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덕여왕'의 하이라이트인 미실의 죽음에 대한 단상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했다고까지 할 정도는 아니지만.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쉬움도 컸습니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해야하는 건지. 아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건 많았지만 선뜻 수저가 향하는 음식들은 아니었다고 해야할 것 같습니다. 화려했지만 정곡을 짚어주는 감흥을 빗겨간 겉치레라는 인상이었습니다.

미실은 스스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결코 지지 않을 것으로 여겨졌던 철의 여인이었지만 스스로 포기를 선언했습니다. 틀림없이 승리할 수 있는 필승의 수가 눈앞에 있었지만 패배를 택했습니다. 스스로 만들어낸 신라를 지키기 위해 어렵게 찾아냈던 꿈을 버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그런 미실을 향해, 덕만은 "잠깐이나마 미실에게서 왕의 모습을 봤다"는 감동 어린 찬사를 보냈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흐트러지지 않았고, 아들의 눈물 앞에서도 강인함을 잃지 않은 채 강렬한 교훈을 남긴 미실은 감동적이어야 했습니다. 음악과 분위기 등 감동을 쥐어짜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감동적이지 않았습니다. 지나친 비약으로 작위적인 결말에 이른 듯했기 때문입니다.

대야성에서 내전을 준비할 때까지 미실은 분명 신라의 주인이고자 했습니다. 덕만공주가 합종이라는 최후 통첩을 할 때까지도 미실은 신라의 주인이 되려는 꿈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인의 꿈은 버리고 후계자를 키우라"는 매력적인 조건을 제시한 덕만공주에게 따끔한 훈계를 내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얼마 뒤 미실에겐 꿈에 다가갈 확실한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미실은 단번에 마음을 뒤집었습니다. 꿈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시대의 거인다운 장엄한 죽음이긴 했습니다만. 전개 과정을 돌아볼 때 설득력은 떨어지는 파국이었습니다. 미실에겐 여전히 많은 선택이 있었고, 시간은 여전히 미실에게 우호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신라 전체로 놓고 볼 때 미실을 지지하는 세력이 더 많은 상황이었거든요.
어쩌면 미실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게 더 설득력이 있었다고 볼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미실의 지지 세력들 중에도 그동안 미실이 굳건하게 유지했던 대의를 저버린 채 왕위에 욕심을 내는 점에 반감을 가진 이들이 있었거든요. 얼마 전 공개됐던 다섯가지 시나리오 중엔 그런 이유에 의한 죽음도 있었습니다. 아들로 인정받지 못한 비담도 암살자의 여지가 있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미실이 다소 설득력이 떨어지고 비약적으로 여겨지는 자살을 택한 데엔 그 누구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해져버린 미실의 카리스마에 의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창조자, 즉 작가마저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력한 미실의 카리스마죠. 동시에 미실을 완벽하게 표현해낸 고현정의 카리스마이기도 합니다.
당초 기획 단계에는 미실은 비담에 의해 죽음을 맞는 설정이었던 것이 유력했습니다. 버려진 아들이 어머니에게 복수하고, 어머니는 정을 주지 못한 아들에 대한 죄책감에 기꺼이 죽음을 받아들이며 아들로 하여금 꿈을 대신 이루도록 당부하는 설정이었죠. 죽는 순간에 아껴뒀던 정을 표현하는 어머니를 보며 아들 비담이 왕에 대한 꿈을 품고 덕만공주와 대립하는 설정입니다.

설원이 미실을 죽이는 것도 하나의 설정으로 검토됐습니다. 설원은 진흥왕으로부터 '대의를 위해 미실을 척살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를 어기고 미실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도록 도운 인물입니다. 그동안 대의를 지켰던 미실이 대의명분을 저버리고 폭주하는 양상을 보이자 진흥왕의 명령을 뒤늦게나마 지킨다는 설정입니다. 이때 설원은 자결로 미실과 함께 하게 되죠.
어떤 식이든 미실이 누군가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면 그동안 신에 가까울 정도였던 미실의 카리스마가 너무 허망하게 무너지게 됩니다. 어울리지 않는 죽음이죠. 작가 입장에서는 사실상 신과 다름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만들었던 미실을 인간이 죽이도록 하는 것을 감히 생각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다소간의 비약이 있더라도 스스로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게 적절한 예우라고 여겼을 겁니다.

결과적으로 '선덕여왕'의 창조자는 미실을 너무 거대하게 만드는 우를 범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스스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하게 만든 탓에 죽음에 대한 선택권마저도 캐릭터에게 넘겨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은 거죠.
다만 너무 미화시켜 아름다운 죽음으로 만든 점은 옥에 티였습니다. 미화의 과정이 너무 급박한 나머지 어느 정도 뜬금없다는 인상을 남겼거든요. 전개 과정에서 화려한 기교로 기대감을 높인 점에 비하면 이를 수습할 내공은 부족했다고 할까요.

어찌됐건 중요한 것은 2009년 가장 멋진 캐릭터가 퇴장했다는 점입니다. 가장 멋진 드라마가 퇴장했음에도 '선덕여왕'은 아직 갈 길이 제법 멀다는 점입니다. 과연 작가는 어떻게 수습할까요. 너무 거대했던 미실의 빈자리인 만큼 채워넣기가 만만치 않을 것 같아보입니다. 기교만으로 채우기엔 너무 빈자리가 크거든요. 그만한 내공이 있을지 주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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