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왕기춘을 처음 본 것은 2006년 11월, 도하아시안게임 개막을 며칠 남겨두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훈련 파트너'를 주제로 태릉을 취재하던 중 안병근 유도대표팀 감독에게 당시 18세였던 왕기춘을 추천 받았습니다
그는 이원희의 훈련 파트너였죠
"원희 형한테 많이 배웠다. 태릉 처음 올 땐 설레고 떨렸는데, 막상 와보니까 너무 힘들다"던 그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눈빛이 살아 있어 기억에 남았더랬습니다
2007년 7월, 왕기춘을 정식으로 다시 인터뷰했습니다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태극마크를 달고 있던 왕기춘은 태릉의 훈련에 무척 지친 모습이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그런데, 오후 훈련 빠지게 인터뷰 좀 오래 하면 안되냐"고 하던 게 기억납니다
그 때도 왕기춘은 여전히 살아있는 눈빛으로 하나하나 진지하게 답을 했습니다
2007년 12월, 태릉선수촌 새벽훈련을 취재하러 간 적이 있습니다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가까이 되는 겨울 새벽녘, 한 무리의 선수들이 2시간이 넘도록 말 그대로 운동작을 '벅벅 기어다니는' 모습을 봤습니다
그들이 내뿜는 입김은 한겨울에 안개가 낀 것처럼 뜨겁게 피어오르더군요
운동장 한쪽 구석에는 추위가 무색하게 선수들이 먹을 얼음물이 잔뜩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들은 대한민국 유도 대표팀이었습니다
그 안에는 왕기춘 선수도 있었습니다. 대표 최종선발전을 하기 전이었던 그 때, 이원희 선수는 부상 재활 중이었고 왕기춘 선수는 그렇게 태릉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2008년 8월, 베이징의 체감 온도는 섭씨 35도에 이르는 찜통입니다
이 곳에서 왕기춘은 눈이 부어오르도록 펑펑 울었습니다

결승까지 힘겹게 올라갔지만 허무하게 상대 선수 기술에 걸려 금메달을 놓쳐버렸기 때문이죠
금메달 유망주였는데,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해 마음 아팠던걸까요
아마도 이원희 때문에 생긴 '마음의 빚'이 그를 더 괴롭혔을지 모릅니다
대표선발전에서 '한국 유도의 간판' 이원희를 누르고 베이징올림픽 대표로 뽑힌 왕기춘,
그는 어쩌면 '이원희가 나갔어야 했는데, 네가 나가서 은메달 밖에 못 땄다'는 말을 들을까봐 서러웠는지 모릅니다
왕기춘은 3회전 경기 도중 갈비뼈가 부러졌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아파도 참고 했다. 이겨야 하니까, 부러진다고 죽지는 않으니까 계속 참고했는데..."
부러진다고 죽지는 않으니까...라뇨
그리고 베이징올림픽 남자 유도 73kg급 대표 왕기춘은 '이원희 대신' 나간 게 아니라 '이원희를 꺾고' 나갔습니다
왕기춘 선수, 은메달을 땄다고 패배자는 아닙니다



댓글을 달아 주세요
갈비뼈에 금만 가도 숨쉬기조차 힘들다는데 그 고통을 참고 은메달 딴것만도 어딥니까.. 고개 숙이지말고 울지도 말고 은메달을 자축하며 즐기세요~
이원희 대신이 아니라 이원희를 꺾고 란 말이 완전 가슴에 와닿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