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화순 소재 세량지 가는 길에 만난 풍경입니다.
이곳은 봄이 되면 수십명이 넘는 사진 작가가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새벽부터 분주함을 떨면서 반영을 찍는 저수지입니다. 물안개와 활짝 핀 벚꽂이 저수지에 반영돼 그야말로 운치를 더해 주는 곳이지요.
이 곳을 한 낮 내리쬐는 태양을 등지고 9월초 한여름에 찾았습니다.
마을 입구를 보니 외부인의 발걸음이 잦아 이장 허락 하에 문을 열 수 있게끔 문을 닫아 놓았더군요. 마을이장이 없으면 영락없이 1km 넘는 길을 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길을 걸어서 가는 게 오히려 더 운치를 더해 줍니다. 양 옆으로는 농작물이 자라고 굴다리를 지나다 보면 귀에 익은 한우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입니다. 개울물도 졸졸졸 흐릅니다.
말 그대로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처럼 향수 노래(전문있어요)가 나도 모르게 절로 흥얼거리는 곳입니다. 옥의 티이겠지만 한우를 지키는 개 짖는 소리는 장난이 아닙니다. 그 소리는 살짝 못 들은 걸로 해주세요…
굽이굽이 산 비탈길을 오르니 남방노랑나비, 큰줄흰나비 등이 무리를 이룬 채 나뭇가지 위의 수분을 흡수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저수지를 끼고 있어 습도가 높고 인적이 드문 환경이어서 그런지 다양한 나비종이 군락을 이루고 있더군요. 나비의 수분 섭취하는 장면은 활동이 많은 수컷나비가 체온을 조절하기 위한 것과 영양분을 보충하는 것 두 개의 학설이 있습니다.

쉬엄쉬엄 뒷짐지고 오른 비탈길 끝에서 고개를 드니 넓지 않은 저수지가 저를 맞이 하고 있습니다. 마치 명소를 찾아 떠나는 이유의 정답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 같습니다. 한 폭의 수채화가 그림처럼 펼쳐져 있습니다. 사실 봄에 비하면 그리 운치 있는 곳은 아닌 것 같은데 확 트인 앞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옵니다.
저수지 입구에서 한발 더 살짝 발을 디뎌 보니 울창한 숲이 전개됩니다. 밀림 한 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킵니다. 환한 대낮인데도 약간의 두려움이…옛날 땔감으로 희생 되었다면 이런 환경도 못 봤을 것입니다.
고개를 돌리자 이름 모를 야생화가 지천입니다. 동행한 이가 궂이 이름을 알라고 하지 마라고 합니다. 야생화는 말 그대로 ‘이름 모를’이 앞에 들어가야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해석을 내 놓더군요. 뭐 저도 야생화에 대해 몰라서 그 말에 공감대를 표한다고 했습니다. 몰라서 그런거니 무식하다고 너무 뭐라 하지는 마세요…

가만히 눈을 감고 귀를 기울이면 또한 야생의 소리가 한 가득 들려옵니다. 참새는 짹짹거리며 이방인의 출현을 알리고 있습니다. 장끼 한 마리가 바로 코 앞에서 푸드득 날개짓을 하며 날아갑니다. 소리를 죽인 채 살포시 오르라는 협박처럼 들립니다.
장끼의 협박처럼 숨 죽이고 조용히 다녀 왔습니다. 내려오는 길에 산비둘기 무리가 전깃줄에 앉아 저희를 배웅합니다.
그렇게 또 남도의 한 끝자락을 소리소문 없이 다녀 왔습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참 포근하고 좋습니다. 아늑하구요…예전에 미처 못 보던 세상입니다. 떠나보니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등줄기 흐르는 땀도 닦지 않은 채 그 짧은 여행을 기억합니다.
동행한 이의 어록으로 이번 짧은 여행을 마치려고 합니다. ”맨날 아스팔트 안에서 똑 같은 일만 하니 배가 나오는 거다. 안에만 있지 말고 틈나는 데로 밖을 보라. 그래야 긴장도 되고 활력도 넘치게 된다”고 하더군요.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 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벼개를 돋아 고이 시는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 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 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Posted by yks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