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화원'은 정말 느린 드라마입니다.
영상미는 역대 최고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돋보이지만,
영상에 너무 집중한 탓인지 정작 스토리 전개는 답답할 정도로 더딥니다.
연출자 장태유 PD는 '디테일에 집중하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확실히 디테일은 돋보입니다. 장태유 PD는 '디테일 장'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습니다.
나쁘게 말하면 질질 끈다고 할 수 있고, 좋게 말한다면 섬세하다고 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바람의 화원'의 더딘 전개는 시청자들에게 그다지 환영 받지 못한 것 같습니다.
완성도에 대한 호평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은 다소 부진한 편이었으니까요.

20일 방영된 '바람의 화원'은 더딘 전개의 아쉬움을 상당히 떨쳐냈습니다.
영상 자체야 전반적으로 느린 템포를 유지했지만,
다양한 사건들이 중첩되는 가운데 속도감 있게 흘러갔습니다.
무엇보다 돋보인 장면은 신윤복이 정향에게 여성성을 고백한 장면이었습니다.
물론 그 장면은 매우 느렸습니다. 동료들 중엔 보다가 졸았다는 이도 있더군요.
그렇지만 느린 와중에 팽팽한 긴장감은 상당한 품격이 느껴졌습니다.
여자가 여자에게 '그동안 여자인 척해서 미안하다'라고 용서를 구하고,
'여자임에도 여자인 당신을 마음에 둬서 미안하다'라고 사죄하는 이 장면은
'바람의 화원'이 그동안 동성애 코드를 분명히 지니고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성애 코드는 보통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요소로 활용되곤 하는데,
'바람의 화원'에선 안타까운 감정이 스물스물 흘러나오며 애잔하게 표현됐습니다.
문근영의 연기는 말할 것도 없고, 신인 문채원의 연기도 훌륭했습니다.
'닷냥라인'이 작별을 고하는 점에서 한층 진한 아쉬움을 남긴 명장면이었습니다.

신윤복이 여성성을 고백하는 장면에 앞서 있었던 김홍도와 신윤복의 입맞춤신도 괜찮았습니다.
조금 작위적인 느낌을 남기기도 했지만 여성성의 고백을 암시하는 역할을 했고
또한 앞으로 '바람의 화원'의 애정구도가 '닷냥라인'에서 '사제커플'로 이동한다는 것을
약간은 애매한 갈등이 흐르는 분위기 속에서 보여줬습니다.
20일 방송분에서 '바람의 화원'은 느린 전개 속에서도,
충분히 많은 이야기를 균형감 있게 담아낼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신윤복의 여성성 고백이라는 핵심 이야기와 김홍도와 신윤복의 묘한 감정의 흐름 외에도
사도세자 예진의 완성으로 인해 조정에 불어닥칠 개혁에 대한 예고와
얼굴 없는 초상화로 인해 밝혀질 10년전 살인 사건의 미스터리에 대한 실마리까지
완만한 가운데 묵직한 박진감이 넘쳤습니다.
이제 '바람의 화원'은 종영까지 2주 남짓 남았습니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많은 점을 감안하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시간입니다.
20일 방영분은 짧은 시간에도 많은 이야기를 가치있게 다룰 수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남은 기간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수 있는 기대를 남겼습니다.
유종의 미가 기대됩니다.
사족으로,
지난 주말에 문근영이 숨은 선행천사였다는 사실이 공개됐습니다.
뜨거운 화제가 됐고, 한 얼빠진 인간의 헛소리로 더 큰 화제가 됐습니다.
'바람의 화원' 시청률 상승에 호재가 될 것으로 내심 예상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드라마는 역시 드라마일 뿐이라는 진리를 잊었나 봅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