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받고 병과 맞서싸우는 주체를 중심에 놓기 위해서는 병력을 한 단계 더 파고들어 하나의 서사,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에만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뿐만 아니라 '누가?'를 알게 된다. 병과 씨름하고 의사와 마주하는 살아 있는 인간, 현실적인 환자 개인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고차원적인 신경학과 심리학 연구에서는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대단히 중시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프롤로그)
136
"절단 환자의 경우 환각이 대단히 중요하다. 다리가 의족일 경우, 소위 신체 이미지 즉 환각이 의족 부분과 정확하게 들어맞아 일체감을 느끼지 못하면 절대로 만족스럽게 걸을 수 없다"
이런 이유로 환각이 사라지면 오히려 불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환각을 불러일으키거나 되살리는 것이 긴급한 과제가 된다.
140
환각 증상을 보이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환각통' 즉 환각에 의한 통증에 시달린다. 이런 통증은 때로 아주 기묘한 성질을 띠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일반적인 통증과 다름없다. 절단 이전에 그 부위에 있던 통증이 절단 후에도 그대로 남아있거나 그 부위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거기에 실제로 생겼을 그런 통증이다. ... 발을 절단한 후에 발톱이 살 속으로 파고드는 듯한 불쾌한 통증이 느껴진다는 환자도 있었다.
(매들린의 손)
160
언어상실증 환자들이 그들의 내면에서 무언가를 잃은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 대신에 무언가가 나타나고, 그것이 점점 힘을 늘려가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적어도 감정을 넣어 한 말에 대해서는 단 하나의 단어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에조차 그 의미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 좀더 원시적이고 근원적인 것으로의 역행이라고 표현하는 쪽이 더욱 적절할 것이다. 잭슨은 언어상실증 환자를 개에 비유했던 것이다. 그가 이러한 비유를 생각해냈을 때 머릿속에 떠올린 것은 목소리의 억양과 감정을 파악하는 언어상실증환자의 뛰어난 감수성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무력한 언어이행능력이었을 것이다. 언어상실증 환자는 '필링 톤 (feeling tone)'을 감지하는 능력을 상실하지 않으며, 때로는 보통 사람보다도 재빠르게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포함해서 언어상실증 환자를 접하는 사람들이 자주 느끼는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거짓말을 해도 금방 들통나고 만다.
... 언어를 사용해서 거짓말을 하기는 쉽다. 그러나 표정을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언어상실증 환자들은 그 표정을 간파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연설)
264
중국인 신경과 의사인 디주에 왕에 따르면, 쇼스타코비치의 비밀이란 그의 왼쪽 뇌실 관자뿔 부분에 금속 파편인 탄환 부스러기가 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몹시 꺼렸던 것 같다.
파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 반드시 음악이 들려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선율이 머릿속에 가득 차 그것을 작곡에 이용한 듯하다.
뢴트겐 검사 결과 쇼스타코비치의 머리가 움직이면 파편이 움직여서 관자엽의 음악 영역을 압박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따라서 몸을 기울이면 선율이 무한하게 흘렀고, 천재 쇼스타코비치는 그것을 작곡에 이용할 수 있었다. (회상)
322
따라서 일단 뇌에 손상을 입으면 인간은 고상한 영역으로부터 인간적이라고조차 말할 수 없는 차원 낮은 '구체성'의 수렁으로 내동댕이쳐진다고 생각했다. 만일 인간이 '추상적. 범주적인 태도'(골드스타인) 혹은 '명제적인 사고력'(휴링스 잭슨)을 잃으면 도리없이 인간 이하의 존재가 되며, 중요성도 없고 관심의 대상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반대라고 생각한다. 구체성이야말로 기본이다. 현실을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것으로, 개인적이며 의미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이 '구체성'이다. 만일 '구체성'을 상실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나오는 P 선생의 경우가 그렇다. 그는 골드스타인의 사고와는 정반대로 구체성에서 전락해서 추상성으로 빠진 것이다.(단순함의 세계)
'밑줄 그은 책'에 해당되는 글 4건
- 2008/09/07 올리버 색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 2008/09/05 나희덕, '반 통의 물'
- 2008/09/05 내 글을 보지 마시오-조반니노 과레스키, '까칠한 가족'
- 2008/06/25 고달픈 30대를 위로해주는 심리학-김혜남, 서른 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3)
13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삶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보는 어떤 시기가 있는 것처럼, 하루라는 시간 중에서도 유난히 민감해지고 근원적인 상태가 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다. ...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어스름 속에서 세상이라는 거대한 바퀴가 갑자기 멈춘 것 같은 정적이 찾아오는 시간. (일몰무렵)
26
그러나 그런 생존의 고충이 내게도 아주 낯선 것만은 아니다. 나도 밥을 벌기 위해 원고를 써서 팔았고, 빚을 갚기 위해 쓰고 싶지 않은 글까지 써야 할 때가 적지 않았다. 그러느니 차라리 길에서 채소를 팔거나 식당에서 슬리퍼가 닳도록 일하는 게 정직한 노릇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무슨 일이든 그것이 생업이 되는 한 감수해야 할 고통이란 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자기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자의식 또한 삶을 부자유스럽게 만드는 일면이 있다. 글쓰는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나를 더 열린 사람으로 만들기보다는 갈수록 다른 삶의 가능성이나 근접성을 닫아버리는 쪽으로 작용하는 걸 느낀다. 그것은 언뜻 자발적 선택처럼 보이지만, 대부분의 경우 보이지 않는 어떤 힘과 질서에 의해 배분된 결과이기도 하다는 사실에 문득 두려워지기도 한다. 그걸 알면서도 사람들은 주어진 삶에 너무도 쉽게 동의하고 순응한다. 그리고 단 하루의 시간도 거기서 빼내지 못하는 것이다.
28
몸에 피가 돌지 않는 것처럼 문득문득 마음 한쪽이 굳어져가는 걸 느끼면서, 절뚝거리면서, 그러면서도 남은 반 통의 물을 살아 있는 것들에게 쏟아붓고 싶은 마음. 그런 게 아니었을까. (반 통의 물)
34
그러나 점자 찍는 일이 아무리 익숙해져도 점자를 손으로 읽는 일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눈을 뜨고는 점자를 술술 읽을 수 있지만, 막상 눈을 감고 점자 위에 손을 얹으면 내 손끝은 그렇게 무디고 어두울 수가 없었다.
그러면서 나는 절감했다. 빛에 익숙해진 눈으로 누군가의 어둠을 이해한다는 일이 얼마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를. (점자들 속으로)
126
"새들이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을 갖지 않았더라도 그들의 보금자리를 만들었을까?" 나는 바슐라르의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중얼거려본다.
'우리가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을 갖지 않았더라도 시를 계속 써올 수 있었을까.' 그렇다. 저 새가 집을 짓는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일이, 또 시를 쓰는 일이 결코 헛되지만은 않다는 것을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이다. 세계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마저 위협받는 시대에 시 쓰는 일의 외로움을 함께 견뎌줄 누군가가 그리웠던 것이다.
128
원래 시인의 자리는 주변부니까. 주변부야말로 세상을 눈여겨보기 좋은 자리이고, 이룰 수 없는 꿈을 얼마든지, 자유롭게, 그리고 끝까지 꿀 수 있는 자리니까.
.... 검은 나무등걸에서 연초록잎이 돋아나고 있다. 나무는 늙었어도 나무가 내어놓은 잎은 해마다 새 잎이다.
(오래된 내복처럼, 우리는)
159
사실 20세기 연표 속에 빼곡하게 들은 내용이란 대부분 전쟁, 혁명, 굵직한 정치적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사건들 역시 누군가에 의해 가장 중요한 일로 선택되면서 일정한 역사적 가공을 거쳤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건들이 오늘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과 얼마만큼이나 관련되어 있는가. 연표에 요약된 그 숱한 시간들 역시 평범한 하루하루의 연속이었을 것인데, 이 연표를 만듦으로써 그 하루하루의 의미는 대체 얼마만큼이나 설명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의문들로 나는 그 설문에 응답할 수 없었다.
160
하지만 삶이란 과연 그렇게 명료하게 정리되거나 요약될 수 있는 것일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기준이 그리도 선명하게 구분될 수 있는 것일까. .... 그 화려한 연표나 명단과는 상관없이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일과 고통, 애환, 신념 들이야말로 시간 속에 갇혀 있으면서 그 시간과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주인들이 아닌가.
그들에게는 한 세기가 바뀐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으며, 역사라는 거창한 말을 들이댈 만한 그 무엇을 찾기도 어렵다. 그러나 그들의 사소해 보이는 하루 속에는 모든 것이 다 들어 있기도 하다. (연표화할 수 없는 향기)
183
열여덟살 때 나는 선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서른세살의 나는 기도한다. 나에게 일용할 위험을 주십사고. 두려워해야 할 것은 '위험함'이 아니라 그 위험이 얼마나 창조적인가 파괴적인가 하는 것이며, 위험함을 건너지 않고서는 진실로 겸손해질 수 없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86
짜라투스트라는 진리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발견되기를 기다리는 어떤 것이 아니며, 당신이 복종하거나 머뭇거리는 어떤 것도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의도하는 어떤 것이다." (니체에 관한 오해)
.................
어떤 것이 중요한 것인지 모르는 아이가 있었어요.
모두가 "그렇다"고 하는 기준이 그를 설득시키지 못할 때
스스로가 납득할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여야 할 때
그 아이는 문득 낯선 표정이 되곤 했답니다.
오늘 일어난 수많은 사건 사고. 그것은 세상을 얼마나 보여주는가?
오늘 정해진 중요한 정책들. 그것은 나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키는가?
'거시적인 의미에서' 그것들은 분명 중요한 일들이겠죠.
하지만 그 아이는 가끔 질문해 보았어요.
"삶이란 구체적인 것이 아닐까? 오늘 실연당한 누군가의 눈물. 오늘따라 깊은 피로가 몰려오는 것을 느끼는 누군가의 눈꺼풀. 한 번도 본 적 없던 노을빛. 여름에서 가을로 바뀔 때 물기 있던 풀잎들이 말라가며 버석버석거리는 소리와 그 가을냄새. 무엇이 진짜일까?"
그래요. 가을이 깊어가고 있는 거죠.
나의 마음이 충분히 예민할 수 있기를. 어떤 것에도 상처받지 않게 해주십사... 가 아니라 상처 받는 법을 잊지 않게 해주십사... 하고 누군가에게 가만히 빌어보는 거죠.
세상에 대한 본능적인 믿음은
세상에 대한 본능적인 적대감보다
더 깊은. 그런 것.
참, 나희덕은 정말 멋진 시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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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6
"하지만 그 책은 당신이 썼어요, 조반니노. 자식들은 아버지가 쓴 책을 절대로 읽지 않아야 해요. 화학이나 물리학 같은 과학 책이라면 모를까, 문학은 절대로 안 돼요. 당신이 쓴 책은 특히 그래요. 당신이 진지하게 말하는지 아니면 농담을 하는지 알 수 없고, 진짜 사실을 이야기하는지 아니면 꾸며 낸 이야기를 하는지도 알 수 없어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할지 누가 알겠어요?"
"마음대로 해석하라지!"
(중략)
불을 끄고 누웠지만 내 두뇌는 계속 작동했다. 그것은 좋은 일이 아니었다.
(중략)
알베르티노는 말했다.
"대충 서둘러서 썼더군요."
그가 말한 것은 그것이 전부였다.
가정에서, 아버지는 갑자기 집 안에 이방인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중략)
아버지는 다른 눈이, 이방인의 눈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 시선의 차가움을 깨닫는다. 자신이 관찰당하고 있음을 느끼고, 자신의 모든 행동이 가차 없이 평가된다는 것을 안다.
-'이방인' 중
p.267
"그러니까 네 아빠는 직업이 없는 불쌍한 사람에 불과하구나!"
파시오나리아는 별로 놀라지 않는 표정이었다.
"사람들에게 필요한 일을 할 때 직업이라고 말해요. 옷이 필요할 때는 재봉사를 부르고, 약이 필요할 때는 의사를 부르고, 식탁을 만들어야 할 때는 목수를 불러요. 하지만 슬프거나 웃기는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작가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나는 고함을 질렀다.
"하지만 너는 네 책과 잡지의 이야기들을 읽잖아!"
"그건 상관없어요. 책을 읽지 않는 아이들도 있어요. 그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요. 하지만 어떤 아이의 신발이 찢어졌을 때 고쳐 줄 사람이 없으면 맨발로 다녀야 해요. 또 어떤 사람이 법원에 가야 하는데 변호사가 없으면 감옥에 가야 해요."
-'아버지의 직업' 중
이토록 까칠한 가족, 이만큼 솔직한 가족이 있을까?
어린 나이에 지나치게 조숙한 딸과 종종 몽상에 잠겨 우울한 기분이 되곤 하는 아내, 그리고 무뚝뚝한 아들.
명랑하면서도 허를 찌르는 구석이 있다. 아무렇지 않게...
특히 나를 사로잡은 건 글을 끼적인다는 사람의 자의식이었다.
...........................
내 자식으로 하여금 나의 글을 읽지 말게 하시오.
내 글을 봐서는 안 되오.
왜...?
내 글은 나와 같은가, 아니면 내 글은 나와 전혀 상관 없는가?
어느 정도는 비슷하지만 100% 상관 있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 라고 변명하고 싶다.
내 글 안에서 나를 아는 사람들이 나에 관한 상상을 펼칠까봐 나는 두렵다.
야시꾸리하거나 시시껄렁한 칼럼을 쓰는 작가들이 왜 필명을 사용하느냐고?
그건 그들의 사생활 때문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둘러싼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 때문이다.
글로 포장된 것들은 묘하게 진실한 느낌을 준다.
글을 읽는 순간, 사람들은 글과 작가를 동일시하기 시작한다. 그건 얼마나 부담스러운 일인가.
본인이야 뭐 참을만하다 해도, 바로 옆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나의 글 때문에 괜한 소리를 듣고 다닌다면 그건 어떤 느낌일까?
.........................
또 하나.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을 쓴다는 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다고 강변하고 싶다.
당신들의 즐거운 오락. 우리들의 즐거운 이야깃거리.
있어야 할 것들만 존재한다면 세상이 팍팍해지지 않았겠냐고, 변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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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돌볼 마음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해서, 마음은 알아서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이 책은 정신건강의 척도라는 '일'과 '사랑'을 중심으로 심리학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러니까, 분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게 목적인, 그런 책이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 '정상적인' 인간은 없다고. 아마도.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겠지.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뜨끔뜨끔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여전히 인생은 뜨겁다는 것.
산다는 건 언제나 현재진행형.
인생이란 건, 관조하는 게 아니라 또 한번 뛰어들어서 뜨겁게 살아내는 거다.
두렵지만 한번 더 시도해보고,
상처받는 게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고 싶은 유혹에도
다시 사람을 믿고, 세상을 향한 막연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
지나간 일에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면 이제 반성할 시간은 끝났다.
소중하게 받아든 오늘이라는 시간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드는 일만 남았다.

p.95
이처럼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마음속에서 곪게 되고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지 터져 나와 우리를 괴롭힌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가 '미해결된 경험'으로 남아 현재를 좀먹는 것이다. ... 그래서 상처 입은 그 시간에 멈춘 채로 발달조차 멈추어 버린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다.
... 어떤 사람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 계속해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아이가 성장하고 싶어서 내는 소리임을 알아차리고 그 아이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게 해주고, 어디가 아팠는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 주어야 한다.
... 발목을 붙잡고 있던 과거에서 풀려나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느끼며, 현재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109
어른이 된다는 것에는 과거와의 이별이란 슬픔이 내포되어 있다. 새로운 출발은 항상 과거에 친숙했던 것들과의 이별 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p.117
"넌 너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면 나한테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거야."
... 그러므로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친밀감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상대와 지속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자신의 못난 모습만 도드라지게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 또한 그만큼의 혹은 더한 고통이나 슬픔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p.193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로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p.225
지천명의 나이가 되고 보니 조금은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랑에 빠지기는 쉬워도 사랑에 머무르기는 정말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랑에 머무는 단계'는 현실 속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며 따뜻함과 부드러움 속에 사는 것이다. 또한 행복하고 편안한 가운데 서로의 존재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사랑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다.
... 사랑을 시작한 이상, 그 사랑을 이어 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을 믿고, 나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 능동적으로 그 사랑을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라쉬 교수가 말한 '차가운 세상에 있는 천국'을 만들 수 있게 된다.
- 김혜남,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중에서....

킴쏭 2009/08/26 10:58 # M/D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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