및 판권을 놓고 방송사와 외주제작사가 갈등을 벌이느라 방송이 지연되더니,
어렵사리 방송을 시작한 이후에는 극도의 시청률 부진으로 8회만에 조기 종영돼버렸습니다.
이후 이민호는 MBC TV '9회말 투아웃'에 주연급으로 발탁돼 야구 연습까지 하며 준비했는데,
갑작스럽게 다른 연기자로 교체되는 아픔까지 겪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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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호는 어린 나이에 불과 2년 남짓 기간 동안 정말 많은 시련을 겪었네요.
2008년 들어 조금씩 풀렸습니다. KBS 2TV '아이 엠 샘'과 영화 '울 학교 이티' 등에 출연했죠.
물론 확 주목을 받거나, 인지도가 급상승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다시금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꽃보다 남자'의 주연으로 발탁될 수 있었으니까요.

'꽃보다 남자'에서 이민호는 멋지면서 귀엽습니다.
훤칠한 키에 조각 같은 얼굴로 근사한 매력을 과시하면서도,
어딘지 바보 같은 엉성함으로 귀엽고 친근한 매력도 보여줍니다.
연기도 비교적 흠잡을데 없습니다. 종종 혀 짧은 소리가 나오는게 거슬리긴 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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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남자'를 보면서 이민호는 거센 비바람을 견뎌내고 꽃을 피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비바람을 견뎌낸 만큼 강하겠죠. 더욱 멋지고 아름답게 피어가길 바랍니다.

2009/01/13 10:03 2009/01/13 10:03

이 여인네가 오늘 하루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습니다.
방송인 김예분입니다. '샴페인'이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다른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마치 자신의 이야기인양 말했다가 들통이 나서 곤욕을 치렀습니다.
곤욕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함이 있을 정도로 혹독한 비난에 휩싸였습니다.

사실 방송이라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짓을 말한 점은 비난을 받아 마땅합니다.
김예분이 아니라 그 어떤 누구라도 면죄부를 받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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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지만 김예분이 겪고 있는 비난의 강도를 보면 내심 안쓰러운 마음도 듭니다.
그녀가 이전에 겪었던, 우리에게 왜곡돼 알려진 사건으로 인한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비난의 강도가 더 거세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그녀의 약간은 차가워 보이는 깍쟁이 같은 미모도 선입견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싶고요.

그리고 한때 남부럽지 않았던 스타 방송인이었던 그녀가 모처럼 접었던 날개를 펴려고 할 때,
예기치 않은 실수 때문에 날개를 펴보지도 못하고 접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되기 때문입니다.

일단 저는 김예분과 상당한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점을 전제에 두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친한 사람이다 보니 조금은 주관적인 블로깅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전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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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김예분 씨가 진행하는 케이블 방송 연예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김예분 씨는 항상 저를 "금요일의 남자"라고 소개해주곤 합니다.
제가 매주 금요일에 출연하거든요. 매주 금요일 만나는 사이인 셈이죠.

김예분 씨 첫인상은 참 차가웠습니다.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캐릭터로 보였습니다.
게다가 저 역시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던 선입견이 있었기에 거리감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뭐에 대한 선입견이냐고요? 굳이 이야기하진 않겠습니다.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김예분'을 치면 연관 검색어로 따라오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함께 진행을 하면서 정말 순수한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쌓여갔습니다.
30대 후반에 접어들어 가고, 인생에 적지 않은 풍파를 겪은 사람임에도
참 맑고 깨끗한 영혼을 지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린 아이 같다는 느낌도 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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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과정에서 제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도 언뜻 나눌 수 있었는데,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진 게 모두 사실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저 스스로 '언론을 그대로 믿어선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은연중에 믿고 있었던 거죠.

상당 부분 왜곡돼 알려진 사실 때문에 김예분 씨는 적지않은 마음 고생을 했을텐데,
어두운 구석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맑고 밝은 사람이었습니다.
독실한 크리스천인 김예분 씨는 종교의 힘으로 심적 고통을 덜었다고 넌지시 말하더군요.
촬영 중 틈날 때마다 종교 관련 서적으로 손에서 놓지 않을 정도로 독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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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의 근원이 된 사건이나, 깍쟁이 같은 외모나, 가혹한 편견이 될 뿐이었던 것입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저는 이번 거짓 경험담 파문으로 인해
김예분 씨에게 쏟아지는 비난이 너무 가혹하지 않나 하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덧붙여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요즘 험난한 방송가 트렌드에 맞춰가기 위해 갖은 애를 쓰던 그녀의 모습입니다.
힘겨워 하면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며 어린애처럼 즐거워하던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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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 방송이 나가기 전날도 김예분 씨는 저와 함께 방송을 했습니다.
"내일 '샴페인' 촬영한 게 방송돼요"라고 수줍어하며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 "요즘 방송 출연해서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라며 조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90년대 후반까지 활발하게 활동하며 남부럽지 않은 인기를 누린 그녀였지만,
흐르는 세월은 어쩌지 못했고, 놓쳐버린 세월을 좇아가기 힘들어 하는 모습이었죠.
그러면서도 "XXX도, YYY도 출연하기로 했어요"라고 즐거워 하는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거짓 경험담 논란 하나로 그녀가 천진난만하게 즐거워 하는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게 되는 건 아닌가 걱정이 됐습니다.
논란이 한창 뜨거울 무렵 전화를 걸어 "어쩌다가 그런 실수를 하셨대요"라고 물었더니,
"죄송해요. 정말 죄송해요"라는 말만 하더군요. 사실 저한테 죄송할게 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연신 고개를 조아리는 듯한 힘없는 목소리에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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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분 씨를 보면서 잃었던 인기를 되찾는 건 처음 쌓기까지 과정보다 어렵다는걸 느꼈습니다.
그녀는 차근차근 다시금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험난하고 힘겹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밝고 씩씩하게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처음 시작한 사람처럼 말이죠.

이번 거짓 경험담은 차근차근 쌓아가는 과정에서 조금은 오버한 의욕 때문이었습니다.
현란한 입심을 발휘하는, 잘 나가는 동료들이 프로그램을 장식하는 가운데
계속 뒤쳐지기만 하고 소외되기만 하는 느낌을 받다 보니 뭔가 한건 해야겠다는 의욕이었죠.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고 싶었던 겁니다. 결과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고 말았죠.

애처로운 몸짓처럼 느껴져 더욱 안타깝습니다.
이번 일로 그녀가 날개를 접어버리지 않길 바랍니다.


2008/12/02 09:10 2008/12/02 09:10

최근에 미드를 보다가 깜짝 놀랄만한 게스트 스타링을 발견해 너무 즐거웠습니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로빈 윌리엄스였죠.
보던 미드는 '성범죄수사대 시즌9'(Law & Order-SVU)였습니다.

마리쉬카 하지테이라는 매력적인 배우가 돋보이는 미드입니다.
성범죄를 수사하면서 법정 다툼까지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작품이죠.
수사물의 재미에 법정 대결까지 다뤄지니 매우 흥미진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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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9의 에피소드를 보는데 '어라' 싶은 사람이 등장하더라고요.
대단히 지능적인 범죄자로 등장한 인물이었죠.
수사관들이 계속 뒷북을 치고 당하기만 하는 강력한 범죄자였습니다.
로빈 윌리엄스랑 쏙 빼놓은 쌍둥이처럼 닮았는데
설마 로빈 윌리엄스가 미드에서 범죄자로 등장할까 싶었죠.

그런데 맞더군요. 맞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의 반가움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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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윌리엄스는 범죄자로도 부드럽고 공감을 팍팍 자아내는 명연기를 펼쳤습니다.
올리비아 형사와 엘리엇 형사가 범죄를 잡아내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건만,
유유히 빠져나가는 통렬한 여유로움까지 한껏 과시했죠.
끝부분에 여운을 남기며 사라졌기에 후속편이 언제 나올까 벅찬 기대를 갖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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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 윌리엄스는 제가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하던 시절에
정말 감동적으로 본 영화의 주인공이었습니다.
"오 캡틴, 마이 캡틴"이라는 대사가 감동적이었던 '죽은 시인의 사회'죠.
"카르페 디엠(세월을 잡아라)"이라는 명언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참교육이 뭔지 보여준 선생님이었습니다.
키팅 선생님이었던가요. 18년전 영화라 기억은 조금 가물가물합니다.

대입에 실패하고 실의에 젖어있던 저는 영화가 끝난 뒤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많이 울었습니다. 새로운 의욕을 다지기도 했습니다.
그 덕분인지 고3 시절 K대를 지원했다가 개운하게 미역국을 먹은 저는
재수를 마친 뒤엔 S대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자랑은 아니고요. 간혹 '대학은 나왔냐'는 댓글이 있어서... 남부럽지 않은 학벌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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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보면 로빈 윌리엄스는 깜짝 놀랄 반가움을 많이 선사한 배우였습니다.

할리우드에서 상당히 영향력 있는 주연 배우임에도
조연 또는 카메오로도 자주 모습을 비췄거든요.

케네스 브래너와 엠마 톰슨 부부가 함께 출연한 '환생(Dead Again)'에서
로빈 윌리엄스는 후반부에 약 3분 정도 깜짝 등장합니다.
그때도 '로빈 윌리엄스 맞아?'하는 생각을 가졌더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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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에도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에서
밀납인형으로 전시된 대통령으로 등장했습니다. 멋진 조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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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거스트 러시'에서도 퇴물 가수로 깜짝 등장했습니다.
비중이 매우 작은 배역이었지만 존재감은 주인공들을 능가하고 남았습니다.

확실히 로빈 윌리엄스는 조용한 가운데 엄청난 포스를 발산하는 배우입니다.
그래서인지 '박물관이 살아있다'와 '어거스트 러시'가 국내에 개봉할 때엔
로빈 윌리엄스 주연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그런 로빈 윌리엄스의 유연함을 보면 너무 부럽습니다.
국내에는 로빈 윌리엄스처럼 유연한 배우가 없는게 안타깝죠.

주인공은 주인공을 해야 한다는 생각들만 하는 것 같거든요.
톱스타가 유연하게 조연으로 등장할 때 관객들은 얼마나 즐거울까요.
아직은 국내엔 그런 배우가 없는 것 같네요.
곧 나오리라 기대해봅니다.

2008/11/12 21:52 2008/11/1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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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저장된 이런 저런 방송 관련 자료를 정리하다가
마음이 먹먹해지는 자료를 발견했습니다.
최진실 씨가 생전에 방송가에 남긴 너무도 큰 흔적이죠.
본격적으로 시청률 집계가 시작됐던 1992년 이후 드라마 출연작의 평균 시청률입니다.

정말 대단했다는 생각 밖에 안들었습니다.
그만큼 그분이 떠난 게 안타깝습니다.
떠난 지 열흘이 지났지만 이렇게 큰 자취가 있기에 여전히 실감이 안납니다.

번호 채널 작품 방영시기  평균 시청률
1 MBC 약속 1992년  34.8
2 MBC 질투 1992년  40.1
3 MBC 폭풍의 계절 1993년  34.2
4 SBS 사랑의 향기 1994년 26.5
5 SBS 아스팔트 사나이 1995년 24.9
6 MBC 아파트 1995년 23.8
7 SBS 째즈 1995년 15.5
8 MBC 그대 그리고 나 1997년 42.5
9 MBC 별은 내 가슴에 1997년 40.0
10 MBC 추억 1998년 28.2
11 MBC 장미와 콩나물 1999년 32.7
12 MBC 그대를 알고부터 2002년 17.6
13 MBC 장미의 전쟁 2004년 12.5
14 KBS2 장밋빛인생 2005년 30.9
15 MBC 나쁜 여자 착한 여자 2007년 18.7
16 MBC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 2008년 15.8

아직도 생생히 기억 나는 작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작품도 있습니다.
'질투' '폭풍의 계절' '사랑의 향기' '째즈' '별은 내 가슴에' 등은 한회도 빼놓지 않고 봤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평균 시청률이 40%를 넘긴 작품이 3편이나 되고, 30% 이상 작품도 4편이나 되네요.
요즘으로 치면 1년에 1~2편 나오긴 힘든 기록을 예사롭게 한 셈이죠.
90년대를 대표하는 국민 스타라는 칭호도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1992년, 1995년, 1997년 큰 자취를 남긴 시절엔
저 역시도 인생의 중요한 경험을 했던 시기들이었네요.
상대적으로 드라마가 뜸했던 시기엔 영화에 출연했죠.
그나마 2001년 이후엔 영화가 없습니다.
그분은 생전에 충무로의 비정함을 아쉬워하기도 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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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봐도 마음이 아픕니다.
그분에 대한 기억은 출연 작품과 연기 활동으로만 하고 싶습니다.
다른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간혹 계십니다.
언제쯤 엉뚱한 이야기가 잦아들까요.
2008/10/14 11:05 2008/10/14 11:05

연예부 기자를 하면서 연기자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제가 주로 담당하는 분야가 방송(드라마 예능 등)이기에
드라마에 출연하는 연기자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연기자들은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영화에도 출연합니다. 장르를 넘나드는거죠.
저야 연기자들이 드라마에 출연할 때 만납니다. 주로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죠.


그런데 제가 만난 연기자들 100명중 99명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영화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입니다. 드라마보다 영화가 더 좋다는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연기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되서 연기력을 유감없이 과시할 수 있다는 의미죠.
반면 드라마는 빠듯한 스케줄에 쪽대본까지 여건이 안좋아 연기력 발휘가 안된다더군요.
"가능하면 영화만 하고 싶다"는 연기자도 많이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보다 드라마가 더 좋다는 연기자가 있었습니다. 제 기억엔 한명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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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김명민입니다. 요즘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절정의 연기력을 펼쳐보이고 있죠.
 김명민은 "영화처럼 좋은 여건에선 누구나 실력을 원없이 발휘할 수 있다. 어려운 여건에서 펼쳐보이는 연기가 진정한 실력이다"라며 드라마를 선호하는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즉각적으로 시청자들의 반응과 호흡하는 짜릿함도 드라마의 장점"이라고 꼽았습니다. 항상 긴장하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 치열한 드라마 현장에 대한 예찬이었죠.
 그러면서 그는 드라마의 터주대감격인 중견 연기자들의 농익은 연기를 배우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싶다고 하더군요. 연기에 대한 자신감과 배우고자 하는 의지가 지금의 김명민을 만든 것 같습니다.  

 사실 김명민은 그다지 평탄한 연기 인생을 보낸 배우는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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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의 타이틀롤이 된 이후에야 자리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김명민의 나이가 서른셋이었으니 '늦깎이 스타'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출세작인 '불멸의 이순신'부터 김명민의 성공작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한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습니다. 최고의 플랜B 연기자였다는 점입니다.
플랜A를 능가하는 플랜B 연기자라고 하는 게 정확할 듯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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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에서 김명민은 깜짝 발탁됐습니다.
당초 이순신 역으로는 정준호가 유력하게 거론됐습니다.
출연료 논의까지 진행됐으니 상당히 근접한 상황이었죠.
그러나 결국 무산됐고, 송일국이 내정됐다가 물러난 뒤
김명민에게 이순신 역이 돌아왔습니다.

결과는,
아시다시피 김명민을 떠나선 어떤 배우도 이순신으로 생각할 수없다는 평가를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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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성공작인 '하얀거탑'에서도 김명민은 차선책이었습니다.
원래 '하얀거탑'의 장준혁 과장은 차승원으로 내정돼 있었습니다.
안판석 감독과 차승원은 영화 '국경의 남쪽'에서 의기투합했고
이를 '하얀거탑'으로 이어가기로 했죠. 그러나 무산됐습니다.
그 후 한석규 차인표 등의 캐스팅이 추진됐다가 김명민에게 돌아왔습니다.
차인표는 훗날 우정출연하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최고 연기파 배우의 탄생이라는 극찬의 연속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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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 '베토벤 바이러스'입니다.
물론 이제 김명민은 플랜A 연기자가 됐습니다.
캐스팅 물망에서 가장 위에 이름이 올라가 있죠.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또한번 엄청난 연기포스를 과시하면서
가장 위쪽 중에도 가장 위에 이름이 올라갔습니다.
연기력과 대중 지지를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플랜A 배우가 된거죠.

그러고 보면 김명민이 다른 연기자들과 달리 드라마에 강한 애착을 보인 점이
지금의 김명민을 만든 건 아닐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항상 힘든 현장에서 스스로를 단련시키면서 누구보다 강해지고 단단해진 거죠.
다른 연기자들이 열악하다고 하는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다른 연기자들이 안정된 영화 촬영 현장에서 발휘하는 연기보다
더욱 뛰어난 연기를 펼치는 건 쉼없는 단련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겁니다.


그러고 보니 김명민이 '베토벤 바이러스'에 합류하기 전에
거친 작품이 하나 있네요. 그 이야기도 재미있습니다.
다음 번에 하지요.

2008/10/09 00:14 2008/10/09 0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