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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9/02/11이동현신해철,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8)

신해철이 왜 그랬을까요. 일단 옳고 그름을 떠나서 궁금합니다. 평소 신해철 하면 '소신과 신념'이라는 말이 떠올랐는데, 왜 그 소신과 신념을 저버리는 행동을 했을까요. 평소 TV와 라디오 등 공식적인 경로를 통해 획일화된 입시 교육에 대해 그토록 신랄하게 독설을 퍼붓곤 했던 신해철이 스스로 비난의 도마 위에 올려 놓았던 사교육 입시 학원의 광고 모델로 등장하다니요. 어안이 벙벙할 따름입니다. 혹시 광고 속 인물이 신해철과 닮은 사람이 아닐까 싶어 자세히 뜯어 봤는데 틀림없이 신해철이었습니다. 저는 사실 신해철의 소신과 신념과는 조금 방향이 다른 생각을 가져왔던 사람이기에 그의 주장에 공감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신해철의 일관된 소신과 신념은 존경했습니다. 그가 '마왕'으로 추앙 받는 것에 대해 멋지다고 생각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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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저의 그 생각이 잘못된 게 아닌가 해서 조금 화가 나기도 합니다. 감쪽같이 속았다는 배신감이라고 할까요. 비록 저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이지만 신념에 대한 부분 만큼은 인정하고 찬사를 보내왔는데, 그 신념이라는 게 위선과 가식이었나 하는 배신감입니다.

신해철은 조선일보·동아일보의 10일자 광고 면에 모델로 등장했습니다. 두 신문은 평소 신해철의 논조와 방향을 많이 달리했기에 약간 어색하게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입시 학원 광고더군요. 특유의 선글라스를 낀 신해철이 입을 크게 벌리고 '도대체 왜, 학습 목표와 학습 방법이 자녀에게 딱 맞는지 확인하지 않습니까'라는 광고 멘트로 학원을 선전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이 학원 출신의 학생들 중 몇명이 특목고에 입학했는지 상세하게 설명하는 프래카드를 패기 넘치게 들고 있습니다. 성심성의껏 광고하는 모델의 열정이 담긴 듯합니다.

신해철은 그동안'100분 토론'과 '신해철의 고스트네이션'을 통해 획일화된 입시 교육에 대해 독설을 내뿜어 청소년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어왔습니다. 고스트 네이션'에서 그는 "어린 조카가 하루종일 학원을 다니느라 힘들어보였고, 누나에게 왜 저렇게 아이를 학원에 붙잡아 두냐고 말하면서 안타까워했다. 누나는 나에게 어쩔수 없다고 말했지만, 나는 절대 아이를 그렇게 키우고 싶지 않다"고 자신의 교육관을 말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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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해철은 전교조 기관지와의 인터뷰에서도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은 청소년을 학대하는 정책들로 아이들이 죽어나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꿈이나 목표도 없이 입시 노동을 강요해 수백만 아이들의 인생을 망쳐 놓으면 누가 할복자살이라도 할것이냐"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다분히 선동적인 표현까지 있었음에도 신해철이기에 많은 사람들이 수긍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의 일관된 소신과 신념은 그만큼 인정 받았던 셈이죠.

결국 신해철의 입시 학원 광고 모델 등장은 소신에도 상반될 뿐더러 그가 설파해온 주장과도 어긋납니다. 교주로까지 군림하다시피했던 신해철의 '교리'가 모두 허상이었다고 여겨질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모순인 동시에 자가당착이죠. 그동안 그가 다소 격한 표현을 곁들이며 주장해온 것들이 헛된 선동에 불과했다는 인상마저 남기고 있습니다. 실망감과 상실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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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은 왜 그런 광고의 모델로 나서서 쌓아온 이미지를 한꺼번에 무너뜨리고 있을까요. 신해철은 광고 모델이 된 것도 '표현의 일종'이라고 애매모호한 입장 표명을 했습니다. '용돈 잘 받아쓰겠다'고 한 걸로 봐선 경제적인 이유도 있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가능해 보입니다. 하긴 먹고 사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죠.

그런데 애매하게 신해철이 밝힌 입장 표명은 자세히 읽어보면 황당하기만 합니다. '명박형님'이라는 다소 천박한 표현까지 써가며 동조를 구하고 있습니다. '사교육 시장에 에너지를 팍팍 넣어주신 결과, 엉뚱하게도 제가 득템 했다. 각하께서 주신 용돈 잘 쓰겠습니다'라고 광고 출연 이유를 엉뚱한데다가 돌렸네요. '길게 쓰긴 귀찮고, CF역시 아티스트에겐 표현의 일종이고 이번 광고 출연은 평소 교육에 대한 내 생각의 연장이다. 평소 내 교육과 충돌하는 부분이 없다'고 했습니다. 이쯤 되면 그의 소신의 정체성이 궁금해집니다.

씁쓸합니다. 대중적인 영웅이자 우상이었던 신해철이 그다지 앞뒤가 맞지 않는 논리로 소신을 저버린 행위를 합리화하고 있으니까요. 일그러진 우리의 우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더이상 '교주'이자 '마왕'인 신해철의 존재를 인정하기 힘든 상황이 왔다고 할 수도 있으니까요.

다 떠나서 신해철을 모델로 기용한 입시 학원은 대성공을 거둔 것 같습니다. 논란으로 학원의 존재를 알린 것도 성공입니다. 게다가 신해철처럼 사교육에 대해 강도 높게 비판적이었던 사람이 모델로 나서 추천하는 학원이 얼마나 훌륭한 학원인 지 홍보가 됐을 것을 감안하면 효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것입니다. 그 학원은 신해철에게 보너스라도 듬뿍 줘야 할 것 같습니다. 신해철은 이 역시 '명박형님'으로부터 받는다고 생각할까요.

2009/02/11 09:42 2009/02/11 09: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