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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으는 작은 새, 큰 새를 꿈꾸다

인천광역시 주안초등학교 체육관. 50대 주부가 어린 학생들에게 "공을 마음대로 갖고 놀아라"며 배구공을 건네준다. 어린 학생들은 배구공을 발로 차고, 던지고 제멋대로다. 50대 주부는 어린 학생들의 그 모습을 보면서 웃고만 있다. "배구공과 친해져야 공의 원리를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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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계의 전설 조혜정이다. 그의 수식어는 화려하다. '날으는 작은 새', 1970~80년대 배구계의 살아있는 역사. 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구기종목 동메달을 선사한 주역.

 배구 꿈나무 양성
그는 현재 은퇴한 여자배구 국가대표 모임 자원봉사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부산·인천 등 8개 초등학교를 돌아다니며 미래를 짊어질 어린 학생들에게 배구를 가르치고 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여자 배구 선수인 후배들의 안부 전화가 걸려왔다. "'백인의 여성 체육회'를 추진 중이다.  '후배들이 너무 고생 많다'며 내가 특별히 큰 도움을 준 것도 없는데 '고맙다'는 전화를 했다"고 전했다.

 그는 "현역 배구선수인 김사니·김연경·황연주 등이 기금모금에 쾌척했다" "이들은 백인의 여성 체육회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을 향해 배구 정신을 강조하는 말도 잊지 않았다.  "배구는 9m의 공간에서 수많은 작전을 만들 수 있다. 빠른 발이 필요하다. 지금 선수들은 과거에 비해 신장·체력·기술이 훨씬 좋은데 끈질긴 면이 떨어진다. 헝그리 정신과 열정, 희생정신이 있어야 사랑을 받을 수 있다" "후배들이 정신적으로 좀 더 무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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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배구를 시작한 것은 부산봉래초교 6학년 때. "작은 키로는 오른쪽 주포를 못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고 했다. 중·고교 때 162㎝였는데 다른 선수들은 평균 10㎝는 더 컸다고 했다. 그는 "코트에서 '발악'을 했다"고 말했다. "고교3학년 때 '전승'을 이뤄냈는데도 어렵사리 실업팀에 입단했다. 그 다음해에 비로소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스포츠 가족을 일구다
그가 은퇴 후 20년 만인 지난해 한국배구연맹 경기감독관으로 배구판에 돌아왔다. "코트를 내려다보니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내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것 같다. 경기를 보면 새로운 도전이 싹트는 것을 느낀다"고 돌아온 심정을 밝혔다.

배구코트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는 그에게 지난 20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그는 "스포츠 가족을 일궈 마냥 행복하다" "키가 작아 '발악'했던 시절을 이겨내니 행복이 나에게 밀려왔다"고 했다. 그는 야구인 조창수(전 경북고 야구팀 감독)씨와 결혼해 골프선수인 두 딸을 두고 있다. 자신은 서른다섯의 적지 않은 나이에 수원대 체육학과에 입학해 못다 이룬 학업의 꿈을 이뤄다고 했다. "대학원은 중퇴했다. 둘째 딸이 태어나 학교를 그만두어야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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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물세 살의 젊은 나이에 은퇴를 해야 했던 자신과 달리 두 딸에게는 오랫동안 운동할 수 있는 골프를 추천했다고 했다. "한창 나이에 운동을 그만두니 아쉬웠다. 두 딸이 내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랐다"며 빠른 은퇴를 아쉬워했다
두 딸은 골프에 재능이 있었다. 첫째 윤희는 KLPGA에서, 둘째 윤지는 KLPGA 2부 투어에서 활동하고 있다. 골프를 하는 두 딸을 위한 금전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무더운 대구에서 지인의 도움을 받아 냉면가게를 차렸다. 장사는 생각보다 잘됐다. "그 지역에서 다섯 손가락에 들 정도로 맛있고 장사도 잘됐다"고 했다. 하지만 10여 년 만에 그만두었다. 첫째 딸이 미국 플로리다로 골프 유학을 떠나자 뒷바라지를 위해 미국에서 함께 지내야 했다. 당연히 가게에는 손길이 미치지 못했다. "가게를 번창시킬려고 한 장사가 아니어서 욕심은 없었다"고 했다. "두 딸의 골프 캐디가 되고 이탈리아풍 요리를 해주는 등 식단을 짜는 일에서 행복을 느꼈다고 했다. 현재 두 딸 덕분에 자신도 골프 좀 친다며 머쓱해 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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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는 내 안에 있는 나의 존재

  그는  "배구 꿈을 자주 꿨다. 딸의 골프 성적이 안 좋으면 그날 밤 꿈에 스파이크 한 볼이 네트에 걸렸다" "배구계를 떠나 있었지만 가슴은 배구를 떠나질 못했던 것 같다. 잠재의식 속에 배구가 늘 살아 있었던 것 같았다"고 회상했다.

만난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난 즈음. 가슴속에 품고 있던 포부를 살며시 드러냈다. "배구계 여성 지도자가 되고 싶다. 프로팀 감독도 맡고 싶다. 같은 여성으로 여자선수들의 심리적인 부분까지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여자 배구를 한 단계 더 도약시킬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후배들의 미래다."
164
㎝로 배구코트를 장악했던 날으는 작은 새또 한번 여자 배구가 그의 작지만 큰 어깨에 올려져 있는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가 펼치는 화려한 날갯짓이 기대되는 순간이다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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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여자배구 일본과의 준결승전.
한국 유경화 세터가 길게 토스 해준 공을 향해 164㎝의 단신 공격수가 용수철처럼 튀어 올랐다. 그리고 강한 스파이크. 배구공은 그대로 상대편 코트에튕겼다. 장내는 이미 164㎝ 한국선수 오른쪽 주포에 집중돼 있었다. 하지만 이날 한국은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조혜정은 이틀 전 소련과의 경기에서 종아리 근육이 찢어져 일본전은 한 세트밖에 뛰질 못했다. 오른쪽 주포의 부상은 경기의 승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포지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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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조혜정(맨 왼쪽))

그는 "가장 아까운 경기였다. 부상을 당해 경기를 소화할 수 없었다"고 했다. 이틀 후 헝가리와의 동메달 결정전. 동료들에게 큰 빚을 진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치료를 받아야 할 다리는 저려 왔지만 통증은 잊어야 했다. 결과는 3:1 역전승. 다들 얼싸안고 환호했고, 그는 그대로 쓰러졌다. 다시 일어나 동료 변경자·백명선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육남매 맏이로 동생들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는 명선이의 음성이 경기 내내 귓전을 맴돌아 가슴에 박혔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자 상대팀 선수들과 언론은 그를 '날으는 작은 새'로 불렀다.
"
그때는 다들 어려웠다. 반드시 메달을 따야 했던 이유는 연금을 받아 생활을 해야 할 정도로 선수들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고 했다.
1978년도 현대코치시절.앞줄 왼쪽부터 이병화,김미연,김영숙,조혜정,김애주(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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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도 현대코치시절.앞줄 왼쪽부터 이병화,김미연,김영숙,조혜정,김애주(모자))

그 해 10월 어머니가 돌아가셨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배구가 마음먹은 대로 안될 때 외로움을 느꼈다고 했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과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내 안에 있는 나의 존재, 배구였다. 지금도 배구공에서 나는 가죽냄새가 좋다"는 그가 몬트리올 올림픽 경기를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이유다.

프로필
  생년월일 1953년 3월 5일

출생지  부산 .
  학력 부산 봉래초교-부산여중-숭의여고-수원대 체육학과-수원대학교 대학원(체육학과) 중퇴
  가족  조창수씨와의 2녀(윤희·윤지)
  신장 164㎝
  취미 이탈리아풍 요리


주요경력

1970년 방콕 아시안게임 2위
  1971년 국세청 입단
  1972년 뮌헨 올림픽 4위
  1973년 대농 입단
  1974년 테헤란 아시안게임 2위
           멕시코 세계배구선수권 대회 3위
  1975년 프레올림픽 금메달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3위
  1977년 현대건설 코치
  1979년 이탈리아 안코나 프로팀 입단
  1981년 이탈리아 안코나 선수겸 코치
  1981년 광주 송원여고 코치
  1990년 비치발리볼 사무국장 역임
  2008년 한국프로배구 경기 감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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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산균 발효유, 비타민 음료, 그리고 식육사업까지 소비자가 원하는 모든 제품을 만들겠다."
'
소비자가 원한다면'이란 기치로 글로벌 우량기업의 도약을 위한 남우식(57) 푸르밀 대표이사의 인생2막 도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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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대표는 "맨바닥부터 시작했다. 소비자가 무얼 원하는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기업이 타격을 입었지만 취임 1년 만에 다시 흑자 회사로 만들었다" "할 수 있다. 현 위기 상황을 극복해 푸르밀 만의 새로운 기업이미지를 심어내겠다. 내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며 당찬 도전을 시작했다.
푸르밀은 유산균 발효유, 유산균 음료, 가공유, 시유 등 유가공 제품생산이 주력이었지만 남 대표의 부임으로 롯데우유에서 푸르밀로 사명을 바꾸고 음료사업과 식육사업으로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남 대표는 "사업을 확장시켜 종합식품회사로 키워나갈 전략" 이라며 "소비자가 원하는 안전하고 건강한 모든 식품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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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남 대표는 1970년대 초 경북고야구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초특급 고교투수였다. 한국고교야구 최고스타 '전설적인 투수'가 야구를 그만두고 서른 되던 해 우유회사 말단 영업사원으로 '직업'을 바꿨다. 그 후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28년이 걸렸다.
성공신화다.
남 대표의 성공신화는 고교시절 그의 야구 스타일과 닮았다. 변화구보다 직구를 더 선호했던 그가 CEO의 길을 걷게 되기까지도 '직구'였다. 새로운 도전이 힘들고 어렵겠지만 '정면승부'로 개척해 냈다. 그의 좌우명 '소실대실'이 이를 증명한다. "'작은 일에 충실하지 못하면 큰일도 이룰 수 없다'는 뜻으로 현장의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하면 큰일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다는 의미다"고 했다.
그는 "처음 영업 할 당시 주위에서는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나 두고 왜 이 길을 가느냐'며 측은해 하기도 했다. 그때 어려움은 말로 표현 못하지만 한 번 결정한 일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선택한 내 인생이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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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에 의한
이어 "현장이 있는 시장이라면 안 다녀본 곳이 없다. 1년 정도 지나니 마케팅과 영업에 대한 나만의 시각을 갖게 됐다" "제조 판매 회사의 중심은 영업이다. 모든 것이 현장에서 이뤄진다. 전국을 다니면서 일일이 시장 파악을 위해 뛰었다"고 했다. 그 말은 누구보다 마케팅 분야에서는 자신 있다는 뜻. 그의 현장 중심 경영은 "소비자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들을 수 있는 곳"이라고 했다.

남 대표는 "건강을 생각한 유산균 발효유에 이어 한국 최초로 12가지 비타민이 들어있는 비타민 음료제품을 개발, 출시했다" "비타민 음료는 소비자의 건강를 생각하는 새로운 성장동력이 되는 시장이다. 오늘의 시장과 내일의 시장이 다른 것처럼 경영자는 시시각각 변하는 시장에 대처해야 한다"고 했다. "우유사업도 백색우유를 벗어나 웰빙과 건강에 맞는 제품을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식육사업에도 도전장을 내밀었다. "식육사업은 올해 1월 시작했다. 현재 월 매출은 30억 정도이지만 내년에는 월 30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도록 뛰겠다"며 자신감을 표출했다. 이어 "영업사원으로 14, 관리직으로 14년을 근무했다. 28년간의 경험은 푸르밀을 이끌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며 공격적인 마케팅과 함께 강한 도전정신을 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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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를 위한

그는 현 식품시장의 판도를 웰빙과 건강으로 전망했다. 모든 제품을 소비자의 건강을 생각한 기능성 식품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다.
남 대표는  "푸르밀은 소비자에게 건강과 식생활개선, 보다 안전하고 신선한 제품을 제공하고자 식품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른 "생산공정별 위해요소를 사전에 제거하는 HACCP(위해요소 중점관리), 업무에 대한 표준화 관리인 ISO9001/14001, OHSAS18001(품질.환경 안전보건경영)통합인증을 획득해 품질안정에 힘쓰고 있다"고 했다. 또한 "친환경 신제품을 개발을 통하여 새로운 식생활 문화와 종합식품회사로 발전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아마야구를 호령했던 그에게는 야구공 하나 하나에 인생의 전환점이 있었다. 현재 최고 경영자의 위치에 오르기까지의 고생은 말해 무엇하겠냐 마는 그의 바람은 딱 한가지였다. "스포츠를 했던 사람들은 사회에 나와 적응할 수 있는 제도가 극히 미비하다. 제도적인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 "야구를 하다 아무 상관없는 영업을 하며 이 자리에 섰다. 나도 할 수 있는데 후배들은 나 보다 더 잘할 수 있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도전하라. 나의 도전은 야구를 하면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기 때문에 여기까지 도전할 수 있었다." 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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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국에서 비공개로 결혼식을 한 배우 이영애의 남편 정모씨의 신상정보 공개여부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이영애가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누구인지 철저하게 숨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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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측은 법무 법인을 통한 결혼 발표에서 남편은 미국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계 IT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그러나 인터넷에서는 이영애 남편 정모씨의 실제 나이와 경력 등에 대해 많은 추측성 정보들이 쏟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공개' '비공개'를 놓고 법조인도 해석을 달리 하는 등 논란이 가열되는 양상이다. 27일 다섯명의 법조인의 견해를 들었다. 전화와 서면인터뷰로 진행된 가운데 오전에 가졌던 견해가 오후에 바뀌는 법조인도 있을 만큼 논란이었다


 
▶실명 공개 곤란

이재만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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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사회로부터의 인격적 평가의 대상이 되는데 이러한 사회적인 평가를 침해하면 명예훼손이 되는 것이다. 이영애씨의 신랑의 실명을 거론하며 두 사람이 결혼하였다는 보도는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결혼사실의 공표는 축하할 일이지 명예를 훼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때에 실명을 거론하면서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개인적인 신상정보를 함께 보도하게 되면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다.

단순히 이영애씨 신랑의 실명을 보도하였다고 형법상 명예훼손죄로 처벌되지는 않지만 사생활침해가 되는지는 견해의 대립이 있다. 이영애씨는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이어서 그녀의 신랑도 공적관심사의 대상이므로 단순히 이영애씨의 신랑의 실명보도는 사생활침해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견해와 신랑의 실명보도는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다는 견해로 나누어진다. 실명보도가 사생활침해가 된다는 견해에 의하면, 신랑의 실명보도를 한 매체는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법원은 “사생활과 관련된 사항의 공개가 사생활의 비밀을 침해하는 것으로써 위법하다고 하기 위하여는 적어도 공표된 사항이 일반인의 감수성을 기준으로 하여 그 개인의 입장에 섰을 때 공개되기를 바라지 않을 것에 해당하고 아울러 일반인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써 그 것이 공개됨으로써 그 개인이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사항에 해당하여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위 판시에 의하면, 개인의 실명공개가 개인에게 불쾌감이나 불안감을 가질 사항인지 여부가 문제이다.

실명보도가 사생활침해가 된다는 견해는 개인의 실명을 공개하면 곧바로 사생활이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고, 실명보도가 사생활침해가 안된다는 견해는 개인의 실명만으로는 사생활이 노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그 실명을 이용한 네티즌들의 신상정보 추적은 네티즌들의 책임일 뿐이지 실명보도매체의 책임은 아니라는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인 모임의 한 변호사

이영애씨가 아무리 공인이라해도 법무법인과 당사자 측에서 이름을 밝히기 꺼려했다면 밝혀서는 안된다. 이름이 알려지면 개인의 사생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한 이름을 밝히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영애씨의 남편의 위치가 애매모호하다. 공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언론에는 많이 알려져 있지만 공인이라 하기에 딱 판정짓기도 어렵다.

더더욱 이영애 측이 원하지 않는 경우이기 때문에 사생활 보호차원에서 이름을 밝히지 않는 것이 도리이다.


 
▶실명공개 괜찮다

 

윤기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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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공개로 결혼식을 한 배우 이영애씨의 남편으로 알려진 정모씨의 신상정보공개여부와 맞물려 연예인과 그 주변인물에 관한 정보를 공개하였을 경우 과연 명예훼손 내지 사생활 침해가 되는지에 대해 논란이 있다. 먼저 명예훼손이라 함은 일정 사실을 공표하여 특정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경우를 의미한다.

만약 특정인의 바람직하지 않은 신상정보, 예를 들면 과거행적 등을 공개하거나 사실 내지 허위사실을 공개하는 경우에는 명예훼손에 해당하여 형사적 처벌이나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지만(물론 이 경우에도 경우에 따라서 그 특정인이 공적인 인물이고 해당 사실이 일반인의 관심대상이며, 그 사실을 공표하는 이유가 공익을 위하거나 일반대중의 관심을 충족시키기 위한 것인 경우에는 처벌되지 않을 수 있다), 단지 특정인의 이름 등 그 사람을 특정할 수 있는 사실만을 공개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평가와 전혀 관련이 없는 것이므로 명예훼손이 되지 않는다. 특정인의 사진을 공개하는 것은 초상권 침해가 되어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 있다.

이름과 같이 단순히 배우 이영애씨의 남편이 누구인지 특정할 수 있는 정도의 신상정보를 보도(공개)하는 것은 국내에 널리 알려져 이미 우리 사회의 공적인물이 되었다고 볼 수 있는 배우 이영애씨와 결혼한 정모씨로서는 이름 등 일정 신상정보가 공표된다고 하더라도 어느 정도 이를 수인(受忍)하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결국 그 정도의 신상정보 공개로 인하여 정모씨의 인격권 또는 프라이버시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다.

 

홍승기 변호사(법무법인 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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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는 공인이다. 남편 이름을 공개하는 것은 명예훼손에 해당되질 않는다. 남편의 이름을 숨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남편도 다 알려져 있는 인물 아니냐.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언론에 충분히 노출돼 있는 사람이다.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이영애씨 남편이라면 대중들도 알아야 할 권리가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과거에 다른 신상에 대한 정보만 공개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법적 문제가 되질 않는다. 법무법인에서 이름을 공개하지 말라며 공개하면 법적 조치를 취한다고 했는데 100%로 기각된다. 유명연예인으로써 언론과 네티즌이 이름을 밝혔다고 해서 손해배상청구를 한다는 것도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언론도 자신이 있다면 밝힐 수 있어야 한다. 유명연예인과 결혼 한다는 것이 죄는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축하해 주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최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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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씨가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기 때문에 남편 이름을 밝혀도 된다. 결혼한다는 것이 명예훼손은 아니다. 유명인과 결혼을 하는 것은 오히려 명예가 더 올라가는 것이다. 진실한 사실이 아니고 사회적 관심사가 아닌데 허위사실을 유포 했을때는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영애씨와 결혼을 한 것이 사실이기 때문에 이름은 밝혀도 된다. 하지만 악의적으로 당사자를 공개한다면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 사생활침해도 될 수 있다. 법무법인 측에서 정모씨 까지만 밝혔어도 국민의 알권리에 위치한 신분이기 때문에 남편 이름을 밝혀도 아무런 법적 제제를 받을 수 없다.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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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영애 남편 이름 보도하면 사생활 침해?

    Tracked from 유창선의 시선 2009/08/28 09:48Delete

    톱스타 이영애의 깜짝 결혼 소식이 여러 가지 뒷 얘기를 낳고 있다. 최대의 관심은 그녀의 남편이 누구인가 하는 사실. 그러나 철저하게 베일 속에 가려져있다. 이영애의 결혼 사실은 본인이 아니라 법무법인 측을 통해 발표되었다. 결혼 사실을 발표한 법무법인 동인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남편 정모씨에 대해, 미국 일리노이 공대를 졸업하고 현재는 미국계 IT 관련 업종에 종사하고 있다고만 밝혔다. 다른 사안에 대해서는 정보가 없어서 밝힐 수 없다고 했다...

  2. 이영애 남편 정호영 조사 결과 : 시카고지역 부동산 검색

    Tracked from SECRET OF KOREA 2009/08/28 11:39Delete

    이영애씨가 톱 탤런트답게 결혼과 관련해서도 숱한 화제를 뿌리고 있습니다 정호영씨가 신랑이며 일리노이공대를 나왔다는 보도가 잇따름에 따라 일단 이영애씨와 정호영씨에 대해 합법적인 범위내에서 잠깐 조사해 봤습니다 하와이에서 결혼했다, 재미사업가다, 이혼경력이 있다 등등 숱한 설들이 난무합니다만 일단 시카고를 중심으로 조사했습니다 시카고 지역의 부동산을 조사한 결과 CHUNG HO YOUNG 라는 영문명으로 부동산 관련 거래 내역이 포착됐습니다 부동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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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닥터김 2009/08/28 09:48 # M/D Reply Permalink

    뭐 대단한사람이 결혼을 하고 대한하시 분들이라고 이렇게 생쇼를 하고있냐?
    국민들 아무도 관심이 없거든? 기껏해야 중고등학생들이나 관심보일일들을 무슨 변호사까지 나와서 인터뷰하고 생쇼를 해요.. 아주 그렇게 할일이 없냐? 및친... 그리고 일리노이공대출신이면 그냥 보통인거 아닌가./
    난 하버드출신인데..... 한국사람들 참 할일도 없나보다..

  2. 오버한다 2009/08/28 10:24 # M/D Reply Permalink

    이영애 다 늦은 나이에 당연히 정상적인 결혼은 힘들다. 나이가 많으면 남자폭도 줄어들고 그러니 저런 남자와 결혼하지. 근데 그게 머 대단한 거라고 언론에서 난리지? 대중들은 솔직히 관심도 없어요~~ 요즘 활동하는 스타도 아니고 말 그대로 활동도 안하는 기억에서 가물가물하는 옛스타

  3. 리플꼬라지하곤~ 2009/08/28 10:46 # M/D Reply Permalink

    리플달리는 꼬라지하곤 ㅊㅊ
    하버드 다닌놈이라고 쓴 글꼬라지하곤...
    글구 본인이 공개를 원하지않는데 죽어라고 파헤쳐서 공개하면 그게 법적 하자가 없단게 말이되나??
    남의집 수돗물 안준다는데... 그까지것 뭐대단하다고 안주냐고 중간에 선따서 물퍼가면 그것도 위법아냐??
    싫다는걸 왜? 억지로들 하냐고~~
    글구 나이도 많고 나름 사회적으로 한일이 많은분인데... 단지 연예인과의 스켄들과 결혼으로 지탄의 대상인것처럼 그렇게 마구 글써대는 사람들은 당연히 위법을 하고있다고 봅니다.

  4. 이성수 2009/08/28 10:48 # M/D Reply Permalink

    연예인은 인기를 먹고 살며, 그러기 위해서는 메스컴도 필수다. 인기를 위해서는 갖가지 루머도 만들어내서 알리는 판에, 인기 얻고, 스타되니 뒷바라지 해주던 매스컴이나 팬들은 귀찮은 존재가 되었나보다. 고시 공부하는 남친 뒷바라지 해주니 패스하고 쓰래기 취급하며 뻥~ 차버릴 꼴과 아주 비슷하다. 누구랑 붙어살던 관심 하나도 없는데,,, 그를 이쁘다라고 따라 줬던 많이 이들이 안타까울 뿐이다..... 쪕!!

  5. 연예인의 인기 2009/08/28 11:12 # M/D Reply Permalink

    참.웃긴다..그사람이 무엇때문에 비밀로 결혼해서 남편의 이름을 공개하느니.마느니..그자체가 우습다..
    그사람이 공인이며 국민의 인기로 그만한 위치에 있다고본다..그렇다면 알권리차원에서도 알려야 정상이다..굳이 국민에게 숨겨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란말인가..그런걸 싫다고.못하게한다면 그또한 배우를 하지말아야 하는거 아닌가.

  6. 샛별 2009/08/28 11:26 # M/D Reply Permalink

    난 남편이 누군지 궁금하지 않다.한국에서 번 돈은 한국에서 쓰길 바랄 뿐이다.

  7. 하나 2009/08/28 12:22 # M/D Reply Permalink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저런 기사를 쓰는지 원...기자들은 할일도 없나...

  8. 유공후손 2009/08/28 13:35 # M/D Reply Permalink

    그냥 놔둬라~~ 좀 재밌게 행복하게 살구로~~

    남 사생활에 간섭하지마라 ...

    남의 얘기를 공개적으로 떠벌이는게 범죄라는것을 왜 모를까~~

  9. dpfk 2009/08/28 13:38 # M/D Reply Permalink

    뭐 개인일인데 이렇게 이슈가 되나? 공인? 좋아하시네 연예인이 공인이라...

  10. 천태산 2009/08/28 13:43 # M/D Reply Permalink

    머가 그리 궁금한가?

    그리고 변호사란 놈이 이영애가 공인이다?
    이런 법을 전공하고 사회적으로 지식을 신뢰 받아야 하는 변호사란 자의 입에서 연예인이 공인이다 라고 하는게 참 한심하다. 뒤로 자빠지겠다.
    연론과 방송에 얼굴이 팔리면 공인이라면 어디 연예인 뿐인가 ...
    무슨 개풀뜯어먹는 소리하고 있네.
    그리고 이영애가 머여? 누구여? 대통양이여? 니미 배우하나 가지고 ㅉㅉ

  11. 공개하건말건 2009/08/28 13:59 # M/D Reply Permalink

    이미 다들 알고 있다.
    쇼하냐?

  12. 청운 2009/08/28 13:59 # M/D Reply Permalink

    어이가 없어....생 ㅉ랄들을 하고있네....
    결혼을 했든 이혼을 했든 지들이 뭐라고....

  13. sdf 2009/08/28 14:05 # M/D Reply Permalink

    나는 알지~~~

  14. 무소유 2009/08/28 14:12 # M/D Reply Permalink

    우리는 연예인에게 너무 열광하고있다
    예인들의 지저분한 사생활 너무 알려고 한다
    열광하지말고 그냥 무덤덤하게 보통사람으로 대해주 면 어떨까

  15. 비밀방문자 2009/08/28 14:38 # M/D Reply Permalink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16. 압구정 2009/08/28 15:32 # M/D Reply Permalink

    쉽게 말해 어떤연예인이 성형수술을 했다고 칩시다..전국민이 척봐도 100% 성형수술했는데 티비에 나와서 살이빠져서 그렇다고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하는데도 누구하나도 공개적으로 성형했다고 못한다는겁니다..기자도 기사에 썼다가는 법적으로 문제삼을까봐 못하고 대한민국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거짓말하는 사회가 되는거에요..이게 뭡니까?

  17. 담비 엄마 2009/08/28 17:40 # M/D Reply Permalink

    도대체 왜 이렇게 이영애의 결혼이 핫이슈인지..모르겠다..

    물론 한나라의 톱스타였으니 그럴만도 하다고 이해는 하면서도..

    남편분을 두고 신상 공개니 비공개니..하는 자체도 참 우습다..
    .
    어차피 지금이 아니더라도 평생을 숨기고 살게 아니라면 남편의 신상을 공개

    하는편이 훨씬 났지 않나싶다...

    괜히 이런 저런 추론에 억측에 루머에..시달리면 뒤가 구리고 귀가 가려운것보

    단 쿨하게..밝히는 편이 훨씬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나을듯 싶네요...

  18. 난말야. 2009/08/28 18:52 # M/D Reply Permalink

    난 오히려 이영애 결혼이 조용히 묻혔다고 생각드는데...
    몰로보나 굉장히 수상한 결혼이잖아.
    오히려 한류스타에 톱여배우인 이영애가 결혼한거에 비해
    너무 잠잠한게 더 이상하지..

    1. 수상? 2009/08/28 21:51# M/DPermalink

      공개 안 하면 수상한건가? 연예인들 중 비밀결혼한 사람 하나도 없수? 왜 꽃다발이라도 보내게? ㅋㅋ

  19. - t - 2009/08/28 20:06 # M/D Reply Permalink

    국민의 알권리가 어디까지 적용되는지??
    그 사람이 누구와 결혼을 했건, 그것을 밝히건 말건 그건 개인의 사정이지
    왜 그것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어서 이런 찬반토론까지 가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네...

    그저 욕먹기 쉬운 상황이니까 실명밝히라는 거겠지 -
    그렇지않았다면 이런식으로 몰고가지도 않겠지.
    우리나라 사람들 참 마녀사냥 잘하잖아요.

  20. choonam 2009/08/28 21:35 # M/D Reply Permalink

    조용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분이신가 ??
    그냥 냅둬유~.

  21. hryery 2009/08/28 21:42 # M/D Reply Permalink

    무신 숨박꼭질 하냐 ~이미 다 알고 있다 정호영 지금 할까말까 하는게 더사람들을 궁금하게 하지

  22. 아저씨들아 2009/08/28 21:50 # M/D Reply Permalink

    그렇게 억울하신가? 이영애 나이라면 55세 아저씨라도 어쩔 수 없는거지 뭐 29세랑 결혼하려고 했나 그리고 왜 남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데..'조*일보' 에 연예인은 사생활을 대중에게 공개할 '권리' 가 있다고..정말 연예인 못 해먹을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영애가 니들 아저씨들, 기자놈들 껀수 올려주려고 결혼 공개해야 되니? 원래 시끄러운게 싫을 수 있고 그래서 일반인들도 결혼 해외로 나가서 하고 조용히 하려는 추세인데..왜 이영애가 자기결혼을 40 가까이 되 해서 자랑하기도 창피한 결혼을 왜 공개해야 되는데..저 사진 속 아저씨들 사진 올려놓은 거 참 가관이네 야 이영애가 불쌍하다 이것들아

  23. 담쟁 2009/08/29 00:21 # M/D Reply Permalink

    별로 궁금하지 않는데 기자들이 설레발 치는듯

  24. 팽나무 2009/08/29 00:31 # M/D Reply Permalink

    오죽이나 부끄러운일들이 많으면 감추고싶겠나? 그냥 모른척들 해요.

  25. 2009/08/29 01:57 # M/D Reply Permalink

    사람들 이름이 중요한줄 아는건가
    저사람이 10년전에 심씨랑 결혼한 인간이라 그게 알고싶은거지
    여기 왜 이렇게 이거 모르는 사람이 많지
    이너넷 안하는 다 아줌마 아저씨인듯.ㅋㅋㅋㅋ

  26. dd 2009/08/29 03:38 # M/D Reply Permalink

    사생활 침해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고,,,
    이영애씨가 자신이 말할 준비가 되면 공개할 듯...
    그 때까지 모두들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둘것...

  27. 나나 2009/08/29 04:16 # M/D Reply Permalink

    얼마나 뒤가 구린 놈이길래..ㅉㅉㅉ

  28. 안궁금해 2009/08/29 07:53 # M/D Reply Permalink

    궁금하지않다!! 비호감이다.!
    다늙어서 이혼경력 몇번있는 부자만나서 결혼했겠지~.
    행복하게 사세요~.
    언론에서 싼티나게 이러는거아니다. 국민은 알고싶지 않아 하거든~

  29. 3류변호사퇴치조 2009/08/29 08:49 # M/D Reply Permalink

    이영애는 공인이고 공인이 누구하고 결혼했다고 이름밝히는데 무슨 얼어죽을 개인프라이버시고 명예훼손이냐 우리사회는3류들이 너무설쳐 탈이야

  30. 이기적인 배우 2009/08/29 10:22 # M/D Reply Permalink

    한심한 이영애란 배우.
    아닌말로~팬덕에 돈벌고 사는거 아냐?그런데 이제 팬들 무시한다?
    솔직히 프라이버시어쩌구하는데 남편이 떳떳한 신분이면 저렇게 비공개했겠어?심은하 파혼자(그당시 나이 경력 다속이고 그런거 방송에 대대적으로 공개돼 망신탓는데)라는것 때문에 그런거 아냐?ㅎㅎㅎ 비공개 한다고 그게 영원히 속일수 있는건가?그리고 그렇게 결혼한들 행복할까? 일단,다 집어치우고 이영애란 배우는 대한민국만 아니라 다른나라에서도 얼굴팔린 배우라는거다.좀더 책임감을 가지고 살길 바란다.개인적인 이기심에 배우로서의 도리를 저버린게 더 안타깝다.그러려고 신비주의 했나?광고계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31. 굄돌 2009/08/29 10:38 # M/D Reply Permalink

    본인이 싫다고 하면 그 뜻을 존중해주는 게 당연한 도리 아닌가요.
    또 실명 공개가 법적으로 하자 있나, 없나 하는
    법조인들의 의견이 왜 중요한가요?
    이런 기사에 왜 관심을 가져야 하고
    왜 이런 기사를 쓴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32. 11 2009/08/29 11:25 # M/D Reply Permalink

    공인이면 공개해도 정당하다고 봄.

  33. michelle 2009/08/29 11:57 # M/D Reply Permalink

    배우들의 신비주의에 놀아나는 몇몇 관객만 우스운거지, 이영애가 니네 친한친구냐? 많은 걸 바라게? 결국 그렇고 그런 사이끼리 만나 결혼하는 거지. 이영애가 니네 안중에나 두는 조신한 녀자기라도 한냥 착각들. ㅋㅋㅋ 이영애 대단하네. 그래도 별별 사건 얼마나 다 정씨가 가려줬음 그 세월동안 있다가 결혼까지 하고. 화류계 애들은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일야. 결국 연예계 x-file 다 사실.


    톱스타 L양은 "이영애"

    톱스타 L양과 여권 실세 A씨
    >
    > ‘고삐 풀린 망아지’ 위기 때마다 구원
    >
    > 톱스타 L양 뒤에는 비호 세력으로 @@@@@여권 실세 A씨@@@@@가 버티고 있다?
    최근 연예계에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는 괴담 중 하나다. 이 루머에 귀기울여 보면
    단순히 급조된 첩보가 아니라는 심증을 갖게 된다. 구체적인 정황과 에피소드들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지는 L양이 수사기관이나 여론으로 인해 궁지에 몰릴 때마다 A씨가 해결사처럼
    나타나 구해준다는 것. @@@@@날아다니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막강 파워맨 A씨
    @@@@@의 각별한 애정 표현인 셈이다. 그래서 한 매니저는 A씨를 가리켜 ‘슈퍼맨’
    이라 부른다.
    심지어 그는 광고주를 만날 기회가 있으면 @@@@@L양의 CF 출연까지
    조율@@@@@해 준다는 말까지 나돈다.
    그는 @@@@@작년까지만 해도 여자 탤런트 C양과 염문설@@@@@이 있었지만
    작년 말부터 L양에게로 마음이 기운 듯하다고 한다.
    평소 @@@@@깨끗하고 단아한 이미지의 대명사 L양@@@@@의 실제 사생활은
    아연실색 그 자체다. 술 한 모금 안 마실 것처럼 고상하게 행동하지만 일단 가라오케나
    바에 가면 폭탄주만 제조해 마시고, 급기야 테이블까지 올라가 마이크를 놓지 않을 정도로
    ‘고삐 풀린 망아지’라고 한 목격자는 말했다.
    L양은 작년 방배동 호스트바 단속에서 적발되기도 했지만 매스컴을 의식한 담당 수사관이
    ‘다음부턴 절대 오지 말라’며 현장에서 훈방조치해 구사일생으로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다고.
    두 사람의 은밀한 거래(?)는 @@@@@연예계 마약 정국@@@@@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L양은 수사선상 블랙리스트에 오르내렸지만 그때마다 절묘하게 위기를 비껴가곤 했다.
    언론의 융단폭격을 받은 황수정과 대조되는 양상이었다.
    연예계에선 이 과정에서도 틀림없이 A씨의 실력 행사가 있었을 것이라고 입방아를 찧고 있다.
    위기에 몰릴 때마다 L양이 A씨에게 도움을 청했고 그때마다 A씨가 전화 한 통으로 고공
    플레이를 펼쳤다는 후문.
    그러나 ‘화무십일홍’이라 하지 않았던가. A씨의 권세와 L양의 인기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관심거리다.

  34. 그 남자인 것 같았음 2009/08/29 12:04 # M/D Reply Permalink

    과거에 모 배우와 동시 염문설 났던 사람...

  35. 2009/08/29 12:25 # M/D Reply Permalink

    뭐그리궁금한지 잘살면되지..

  36. 저질녀 2009/09/08 11:26 # M/D Reply Permalink

    이영애그~좋게봤는데 내부를 들여다보니 한심하기 짝
    이없군..신랑님의 이름도 공개 못할정도면 알만한 사람이군...
    남들이.. 전세계가 ..하늘이.. 다알고 있으니 비밀을 언제 까지 숨기고 사실지
    더욱더 궁금하군요 팬의 한사람으로써 너무도 큰 실망을 햇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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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와 평화의 상징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화해와 통합의 메시지를 남기고 영면했습니다. 김 전 대통령 장례는 서거 엿새 만인 23일 국민의 애도 속에서 국장(國葬)으로 치러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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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3. 서울 시청앞)

영결식은 오후 2시 국회 앞마당에서 부인 이희호 여사 등 유가족과 이명박 대통령과 부인 김윤옥 여사, 각계대표 및 시민 등 2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습니다.
운구 행렬은 여의도 민주당사와 동교동 사저에 들른 뒤 광화문 세종로 네거리와 서울광장, 서울역을 지나 동작대교를 넘어 오후 450분께 국립 서울현충원에 도착했습니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길마다 많은 시민들이 나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지켜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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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3. 서울 시청앞)

이희호 여사는 서울광장에서 남편이 평생 추구해 온 화해와 용서의 정신, 평화와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는 행동의 양심으로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이 남편의 유지입니다"라고 대국민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이번 국장은 1979년 임기중이었던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이어 30년 만입니다. 건국 후 첫 전직 대통령의 예로 치러졌으며, 유해는 현충원내 264(80여평) 규모로 안장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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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3. 서울 시청앞)

한편 행정안전부는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전국 184개 공식 분향소에서 23일 오후 3시까지 총 696836명이 조문했다고 밝혔습니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 145736, 광주 125905, 전남 188610, 전북 6186, 경기 59633, 부산 17900, 대전 15860, 대구 11190명 등이다. 분향소는 16개 시ㆍ도에 22, 시ㆍ군ㆍ구에 162곳이 설치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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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호 여사의 순애보, 김홍일 전 의원의 사부가>

김대중 전 대통령(DJ) 23일 평생 반려자이자 동지였던 이희호 여사의 47년의 시간을 떠올리며 써내려간 편지를 품에 안고 영면했다. 이 여사의 마지막 순애보가 담긴 편지였다. DJ는 이 여사의 사랑이 담긴 마지막 편지와 함게 ‘동행’의 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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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0.사진=서울 사진공동취재단)

자서전인 ‘동행’의 앞 표지 뒷면에 친필로 작성한 ‘이별 편지’였다.
 
이 여사가 자신의 자서전 ‘동행’의 속지에 적어 내려간 편지는 “사랑하는 당신에게”라는 말로 시작된다. 편지에서 이 여사는 “같이 살면서 나의 잘못됨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늘 너그럽게 모든 것을 용서하며 아껴준 것 참 고맙습니다”라며 남편에게 평생의 고마웠던 마음을 전했다.
 
이어 “이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서 편히 쉬시기를 빕니다. 너무 쓰리고 아픈 고난의 생을 잘도 참고 견딘 당신을 나는 참으로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당신을 뜨거운 사랑의 품 안에 편히 쉬시게 하실 것입니다. 어려움을 잘 감내하신 것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승리의 면류관을 씌워주실 것을 믿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라는 말로 마지막 인사를 대신했다.
 
이 여사의 작별 편지는 그녀의 자서전 ‘동행’과 손수건, 이 여사가 손수 뜨개질해 투병중인 남편의 찬 배를 감싸줬던 덮개, 김 전 대통령이 생전 즐겨보던 성경책과 함께 김 전 대통령과 함께 고인이 잠든 관 속에서 영면하게 됐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당신의 아내 이희호, 2009.8.20.”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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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 김 전 대통령의 장남 김홍일 전 의원도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채 유가족들과 함께 입장했다. 특히 온 몸의 마비 증상으로 인해 언어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고 거동도 불편한 상태지만 안간힘을 다해 아버지의 영전에 헌화를 해 주변인들을 더욱 안타깝게 하기도 했다.
 가족들은 김 전 의원에 영결식과 안장식만 참석할 것을 권유했지만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가는 길을 끝까지 모시겠다며 운구 행렬에 참가하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의원은 지난 18일 김 전 대통령의 서거 당일 오후 의사소통을 못할 정도로 몸이 불편했지만 오랫동안 닫혀있던 말문을 열고 "아버지" 3번 불러 주변을 안타깝게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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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파킨슨 병을 앓아 평소 말을 거의 못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장남 김홍일 전 의원이 김 전 대통령의 임종을 지켜보며 “아..지”라고 세 마디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김 전 대통령측 최경환 비서관은 19일 브리핑에서 “평소 파킨슨병으로 말씀도 못 하시던 분이 임종 순간 만큼은 ‘아버지’라고 세 마디를 했다고 한다”고 전했다. 김 전 의원은 특히 유난히 수척해진 모습으로 나타나 주변에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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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며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맞이하고 있는 김홍일 전 의원.사진=사진공동취재단(2009.8.18). 신병 치료차 미국으로 출국하기 전 2002 1.6모습(오른쪽,연합뉴스)



김 전 의원은 지난 18일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한 직후 임시 빈소가 마련되자 이희호 여사에 이어 휠체어를 탄 채 헌화했다. 15·16·17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 전 의원은 의정 활동 당시만 해도 통통한 얼굴에 김 전대통령을 닮아 풍채가 좋은 모습이었지만 언론을 통해 살이 빠진 수척한 얼굴이 공개됐다.

김 전 의원은 1972년 공군에 입대해 만기 전역할 만큼 건강에 문제가 없었지만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국가안전기획부에 구속돼 갖은 고문을 당한 뒤 심각한 고문 후유증에 시달렸고, 당뇨와 고혈압에 파킨슨 병까지 겹쳐 투병해 왔다.

손주영 정치전문가(73)는 “김 전 대통령 빈소에 낯선 사람이 휠체어에 앉아 있어 처음에는 김 전 의원인 줄 몰랐다. 주변에서 ‘김 전 의원이다’고 말해 인사를 나눴다. 김 전 의원의 달라진 모습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많은 네티즌들은 안타깝다” “고문 휴유증으로 병을 얻었다” “더 이상 악화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연민의 정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명식 강남세브란스 신경과 교수는 “김 전 의원의 표정에 변화가 없고 상당한 언어장애를 겪고 있는 것은 파킨슨 병 증상 중 하나다. 전형적인 파킨슨 병과는 다르지만 눈이 올라가고 입이 벌어지는 모습은 파킨슨 병 증후군인 핵상마비로 보인다. 파킨슨 병의 경우 몸무게가 심하게 차이가 날 수 있다. 호르몬 밸런스가 무너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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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전직 대통령 미망인들의 눈물

 “평생 민주화 동지”라 표현했던 김 전 대통령은 후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먼저 보내야 했다. 그 후 채 100일도 지나지 않는 시점에 김 전 대통령도 후배 대통령을 먼저 떠나 보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거했다. 두 전직 대통령을 떠나 보낸 빈자리엔 이제 홀로 남아있는 미망인만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사진=사진공동취재단.2009.08.19)

대통령을 잃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가 18일 오후 9시쯤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빈소를 방문, 이희호 여사와 부등켜안고 오열했다. 평생의 동지이자 넘어야 할 경쟁상대이기도 했던 남편들의 지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났을까. 홀로 남겨진 이의 동병상련이었을까. 두 미망인은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리지 못하고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권 여사는 조문에 앞서 북받친 목소리로 “너무 가슴이 아프고 슬픕니다”라는 짧은 말을 남기고 빈소로 들어갔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았던 권 여사는 얼마 전 자신이 겪었던 아픔을 그대로 느끼고 있을 이 여사를 마주 하자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부쩍 수척해진 얼굴에 두 줄기 흘러내리는 눈물은 이제 함께 할 동반자가 없다는 생각에 더 서러운 눈물이었다.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울고 싶어도 울지 못했던 순간들도 많았다.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김 전대통령의 빈소 앞에서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들의 두 미망인이 함께 부등켜 울고 있는 것이다. 서로의 등을 어루만지며 한참을 울던 두 미망인은 간신히 울음을 멈추고 나서야 위로의 대화를 나눴다. 권 여사는 이 여사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겹쳐서 이런 슬픈 일이 일어났다”고 안타까워했다. 이에 이 여사가 “강해지셔야 한다, 오래 사셔야 한다”며 힘을 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권 여사는 이 여사에세 “죄송하다. 생전에 찾아 뵙지 못해 죄송하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이 여사는 “멀리서 오신 걸 알면 (김 전 대통령이) 대단히 기쁘게 생각하실 것이다”고 말했다.

서로의 아픈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까. 10여 분 남짓한 만남 속에 몇 마디 오간 대화는 많지 않았다. 두 전직 대통령만큼이나 ‘정치적 동반자’였던 두 미망인. 민주화라는 열망을 공유하며 같은 듯 다른 듯 먼 길을 돌아 결국 같은 곳에서 만나게 될 두 대통령. 이들 만큼이나 대한민국 전직 두 대통령의 미망인이 부등켜 안고 속절없이 흘린 눈물, 그리고 모든 애증은 죽음 뒤에 그저 안타까움과 미안함으로만 남았다. 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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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가 잡고있던 권양숙 여사의 손, 어제는 이희호 여사의 어깨를 감쌌습니다.

    Tracked from moonsoon씨네 블로그 2009/08/19 11:19Delete

    노 대통령 영결식에서 그가 한없이 울던 그 모습입니다. 이 사진, 자꾸 눈물이 나게 합니다. 가슴을 저밉니다. 그가 떠난 어제, 그가 잡고 있던 권양숙 여사의 손이 어제는 이희호 여사의 어깨를 감쌌습니다. 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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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1012 2009/08/19 21:25 # M/D Reply Permalink

    미망인 이란말 뜻을 알고 쓰시는건지요? 미망인이란말은 함께 죽지도 못한 살

    아있는 사람이란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유가족이라 해야 맞을 겁니다..

    1. yks01 2009/08/19 22:54# M/DPermalink

      유가족이 맞습니다.여기서는 남편을 먼저 잃은 아내로 틀린 표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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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지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김대중(85 ·金大中) 전 대통령이 18일 오후 1 43분 서거했다.

박창일 세브란스 병원장은 "대한민국 제15대 대통령인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밝히며 "다발성 장기부전으로 심장이 멎어 심폐소생술은 커다란 의의가 없었다"고 밝혔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삶,수차례 사선을 넘나든 시기를 보내온 ‘인동초’ 삶이 마감된 순간이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달 13일 폐렴으로 신촌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뒤 폐색전증이 발병하면서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치료를 받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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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1월 2일 광주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병원 측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전 9시께 혈압과 산소포화도가 급격히 떨어져 혈압상승제 등을 이용해 집중 치료를 했지만 끝내 회복되지 못했다.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진 원인은 폐색전증이었다.심하게 손상된 폐때문에 폐동맥이 막혀 호흡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 주요인이다.

박지원 전 비서실장은 "이희호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홍업· 홍걸, 그리고 손자·손녀들이 임종을 지켜봤다" "믿고 싶지 않는 현실이지만 최선을 다해준 의료진에 고마움을 전한다"고 했다.

대한민국 제 15대 대통령인 김 전대통령의 앞날은 수난과 고통의 연속이었다. 8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전남 무안에서 지원유세를 하던 1971 524일 벌어진 의문의 교통사고는 김 전 대통령의 앞날을 대변해 주는 고통의 서막에 불과했다
박정희 정권의 살해 기도 의혹이 일었던 이 사고로 김 전 대통령은 왼쪽 다리에 고관절 장애를 입고 여생을 불편한 다리로 지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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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퇴임 후 처음으로 찾은  5.18묘역에서)

유신 이래 5년 반의 투옥, 3년여의 망명, 78년도에는 6년 반의 가택연금을 당했다. 1980년 학생 소요사태의 배후조종 혐의로 구속된 뒤 광주민주화운동을 사전 지시했다는 내란음모 혐의로 80 5·17사태를 주도한 신군부에 의해 81 1월 사형 선고까지 받았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압력으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그는 82년 형집행정지로 석방됐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85 12대 총선을 앞두고 귀국,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으로서 민주화 항쟁을 이끌었다.

직선제로 치러진 87 13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 평화민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출마했으나 민정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와 통일민주당 김영삼 후보에 이어 3위에 그쳤다. 92 14대 대선에서는 민자당 김영삼 후보에 패해 정계은퇴를 선언했으나 95년 이를 번복하고 국민회의를 창당, 네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97년 네 번째 도전만에 대선에 승리, 98 2월 제15대 대통령에 취임,2000년에는 남북정상회담을 이끈 공로가 인정돼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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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5일 광주 북구 운정동 5.18국립묘지)

대통령 재임 시절인 2002 4월 과로와 위장장애 등으로 국군 서울지구병원에 입원했다. 대통령직에서 퇴임 한 2003년엔 관상동맥 확장시술을 받았고 이후 주기적으로 매주 세 차례씩 신장 혈액 투석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
2005
년에는 폐에 물이 차는 폐부종 증세 등으로 2차례 입원하는 등 건강 상태가 극도로 나빠지기도 했으나, 다양한 외부 활동을 통해 여전히 건재를 알려 왔다. 지난 5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 건강이 악화돼 영결식장에는 휠체어를 탄 채 등장했다. 이어 지난 6 6·15 남북공동선언 9주년 특별강연을 갖는 등 건강에 대한 세간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듯 했으나 결국 반평생을 괴롭혀 온 육신의 고통을 조용히 내려놓고 영면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25년 전남 신안에서 농부였던 아버지 김운식(金雲植)과 어머니 장수금(張守錦) 4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목포 북교초등학교와 5년제 목포상고를 졸업한 뒤 목포일보 사장을 지냈다. 민주당 대변인이었던 63년 목포에서 6대 국회의원 선거에 당선된 뒤 7,8,13,14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97년 대선 도전 네 번째만에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호(李姬鎬) 여사와 세 아들인 홍일·홍업· 홍걸씨 등이 있다. 장례절차는 아직 결정되질 않았다. 양광삼의 네모세상.2009년 08.18


 
 - 1924년 전남 하의면 출생
- 1943
목포상고 졸업
- 1946
차용애 여사와 결혼. 슬하에 홍일·홍업 두아들
- 1948
목포일보 사장
- 1952
흥국해운 사장
- 1951
한국 해운조합연합회 이사
- 1954 3
대 민의원 선거 목포출마, 낙선
- 1957
민주당 중앙상임위원
- 1959 4
대 민의원 재선거 강원도 인제 출마, 낙선
- 1960
민주당 기획위원겸 대변인, 차용애 여사 사망
- 1961
5대 민의원
- 1962
이희호 여사와 결혼
- 1963
6대 국회의원
- 1965
민중당(민정·민주 통합야당) 대변인
- 1967
7대 국회의원
- 1970
신민당 대통령 후보, 경희대 대학원 석사과정 수료
- 1971
7대 대통령 선거 출마, 낙선, 8대 국회의원
- 1972
일본 동경서 유신 반대 첫 성명 발표(망명)
- 1974
민족회복 국민회의 참여
- 1976-1978
3.1 민주구국선언 사건으로 구속
- 1978
가석방 후 가택연금
- 1979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결성
- 1981
내란음모사건으로 사형선고
- 1982
미국 망명
- 1983
재미한국 인권문제연구소 창설
- 1985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의장
- 1987 4
월 통일민주당 상임고문
- 1987 10
월 평화민주당 총재 겸 대통령 후보
- 1988
13대 국회의원
- 1991
신민당 총재
- 1992
14대 국회의원, 14대 대통령 선거 낙선, 정계은퇴 선언
- 1993
영국 케임브리지대 객원교수
- 1994
아시아·태평양 평화재단 이사장
- 1995
새정치국민회의 창당
-1997
15대 대통령 당선
- 1998
15대 대통령 취임
- 2000
새천년 민주당 총재, 남북정상회담, 노벨평화상 수상
- 2002
새천년 민주당 탈당
- 2003
15대 대통령 퇴임, 김대중도서관 개관
- 2004
내란 음모사건 재심 무죄 선고
- 2006
김대중평화센터 이사장

- 2009.8.18
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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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인의 입맛도 훌랄라~

“한국인의 입맛에 맞으면 세계 시장에도 통하지 않겠습니까?

훌랄라 참숯바비큐치킨 김병갑 대표(www:hoolala.co.kr)가 외식문화에 대한 새로운 블루오션을 창출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토종 치킨 프랜차이즈 훌랄라 참숯바비큐치킨은 독창적인 메뉴·소스와 함께 외식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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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대표는 “현재 훌랄라는 참숯바비큐치킨업계 1·2위를 할 정도로 성장했다”며  1999년 프랜차이즈 시장에 뛰어든 후 10년 만에 670여 개의 가맹점을 확보했다. 예비 창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아이템이 됐다”고 밝혔다. 이어 “올 여름 130여 개의 가맹점이 개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이것은 230여 가지의 치킨 프랜차이즈 시장이 난무한 가운데 올린 성과다
.
김 대표는 “훌랄라는 폐점하는 가맹점이 거의 없다”며 “모든 가맹점주를 ‘가족’으로 대한다”고 했다. “전 재산과 인생을 건 창업자들이다. 그들을 실패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실패한 것이다”고 했다.프랜차이즈는 가맹점주들과의 공동 투자로 그들의 흥망성쇠가 곧 자신과 일치 한다는 것이다.

황제마케팅으로 수익 극대화
 
정상에 선 맛을 봤을까? 아니면 정상에 서 있어서 취할 게 많은 것일까? 프랜차이즈 훌랄라의 안정적인 수입구조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사업의 다각화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새로운 사업 구상은 일명 ‘황제마케팅’이다.  황제 마케팅을 펼치며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황제마케팅은 30평대 내외의 매장의 크기를 100여평 이상으로 넓혀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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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대표는  “훌랄라의 새로운 가맹점은 이전 매장보다 크고 우아한 레스토랑 형태로 꾸밀 생각이다. 그 지역의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고 했다. 현재 매장크기인 99m²(30여 평) 내·외를 330m² (100 여 평) 이상으로 넓혀 매출과 수익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이다. 시장조사도 끝냈다. 김 대표는 “최근 직영점을 대상으로 매장 크기를 2배로 늘려보니 매출이 3~4배 정도 뛰었다”며 “대형화와 고급화를 통해 명품 치킨 브랜드를 창출해 내겠다”고 밝혔다.

국산 제품을 이용한 새로운 요리도 계속 개발하겠다고 했다.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건강과 맛을 입증할 수 있는 새로운 브랜드를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미 훌랄라의 치킨 요리 종류는 30여 개가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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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식 요리로 세계무대에 도전

김 대표 사업 구상은 치킨에만 극한하지 않는다. 피자사업을 준비중이며, 패밀리레스토랑과 햄버거 또는 도너츠 체인점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김 대표는  “요리를 직접 해 당일 소화시킬 수 있는 분량만 배송하는 마게팅 전략을 취하겠다”며 다양한 외식문화에 도전의사를 피력했다.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해 최근 경기도 양지에 신사옥을 마련했다. 냉동·냉장창고를 갖춘 물류센터도 확보했다. 일대일 맞춤 교육이 가능한 창업지원연구센터도 개설했다. 청결함을 기반으로 한 전자동 시스템으로 음식 가공·유통, 그리고 가맹주들의 교육까지 한 곳에서 처리하겠다는 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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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무대는 세계다. 그는 “한국식 음식과 브랜드로 세계 무대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전문 요리사와 함게 고품질의 대한민국 대표음식을 생산해 내 세계무대에 도전하겠다는 것이다. “브랜드가치가 제품의 가치다. 내가 만든 외식문화의 브랜드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했다. 장기간 계속되는 불황속에서도 그가 오히려 더 공격적인 마게팅을 구사하고 있는 이유다
.
 
김 대표는 “정직한 외식문화는 고객과의 약속이다. 외식문화를 책임지고 있는 만큼 대중과의 책임을 신뢰와 양심으로 대신하겠다”며 “국내 고객과의 신뢰가 쌓이면 자연스레 세계 무대를 도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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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 보인다. 요 녀석아~

나는 네가 올 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지롱~

태양빛 작열하던 2009 8 1.


처음 시작은 이글거리는 태양 아래에서 혀를 내민 일명 똘똘이(개이름) 목욕시킨다면서 시작했지.

이미 너 또한 홀딱 벗어 던진 채.

당당하다는 듯 엄지손가락도 치켜세우면서.

그러더니 이내 빨간 욕조(?)가 있는 수돗가로 달려왔지.

이 분수는 광화문에 설치된 초대형 분수 부럽지 않는 시설이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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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한 귀퉁이 빨간 욕조 속에 발을 담구며 분수를 뿜어대니

이글거리는 태양쯤은 쉽게 잊혀졌겠지.
너희들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더위 사냥을 시작했지.

서로가 외줄 분수를 켜면서.

지하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분수는 추울 정도로 시원한 물이 나왔겠지.

아빠가 카메라를 꺼내 들고 다 찍고 있는 사실은 몰랐지?. 요놈들아. 꼬추도 다보인다.쨔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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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은 이날을 쉬 잊어버릴 줄 모르겠지만

아빠가 다 기록해 놓았다.

다음엔 할머니에게 빨간 욕조를 특대형으로 사다 놓으라고 특별주문 해야 되겠다.

네가 들어가니 욕조가 작아보인다.
2009
8월의 시작.

시골마당 한 귀퉁이에 마련된 작은 수돗가가 서울 도심 광장을 치솟는 거대한 분수 물길보다 더 소중한 추억거리가 됐음을 네놈들은 알려나 모르겠다.

서울에서는 해 보지 못하는 시골 여름나기다.

양광삼의 네모세상.200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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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스산맥! 산악자전거로 넘다.

“일생일대의 도전이자 꿈이고 희망이다.

수많은 능선, 날카로운 암탑과 봉우리, 그리고 만년설.손을 뻗치면 닿을 듯한 흰구름과 파란하늘이 환상적으로 펼쳐져 있어  등산객마다 감탄과 자연의 위대함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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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희성)

유럽 중부에 위치, 동쪽의 오스트리아와 슬로베니아에서 시작해 이탈리아와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독일을 거쳐 서쪽 프랑스에까지 길이 1200Km, 150~250Km에 달하는 산맥. 그 중 가장 높은 산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 있는 몽블랑 산(4810 m)으로 유럽에서 가장 험준한 산맥으로 알려져 있는 곳. 누구나 꿈꾸는 비경,하지만 험준한 산맥이 기다리고 있는 곳. 바로 알프스 산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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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민대장)

산악자전거로 알프스를 넘는다.

 

알프스 산맥을 넘기 위해 한국의 건아들이 나섰다.
산악자전거를 타고 알프스 산맥을 넘는 한국인 알프스 산악자전거 원정대가 대장정에 돌입했다
.
원정대는 김창민(하이델베르크·26)을 대장으로 박희성(20)·유영환(25) 등 독일 유학생 세 명과 하광오(45)·이강세(49)·김선우(38) 등 한국인 현직교사 등 총 6명으로 구성됐다. D 데이는 2.하광오 대원 등 한국인 교사 세 명이 29일 인천공항을 통해 독일로 출발, 독일에 있는 김창민 대장 일행과 합류하면서 7일간의 알프스 크로스 원정대의 첫 페달을 밟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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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부터 유영환·박희성·김창민·김선우·하강우·이강세)


알프스 크로스는 지난 2002 LS전선 구자열 회장과 2007년 한국인 3명이 ‘대회’에 참가한 적은 있지만, 독자적으로 원정대를 결성해 스스로 루트를 개발한 개인적 알프스 크로스는 이들이 처음이다. 원정대장 김창민씨와 유학생 유영환씨는 지난해 여름 독일의 알프스 최고봉 추크슈피체(2996m)를 산악자전거로 등정한 알프스 크로스 경험자이다. 김 대장은 광주에서 고교까지 마쳤다.독일 하이델베르크 의과대학에 재학 중이고, 재독 한인자전거클럽 회장을 맡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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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이강세ㆍ유영환ㆍ박희성ㆍ하광오ㆍ김선우ㆍ김창민)


원정대원들은 인터넷에서 처음 만났다. 김 대장은 "한국인들끼리 알프스 산맥을 넘어보고 싶었다"며 "산악자전거 동호회와 사이트에 '알프스를 산악자전거로 넘자'는 글을 남겼다"고 했다. 산악자전거라면 자신감이 넘쳤던 그들, 화려한 경관을 자랑하는 알프스를 넘는다는 도전 정신이 그들을 하나로 뭉치게 만들었다. 의기투합한 20~40 6명의 원정대원들은 매일 전화와 이메일을 통해 서로 간의 훈련방법을 공유하는 등 사전 준비를 철저히 했다. 김 대장은 "두 달 전부터 수영·축구등과 하루 50㎞ 넘는 산악라이딩, 100㎞ 넘는 로드로 특별 체력훈련 등을 소화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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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국인이다.


원정대는 독일에서 출발해 리히텐슈타인·스위스를 거쳐 이탈리아까지 알프스 430㎞ 넘는 거리를 횡단한다.
김 대장은 "우리가 가야 할 코스는 해발 최고지점 2843m를 비롯해 2000m 이상 봉우리만도 9개를 넘는 등 가파른 업힐·다운힐의 험준한 코스다. 수백m 낭떠러지를 끼고 달리는 위험성도 감수해야만 한다"며 "15㎞ 동안 42개 구비를 돌며 계속 올라가기만 하는 마의 업힐 구간과 자전거를 메고 암벽 사다리를 오르는 곳도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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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한 체력과 고난도 자전거 기술, 용기가 필요하다. 알프스 산맥 고산지대의 산소결핍증세도 이겨내야 할 과제다. 김 대장은 “알프스는 연간 독일·프랑스·스위스 등과 각국 익스트림 동호회원들 및 선수들 약 5만여 명이 라이딩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루트는 알프스 크로스의 난이도 중 몇 안 되는 어려운 코스로 누구나 다 가는 길이 아니다. 한국인의 기상과 자긍심이라면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도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 루트는 20년 전 독일인 헤크마이어(Heckmair)가 산악자전거가 일반화 되기 전 자전거로 독일에서 출발해 이탈리아로 넘었던 코스다. 원정대는 그 발자취를 따르는 역사적인 횡보의 주인공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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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다 가는 길이라면 도전하지 않았다.

 

김 대장은 “하루 50~90㎞까지 이동한다. 다섯 시간에서 열한 시간이 넘는 강행군 라이딩을 소화해야 한다”며 “알프스 산맥을 자전거를 타고 넘는다는 것은 라이더들에게 극한에 대한 도전이다. 모든 이에게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었다”며 “험준한 지형 때문에 위험이 뒤따르는 알프스 크로스야말로 자기 극복을 위해 도전할 가치가 있는 코스로, 접하는 순간부터 라이더들의 심장을 급격히 요동치게 한다”며 강한 도전의식을 나타냈다. 이어 “알프스 크로스 도중 마주치는 수려한 자연경관들은 알프스 크로스에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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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좀솜지역 묵티나트 지형에서 300km 넘는 라이딩을 한 경력이 있는 하광오 교사는 “충분한 사전조사와 연습으로 도전할 수 있는 몸을 만들었다. 험난한 코스가 많아 힘든 도전이 되겠지만 기회가 온 만큼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양광삼의 네모세상.2009.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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