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선덕여왕'이 대단원의 막을 내리면서 2009년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드라마들이 모두 끝을 맺었습니다. 연말은 기존 드라마가 끝나고 새로운 드라마로 교체되는 시기입니다. 대부분 주요 드라마들이 종영됩니다. 올해는 '아이리스'에 이어 '선덕여왕'과 '천사의 유혹' 등이 연말이 다가오면서 일제히 막을 내렸습니다. 드라마의 2009년이 끝났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이리스'부터 '천사의 유혹'에 이어 '선덕여왕'까지 최근 종영된 화제작들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줄줄이 죽어나간 점입니다. 미실 고현정이 죽으면서 '선덕여왕'의 1기가 막을 내린 것을 시작으로 '아이리스'의 이병헌, '천사의 유혹'의 이소연 차화연, '선덕여왕'의 김남길 이요원 등이 죽음으로 작품의 끝을 맺었습니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면 '에덴의 동쪽'도 송승헌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의미심장한 공통점입니다. 성공한 드라마가 모두 주인공의 죽음으로 결말을 맺은 점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할 수 있거든요. '해피엔딩의 거부'라는 트렌드입니다. 대체로 큰 인기를 누린 드라마들은 해피엔딩이 많았습니다. 주인공들이 잘 먹고 잘 사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며 아름다운 결말을 맺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리스' '선덕여왕' '천사의 유혹'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한꺼번에 이 같은 경향이 나타나는 점에서 하나의 트렌드 형성에 대한 궁금증도 생겨납니다. 왜 주인공들이 이렇게 한꺼번에 죽는 걸까요. 드라마의 전통적인 공식인 해피엔딩이 갑자기 새드엔딩으로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시청자의 눈높이가 한참 높아진 점을 꼽아야 할 것 같습니다.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이 그저 보고 즐기기보다 내용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단계로 높아진 거죠.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내용과 전개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기도 합니다. 쌍방향으로 향해가는 단계라고 봐야죠.

보통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드라마를 보면 막판에 정신없이 정리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악인들은 반성하고 착한 주인공은 용서하고 모두가 화해해서 행복하게 함께 살게 됩니다. 대체로 개연성이 많이 떨어집니다. 작위적인 결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시청자들은 작위적인 행복한 결말에 대해 높은 점수를 주지 않습니다. 해피엔딩이 평가절하되는 상황을 맞게 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해피엔딩의 대립되는 개념인 새드엔딩은 그 자체로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여운이 좀 더 오래간다는 점입니다. 뭔가 생각할 여지를 남기기 때문일 겁니다. 해피엔딩은 개운한 마무리이긴 하지만 거기서 끝나는게 보통입니다. 반면 새드엔딩은 다소 찜찜하긴 하지만 여운은 해피엔딩에 비해 길게 지속되곤 합니다. 종영에 대한 아쉬움도 남기는 점에서 속편 등으로 이어갈 수 있는 여지도 남깁니다.

반전의 묘미를 얻을 수 있는 점도 새드엔딩의 장점 중 하나로 꼽힐 수 있을 겁니다. 보통 결말에 즈음해서는 모든 반전이 마무리되는 단계가 됩니다. 시청자들은 더이상의 반전이 없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새로운 재미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평이하지 않은 마무리로 마지막까지 흥미 포인트를 만들어 관심을 종영 이후로도 이어갈 수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올해 화제를 모았던 작품들의 새드엔딩은 어땠을까요. 새드엔딩의 트렌드화로 이어질 요소들이 반영됐는지 한번 돌아볼 필요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아이리스'는 여운감과 반전 등을 확실히 이뤄냈습니다. 속편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 점에서 어느 정도 성공적인 새드엔딩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난데없는 죽음에 대한 설명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습니다. 해피엔딩보다 오히려 더욱 작위적인 결말이 돼버렸습니다. 반전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인 치밀함이 없었던 탓입니다. '허무한 결말'이라는 평가로 이어졌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천사의 유혹'은 작위적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좀더 점수를 잃을 결말이었습니다. 모든 게 정리된 상황에서 불필요해 보이는 주인공의 죽음으로 당혹스러움을 안겨주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김순옥 작가는 "악행을 저질러온 주인공에게 동정심을 유발하고자 하는 결말"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서는 성공적이긴 합니다만. 전반적으로 찝찝한 결말이 아니었나 여겨집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선덕여왕'은 비장함을 돋보이게 한 새드엔딩이었습니다. 여운감은 확실히 오래 지속됐습니다. 그러나 역시 비장한 감동을 강요하는 듯한 작위성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물론 비담과 선덕여왕은 역사적으로 비슷한 시기에 죽음을 맞은 인물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결말을 맺는 것이 과연 세련된 마무리일 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소 극단적인 결말이 아니었나 하는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해피엔딩이 아닌 점에서 새로운 트렌드의 형성을 향해갈 것으로 보여지긴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숙제 또한 짊어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죽음 등의 새드엔딩은 그 자체로 반전의 재미를 지닌다기보다 그 과정에서 암시의 요소 등 치밀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숙제입니다. 해피엔딩의 작위성을 극복하기 위해 새드엔딩을 택했지만 해피엔딩 못지않은 작위성이 있었던 점에서 이에 대한 극복이 숙제로 남지 않을까 여겨집니다.
2009/12/26 13:22 2009/12/26 13:22
이번 주 '선덕여왕'은 색다른 구조로 시선을 떼기 어렵게 했습니다. 시청자에게 수수께끼를 던진 뒤 힌트를 암시하고 답을 알려주는 구조였습니다. 긴박감 넘치는 미스터리 구조로 시청자에게 퍼즐을 풀어가는 재미를 전해줬습니다.

12회 김춘추(유승호)가 덕만공주(이요원)에게 귓속말을 건네고, 김유신(엄태웅)이 덕만공주에게 "두번째 가능성은…"이라고 말을 흐리면서 퀴즈가 던져졌습니다. 방송을 보는 내내 내용을 짐작하느라 머리를 굴렸고 정답은 '미실(고현정)이 김춘추에게 당했다'였습니다. 김춘추가 미실을 이용했다는 이야기였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13회엔 과연 미실이 이토록 허망하게 무너지는가에 포커스가 맞춰졌습니다. 김춘추의 전략에 의해 세종(독고영재)과 설원(전노민) 미실 세력 양대축의 갈등이 극으로 치달았지만 미실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거든요. 오히려 "졸립다"며 잠만 자다가 비담(김남길)과 칠숙(안길강)만 데리고 산책을 떠났죠. 마치 더이상 속세에 미련이 없다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실은 비담과 밀담을 나눴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서로 모자지간임을 알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머니와 아들의 정이 은연중에 묻어 나오는 대화였습니다. 미실은 "하찮은 황후의 꿈을 꿨다"고 한탄했고, 비담은 그런 미실에게 "내가 천하를 얻겠다"며 꿈을 접을 것을 종용했습니다. 오히려 미실은 "내가 나서겠다"고 선언했습니다. 두 사람의 대화 중 비담의 "저니까요"와 미실의 "나니까"는 전율이 느껴질 정도로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실은 마침내 진정한 꿈을 꾸게 됐습니다. 이전에 덕만공주는 수하들에게 군주가 되겠다는 뜻을 밝히며 "미실은 꿈꾸지 않기에 왕이 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미실이 마침내 꿈을 꾸기 시작했죠. '선덕여왕'의 대권 다툼이 진정한 거대 세력의 빅뱅으로 이어지게 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은 덕만공주와 춘추의 치밀한 지략의 향방입니다. 춘추는 철저하게 자신을 숨기고 교묘한 지략을 만들어냈습니다. 미생(정웅인) 등 미실 세력은 김춘추에게 깜빡 속아넘어갔습니다. 미실도 당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김춘추는 미실을 도와준 결과가 됐습니다. 화백회의에서 선언한 '골품제 부정'은 미실 스스로 쌓아뒀던 벽을 무너뜨려준 결과가 됐거든요.

덕만공주도 착실하게 미실에게 잽을 날리며 힘을 쌓아갔습니다. 스스로 부군이 되겠다고 선언하며 신라 최초 여왕 탄생을 예고했습니다. 황후를 꿈꿨던 미실에 비해 한발짝 더 나아가며 미실 제압에 성공한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미실 스스로 쌓아둔 벽을 허물어준 결과가 됐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동안 미실은 골품제라는 신분상의 제약에 여자라는 한계에 갇혀 감히 왕의 꿈을 꾸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덕만공주가 갖은 공을 들여 여인임에도 왕이 되겠다고 선언하고, 성골이 아닌 김춘추가 골품제의 벽을 깨고 왕이 되겠다고 선언하자 한계를 넘어설 각오를 다지게 됐습니다.

결국 덕만이 힘을 쏟고 김춘추가 지략을 발휘한 것은 미실을 위한 것으로 일단락됐습니다. 세 세력의 대권 대결에선 세력과 능력을 지닌 미실이 한발 앞설 수밖에 없는 형편이거든요. 결과적으로 덕만공주와 김춘추는 미실의 손바닥 위에서 논 셈이 됐습니다.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말이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실은 과연 왕이 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겠죠. 역사는 분명히 덕만공주가 선덕여왕으로 등극한다고 기록하고 있으니까요. 드라마에서일지라도 미실이 왕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 덕만공주는 어떻게 미실이라는 막강한 세력을 무너뜨리고 왕위에 오를 수 있을까요. 그 점이 '선덕여왕'의 향후 최대 흥미 포인트가 될 겁니다. 왠지 걷잡을 수 없이 벌려 놓은 게 아닌가 생각되기도 하는데요. 이 또한 하나의 퍼즐 풀기의 재미가 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여기서 한가지 더. 미실이 여왕 등극을 꿈꾸는 과정에서 또 한명의 거인이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인 비담입니다. 미실은 스스로 벽을 깬 동시에 아들 역시 벽을 깨도록 했습니다. 비담은 미실 덕만공주 김춘추에 이어 또하나의 거대 세력이 될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덕만공주의 앞날이 결코 순탄하지 않을 분위기네요.      
2009/10/14 11:48 2009/10/14 11:48
요즘 가장 기다려지는 시간은 월·화요일 밤 10시입니다. '선덕여왕' 방송하는 시간이죠. 요즘엔 특별히 기대하고 보게 되는 드라마가 없어서인지 '선덕여왕'을 기다려 챙겨보게 되고 있습니다. 14일부터 '아이리스'가 시작하는데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월화수목 밤 10시가 연속해서 기다려질 지 어떨지요.

'선덕여왕'의 장점은 매주 새로운 이벤트를 만들어낸다는 점입니다. 전체적으로 큰 흐름을 지닌 전개를 이어가면서도 매주 한가지씩 관심을 고조시키는 주제로 다음주로 관심을 이어가게 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엔 귀족들의 매점매석을 통쾌하게 분쇄하는 덕만의 기지가 특별 이벤트였습니다. 말미에 덕만의 여왕 등극 선언을 이번주 이벤트로 넘겨둔 분위기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지난 주 덕만은 왕위를 이을 부마를 추천하는 어전회의에서 "혼인을 않겠다. 내 스스로 부군이 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 동안 마음 속에 품어뒀던 큰 뜻을 마침내 정식으로 선포한 순간이었습니다. 왕실과 조정은 패닉 상태에 접어든 분위기였습니다. 미생 하종 등 미실파 인사들은 물론이고, 김춘추 염종 등 파벌이 모호한 인사들도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심지어 덕만파의 비담도 부정적인 태도였습니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반응은 칠숙의 반응이었죠. 피식 웃음을 지었습니다. 기가 막히다는 반응이면서도 뭔가 가능성이 열려있음을 암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쨌든 덕만의 여왕 등극 선언은 향후 '선덕여왕'의 전개에 핵심 화두가 됐습니다. 덕만이 신라 사회 전반의 반대를 극복하는 과정은 이번 주의 특별 이벤트가 되기도 하겠죠. 예전처럼 스피디하게 펼쳐 보일 수 있을 지도 궁금한 대목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렇다면 과연 신라 사회에서 여왕 등극 선언은 그토록 경악할 만한 일이었을까요. 이 부분은 역사에 명확하게 기록돼 있지 않았기에 드라마에서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하기 좋은 대목이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당시 정황에 비춰 추측해볼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일단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그려진 것처럼 신라 사회 전반이 기함하고 어이없다고 덕만의 웅지를 폄하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추측입니다.

우선 골품제도 아래에서 덕만의 신분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덕만은 성골입니다. 신라의 왕위는 성골만이 계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성골남진(聖骨男盡)의 상황에서 왕위 계승 최고 우선 순위는 덕만이 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용자 삽입 이미지

당시 성골의 위상은 진평왕 부부의 이름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진평왕 부부의 이름은 백정과 마야입니다. 석가모니의 아버지와 어머니 이름과 일치합니다. 당시 성골의 지위가 석가모니 수준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죠. 신라의 국가 종교가 불교임을 놓고 볼 때 성골의 지위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겁니다. 성골인 덕만의 여왕 등극은 최선은 아니더라도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게다가 신라 사회는 여성의 지위가 대단히 높았던 것으로 기록에 남아있습니다. 우선 당장 미실이라는 걸출한 여성 지도자가 신라 조정을 장악하고 있었던 점도 여성의 지위가 높았던 점을 반영하는 대목입니다. 미실은 사실상 왕보다 더 강한 권력을 지녔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다른 예를 찾아본다면. 화랑도의 전신인 원화의 수령이 여성이었던 점도 그렇고, 신라의 대표적인 문화 행사인 길쌈의 중심인물도 여성이었습니다. 건국 초기 왕비들 중에 국신으로 숭배되는 인물들도 있었습니다. 왕보다 더 높은 지위를 인정받았던 여인들이 있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 사회상에서 여왕의 탄생은 그다지 무리한 일은 아니라는 해석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은 '선덕여왕' 덕만의 여왕 등극 선언에 경악하는 신라 사회 전반의 분위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남존여비사상의 근원이 된 유교적 사고 방식을 신라 사회에 투영한 게 아닐까 여겨집니다. 그러나 당시 신라 사회에 유교 사상은 그다지 자리 잡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드라마상의 기함하는 반응은 극적 재미를 위한 장치 정도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어쨌든 덕만이 새로운 숙제를 어떻게 극복할지 흥미진진하게 펼쳐질 것으로 기대됩니다. 다만 이요원의 건강이 많이 상했다는 소식이 들려와서 안타깝네요. 종영까지 2개월 가까이 남았는데 건강 관리 잘하면서 잘 마무리하길 기원합니다.
2009/10/12 07:37 2009/10/12 07:37
'선덕여왕'이 마침내 제목에 걸맞은 국면이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선덕여왕'은 미실 고현정에 절대적으로 무게중심이 쏠려있었습니다. '선덕여왕'이라는 제목보다 '미실'이라는 제목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여겨지는 전개였죠. 최근 들어 덕만 이요원이 자아를 찾아가고 드디어 공주 신분을 되찾으려 하고 있습니다. 미실과 덕만의 본격적인 대결을 예고하고 있죠. '선덕여왕'이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전개입니다.

신라 조정의 최대 세력인 미실에 대적하려 할 때 덕만 혼자서는 불가능하겠죠. 세력 규합이 필수적인데 하나씩 하나씩 덕만의 수하로 모여들고 있습니다. 비담 김남길을 시작으로 알천 이승효, 유신 엄태웅에 이어 월야 주상욱과 복야회까지 가세했습니다. 합류 과정에 상당히 극적인 요소가 많아 흥미진진합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본격적인 '선덕여왕' 시대로 접어들면서 2차례의 하이라이트가 연달아 작렬했습니다. 덕만이 "신라의 왕이 되겠다"고 선언한 장면과 유신이 "당신은 나의 왕이십니다"라고 충성을 맹세한 장면입니다. 덕만이 일당백의 장수들을 규합해 본격적인 세력 구축의 정지작업을 마친 순간이 되겠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17일과 18일 방송된 '선덕여왕'을 보면서 강렬하게 뇌리를 자극한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삼국지입니다. 유비·관우·장비가 도원결의를 하고 제갈량·방통·조자룡·마초·황충 등 세력을 규합해 중국 통일의 꿈을 실현시켜가는 과정이 요즘 '선덕여왕'과 은근히 데자뷰 되는 듯한 인상을 받았거든요. 조금 억지스럽긴 하겠지만 캐릭터 사이의 비교도 가능할 것 같고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유신은 출중한 무예와 절개, 지략 등을 겸비한 점에서 관우와 비교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우직하고 자유분방한 비담은 장비를 연상시키는 부분이 많습니다. 관옥 같은 용모에 뛰어난 무예와 충성심의 소유자인 알천은 조자룡에 대비시킬 수 있다면. 복야회라는 세력을 이끄는 월야는 마초와 비교 가능할 것 같습니다. 물론 덕만은 유비와 비교 대상이 되겠죠. 제갈량은 누구와 비교하냐고요? 지략가 역할을 하게 될 월천 대사가 아닐까 생각되네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처럼 '선덕여왕'은 삼국지와 대비하며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방향을 틀면 새로운 재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 게임 삼국지를 대입시키면서 보는 거죠. 덕만이라는 군주를 설정해 놓고 한명 한명 중요 인물들을 끌어 모아 세력을 규합한 뒤 강적들을 무찌르는 게임 삼국지 말이죠. 덕만에게 삼국지의 주인공 군주를 대비시키면 한층 몰입해서 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도 그럴 것이 삼국지는 10여년에 걸쳐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밤잠을 잊고 흠뻑 빠져들게 만든 게임입니다. 90년대 초반 삼국지1이 나오고 삼국지2로 이어진 다음에 마니아가 속출했고 천하통일의 꿈을 이루기 위해 몇일씩 날밤을 지새도록 만들었습니다.

삼국지3에 이르러서는 세련된 그래픽과 다양한 스킬들이 가미하면서 한층 몰입하게 만들었죠. 삼국지2에 익숙해져서 하루만에 통일을 해내던 사람들도 삼국지3에서는 1주일씩 잠을 못자며 낑낑댄 끝에야 겨우 통일을 이뤄낼 수 있었죠. 90년대 중반 눈이 충혈된 사람 중에 절반은 삼국지 때문이라는 농담도 설득력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게임을 즐기기 위해 소설 삼국지를 읽는 사람들도 속출했다고 합니다. 90년대 초반에서 후반에 이르기까지 소설 삼국지의 판매가 급성장한 점은 게임 삼국지 효과라는 분석이 정설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습니다.

저도 삼국지 게임을 무지하게 즐겼습니다. 대학 3학년 무렵에 삼국지2를 접하고 밤샘 게임을 하느라 수업을 빼먹은 적도 비일비재했습니다. 삼국지3에 이르러서는 머리를 싸매야했죠.이후 버전에는 도전조차 못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런 기억을 떠올리며 '선덕여왕'을 보니 더욱 많은 재미를 만끽하고 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소설도 저자별로 다 구입해서 1~2번씩 읽었습니다. 다 합치면 삼국지를 10번 정도 독파한 것 같네요. 옛말에 '삼국지를 안 읽은 사람은 상대하지 말고, 7번 이상 읽은 사람 역시 상대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7번 이상 읽은 사람을 경계할 정도의 대단한 인물이라는 의미죠. 저도 7번 이상 읽었지만 그 정도가 되진 않았네요. 잘못된 말이거나, 아니면 제가 허당으로 읽은 모양이네요.
2009/08/19 11:31 2009/08/19 11:31
현재 안방극장은 '선덕여왕' 천하입니다. '선덕여왕'은 30%대 중반의 시청률로 월화극 시간대를 확고하게 장악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전시간대를 통틀어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최고 인기 드라마입니다. 상승세 또한 거침없습니다. 현재의 상승세라면 40% 돌파는 시간 문제일 것 같습니다. 올해 최고 기록인 '찬란한 유산'을 넘어서는 것 역시 시간 문제죠.

당대 어떤 드라마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 인기 드라마에겐 명예로운 칭호가 주어지곤 합니다. '국민 드라마'라는 칭호죠. 그렇다면 '선덕여왕'에도 국민 드라마라는 칭호가 주어질 수 있을까요. 치솟는 시청률과 인기를 감안하면 충분한 조건을 갖췄다고 여겨지는 상황인데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러나 '선덕여왕'은 국민 드라마라는 칭호를 얻기엔 부족함이 있는 작품입니다. 국민 드라마의 필수적인 선행 조건인 국민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운 몇가지 걸림돌이 있거든요. 드라마가 성공하려면 재미가 최우선입니다. 그러나 국민 드라마급의 성공을 하려면 단순한 재미 이상의 공감과 감동이 필요합니다. '선덕여왕'은 그 점에 있어서는 아직 부족해 보입니다.

우선 '선덕여왕'은 자극적인 재미와 감동을 추구합니다. 쥐어짜내려 한다고 하면 적합한 표현일지 모르겠네요. 천명공주의 죽음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힐만 할 겁니다. 상황 전개상 천명공주의 죽음이 필연적이라면 최고의 카드를 적절하게 활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전개 과정을 놓고 볼 때 천명공주는 반드시 죽어야 할 필요까진 없었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미실 세력과 황실의 대립 구도에서 뭔가 강력한 한방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천명공주의 죽음은 확실히 강력한 한방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굳이 죽지 않더라도 대결 구도의 국면 전환용 카드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허망한 죽음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물며 실제 역사상으로 천명공주는 그렇게 비명횡사하지 않습니다.

애매모호한 멜로 구도 또한 '선덕여왕'이 국민 드라마로 올라서는데 있어 장벽이 되는 부분입니다. 탄탄하게 짜여진 멜로 라인은 재미와 감동 '두마리 토끼'를 잡도록 하는 중요 요소입니다. 그러나 '선덕여왕'은 멜로에 있어서는 허술하기 그지 없습니다. 핵심 멜로 라인은 감동적이긴커녕 불편하기만 하거든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말도 안되는 멜로 구도를 밀어붙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천명공주와 김유신, 그리고 김유신과 덕만의 엇갈리는 애정 관계에 대한 이야기죠. 천명공주와 김유신의 국혼이 결정되고, 김유신이 덕만에게 사랑의 도피를 하자고 제안하는 장면 등은 제대로 어이상실이거든요.

정상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역사적으로 천명공주와 김유신의 국혼은 존재하지 않는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김유신과 덕만의 애정 관계 또한 역사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모두 안되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 제작진이 밀어붙이며 감동을 짜내려고 한다면 불편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거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김유신이 덕만에게 애절하게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이나, 천명공주가 김유신에 대한 마음을 접고 동생에게 보내주는 장면은 역사를 배제한다면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러나 실존한 역사를 바탕에 놓고 보면 감동은커녕 당혹스럽고 불편한 장면이 됩니다. 그런 장면이 지속되면 멜로 구도에 대해서는 거부감마저 느끼게 됩니다.

어떤 의미에서 이 모든 불편함의 근원은 '선덕여왕'의 본질이 사극이라는 점에서 비롯되는 것일 겁니다. 사극은 실존했던 역사에 바탕을 둬야 하는데 이를 너무 무시한채 흥미에만 집중한다면 폭넓은 공감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구태의연한 표현에 따르자면 역사 왜곡의 불편함이죠. 재미있다는 이유로 용인해선 곤란한 부분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사극은 드라마이기 때문에 역사에 완전히 함몰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역사적 정보는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부분입니다. '선덕여왕'은 천명공주 덕만공주 김유신 등 역사적으로 중요 인물인 동시에 작품의 주인공들의 역사적 배경을 깡그리 무시해버린 오류를 범하고 있기에 국민적인 공감을 얻기에 부족한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미실은 역사상 기록이 애매모호한 인물입니다. 화랑세기 정도에만 남아있죠. 그렇기에 작가적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해 극적으로 재미있게 그려도 누가 뭐라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덕만 천명 김유신 등 사료에 기록이 남아있는 인물의 경우에는 역사를 지켜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게 조상에 대한 도리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하고요.
 
사극 중에 국민 드라마의 칭호를 얻은 작품은 제법 있습니다. '허준' '대장금'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 되겠죠. 이들 작품은 역사적으로 중요 인물의 역사상의 정보는 지켰습니다. 기록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했죠. 덕분에 역사 왜곡에 대한 지적은 없었습니다. 당연히 감동과 공감도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었습니다.

'허준'과 '대장금'을 연출한 이병훈 PD께 '선덕여왕'에 대해 질문을 드렸습니다. 역사적 정보를 너무 무시하지 않나에 대한 질문이었죠. 이병훈 PD께서도 "재미는 있지만 조금 심한 것 같다. 최소한 기록에 남아있는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정확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지적하시더군요. 
2009/08/12 07:37 2009/08/12 0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