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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리조나 방울뱀
    13년 기억의 회상, 메이저리그에서 뛰었던 해외파들의 과거 이야기

    봉중근 국내에서 뛰지 못할 뻔한 사연

    2009/07/21 09:13

     올 시즌 팀 타선의 도운을 받지 못해 불운을 겪고 있는 LG 봉중근. 그를 보면 1997년 큰 사건이 생각난다. 사람이 죽고 사는 문제가 걸린 큰 사건이었고 봉중근이 국내에서 선수생활을 할 수 없을 수도 있었던 사건이었다..
     
    신일고 2학년 때 미국행

    잘 알다시피 봉중근은 신일고등학교 2학년 때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해 8월 캐나다의 작은 도시 몽튼에서 열린 세계 청소년 야구 선수권대회 최우수 선수상을 받는 등 발군의 실력을 보이자 애틀랜타가 러브콜을 보내기 시작했다. 애틀랜타측은 국내에 연락방법이 없자 재미동포 이득정씨를 내새워 봉중근과 연락을 취했다. 그리고 그해 10월 폴 슈나이더 부사장과 국제담당 스카우트 총책임자인 빌 클라크를 전국체전이 열리던 진해까지 찾아왔다. 
     체전이 끝나자 마자 봉중근과 애틀랜타 관계자는 남산 타워 호텔에서 몰래 만나 계약금 90만 달러에 합의하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당시 고교 2학년이었기에 메이저리그와 계약할수 없는 상태였지만 애틀랜타는 학교는 배재한채 몰래한 것이었기에 문제가 많았다. 그래서 양측은 계약을 비밀로 하고 일단 미국으로 건너간 후, 공부를 마친 후 발표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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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중근측에 거액 준 학부모 자살 소동

     그러나 세상에는 비밀은 없는 법. 계약건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신일고는 발칵 뒤집어졌다. 당시 한동화 감독도 뒤통수를 맞았다며 절대로 봉중근을 보낼 수 없다고 버텼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데 있었다. 복잡한 금전 거래가 있었다. 원래 고교 우수선수는 대학진학 때 학교측으로 부터 장학금 명목으로 돈을 받는다. 말은 장학금이지만 돈은 해당 학교측이 주는 것이 아니라 봉중근과 함께 진학할 예정인 선수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야구인들은 이것을 다케우씨라고 한다. 쉽게 말해 끼워팔기다. 부정행위이다. 실제로 대학 감독들 중에 구속된 감독들이 많은데 모두다 이 다케우씨로 따라오는 선수들간의 금전문제 때문이다. 한때는 연고대로 갈 경우, 억대의 돈이 들어가야 한다는 소문도 있었다. 
     봉중근은 워낙 실력이 뛰어나 1학년때 벌써 서울 유명 대학에 진학하기로 가계약을 맺어놓았다. 그리고 신일고 선수 한명과 같이 가는 조건으로 장학금 명목으로 엄청난 금액을 받았다. 생각지도 않던 미국행이 결정되면서 해당학교가 발칵 뒤집어 진 것은 이때문이었다.
     당시 돈을 준 선수의 어머니는 "남편 유언이 아들의 대학 진학이었다.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겟다. 사정기관에 모든 것을 밝히겠다"고 항의하며 자살하겠다고 소리쳤다. 사정기관에 모두 털어 놓을 경우, 고교 대학 감독뿐아니라 선수, 학부모 등도 다칠 수 있는 사건이었다. 실제로 최희섭도 고려대로 갈 때 거액을 받았다. 결국 이것이 문제가 돼 당시 해당 감독은 구속이 되기도 했다.

    신일고 졸업못했다면 국내 복귀 불가능

     발등에 불이 떨어진 봉중근측과 신일고 및 대학 관계자들이 모두 발벗고 나섰다. 돈을 받은 봉중근측이 다시 돌려주는 조건으로 해당 선수의 어머니를 설득, 겨우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이 돈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다면 아마 봉중근이 미국으로 갈 수도 없었고 갔다고 해도 신일고를 졸업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는 국내 프로야구로 돌아올 수도 없었다. 국내 프로야구 규정은 한국에서 고교를 졸업한 선수에 한해 국내에서 뛸 수 있게 되어 있다. 고교 중퇴 학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편 봉중근은 신일고 2학년 때 미국으로 가서 애틀랜타의 기독교 관련 한 고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3학년 겨울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서 신일고에 슬쩍 복학했고 신일고는 졸업장을 주었다. 그래서 봉중근은 신일고 중퇴가 아니라 신일고 졸업생이 됐다.

    2009/07/21 09:13 2009/07/21 09:13
    Category & Tag : [추억의 부스러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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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omment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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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7/21 15:30 둔필승총 E / R
      그런 깊은 사연이 있었군요.
    3. Name : Password : Blo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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