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가 쏟아져도 닦지마. 코피 닦을 시간에 책을 봐라

지금 누가 숨쉬고 있어? 숨쉬는 소리가 3층까지 들린다

10시 독서실에서 감독 교사의 찻잔 속 태풍 소리가 들려온다.

어느새 독서실은 침묵속으로 빠져든다. 볼펜 굴리는 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유리창을 깨고 뛰쳐 나오고 싶었던 형광등 불빛은 새벽 1시가 지나고서야 비로서 그 충동을 억누르며 잠이 들었다.

2009년 대학 수능에서 94명의 인문계 학생으로 21명의 학생을 수도권 대학에 합격시킨 전북 익산고등학교의 독서실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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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다희(3학년)는 대학진학 최종 목표는 ‘S. 임양이 11일 새벽 6시 졸린 눈을 비비며 아침 점호를 받기 위해 기숙사 문을 나선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쳇바퀴 일상의 연속이다. 점호가 끝나면 여느때 처럼 친구들과 함께 학교 뒷 야산을 오른다. 아침 공기가 차갑지만 상쾌하기는 여느 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맛이다. 30여분 후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등산을 마친 임양은 독서실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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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양이 신선한 공기와 함께 하루를 여는 이유는 학교가 한적한 시골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국의 특수 목적고 중 하나인 농어촌 자율학교’. 전북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에 위치한 작은 학교가 반란을 일으켰다. 2009년 대학입시에서 일명 ‘SKY”를 비롯해 무려 21명이 수도권 대학에 합격했다.

서울대 3,고려대 4, 연세대 4, 한양대 2, 성균관대,중앙대 각1명 등 21명이 수도권 대학에 합격했다. 3학년 학생 중 인문계 학생이 94명에 불과한 가운데 거둔 성적이다.

서울대 합격자 3명은 정시전형을 거쳐 합격했다. 고려대 법학과와 연세대 상경대에도 합격자를 배출했다. KAIST와 포한공대에도 합격자를 배출했다.

이 학교는 1966년 개교 이래 2002년도 까지는 주목을 받지 못했다. 시내 학교에서 떨어진 일명 갈 곳없는아이들이 모여 들어 하루 하루를 보냈던 꼴찌 학교’’이다. 정원조차 채우지 못한 아무나 가던 그런 학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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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가던그 미운오리 새끼 대접을 받았던 학교가 어떻게 백조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었을까.

임양은 저녁 6 30분부터 11시 취침하기까지 간식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고개를 못들게 하는 스파르타식 규율이다숨도 못 쉴 정도로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고 했다. 이어 정규수업과 보충수업도 톱니바퀴 형태로 짜여져 있다. 독서실 자율학습 시간은 감시,감독하는 교사의 눈빛자체가 다르다고 했다. “그 엄격한 규율을 이겨내지 못하고 집에 가고 싶어 울었던 적이 한 두번이 아니다고 했다. 이어 화장실 가서 조금만 늦어도 혼이 날 정도다. 하루는 한 선배가 코피를 쏟고 있는데 코피 쏟을 시간이 어디 있느냐는 감독 교사의 농담 섞인 말을 들었지만 농담으로 들리지 않았다.” 스스로 공부할 마음이 없다면 벌써 그만 두었을 것이다며 독서실 분위기를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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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3)군은 하루 다섯시간의 자율학습을 하는데 자율학습이 아니다. 이 시간 만큼은 교사들이 철저하게 집중력을 요구한다자율학습 시간에 졸다가 걸려 벌점 3점에 꿀밤까지 맞고, 싫은 소리까지 들어야 했다고 했다. 이어 독서실 담당 교사가 내 자리가 정리돼지 않았다고 사진을 찍어 학교장에게 보고한 바람에 벌점으로 일주일간 청소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임양의 하루 24시간 중 공부와 연결된 시간은 14~15시간이다. 정규수업 7시간,자율학습 6~7시간,보충수업 2시간이다. 잠은 평균 다섯시간 잔다. 임양은 정규수업은 빡빡하기는 마찬가지. 요령을 피울 시간이 없다. 학생수가 28명밖에 안돼 자칫 다른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여지없이 지적을 받는다. 한 교실에 특출한 실력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아 진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남보다 더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교사들이 실력이 우수한 학생 기준으로 수업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당연 실력이 처지면 수업을 이해 할 수 없어 정신을 집중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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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충수업은 토론시간이나 1:1 학습진행 방식으로 진행된다. 학생들 스스로가 인터넷으로 수강신청을 한다. 원어민 교사와의 1:1 보충수업은 자기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하는 친구들 때문에 뒤지지 않으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다행이 학습 분위기가 좋지만 뒤쳐짐을 생각할 때는 웃어도 웃는게 아니었다. 자율학습 시간은 부족한 과목을 보충한다. 때문에 한치의 여유도 없다. 담당 교사가 눈을 부라리며 지켜보기 때문에 요령을 피울 수도 없다. “여간 곤혹스런 시간이 아니다고 했다.

임양은 “6시 기상해 1시 잠자리에 들기까지 하루 종일 옆 친구와 경쟁을 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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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30분까지 점호와운동, 7시 아침식사, 7 40분부터 8 30분 까지 독서실에서 자율학습, 8 40분부터 4 20분까지 정규수업(7교시), 4 40분까지 청소, 4 40분부터 6 30분까지 보충수업, 6 30분부터 7시까지 저녁. 7 20분부터 9시까지 독서실 자율학습. 9시부터 기숙사 개방 및 9 30분까지 간식.  9 40분부터 12시까지 자율학습(10분 휴식)이 이어진다.

유윤종 교장은 시간표가 빡빡하다. ’아무나 올 수있었던 학교를 영재들이 다니는 학교로 바꾸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희생이 필요했다. ‘성적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12시 이후 임양은 다시 독서실로 향한다. 학교에서 정한 시간은 끝이 났지만 새벽 1시까지 독서실에서 자율 학습을 한다. 감독 교사가 지키지 않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어느정도 긴장이 풀려 가끔 졸기도 한다고 했다. 1시에 기숙사로 들어오면 이미 몸은 녹초가 돼 있다. 4 1실 기준으로 이곳에서 만큼은 편히 쉴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그리고 다시 아침 6시를 기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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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학교 성공비결

시골 학교 익산고의 대학진학 반란의 배경은 이사장의 교육의지, 교사의 열정,학생의 희생이 빚어낸 산물이다.

1999년부터 시작한 10년간은 프로젝트는 상전벽해를 이뤄냈다.

1966년 개교해 2002년까지 주목을 못 받아 1차시험에 떨어진 학생들이 모인 일명 그저 그런 학교였다. 실업계와 일반계가 함께 개설돼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도 어수선 했다.

변화의 바람은 당시 이사장이 99년도에 150억원을 장학금을 내 놓으며 학교를 살리라유지를 남기면서 시작됐다.

교사들도 학생 모으기에 비지땀을 흘렸다. 당시 교무 부장이었던 유윤종 교장은 아무도 꼴통학교에 학생을 주려 하지 않았다. 교사들 실력도 의심했다. 가난하지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공략해 학부모를 설득시켰다. 결국 장학금과 학비 면제, 해외연수, 기숙사비 면제등의 약속을 하고 몇 명의 성적 우수자를 유치 할 수 있었다며 당시 상황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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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30명으로 구성된 영재장학생 반을 꾸리며 변화를 시도했다. 실업계와 함께 개설했기에 영재반은 따로 운영했다. 운영 방식은 철저히 짜여진 스파르타교육형식이라고 학교측은 밝혔다. 방학은 2회로 10일씩, 휴일은 한달 2, 하루 24시간 중 공부하는 시간을 15시간으로 시간표를 작성했다.거금을 들여 기숙사를 짓고 학생들을 기숙사 생활을 하게했다.

결실은 3년뒤 졸업자부터 나타났다. 2004 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전국 인문계 수석과 전북도내 예체능계 수석을 차지해 시골 꼴통 학교의 반란의 계기를 마련했다.

반란은 2003년에도 계속됐다. 서울대 1명을 시작으로 27명이 4년재 등 대학진학을 했으며 2004년도에는 29명이 대학 진학을 이뤄냈다. 소문은 실력을 앞섰다, 앞다퉈 전국의 영재들이 몰려들었다. 학생을 찾으러 다닌지 5년만의 주객전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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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29, 2006 28, 2007 29, 2008 26, 2009년도 28명이등 영재 장학생반 대부분이 대학에 진학했다. 2009년도 입시에는 영재장학생반이 아닌 일반계 학생 3명도 대학에 진학했다. 3학년 일반계 학생 94명으로 이뤄낸 쾌거로 명실공히 명문고로 발돋움 하고 있다.

유윤종 교장은 학생들에게 많은 혜택을 부여했다. 호주 어학 연수, 학업증진비, 수업비,기숙사비 면제 등 해 줄만 한 것은 다 해 주었다고 했다. 하지만 가장 큰 결실은 학생들의 희생이었다고 했다. “꼴통 학교에 다닌다는 소리를 듣기 싫어해 짜여진 틀 속으로 스스로 들어왔다교사들도 이를 악물고 학생들을 지도했다고 했다. 이어 학교를 믿고 맡겨준 학부모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고 했다.

2년동안 캐나다 어학연수를 마치고 이 학교로 온 박상현(3)군은 사교육 보다는 공교육 제도가 더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가족들과 의논해 이 학교를 왔는데 아이들과 경쟁하는 구도라 재미가 있다영재반에서 함께 공부하니 당연히 실력이 늘고 유학 중 받은 스트레스가 사라졌다고 했다. 2009년에는 영재 장학생 56명을 유치, 그동안 한 교실을 영재반으로 육성해 오던 것을 두 반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시골 꼴통학교가 어디까지 비상할지 지켜보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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