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은 작품 선택의 순간일 겁니다. 어떤 작품을 결정하는지에 따라 더 높은 도약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되니까요. 연출자, 작가, 대본, 출연 배우, 경쟁작 등 다양한 변수들을 고려해서 신중하게 선택하게 됩니다. 위상이 높은 스타일수록 선택은 까다롭죠. 긴 기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 탓에 제작진의 가슴을 시커멓게 타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선택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주판알을 오래 튕길수록 엉뚱한 선택을 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이런 걸 '장고 끝에 악수'라고 하죠. 어쨌든 선택은 결과를 낳습니다. 결과는 다양한 양상으로 펼쳐집니다. 때로는 연예계 전체에 엄청난 파급 효과를 일으키기도 하죠. 나비효과라고 할까요. 그런 나비효과를 수차례 일으킨 연기자가 있다면 상당한 관심이 모아지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요즘 '트리플'에 출연중인 톱스타 이정재의 이야기입니다.

이정재는 대형 스타입니다. 15년 이상 당대 최고의 스타 자리를 지켜왔습니다. 그렇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엔 예전에 비해 주춤한 양상입니다. 그 배경엔 선택의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순 없겠지만 아쉬운 선택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정재의 선택 덕분에 엄청난 기회를 잡아 초대형 스타로 떠오른 이들도 있거든요. 연예계를 뒤흔들 정도로요.

이정재는 좀처럼 드라마에 출연하지 않던 배우였습니다. 2007년 '에어시티'는 9년 만의 드라마 복귀작이었죠. 그러나 이전에 몇차례 드라마에서 모시려는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아쉽게 인연이 닿지 않았죠. 그 드라마들은이 엄청난 화제를 모았고, 주연 배우들이 당대 최고의 스타가 됐습니다. 이정재의 선택이 동료의 엄청난 도약의 원동력이 됐다고 할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2004년의 일입니다. '파리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기획되고 있었죠. 기획 단계에선 그다지 기대를 모으지 못했던 작품입니다. 김은숙-강은정 작가는 아직 신예에 불과했고, 맡으려는 연출자도 없었습니다. 결국 미니시리즈 연출 경험이 없는 신우철 PD가 연출자로 낙점됐죠.

'파리의 연인'의 남자 주인공 한기주 역으로 가장 먼저 거론된 배우가 이정재였습니다. 이정재도 관심을 갖고 기획안을 봤죠. 그러나 당시 이정재는 곽경택 감독의 영화 '태풍' 출연을 논의 중이었습니다. 물리적으로 '파리의 연인'과 '태풍'을 충분히 함께할 수 있었는데. 이정재는 한 작품에 모든 열정을 쏟고 싶다는 완벽주의적인 자세로 '파리의 연인' 출연 제의를 고사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후 몇몇 연기자를 거쳐 박신양이 '파리의 연인'의 주인공이 됐네요. 박신양은 이전까지 연기력은 최고지만 스타성은 최고까지로는 평가되지 않았습니다. '파리의 연인' 덕분에 명실공히 최고의 스타가 됐습니다. 노래 실력까지 과시하면서 일본 등 해외에서도 인기를 모았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정재에게 또 한번의 화제작 출연 제의가 찾아왔습니다. 표민수 PD의 '풀하우스'입니다. 이미 송혜교가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된 상태에서 표민수 PD는 이정재를 남자 주인공으로 점찍었습니다. 표민수 PD와 이정재는 원래 친분이 두터웠죠. 이정재도 긍정적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이번에도 '태풍'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이정재는 '태풍'에서 장동건과 호흡을 맞춰야 했습니다. 당대 최고 스타 이정재도 장동건과 카리스마 대결은 만만치 않았다고 본 모양입니다. '태풍' 촬영 준비에 몰두하고 싶다며 '풀하우스' 출연 제의를 고사했습니다.

결과론적이지만 '태풍'은 '풀하우스'가 종영하고도 반년 이상 지난 뒤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이정재의 '풀하우스' 출연에 그다지 걸림돌은 아니었던 셈입니다. 이는 '파리의 연인'과도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경우라고 하겠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리고 다들 잘 아시다시피 '풀하우스'의 주인공은 비 정지훈의 차지가 됐습니다. 비는 표민수 PD로부터 출연 제의를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출연하고 싶다'고 요청을 했죠. 표민수 PD는 비측의 요청에 대해 "비 매우 좋다. 그러나 현재 이정재와 논의 중이다. 이후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만큼 이정재에 대해 애착이 강했습니다.

어쨌든 비는 '풀하우스'를 통해 명실상부한 최고 스타가 됐습니다. '풀하우스'는 아시아 전역에 소개돼 뜨거운 인기를 모았죠. 비는 '풀하우스'를 통해 아시아 전역에 이름을 알렸고 최고의 한류 스타로 급부상했습니다. 이제는 월드 스타가 돼 있죠. 비의 월드 스타 등극에 '풀하우스'가 기여한 바는 결코 작지 않을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역시 2004년, 이정재는 또 한번 화제작의 주인공 0순위였습니다. 이형민 PD와 이경희 작가가 함께 한 '미안하다, 사랑한다'였습니다. 이형민 PD는 진작부터 주인공 차무혁 역으로 이정재를 염두에 뒀습니다. 이정재 역시 관심은 많았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태풍'이 발목을 잡았습니다. 곧 촬영할 예정이었거든요. 물론 '미안하다, 사랑하다' 종영 이후에도 '태풍' 촬영은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물리적으로 이정재의 '미안하다, 사랑한다' 출연은 가능했겠지만. 크랭트인 초읽기 상태에서 다른 작품에 출연하는건 대형 스타 이정재에겐 어울리지 않는 일이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후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차무력은 이동건을 거쳐 소지섭의 차지가 됐습니다. '상두야 학교가자'에서 이형민 PD-이경희 작가 콤비와 인연을 맺었던 이동건도 거의 출연 직전까지 갔지만 막판에 고사했죠. 그때 그가 선택한 작품은 '유리화'였습니다.

소지섭은 '미안하다, 사랑한다'를 통해 그야말로 위상이 대폭 업그레이드 됐습니다. 이전에도 인기가 있었지만 마니아 성향이 강한 팬들에 집중된 인상이었죠. '미안하다, 사랑한다' 이후 소지섭은 소간지라는 별명과 함께 두터운 팬층을 아우르는 톱스타가 됐습니다. 일본에선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한류 스타로 급부상하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정재를 만나게 되면 이 일련의 선택에 대해 꼭 한번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트리플' 촬영 현장에서 인터뷰할 기회가 생겼죠. 조심스럽게 물어봤습니다. "물론 나도 아쉽다"고 대답하더군요. "'태풍'이 계획대로 촬영이 이뤄지지 않아 좋은 작품을 놓쳤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선택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인정받을만 했다. 만일 내가 출연했더라면 다른 색깔의 연기를 펼쳤을거다"라고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하긴 어떤 결과가 나왔을 지는 누구도 모를 일이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찌 보면 이정재의 대타격인 배우들이 엄청난 성공을 거뒀네요. 그런데 이정재도 다른 연기자가 물러난 자리에 합류한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트리플'입니다. '트리플'의 신활 역은 원래 강지환이 내정된 배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물러나고 이정재가 합류했습니다. 물론 강지환 이전에 이정재에게도 출연 의사를 타진하긴 했으니 대타격이라 보긴 힘들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좋은 선택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이정재의 섬세한 연기를 보는 것도 좋은 감상 포인트가 될 거라 여겼거든요. 이정재 스스로도 연기 영역을 확장할 수 있고요. 이정재 이선균 윤계상 세 훈남 배우의 연기 앙상블도 기대됐습니다. 아직까지 결과는 그다지 신통해 보이진 않네요. 평가도 그다지 좋지만은 않은 것 같고요. 못내 아쉽습니다.  

2009/07/17 12:36 2009/07/17 12:36

중견 여자 연기자들 중엔 인상적인 어머니 연기로 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분들이 계십니다. '전원일기' '엄마가 뿔났다'의 김혜자 선생, '꽃보다 아름다워'의 고두심 선생, '굿바이 솔로'의 나문희 선생 등이 대표적인 어머니 연기자들입니다.(예로 든 대표작은 제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작품들입니다. 더 좋은 작품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 분들은 단순히 드라마나 영화에서 어머니를 연기하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후배 연기자들에게도 다양한 방면에서 귀감이 되며 어머니 노릇을 합니다. 감동적인 연기로 시청자와 관객들에게도 모범적인 어머니상을 남깁니다. 대중들은 이 분들에게 '국민 엄마'라는 칭호를 선사하며 존경을 표시합니다. 이 분들은 어느덧 할머니의 나이가 됐음에도 여전히 국민 어머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분들의 뒤를 잇는 '국민 엄마' 배우는 누가 있을까요. 감동적이고 인상적인 어머니 연기를 하시는 연기자들이 많을 겁니다. 그러나 이 분을 꼽는 데 있어서 누구도 반대 의견을 제시하지 않을 겁니다. 바로 김해숙 선생입니다. 한류 스타의 어머니로도 잘 알려진 배우이기도 합니다.

김해숙 선생은 젊은 시절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연기자는 아니었습니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주로 안정감 있는 조연 역을 맡았습니다. 40대 중반에 접어든 2000년대 초반부터 어머니 배역을 맡아 좋은 연기를 펼쳤습니다. 김혜자 선생, 고두심 선생, 나문희 선생 등이 할머니 나이에 접어들면서 시대는 새로운 어머니 배우를 필요로 했고 김해숙 선생이 적역이었습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해숙 선생은 윤석호 PD의 4계절 시리즈에서 모두 어머니로 등장했습니다. '가을동화'에서 송혜교, '겨울연가'에서 최지우, '여름향기'에서 송승헌, '봄의 왈츠'에서 한효주의 어머니를 연기했습니다. 한류 최고 성공작인 '겨울연가' 덕분에 김해숙 선생은 '한류 스타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얻었습니다. 일본에서도 상당한 명성을 쌓은 중견 한류 배우가 됐습니다.
 
이후에도 김해숙 선생의 '한류 스타의 어머니' 행보는 계속됐습니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김래원의 어머니(정확하게 말하면 어머니 같은 분이죠)를 연기했고, 영화 '우리 형'에선 원빈의 어머니를 연기했습니다. '오필승 봉순영'에선 채림의 어머니를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국민 엄마' 배우의 칭호는 자연스럽게 김해숙 선생의 차지가 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해숙 선생의 어머니 연기는 김혜자 선생처럼 친근하고 자상한 어머니의 느낌과 고두심 선생처럼 짙은 감동이 담긴 어머니의 모습, 그리고 나문희 선생의 잔잔한 슬픔을 머금은 어머니의 모습까지 포괄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연기자 하면 김해숙 선생이 떠오르게 됐죠. 그러나 김해숙 선생의 연기 인생의 길은 예상과 달랐습니다. 새로운 어머니상에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해숙의 도전은 2008년 영화 '무방비 도시'에서 소매치기 전과 17범 강만옥을 연기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이발소에서 대충 자른듯한 짧은 머리의 전설적인 소매치기로 변신한 김해숙은 이 작품을 통해 날카로운 눈빛 연기와 거친 액션을 선보였습니다. 아들 김명민의 출세의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 애쓰는 진한 모성애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경축! 우리 사랑'에서는 21세 연하의 청년과 사랑에 빠지는 50대 아줌마를 연기했습니다. 50대에 찾아온 사랑을 통해 엄마에서 여자로 변해가는 인물입니다. 설레임과 떨림을 완벽하게 표현한 수줍은 어머니였습니다. 여기까지는 조금 다르긴 해도 착한 어머니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카인과 아벨'과 '하얀 거짓말' 그리고 영화 '박쥐'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다른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카인과 아벨'에선 탐욕으로 가득찬 어머니고, '하얀 거짓말'에서는 지독한 모성애로 일그러진 어머니입니다. 급기야 '박쥐'에선 엽기적인 어머니가 됐더군요. 착한 어머니에서 벗어나 악한 어머니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물론 아들을 위한 모성애는 계속됩니다. 다만 사랑하는 방식이 지독하고 기괴할 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해숙 선생이 보여준 다양한 어머니상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합니다. 우선 우리가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어머니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강한 인상을 남긴 어머니는 모두 착하고 존경스러운 어머니지만 김해숙 선생은 그렇지 않은 어머니도 있다는 점을 강렬하게 보여줬습니다. 어찌 보면 진정한 의미의 국민 어머니에 다가가고 있는 행보입니다.

또 한가지는 김해숙 선생이 표현하는 어머니들이 단순히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니라 스스로만의 강한 존재감을 지닌 인물이라는 점입니다. 김해숙 선생은 어머니인 동시에 한 사람의 주체적인 여인으로 작품 속에서 살아 숨쉬게 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금까지 좋은 어머니상으로 여겨졌던 것은 한없이 포용하는 보살피는 어머니의 포근한 품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이상적인 어머니상에 불과하죠. 현실 속의 어머니는 다릅니다. 김해숙 선생은 이상적인 어머니상으로 국민 어머니 배우의 길을 좇아가다가 현실 속의 어머니로 영역을 대폭 확장한 셈입니다.

김해숙 선생은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한 '박쥐'와 함께 프랑스 칸으로 날아갔습니다. 4계절 시리즈로 인연을 맺은 윤석호 PD의 부인인 한복 연구가 한혜수씨가 제작한 한복을 입고 레드 카펫과 공식 행사를 장식했습니다. 한국의 국민 어머니의 모습을 전세계에 자랑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한편으로는 '박쥐' 속 김해숙 선생의 모습을 본 세계 영화팬들이 '한국 엄마들은 다 저렇게 엽기적이야?'라는 반응을 보일까 걱정되기도 합니다.  

2009/05/16 09:05 2009/05/16 09:05
'카인과 아벨'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습니다. 20부작이면 그다지 짧지 않은데도 '카인과 아벨'에겐 짧게만 느껴졌습니다. 많은 이야기를 담아냈고 다양한 인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혔기에 좀더 여유있는 시간 여건 아래에서 풀어 갔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일 겁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카인과 아벨'에게 20부라는 횟수가 짧게 느껴진 것은 소지섭이 오랜 기간 품어뒀던 매력을 완전히 펼쳐보이기엔 짧은 시간이었던 탓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지섭은 '카인과 아벨'을 위해 2년여를 기다렸고 그 기간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멋졌거든요. 오히려 '카인과 아벨'이 짧다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지섭이 '카인과 아벨'에서 매력적이었던 가장 큰 대목은 감정의 절제에 있다고 여겨집니다. 소지섭은 작품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감정을 쏟아낸 적이 없었습니다. 항상 담담하고 무심했습니다. 조용하고 나직하지만 힘있는 사랑을 했고, 무표정에 가까운 표정으로 차갑게 분노를 표현했습니다. 또한 희미한 미소로 희열을 드러냈습니다.

부모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알게 됐을 때엔 좀더 오열해도 됐을텐데 절제의 힘으로 비장함을 강조했고, 사랑을 표현할 때도 애절함을 철저히 갈무리했기에 한층 감동적이었습니다. 선우와 어머니를 용서할 때에도 차분했습니다. 여운 남긴 마지막의 나지막한 독백이 모든 걸 설명하죠.

어찌 보면 너무 멋스러움을 추구한게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소지섭의 담담함엔 멋스러움을 뛰어넘는 힘이 충만했습니다. 그런 걸 포스라고 하던가요. 카리스마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소지섭의 별명인 소간지와도 딱 어울리는 분위기 같기도 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만일 멋스러움만이 있었다면 캐릭터가 붕 떠 있다는 인상을 남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소지섭은 묵직하고 차분하게 초인이라는 캐릭터로 작품의 중심을 잡았습니다. 그렇기에 '카인과 아벨'은 신현준 한지민 채정안 등 많은 스타급 연기자와 김해숙 장용 등 무게감 있는 중견 연기자가 있음에도 소지섭의, 소지섭에 의한, 소지섭을 위한 드라마가 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카인과 아벨'을 보면서 확실히 느낀 것은 소지섭의 아우라가 상상 이상으로 넓어졌다는 점입니다. 멋있고 매력적인 스타로만 여겨왔던 소지섭이 대형 배우 대열에 합류했다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최근 몇년 동안 김명민을 보면서 느껴진 점을 소지섭에게서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연예 기자 생활을 시작한 뒤 소지섭을 처음 본 것은 2000년 쯤이었나요. '뷰티풀 선데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수영을 하는 프로그램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당시 소지섭에게선 '그저 매력적인 청년이구나' 정도의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후 '유리구두' '천년지애' '발리에서 생긴 일' 등의 드라마에서도 멋스러움 이상을 발견하진 못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다가 소지섭을 가까이에서 볼 기회가 생겼던 작품이 '미안하다 사랑한다'였습니다. 인터뷰를 했죠. 질문에 대한 답은 거의 '네' '아니오' 수준이었습니다. 답답했습니다. 기사 거리가 영 안나오는 인터뷰였기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당시 저는 소지섭을 새롭게 보게 됐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에서 베어나오는 담담함이 너무 인상적이었거든요. 반했다고 해야할까요.

'미안하다 사랑한다'에서 연기는 두말할 여지 없이 훌륭했습니다. 드라마 보면서 눈물을 흘린 몇 안되는 경험을 안겨주기도 했습니다. 그 무렵 저는 "내가 소지섭이 때문에 눈물을 흘릴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다"고 혼잣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소지섭은 군복무를 시작했고 '카인과 아벨'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영화 '영화는 영화다'도 있지만 말이죠. 저는 못봤으니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인과 아벨'에서 소지섭은 '미안하다 사랑한다' 때보다 더 커졌습니다. 인터뷰할 당시 느꼈던 담담함에도 한층 자연스러운 힘이 실려 있더군요. 사실 '카인과 아벨'에 소지섭과 신현준이 함께 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신현준의 연륜에 소지섭이 밀리진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소지섭의 담담한 힘에 신현준의 연륜이 완전히 가려진 양상이었습니다.

'카인과 아벨'은 화해와 용서로 마무리됐습니다. 소지섭의 담담함은 화해와 용서를 차분하게 가라앉히며 깊은 여운을 남겼습니다. 극적인 감정의 고조와 흐름은 없었지만 한층 깊은 울림이 지속될 것 같습니다. 가슴 벅차게 하는 감동은 없었지만 지긋이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감동의 여운을 만들긴 쉽지 않은데, 소지섭은 그만큼 대단한 배우가 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고 보면 한지민은 조금 손해를 본 것 같습니다. 한지민은 정말 아름다운 모습으로 더없이 예쁘게 연기했습니다. 그러나 소지섭 옆에 있으니 작아 보였습니다. 소지섭의 포스에 가려 한지민의 매력이 있는 그대로 표현되진 못했습니다. 엄청난 매력의 소유자인데도 말이죠. 한지민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아쉽긴 합니다. 그래도 그 상대가 소지섭이라 나쁘진 않습니다.  


 


소지섭이 2년 동안 '카인과 아벨'을 기다린 사연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2009/04/24 08:12 2009/04/24 08:12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인과 아벨'은 정말 많은 걸 이야기하는 드라마입니다. 의사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메디컬 드라마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하고, 배다른 형제의 갈등을 다루면서 일그러진 형제애를 조명하기도 합니다. 탈북자가 한국에 와서 행복을 찾아가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그 과정에서 안보부와 새터민 정착지원사무소에 대한 조명도 이뤄집니다.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에 걸립니다.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복수도 해야 합니다. 그 와중에 네 남녀의 엇갈린 사랑도 보여줘야 하죠.

'카인과 아벨'은 장르의 측면에서 연구 대상입니다. 메디컬 드라마라고 하기엔 의학 비중이 조금 작아보이고, 가족 드라마라고 하기엔 스케일이 너무 좁혀진 듯한 인상입니다. 그렇다고 멜로 드라마라고 볼 수도 없습니다. 장르를 규정하기 정말 어려운 작품입니다. 무언가 한마디로 규정하기 쉽지 않다면 시청자에게 접근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카인과 아벨'은 아까운 작품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인과 아벨'이 하고자 하는 각각의 이야기는 상당히 탄탄하고 안정감이 있습니다. 신현준의 의료 시술 장면은 '외과의사 봉달희'를 연상시킬 정도로 치밀하고 사실감 넘쳤습니다. 큰 아들을 편애하는 어머니 김해숙과 배다른 형제 신현준과 소지섭의 갈등은 섬세한 내면 연기로 표현돼 강한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한지민의 탈북자 연기도 흠잡을데 없을 정도로 훌륭합니다. 소지섭이 중국에서 납치 당하는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총상을 입고 기억상실증에 빠지는 과정은 박진감 넘쳤습니다. 두 남자 사이에서 갈등하는 채정안의 연기도 멜로 구도의 긴장감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카인과 아벨'의 전체를 구성하는 각각의 부분은 모두 흠잡을데 없이 훌륭합니다. 그런데 전체를 놓고 보면 어딘지 부조화가 느껴집니다. 하나로 통합되지 않는 듯한 인상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화려하게 펼치긴 했지만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서 하나의 드라마가 아닌 옴니버스 드라마의 결합처럼 여겨지게 하고 있습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에 모두 힘을 주면서 전개를 하다 보니 연결 부분에서 힘이 빠진 듯이 보이지 않나 생각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카인과 아벨'은 시청자에게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보여주겠다'는 선전포고라도 하는 듯 보여집니다. 물론 다채로운 볼거리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전개가 산만해지고 있습니다. 20회라는 한정된 분량에 다루기엔 소재들이 너무 많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어찌 보면 미니시리즈라는 그릇이 너무 좁아보이는 작품이라는 생각까지 듭니다. 벌써 절반이 지나갔음에도 도입부를 겨우 넘긴 듯한 점을 보면 앞으로 제법 묵직한 숙제를 짊어지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카인과 아벨'의 개별 에피소드들은 주옥에 비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 옥을 꿰는 줄은 다소 빈약하네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이 떠오릅니다. 구슬을 잘 꿴다면 명품 목걸이가 될 수도 있겠죠. 안타깝게 시간이 부족해 보입니다. 20회가 아닌 30회라면 하는 아쉬움도 따릅니다.




'카인과 아벨'에 대해 소지섭은 대단한 애착을 지니고 있습니다. 관련 포스팅도 있습니다.
 

2009/03/26 10:50 2009/03/26 10:50
'카인과 아벨'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태왕사신기'와 비교될 수 있는 드라마입니다. 기획 단계에서 제작을 알리고 촬영을 거쳐 방송되기까지 걸린 시간을 놓고 봤을 때 '카인과 아벨'은 '태왕사신기'와 비교됩니다. 두 작품 모두 4년 이상의 긴 시간의 진통을 거쳐 시청자에게 소개됐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태왕사신기'는 촬영 기간 자체가 워낙 길었다는 점이고, '카인과 아벨'은 촬영을 앞두고 프리프로덕션 과정이 엄청나게 길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렇게 제작 과정이 긴 경우 많은 피해자가 생깁니다. 일찌감치 주인공으로 낙점돼 촬영 시작을 기다린 연기자의 경우 적지않은 피해를 입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카인과 아벨'의 경우 소지섭이 지난 2007년 초반 주인공으로 결정돼 촬영을 기다렸습니다. 캐스팅된 이후 방송이 시작될 때까지 꼬박 2년이 걸린 셈입니다. 2년이면 산술적으로 영화 또는 드라마 3~4편에 출연할 수 있는 기간입니다. 소지섭의 경우 군 복무 이후 복귀작으로 선택한 '카인과 아벨'의 제작 지연은 행보에 상당한 차질을 받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영화 '영화는 영화다'와 일본 영화에 출연하긴 했지만 보다 왕성한 활동을 기대한 팬들의 입장에선 아쉬울 겁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실 '카인과 아벨'은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던 작품입니다. 제작사 교체도 있었고, 연출자 및 작가도 바뀌었습니다. 제작 초기에 연출과 대본을 맡았던 이들이 모두 물러난 만큼 내용도 180도 다르게 수정됐습니다. 당초 기획 단계에선 최진영이 가수로 활동할 당시 이름인 스카이의 '영원' 뮤직비디오의 드라마 버전으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범죄자 동생과 경찰 형의 우정과 갈등을 다루는 것이었죠. 그런데 바뀌고 바뀌어 의사 형제 이야기로 180도 변신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연기자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기획 초기 단계인 2005년에만 해도 장혁·지진희·최지우 등이 거론됐습니다. 이런 저런 이유로 성사되지 못하고 주진모·현빈이 유력한 후보로 물망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이 또한 거론 단계에서 접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소지섭이 전역을 앞두고 '카인과 아벨'을 복귀작으로 결정했습니다. 몇개월 후 지진희가 형으로 합류하기로 하고, 정려원도 형제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인으로 낙점됐습니다. 소지섭·지진희·정려원이면 최고로 손색이 없는 캐스팅이었습니다. 일본의 대형 엔터테인먼트업체는 캐스팅만 보고 20억원 이상을 선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쯤 되면 순조롭게 촬영만 이뤄지면 될 것으로 생각됐는데 의외의 표류를 하더군요. 1년 정도 제자리 걸음을 하는 동안 지진희와 정려원은 하차를 선언했습니다. 계약 기간을 넘겼으니 전혀 문제 없는 하차입니다. 두 사람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소지섭의 경우엔 짜증이 제대로 날 법한 상황이었습니다. 군 복무를 마치고 1년 동안 허송세월을 한 격이었으니까요. '소지섭도 하차할 거다'라는 이야기가 방송가에선 정설로 여겨지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소지섭은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순조롭게 제작될 가능성이 별로 없어 보였는데도 묵묵히 기다렸습니다. 제작사 입장에선 소지섭이 영화에 출연하도록 배려할 수밖에 없었죠. 어쨌든 소지섭 입장에선 총 1년반 정도를 기다린 이후에야 제작이 가시화되는 걸 볼 수 있었습니다. '대물'을 준비하다가 엎고 새로운 작품을 물색하던 김형식 PD가 연출자로 합류하고, 새로운 작가가 투입되면서 급물살을 타게 됐습니다. 신현준·한지민·채정안 등이 합류하면서 이번엔 진짜로 제작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많은 사람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왜 소지섭이 무의미해 보일 정도로 '카인과 아벨'을 기다렸을까 하는 점입니다. 여느 배우 같으면 진작에 물러났을텐데 말이죠. 소지섭이 물러났으면 '카인과 아벨' 프로젝트 자체가 무산될 수도 있었을테고요. 실제로 주인공으로 낙점된 배우가 제작을 기다리다가 하차하면서 무산된 드라마들이 제법 있습니다. 소지섭이 뚝심을 갖고 기다린 이유는 정말 궁금한 대목입니다.

제작사 관계자와 소지섭의 소속사 관계자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양측 모두 동일한 대답을 하더군요. '신의'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을 보고 거액을 투자한 일본 업체에 대한 신의를 의미하는 거죠. 소지섭이 물러나면 일본 업체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낄테고 제작사를 상대로 천문학적인 소송을 걸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물론 소지섭은 계약 기간을 넘긴 만큼 물러나도 별다른 지장이 없는 상태였지만, 한류에 대한 신의와 신뢰를 지키기 위해 무모해 보일 정도로 '카인과 아벨'에 집착했던 것입니다. 무심한 듯 묵묵히 자기 길을 가는 소지섭의 멋스러움과 딱 부합돼 보이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18일 첫 공개된 '카인과 아벨'은 제법 볼만 했습니다. 15%대의 시청률이면 제법 성공적인 성적표를 받았네요. 전작인 '스타의 연인'이 6%대로 끝난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상쾌한 스타트에 박수를 보냅니다.


2009/02/19 10:21 2009/02/19 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