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조총련(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계 재일교포 3세가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미치도록 공을 차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조총련계라는 이유만으로 일본에선 축구 선수가 될 수 없었습니다. 두 사람은 초·중·고등학교, 대학을 조총련계 학교를 다녔습니다. 일본에선 조총련계 학교는 학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들이 공을 찰 수 있는 곳은 일본 프로 리그입니다. 그러나 프로리그행마저 좌절됐던 두 사람은 결국 이념과 사상적으로 다른 대한민국을 선택했습니다. 조총련계 3세 재일교포 험멜코리아 정이세(27·골키퍼)와 고상덕(26·미드필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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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고상덕.오른쪽 정이세)

     축구 하고 싶어 한국행  

지난 3일 성균관대학교 노원운동장 한쪽 귀퉁이에서 내셔날리그 노원 험멜축구단이 훈련에 열중이다. 바람이 한번 불자 흙먼지가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그 흙먼지를 뒤집어 쓴 채 아직 한국어 발음이 정교하지 못한 두 명의 선수가 함께 호흡을 맞추고 있다. 정이세와 고상덕 선수다. 두사람은 조총련계다. 흥미로우면서도 가슴아픈 것은 국적이다. 정이세는 대한민국이다. 고상덕은 조선인민공화국, 즉 북한이다. 정이세는 북한 '인민 루니'정대세(가와사키 프론탈레)형 이기도 하다.  두 선수는 "일본에서 축구를 더 하고 싶었지만 일본의 조총련계에 대한 차별 때문에 더 이상 축구를 할 수가 없었다. 일본은 조총련계 학교와 학위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 오로지 축구를 하고 싶어  한국에 오게 됐다" 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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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을 차며 꿈을 키워요

고상덕은 2008년 7월, 정이세는 같은 해 10월 한국에 왔다. 지난 1일 서울 상암월드컵 경기장에서 진행된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차전 한국과 북한 전 때 정대세 응원을 나선 정이세는 "대세가 프로에 가더니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했다. 이어 "동생이 K리그에서 뛴다면 더 좋은 실력을 발휘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정이세도 동생 대세와 함께 아이찌 조선 제이 초급학교 4학년부터 축구를 했다. 축구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일본 고등교육 자격이 필요한데 자격이 안돼 하고 싶어도 더 할 수가 없었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어쩔 수 없이 축구를 그만 두었다.  4년 동안 축구를 그만 두고 배관사업을 하는 어버지 가업을 이었지만 마음 속 축구의 열망까지는 버리지 못했다. 4년 후 한국에서 축구를 계속할 수 있다는 지인의 연락을 받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한국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축구'였다. 똑같은 이유로 축구를 그만 둔 고상덕 선수가 한국에 먼저 와 있었다. 둘은 이미 오래 전 '차별의 벽'을 무너뜨리자는 꿈을 꾼 동료이다. 그 꿈이 다시 생겨났다. 정이세는 "고상덕 선수를 보니 옛 기억이 되살아 나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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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의 꿈을 행해
 두 선수는 노원 험멜 선수단 숙소에서 동료들과 함께 생활을 하며 우정을 다지고 있다. 꿈꾸던 축구가 너무 좋아 다른 일은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루하루 일정이 소중하다. 맨땅에서 훈련 하지만 축구를 다시 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너무나 행복하다"고 했다.
 이상재 노원 험멜 감독은  "두 선수 성실하게 자기 몸을 만들고 있으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며 "열심히 하면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고상덕 선수는 국적이 북한이라 3개월 임시여권만 나온다. 여권이 만료되기 전 일본에서 다시 3개월짜리 임시여권을 발부 받아야 한다. "3개월 마다 일본에서 임시여권을 갱신해야 하는 시간이 아깝다"며 "다른 이유로는 일본에 가질 않는다. 그 시간에 한번이라도 더 공을 차고 싶다" 고 했다. 고 선수의 할아버지 고향이 전남 고흥이다. 정이세 선수는 할아버지가 경북 의성이 고향이다.
그렇게도 축구를 하고 싶었던 두 소년. 어느새 성인이 되어 다시금 두 손을 맞잡았다. 맨땅 위에서 먼지를 마시며 축구를 하는 것도 얼마나 소중한지 다른 사람은 알지 못한다. 지난날 차별의 세상을 뚫고 당당히 맞서고 싶은 생각뿐이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정대세 선수처럼 프로에서도 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흙바람 속 먼지를 뒤집어 쓰고 축구화 끈을 다시 동여맨다.2009.04.06
양광삼의 네모세상
ps:나중에 정이세가 국가대표가 되면 형은 한국대표,동생 정대세는 북한대표로.한 형제가 양팀으로 갈라져 경기를 하는 슬픈 현실이...

Posted by yks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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