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무릎팍도사'의 초대 손님은 최강희였습니다. '4차원' 연예인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배우입니다. 4차원 컨셉트로 화제몰이를 하려는 페이크 4차원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4차원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물이죠. '무릎팍도사'에서도 "내가 왜 4차원으로 불리는지 모르겠다"면서 "4차원이라 불리는게 부담스럽다"는 고민을 토로했습니다.

최강희는 요즘 타이틀롤로 출연한 영화 '애자' 개봉을 앞두고 홍보 활동에 한창입니다. '무릎팍도사' 출연에도 영화 홍보 목적이 어느 정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무릎팍도사'는 언제나 그랬듯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나누지 않았습니다. 인간 최강희에 대한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뤘습니다. 조용하지만 임팩트있는 삶을 살고 있는 최강희의 이야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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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강희는 참 묘한 배우입니다. 그다지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것 같진 않은데도 대중들의 뇌리엔 은은하면서도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거든요.

최강희는 뛰어난 패션 감각을 선보인 일이 많은 것 같지도 않은데 패셔니스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물론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긴 했습니다. 그렇지만 대중을 선도할 만한 돋보이는 패션 감각을 발휘했던 것 같진 않습니다. 그럼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또한 최강희는 조용합니다. 예능 프로그램 출연도 거의 안합니다.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에 활발하게 출연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전에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대중들과 직접적으로 소통한 경험이 있긴 합니다만. 이후엔 그다지 소통의 기회가 많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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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최강희는 대중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최강희가 조용히 실천하는 행동들을 좇아하는 팬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최강희는 '무릎팍도사'에서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자신만의 팬들과 소통법에 대한 이야기였죠. 인상적인 내용이었습니다.

최강희는 선행 연예인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자신의 골수를 백혈병을 앓는 환우에게 기증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화제가 된 덕분이죠. 게다가 헌혈을 30회 이상 하면서 실천하는 선행 연예인으로 팬들의 지지와 사랑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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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의 선행은 간혹 양날의 칼이 되기도 합니다. 선행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면 당연히 칭송을 받아야 함에도 악플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선행의 속성 중에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점이 있기 때문이기도 할겁니다. 그런 탓인지 상당수 연예인들은 선행 사실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합니다.

그러나 최강희는 조용하지만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편입니다. 보도자료를 통해 언론에 알리는 요란한(?) 방법으로 알리진 않습니다. 대신 미니홈피라는 자신만의 공간을 활용합니다. 자신만의 공간을 찾아오는 팬들과 소통을 통해 알리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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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최강희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습니다. "나를 보고 팬들이 좇아해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실천하도록 하고자 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스타의 선행에 대한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말이죠. 스타의 선행이 지닌 가장 큰 의미인 파급 효과를 실천하고 있다는 이야기거든요.

모두들 알고 있는 단순한 진리이긴 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습니다. '나 이렇게 좋은 일 하고 살아요'라고 스스로 광고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거든요. 스스로 자기 얼굴에 분칠한다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최강희는 그런 점에 개의치 않고 있네요. 오히려 당당히 밝혀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최강희가 4차원이라면 정말 아름다운 4차원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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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공간과 방법도 돌아봄직 합니다. 미니홈피라는 공간. 팬들이 주로 찾아오는 점에서 어떤 의미에선 폐쇄적이고, 어떤 의미에선 개방적인 공간입니다. 찾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 당당한 선행이 아름다운 이유입니다.

'무릎팍도사'에 나온 최강희의 미소가 한없이 투명하게만 여겨졌습니다.
2009/08/27 12:34 2009/08/27 12:34

2000년대 중반 이후 방송가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아진 직업군은 예능인 MC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예능계 양대산맥인 유재석 강호동으로 대표되는 예능인 MC들은 연기자들 이상으로 높은 인기와 위상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영향력 있는 연예계 파워맨에 대한 설문조사에서 유재석 강호동 등은 항상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곤 합니다.

유재석 강호동 등 예능인 MC들의 출발점은 어디일까요. 개그맨입니다. 90년대에만 해도 코미디 프로그램 외에는 영역을 넓히지 못했죠. 상대적으로 연예계에서 위상이 낮은 축에 속했던 직업군입니다. 그런데 버라이어티 예능 MC로 영역을 넓히면서 방송가 전방위에서 활약하는 최강의 위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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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개그맨의 영역을 예능 MC로 넓히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우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초기 전성기를 주도한 주병진을 꼽을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주병진의 직계 후배라 할 수 있는 이경규가 대표적인 인물이 되겠죠. 그렇지만 지금처럼 버라이어티 예능 등 다방면으로 개그맨의 영역을 넓힌 결정적인 공헌을 한 인물은 신동엽입니다.  

신동엽은 '남자 셋 여자 셋'이라는 시트콤의 주인공을 맡아 개그맨의 영역을 연기자로도 확대했고,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러브 하우스'와 '느낌표' 등을 통해 공익 예능으로도 넓혔습니다. 당시에만 해도 개그맨의 무대는 스튜디오에 국한되는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신동엽은 스튜디오 밖으로 무대를 넓힌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물론 이경규 김국진 등도 같은 공헌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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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방송가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예능인은 누가 뭐래도 신동엽이었습니다. 타고난 순발력과 재치, 그리고 애드리브 능력은 타에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러브 하우스'와 '느낌표'에서 보여준 따뜻한 마음 씀씀이는 최고 훈남으로 인정 받을만 했습니다. 아쉽게도 당시엔 훈남이라는 단어가 없었네요.

신동엽의 시대는 좀처럼 저물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에 서서히 저물어 갔습니다. 그리고는 유재석 강호동에게 시대를 양보했습니다. 양보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건 신동엽 스스로 물러난 양상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신동엽은 개그맨의 영역을 사업가로도 넓히는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었거든요. DY라는 연예기획사를 설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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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이 사업 도전으로 예능계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면 유재석 강호동의 시대가 도래했을지 모를 일입니다. 어쨌든 이제 신동엽은 예전의 명성을 좀처럼 찾지 못하는 과거형 스타가 된 인상입니다. 올해 들어 곳곳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반응이 예전 같지 않습니다. 물론 돋보이는 활약이긴 합니다. 그래도 예전의 명성이 너무 대단했기에 그런 느낌이 드는 걸겁니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신동엽은 예능계의 제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의 영화에 불과한 듯한 인상입니다. 아예 미련을 두지 않는다면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겁니다. 왠지 요즘 들어 조금씩 미련을 두는 듯합니다. '일요일이 좋다'와 '일요일 일요일 밤에' 등을 통해 한동안 떠나 있었던 리얼 버라이어티에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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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신동엽의 모습을 보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집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스스로 물러난 뒤 다시 되찾고 싶은 미련은 없는지. 물러나야 했던 것은 과연 필연이었는지. 사업에 도전에는 만족하는 지. 그저 재미를 위한 이야기가 아닌 마음을 터놓은 솔직한 이야기를 말이죠.

신동엽은 언론 인터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러브 하우스'나 '느낌표'를 통해 최고 자리를 지킬 무렵 촬영장까지 찾아가서 요청했지만 인사만 나누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무렵엔 인터뷰를 꺼릴 몇몇 이유가 있긴 했습니다만. 이후에도 인터뷰 기회는 없었습니다. 요즘 같아선 더욱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런 상황에서 신동엽의 허심탄회할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최고의 무대는 어디일까 생각해봤습니다. 단연코 '무릎팍 도사'가 떠오르더군요. 동료인 강호동이 진행하는 점에서 더욱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가 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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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방송된 '라디오 스타'에 신동엽은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오빠 밴드' 동료들과 함께 출연했습니다. 이야기를 조금 하는 듯했습니다만. '라디오 스타' 특유의 정신없는 분위기 속에 웃음을 위한 소재에 그치고 만 양상이었습니다. 조금 아쉬웠습니다. '라디오 스타'가 아닌 '무릎팍 도사'였다면 뭔가 진지한 생각을 하게 하는 심도 높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텐데요.

언제부터인지 '무릎팍 도사'는 장동건 섭외에 집착하고 있습니다. 물론 장동건도 '무릎팍 도사'를 통해 만나고 싶은 대형 스타이긴 합니다. 그러나 자꾸 멀리서 찾기보다 가까운 곳에 있는 신동엽을 섭외하는 게 더 의미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드네요. 게다가 '무릎팍 도사'의 연출자가 예전에 신동엽과 '러브 하우스'를 함께 한 PD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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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은 엔터테인먼트 사업 외에도 신발 사업에도 뛰어든 상태입니다. 스프링 풋웨어 사업에 뛰어들었죠. 세계 최초로 스프링 다이어트와 밸런스 특허까지 취득했다죠. 사업에 대한 욕심도 대단해 보입니다. 엔터테인먼트 사업에서 새로운 분야로 영역을 확대하는 신동엽의 생각도 반드시 듣고 싶은 대목입니다.

2009/07/25 14:09 2009/07/25 14:09

 올해 초였던가요? 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의 양준혁 선수가 MBC TV '황금어장'의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2인자의 설움'에 대해 토로한 적이 있습니다. 양준혁 선수는 한국 프로야구계의 살아 있는 전설로 추앙받고 있음에도 줄곧 2인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 새삼 놀랍더군요.

 '무릎팍도사'의 양준혁 선수 출연 방송분을 보면서 불현듯 대중 음악계의 2인자들에 생각이 미쳤습니다. 저는 주로 팝 음악을 즐겨 들었기에 주로 미국과 영국의 뮤지션들이죠. 물론 한국 뮤지션 중에도 기억에 남는 2인자들이 몇몇있긴 하죠.

 2인자를 이야기하려면 물론 1인자부터 먼저 이야기해야겠죠. 팝 음악의 역사에서 전설적인 1인자로 꼽을 만한 뮤지션은 누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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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라고 대답하시는 분이 상당히 많으리라 생각됩니다. 물론 비틀즈는 1인자로 꼽을 때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기 힘든 전설적인 뮤지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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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비틀즈와 동시대를 보내면서 벽에 가로 막혀 2인자로 남은 뮤지션은 누가 있을까요.

 많은 뮤지션이 거론되겠지만 저는 롤링 스톤즈를 꼽고 싶네요. 1964년부터 영국을 거쳐 미국 및 전세계를 장악한 비틀즈에 비해 롤링 스톤즈는 다소 늦게 출발했지만 팝 음악계 장악력 만큼은 엄청났죠. 물론 비틀즈와 비교했을 때 한수 떨어지긴 하기에 2인자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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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롤링 스톤즈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2인자입니다. 믹 재거, 키스 리처드 등 멤버들은 환갑을 넘긴 나이에도 아직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죠. 게다가 롤링 스톤즈의 존재가 헤비메탈 등으로 대표되는 하드록 음악의 태동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 점에서 그 생명력 역시 엄청납니다. 레드 제플린, 딥 퍼플, 크림 등의 탄생에 적지않은 영향을 미쳤거든요. 롤링 스톤즈가 들려준 'Paint it Black' 'As Tears Go by' 'Satisfaction' 등은 주옥같은 불멸의 히트곡이죠.

 비틀즈가 70년대 초반 해체한 뒤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 중심의 솔로 활동으로 영향력을 이어갔다면,(물론 조지 해리슨과 링고 스타도 훌륭한 솔로 활동을 펼쳤습니다) 롤링 스톤즈는 그룹의 명맥을 수십년간 이어가면서도 솔로 활동으로도 발군의 성과를 거뒀습니다. 키스 리처드의 경우 영화 '캐러비안 해적'의 주인공인 잭 스패로우 선장의 외모상의 모델이 된 인물입니다. 잭 스패로우의 아버지 역할로 출연하기까지 했죠.

 물론 아직도 롤링 스톤즈는 굴러가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한국 프로야구의 살아 있는 전설인 2인자 양준혁 선수와 롤링 스톤즈는 닮은 구석이 많다고 해야할까요.

 2인자는 스스로를 안타까워 하곤 합니다. '삼국지'에서 오나라의 명책사 주유가 제갈량의 능력에 못미침을 안타까워 하며 "하늘이시여, 왜 주유를 낳고 제갈량마저 나으셨나이까"하고 울분을 토한 끝에 피를 토하고 죽은 일은 이를 잘 대변하는 사례죠. 그러나 2인자 역시 전설적인 성과를 남기기도 합니다. 모든 걸 다 더하고 보면 1인자를 능가하는 일도 자주 있죠.

 다음번엔 80년대 팝 음악계의 1인자와 2인자의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죠.



2008/08/04 15:50 2008/08/04 15: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