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젤리피쉬의 소리 없는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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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사막에서 육 년을 있었다. 그리고 중동에서 돌아오자마자 백수가 되었다. 아버지는 백수가 되기 위해 그토록 뜨겁고 지루한 사막을 묵묵히 건너온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백수로 지내는 동안에도 식빵과 계란 프라이로 허기와 막막함을 채우곤 했다. ...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베풀 수 있었던 것은 소금과 설탕을 뿌린 한 장의 식빵! 식빵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얘야. 네가 방금 말이다. 아버지, 하고 부르지 않았냐......?"
 "......"
 "아버지, 하고 부르지 않았냐......?"
 자식들은 한결같이 고개를 저었다.


 아버지가 없는 방. 방 한가득 차오르는 본드, 본드냄새. 그건, 어머니가 부업으로 혁띠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 본드, 본드 냄새.
 중동에 나갔던 아버지는 돌아오지만 그가 가지고 온 건 삶의 푸릇푸릇한 향이 아니라 사막의 모래였다.
 문을 아무리 꼭 닫아도 어디든 들러붙어 숨막히게 가족들을 조이는 그 모래는 쓸쓸하다고 표현하기에는 너무 직접적이고 구체적이다.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줄 수 있는 건
 텁텁하게 소금과 설탕이 범벅된 한 장의 식빵,
 내지는 이삿짐보다 모래가 먼저 더 쌓여버리는 트럭이었다.
 
 누가 내 아버지를 이렇게 만들었나? 누가 내 아비를...?

 그 시대가 그랬다거나
 세월이라거나
 이런 답변은 너무 무책임하지 않은가.

 다만, 아이들은 부모에게 연민을 느끼기 시작하면서부터 떠밀리듯 어른이 된다.
 그러면서 얼마간 부모를 닮아간다.
 
 마치 소설 속 아비의 아들이 결국 아비의 트럭 운전대를 잡은 것처럼.

2008/06/30 16:15 2008/06/30 16:15
밑줄 그은 소설 2008/06/30 16:15 by lyc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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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돌볼 마음이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게 중요해서, 마음은 알아서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차갑게 얼어붙었던 마음이 조금씩 따뜻해진다.

 이 책은 정신건강의 척도라는 '일'과 '사랑'을 중심으로 심리학을 통해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 그러니까, 분석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사람들이 상처를 치유하고 앞으로 나가게 하는 게 목적인, 그런 책이다.

 누가 그랬던가. 세상에 '정상적인' 인간은 없다고. 아마도. 상처 하나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거겠지. 나 역시 이 책을 읽으며 뜨끔뜨끔한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느낀 점은,
 여전히 인생은 뜨겁다는 것.

 산다는 건 언제나 현재진행형.
 인생이란 건, 관조하는 게 아니라 또 한번 뛰어들어서 뜨겁게 살아내는 거다.
 두렵지만 한번 더 시도해보고,
 상처받는 게 두려워 마음의 문을 닫고 싶은 유혹에도
 다시 사람을 믿고, 세상을 향한 막연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

 지나간 일에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면 이제 반성할 시간은 끝났다.
 소중하게 받아든 오늘이라는 시간 속으로 정신없이 빠져드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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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5
 이처럼 해결하지 못한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마음속에서 곪게 되고 언젠가는 어떤 형태로든지 터져 나와 우리를 괴롭힌다. 해결되지 않은 과거가 '미해결된 경험'으로 남아 현재를 좀먹는 것이다. ... 그래서 상처 입은 그 시간에 멈춘 채로 발달조차 멈추어 버린다.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것이다.
 ... 어떤 사람도 과거의 상처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의미한다. ... 계속해서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다면 그 아이가 성장하고 싶어서 내는 소리임을 알아차리고 그 아이가 고통스러운 기억으로부터 벗어나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 아이가 마음껏 울 수 있게 해주고, 어디가 아팠는지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 주어야 한다.
 ... 발목을 붙잡고 있던 과거에서 풀려나 현재의 자신을 바라보고, 세상을 느끼며, 현재에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p.109
 어른이 된다는 것에는 과거와의 이별이란 슬픔이 내포되어 있다. 새로운 출발은 항상 과거에 친숙했던 것들과의 이별 위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p.117
 "넌 너의 약한 모습을 드러내면 나한테 버림받을까봐 두려워하는 거야."
  ... 그러므로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하지 못한 사람들은 타인과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친밀감이란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도 상대와 지속적으로 교감을 나누는 것을 말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 가까워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모두 자신의 못난 모습만 도드라지게 생각한다. 그래서 상대방 또한 그만큼의 혹은 더한 고통이나 슬픔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음을 인식하지 못한다.

p.193
 프로이트는 인간의 정신 건강을 나타내는 지표로 '일할 수 있는 능력'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꼽았다.


p.225
 지천명의 나이가 되고 보니 조금은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랑에 빠지기는 쉬워도 사랑에 머무르기는 정말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사랑에 머무는 단계'는 현실 속에서 서로의 삶을 나누며 따뜻함과 부드러움 속에 사는 것이다. 또한 행복하고 편안한 가운데 서로의 존재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 사랑은 확인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는 것이다.
 ... 사랑을 시작한 이상, 그 사랑을 이어 가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아무리 힘들어도 사랑을 믿고, 나와 사랑하는 그 사람을 믿어야 한다. ... 능동적으로 그 사랑을 지켜 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고 나면 라쉬 교수가 말한 '차가운 세상에 있는 천국'을 만들 수 있게 된다.

- 김혜남, '서른살이 심리학에게 묻다' 중에서....
2008/06/25 00:10 2008/06/25 00:10
밑줄 그은 책 2008/06/25 00:10 by lyc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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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캐스팅. 데드마스크를 뜨듯, 몸의 윤곽을 석고로 뜨는 일.
 이 책은 껍데기인 몸과 사랑, 그리고 상처에 대한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사랑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든 것처럼 눈을 감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L의 규칙적인 숨소리가 들려왔다. ... 그러나 나는 알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 아이는 따뜻함과 사랑을 혼동해왔다. 지금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나는 희미한 쓸쓸함을 느꼈고, 그보다 희미한, 까닭을 알 수 없는 구역질을 느꼈다.

"... 그래, 솔직히 말하지. 어느 순간에는, 가끔은, 길을 잃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 내가 극도로 냉정하게 느껴질 때. 오래전부터 나는 내 말과 행동을 믿지 않아. 물론 난 타인 역시 믿지 않아.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도 거기엔 조건이 있는 거지... 그것들을 다 제하고 난 뒤에도 그들이 날 좋아할까? 천만에. 꿈꾸지 않기 때문에 난 실망하지 않아. 특별히 가까운 사람도 없지만, 특별히 나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도 없어.

... 네가 날 뜨고 싶다고 했을 때, 마치 내 가죽을 벗겨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지. 네가 만든 껍데기들..... 지루하고 야비하더군. 그런데도 내가 허락한 건 왜였을까? 아마도 난 증명하고 싶었던 모양이야. 내 껍데기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는 걸. 그 자체로,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껍데기라면, 그게 껍데기인들 무슨 상관이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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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캐스팅 작가인 주인공과, 너무 많이 먹어 풍선처럼 부풀어오른 여자. 혹은, 폭식과 구토를 반복해 나뭇가지처럼 앙상하게 말라버린 여자. 그녀의 차가운 손.
 
 때때로 사람들은 사랑을 밀어내요. 진심으로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오히려 사랑을 밀어내고,
 상처를 치유하고 싶기 때문에 오히려 상처의 껍질 속으로 숨어들죠.
 욕망과 사랑의 차이가 무엇인지, 끝없이 묻는 이유. 위악적으로 아무것도  믿지 않는다고 독설을 내뱉는 이유. 그건 한번만 더 상처 입는다면 케이오 되고 말 사람들의 억지스런 몸짓이라는 것을. 그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있을까?

 소설의 여자 등장인물들은 언뜻 보기에 아무것도 믿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게 진실이라면, 그들은 석고로 뜬 조각같은 몸을 통해서라도 증명받고 싶어한다. 물질로 이뤄진 세계에서, 차라리 자신의 몸만은 훌륭한 물질이란 사실을.
 
 실제로 여자의 몸은 언제나 모니터링 당하고 있다.
 그게 찬양이든, 비난이든
 타인의 시선에 자신의 몸을 맞추고, 자신의 몸을 사랑하거나 경멸하며
 결국은 낯선 사람인 양 내가 나를 타인인 듯 바라보게 되는 일련의 과정은
 사람들의 마음을 황폐하고 쓸쓸하게 만든다.

 여자들은 종종 생각한다. "내가 못생겨서, 내가 뚱뚱해서 나를 떠난 것 아니에요?" "내가 예쁘지 않아서 싫은거죠?" 물론 최소한의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이런 말을 입 밖에 내는 여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러나 여분의 살을 혐오스런 것으로 치부하는 사회의 시선은 여자의 몸을 몸 그대로 인정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아마 샤워를 마친 후, 거울 앞에서 자신의 몸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여자는 아마 극소수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좋아해달라고 말하는 대신, '표준'으로 설정된 사이즈와 몸매 비율에 어느새 자기 자신을 끼워맞추려 하게 된다. 그건,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소름 돋도록 냉정한 한강의 시선은, 알고보면 따뜻하다. (어떤 사람은 그 따뜻함을 미처 눈치채지 못하기도 하지만...)
 그 따뜻함이 그저 "다 잘 될거야"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깊이 이해한 후에 나오는 따뜻함이기에
 한강의 따뜻함은 더욱 믿음직스럽다.

...나는 그녀의 알몸을, 거기 반쯤 포개어진 나의 벌거벗은 몸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그때 왜 내 눈이 뜨거워졌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집요하게 내 몸을 감싸고 있었던 일생의 긴장이 조용히 흩어지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녀의 움켜쥔 왼손을 끌어다 잡았다. 뿌리치려 하는 손가락들을 하나씩 폈다. ... 마침내 그녀의 자궁에 내 손가락을 넣었을 때, 그녀의 텅 빈 통로는 따스하게 젖어 있었다.
"들어가도 돼?"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외틀었다.
...
"따뜻해."
그녀는 숨차게 속삭였다.
"따뜻한 손이야."

-한강, <그대의 차가운 손> 중...

 
그 치유의 이름은 다름아닌 따뜻함.
 결국은 사랑.
 뻔한 결론일지 모르지만, 삶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시선이 깊어, 결코 뻔하게 느껴지지 않는 그런 소설.
2008/06/21 16:08 2008/06/21 16:08
밑줄 그은 소설 2008/06/21 16:08 by lyc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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