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 젖은 빵이라도 있었다면 먹고 싶었다.
- Posted at 2008/09/10 11:15
- Filed under 올림픽메달리스트
"소설의 주인공보다 더 가난했다. 눈물 젖은 빵, 그 빵이라도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88서울 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57kg 동메달리스트 노경선(46) 씨의 말이다. 그의 삶은 환희, 눈물, 그리고 동메달 리스트로서 겪는 비애나 애환으로 점철돼 있다. 
대회 출전비를 마련하기 위해 훈련시간에 들에 나가 양파를 뽑을 수밖에 없었다. 손수 쑥을 뜯어와 국을 끓여 먹고 훈련했다. 먹는 것이 시원찮아 달리는 것이 너무 힘이 들었고 체격도 불지 않아 항상 아쉬웠다.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따면 배고픔 속에서 훈련 했던 과거를 보상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열 아흡살때 꿈에 그리던 대표 선수가 되었다. 그는 올림픽 영광과 환희 주인공이 되기 위해 피눈물 나게 훈련을 했다.
나이 스물 여섯. 마침내 88서울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전 국민의 이목이 집중됐던 대회 마지막 날 레슬링에서 동메달을 땄다. 너무 기뻐서 메트를 뛰고 또 뛰었다. 시상대에 태극기가 오르자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라면만 먹고 훈련했던 배고픈 시절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배고픔은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경기 후 TV를 보고 있는데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날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이 나와 그 선수만 집중 조명되고 있었다. 나는 동메달이라는 자막만 나오고 경기 장면 한번 나오질 않았다. 너무 서운했다. 배고픔을 참아가며 여기까지 왔지만 언론 보도는 싸늘하기만 했다"며 당시 상황을 기억했다.
그는 또 "올림픽 이후 '동메달리스트'로 두 달 정도 주변에서 기억해줬다. 1등만 기억해 주는 세상에서 두 달 정도 세상의 기억에 남아 있었던 것도 사실 고마운 일이다”고 덧붙였다. 그만큼 올림픽 무대는 짧게 환호했고, 짧은 시간에 잊혀져 갔다. 
정작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차별이었다. 당시 금메달리스트들은 학교나 실업팀 코칭스태프로 가는 기회가 많았다. 그는 "동메달리스트인 나에게는 단 한번의 제안도 없었다. 연봉에 상관없이 후진 양성에 힘을 보태고 싶었는데 기회조차 잡지 못했다"며 상대적인 소외감을 피력했다. 섭섭한 마음을 그는 한마다로 표현했다. "나는 동메달리스트였다."
그 후 바르셀로나 올림픽(1992년) 금메달 도전에 나섰지만 세월의 무게는 그를 더 이상 올림픽 무대에 설 수 없게 했다. ‘금메달이라도 땄다면 인생이 달라졌을텐데… ’라는 막연한 상상도 했다. 어떤 대표선수도 자신 보다 열심히 훈련하지 않는 선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는 더 서러웠다. 
역대 동메달리스트
하계올림픽(1948~2004) 동메달리스트 근황
<2008년 9월 현재>
| 이름 | 연도 | 대회 | 종목 | 세부종목 | 근황 |
| 강준호 | 1952 | 헬싱키 | 복싱 | 밴텀급 | 작고 |
| 강희찬 | 1992 | 바르셀로나 | 탁구 | 남자복식 | 대한항공 감독 |
| 김경아 | 2004 | 아테네 | 탁구 | 여자단식 | 대한항공(현역) |
| 김무교 | 2000 | 시드니 | 탁구 | 여자복식 | 대한항공 코치 |
| 김병주 | 1992 | 바르셀로나 | 유도 | 남자 78kg | 공군사관학교 교수 |
| 김상규 | 1988 | 서울 | 레슬링 | 그레코로만 82kg | 성신양회 이사 |
| 김선영 | 2000 | 시드니 | 유도 | 여자 78kg | 경찰학교 코치 |
| 김성집 | 1948 | 런던 | 역도 | 미들급 | 은퇴(전 태릉선수촌장) |
| 1952 | 헬싱키 | 역도 | 미들급 | ||
| 김의곤 | 1984 | LA | 레슬링 | 자유형 57kg | 서울 거주, 개인 사업 |
| 김의태 | 1964 | 도쿄 | 유도 | 미들급 | 일본 텐리대 교수 |
| 김정주 | 2004 | 아테네 | 복싱 | 웰터급 | 원주시청(현역) |
| 김진호 | 1984 | LA | 양궁 | 여자개인 | 한국체육대학 교수 |
| 김창희 | 1956 | 멜버른 | 역도 | 라이트급 | 작고 |
| 김태우 | 1988 | 서울 | 레슬링 | 자유형 90kg | 캐나다 거주 |
| 김택수 | 1992 | 바르셀로나 | 탁구 | 남자단식 | 대우증권 감독 |
| 1992 | 바르셀로나 | 탁구 | 남자복식 | ||
| 노경선 | 1988 | 서울 | 레슬링 | 자유형 57kg | 광주 쌍촌 주공 관리사무소장 |
| 민병갑 | 1992 | 바르셀로나 | 레슬링 | 52kg | 성남 거주, 개인 사업 |
| 박영철 | 1976 | 몬트리올 | 유도 | 미들급 | 일본 거주, 개인 사업 |
| 박종훈 | 1988 | 서울 | 체조 | 남자도마 | 관동대 교수 |
| 박해정 | 1996 | 애틀랜타 | 탁구 | 여자복식 | 일산 거주, 탁구장 운영 |
| 방대두 | 1984 | LA | 레슬링 | 그레코로만 52kg | 상무 감독 |
| 손갑도 | 1984 | LA | 레슬링 | 자유형 48kg | 대한주택공사 재직 |
| 송명섭 | 2004 | 아테네 | 태권도 | -68kg | 한국가스공사(현역) |
| 심은정 | 1992 | 바르셀로나 | 배드민턴 | 여자복식 | 주부 |
| 안대현 | 1988 | 서울 | 레슬링 | 그레코로만 62kg | 성신양회 감독 |
| 안재형 | 1988 | 서울 | 탁구 | 남자복식 | 미국 거주 |
| 양태영 | 2004 | 아테네 | 체조 | 남자개인종합 | 포스코(현역) |
| 유옥열 | 1992 | 바르셀로나 | 체조 | 남자도마 | - |
| 유지혜 | 1996 | 애틀랜타 | 탁구 | 여자복식 | 미국 유학 |
| 유지혜 | 2000 | 시드니 | 탁구 | 여자복식 | |
| 이경원 | 2004 | 아테네 | 배드민턴 | 여자복식 | 삼성전기(현역) |
| 이상기 | 2000 | 시드니 | 펜싱 | 에페 남자개인 | 익산시청 감독 |
| 이재석 | 1988 | 서울 | 레슬링 | 그레코로만 52kg | 대전 거주, 건설업 |
| 이재혁 | 1988 | 서울 | 복싱 | 페더급 | 개인 사업 |
| 이정근 | 1984 | LA | 레슬링 | 자유형 62kg | 국가대표 감독 |
| 이철승 | 1992 | 바르셀로나 | 탁구 | 남자복식 | 삼성생명 코치 |
| 이철승 | 1996 | 애틀랜타 | 탁구 | 남자복식 | |
| 이형근 | 1988 | 서울 | 역도 | 82.5kg | 국가대표 감독 |
| 장순길 | 1968 | 멕시코시티 | 복싱 | 밴텀급 | 작고 |
| 전칠성 | 1984 | LA | 복싱 | 라이트급 | 안산 거주, 개인 사업 |
| 전해섭 | 1976 | 몬트리올 | 레슬링 | 자유형 플라이급 | 한국체육대학 훈련처장 |
| 정성숙 | 1996 | 애틀랜타 | 유도 | 여자 61kg | 용인대 교수 |
| 2000 | 시드니 | 유도 | 여자 63kg | ||
| 정훈 | 1992 | 바르셀로나 | 유도 | 남자 71kg | 용인대 교수 |
| 조석환 | 2004 | 아테네 | 복싱 | 페더급 | 보은군청(현역) |
| 조용철 | 1984 | LA | 유도 | 남자 +95kg | 용인대 교수 |
| 1988 | 서울 | 유도 | 남자 95kg | ||
| 조재기 | 1976 | 몬트리올 | 유도 | 무제한급 | 대한체육회 사무총장 |
| 최민호 | 2004 | 아테네 | 유도 | 남자 60kg | 한국마사회(현역) |
| 한수안 | 1948 | 런던 | 복싱 | 플라이급 | 작고 |
| 홍성식 | 1992 | 바르셀로나 | 복싱 | 60kg | 영선중학교 교사 |
| 홍차옥 | 1992 | 바르셀로나 | 탁구 | 여자복식 | 주부 |
| 황경선 | 2004 | 아테네 | 태권도 | -67kg | 한국체육대학(현역) |
*단체구기종목·2008 올림픽 메달리스트 근황은 제외
Posted by yk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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